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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민주노총 30주년, 양경규가 말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어제와 오늘 (2부)

by Domoleft 2025. 11. 14.

<도모 2025년 11월호 민주노총 30주년 기념 노동운동 특집>

[인터뷰] 민주노총 30주년, 양경규가 말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어제와 오늘 (2부)

민주노총 30주년, 늘 민주노조운동의 숙원이자 지상과제였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어디에서 시작했고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민주노총 정치위원장과 민주노동당 초대 부대표를 맡아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헌신해 온 양경규 전 정의당 국회의원이 바라보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어제와 오늘을 <도모> 인터뷰에 싣는다.


- 민주노동당 이야기를 좀 더 나눠 보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본인의 페이스북에 미국 뉴욕시장 조란 맘다니의 당선을 이야기하면서 (맘다니처럼 되었어야 할) 민주노동당이 정파들의 패권놀음에 의한 분당으로 실패했다, 는 식의 코멘트를 남긴 바 있습니다. 이 주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민주노동당 분당은 당시를 기억하는 모든 분들에게 여러모로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관점에서, 당시 민주노동당의 급격한 성장, 그리고 이어진 실패와 분당의 원인은 무엇으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1부에서 계속) (민주노동당의)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아까 맘다니를 말씀하셨는데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닙니다만 맘다니에 대한 평가에서도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고 봅니다. 아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미국의 DSA(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 그룹은 과거 미국의 산업민주주의연맹(LID)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독자적인 진보정당이 미국 사회에서 가능하지 않다, 그러니 당분간 민주당 내에 블록을 형성하여 우리 입장을 대변하는 방식을 전략적으로 선택하자'고 해서 등장한 것이죠.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이들은 독자적인 진보정당으로서의 전망을 폐기하고 미국 민주당 안에서의 블록 전술을 쓰고 있는 것인데요.

 

이런 관점에서 조란 맘다니라는 사람의 등장에 우리가 열광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렇게 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진보정치의 성장에 있어 바람직하지 않기에 (노동·녹색·정의당 등이) 위성정당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진보정치 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히 해야겠죠. 그렇기에 조란 맘다니에 취한 감상은 이해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분명 냉정하게 바라봐야 될 지점이 존재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물론 그 의제의 급진성, 대중성과 밀착성은 고민해 보며 배워야 할 지점이고, 우리 진보정당들이 '대중성'이라는 명목으로 의제의 급진화를 급격히 포기한 것에 대한 반성적 성찰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뉴욕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조란 맘다니. 출처: AP

 

어쨌든 실패의 가장 큰 이유에는 기본적인 노선의 문제가 존재하고 있던 거죠. 사람들은 왜 갈라졌냐고 얘기하지만, 운동이라고 하는 건 결국 노선이 중요하고 그 노선에 있어 결정적으로 부딪혔던 것은 민주당과의 연정 문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에 대한 문제, 이 두 가지를 둘러싼 갈등 문제였습니다. 독자적인 정당과 독자적인 후보,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갖는 한 축. 그리고 노무현 정부와의 연정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당시 북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핵실험 강행 문제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한 축. 이런 완전히 다른 두 노선이 부딪혔던 것이 결정적 문제였고, 결국 이 노선 논쟁이 당 안에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났기에 분당할 수밖에 없었던 지점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최대강령을 중심으로 공약수를 만들면서 최대한 같이 할 수 있는 여지를 찾는 것이 중요했지만, 그것마저도 불가능하게 했던 것은 패권 문제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늦게 결합했지만 다수파를 점유했던 소위 자민통 그룹이 당내에서 보여 준 패권적 행태는 지금 돌이켜 봐도 충분히 비판받을 만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지역위원회나 전국위원회를 장악하기 위해 위장전입 등을 통해 몰려다니며 표를 모으는 일들이 있었는데, 물론 권력에 대한 투쟁이라고 하는 것이 어느 집단이나 정치조직이든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 정도를 지나치게 넘어가는 지점들이 발생한 것이죠.

 

이렇게 팽팽하게 대립하던 와중 일심회 사건(민주노동당의 당원 일부가 당원 정보를 북한 당국에 넘긴 사건: 편집자 주)이 터지면서 더욱 갈등의 구조가 커지기 시작하고, 정점을 찍었던 것은 권영길 위원장의 2007년 대선 출마였습니다. 권영길 후보는 이미 1997년 그리고 2002년 두 번을 출마했었고, 당시 민주노동당에는 권영길을 제외하고도 2명의 대중적·국민적 정치인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심상정과 노회찬이라는 두 사람이 (대중정치인의) 바톤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 두 사람은 앞서 이야기한 노선 갈등의 구조에서 당의 다수파였던 사람들과 다른 쪽에 있었죠. 당시 다수파는 마땅한 대선후보가 없었음에도 당내 권력에 대한 고민 때문에 권영길 후보를 또다시 출마시키는 전략을 쓰게 되고, 권영길 후보가 승리하여 세 번째 대선 후보가 되자 당 내에서보다도 시민들이 오히려 더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어찌되었든 분당의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된 거죠.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대회

 

이 문제와 관련해서 권영길 후보는 나중에 저에게 개인적으로도 이야기했고, 다소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얘기한 바 있는데 자신의 결정 중에서 가장 후회하는 지점 중 하나라고 하는 소회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게 단지 한 정치인의 개인적 판단 미스일 뿐 아니라 한국 진보정당운동사에서 중요한 실패의 원인 중 하나로서 뼈아픈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인이 반성했다고 하지만 최근 SNS에 올린 글을 보고 그걸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냐'고 묻는 것은 그것대로 충분히 지적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패권주의와 대선 경선, 이런 것들이 분당 혹은 실패의 직접적 원인이었다고 보여지고요.

 

노동정치의 측면에서 마지막으로 하나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성장하면서 등장한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노동운동의 '대리주의'였습니다. 당이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노동운동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구조에서 '이제 우리는 노조나 열심히 하고, 돈 내고 표 주고 선거운동할 때 잠깐 나가주면 되는 거다'라는 생각이 대두하면서 당 정치에 대한 직접적 관여를 줄이거나 발을 빼는 대리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한 거죠. 일례로 당시만 해도 민주노동당은 (당내 선거에서) 민주노총 할당을 갖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전국위원 할당 50%, 나중에는 줄어서 30%가 되었는데요. 당의 전국위원 절반을 민주노총이 직접 선출해서 오는 건데 정작 이 의결권에 대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소위 노동운동의 대리주의,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하지 않게 된 노동자 정치운동의 실패는 곧 당의 실패의 원인이 됐고 이는 결국 특정 정파가 당을 좌지우지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기도 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은 2008년 분당되었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라는 두 개의 진보정당이 병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현재와 같은 진보정당 분화의 시작점이기도 했는데요. 당시 진보신당의 당원으로 함께하지 않고 노동정치연대를 만들어 활동하시다가 2015년 4자통합 당시 정의당에 들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보신당에 참여하지 않으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네, 결과적으로 분당이 되었죠. 선거는 패배하고, 일심회 사건이 터지면서 당의 혁신을 위해 심상정 의원을 위원장으로 비대위가 구성됩니다. 이 때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를 포함해서 당 혁신안이 제출되는데 이게 부결됩니다. 이미 선도탈당으로 나간 사람도 있었지만 안에서 어쨌든 분당은 막아 보자고 생각하면서 이 안에서 혁신의 방향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도 비대위 혁신안이 부결되면서 손을 들고 말죠. 저는 끝까지 분당을 반대했는데, 혁신안이 부결되고 사람들이 나갈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분당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할 순 없다, 이게 어떻게 만든 당인데' 하는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민주노동당을 만들 때 정치위원장이었던 데에서 오는 개인적인 입장과 감정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당을) 지켜내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때 좋다, 분당을 하더라도 그러면 (새로운 정당의) 충분한 여력을 만들 수 있도록 6개월만 참으면서 이 안에서 조금 더 당내 투쟁을 하면서 정리를 하자, 이렇게 나갈 수는 없다 하는 얘기도 했었는데요, 비대위 혁신안이 부결되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진보신당을 만들 때에도 처음에는 참여했습니다. 그 당시 주장했던 건 이왕 이렇게 됐으니 정말로 책임 있는 당을 새롭게 구성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제대로 시간을 갖고 노력하자는 입장이었고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분당이 되자마자 다가온 것이 18대 총선이었습니다. 총선에 당 없이 나갈 수는 없다. 그러니까 페이퍼 정당이라도 어쨌든 만들어야 된다. 이런 의견들이 있었고 여기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했습니다. 다만 이 당이 '우리의 당'은 아니다. 선거를 치르고 나서 다시 원점에서 논의해서 제대로 된 당을 만들지 않고 갈 수는 없다고 주장을 하면서 진보신당이라는 일종의 가설정당으로 선거를 같이 치르게 됩니다.

2008년 3월 진보신당 창당대회. 출처: 오마이뉴스

 

선거가 끝나고, 진보신당은 불행하게도 2.96%를 받아 의석을 얻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당을 어떻게 할 거냐고 할 때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약속대로 당을 원점에서 제대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자. 그러나 당 내의 많은 사람들은 이 진보신당으로 계속 가자고 주장했고, 저는 이렇게 만드는 당은 결국 또 한 번 좌초할 것이고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조금 어렵더라도 1년 정도를 준비하고 다시 창당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내부적으로 소수파가 되면서 결국 진보신당에 계속 함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소위 말하는 진보정당의 다원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저도 한 동안 당적이 없이 지내다가 노동정치연대라는 조직을 만들면서 다시 한 번 진보정당을 전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그림을 만들고자 동분서주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후 2015년 4자 통합을 통해 정의당에 오게 된 거죠.

 

 

- 2015년 4자 통합으로 정의당에 입당한 이후 사회연대임금특별위원장, 노동평등본부장, 당대표 후보, 비례대표 국회의원까지 당 내에서 다양한 직책을 역임해 오셨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동안 정의당이 걸어온 행보는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만, 저는 정의당이 독립하고 나서 일정하게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었다 생각합니다. 잠시 국회의원을 해 본 입장에서 돌이켜 보면 6개의 의석이 결코 적은 의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적 효능감을 주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기 위한 공간은 6석이면 충분히 열려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의원직을 역임하고 나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당이 계속 성장하지 못하고 결국은 의석 없는 정당으로 추락한 이유는 뭘까,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거겠죠.

 

첫 번째로는 진보정당의 성장과 관련하여 조직노동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부족했다는 생각입니다. (정의당 주류 정치인들과 지도부는)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노동이 이미 '가진 자들의 운동'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물론 실제로 그런 측면이 존재합니다만, 그래서 오히려 민주노총과의 관계에 대해 과거에 비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굉장히 컸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함께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당시 정의당에는 조직노동과 함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활동이 전무했고, 그렇기에 조직노동과의 사이는 자연스레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죠.

 

두 번째로는 무리한 '중원 전략'을 짚고 싶습니다. '앞마당은 정리했으니 이제 중원으로 나가자'고 했지만, 사실은 진보정치의 기반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도 않은 조건에서 성을 버리고 또 다른 성을 점유하겠다고 떠나는 모양새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갖고 있던 성조차 뺏겨 버리고, 중원으로 나갔는데 오히려 중원 공략은 훨씬 어려웠고. 그 중원 전략이라는 것 자체도 결국 의회주의에 경도되어 사회운동과 접점을 만들고 함께하는 것을, 급진적인 의제를 말하는 것을 포기하는 기제로 작동했죠. '합리적 진보'라는 미명의 허구에 취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원순 전 시장 사망 당시 류호정, 장혜영 의원의 조문 거부와 심상정 대표의 사과로 불거진 논란. 출처: SBS 뉴스

 

이런 구조들이 합쳐지면서 많은 일들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정의당이 현장과 멀어졌다'는 평가, 혹은 조국 사태, 박원순 문제나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의 문제, 낙태권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라거나 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이 갈등의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기초적 기반이 되는 성을 버리고 다른 성을 공략해도 이길 수 있다, 우리의 땅이 더 넓어질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빚어낸 전략적 실패라 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시 정의당이 바라본 것은 선거법 개정을 통한 당세 확장이었는데, 선거법 개정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에 매달리면서 진보정치가 가져야 될 기본적인 성장 전략을 폐기했다는 것은 굉장히 뼈아픈 지점입니다. 이런 것들이 정의당이 걸어온 행보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겠고요.

 

일각에서 나오는 평가들 중 동의할 수 없는 부분 하나는 특히 '지역 활동가들이 지역 중심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결과론적으로 지역에서 당선자를 못 냈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릇된 평가입니다. 중앙이 그런 전략을 쓰는 와중에도 지역의 활동가들은 지역정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했지만, 결국 이 노력과 중앙정치의 공중전이 접목을 이루어야 되는데 중앙정치의 실종이 지역정치에 있어 끊임없는 절벽으로 작동한 측면이 훨씬 더 컸다. 이것을 마치 당의 지역활동가들이 지역운동을 하지 않았다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적 인프라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 내에서 성장하는 인적 인프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중원 전략으로서 새로운 얼굴을 세우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외려 당의 전체적인 인적 인프라를 해체시키거나 훼손시키는 경향성이 컸다고 보여집니다.

 

 

- 지난 21대 대선에서 민주노총은 이전과 달리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현 집행부는 2023년 스스로 정한 정치방침을 뒤엎고 진보당 김재연 후보와 단일화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를 가능케 하는 방침을 통과시키려다 무산되었습니다. 동시에 민주노총의 가장 큰 두 산별인 공공운수노조와 금속노조가 지지한 후보인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라는 초라한 득표율을 얻었습니다. 두 사례 모두 맥락은 다르지만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한 현 노동자 정치세력화 과제가 마주한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듯 합니다. 현재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맞닥뜨린 가장 큰 난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진보정당 스스로가 조직노동과의 관계에 대한 필요성과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직노동 또한 진보정당운동과 멀어졌다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왜 조직노동은 우리를 안 찍냐'가 아니라 그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은 진보정당의 책임이 존재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노동운동 스스로의 반성과 고민이 필요한 거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본질적 실패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먹고 살 만한 노동자들 중심의 조직이 되어 버린 민주노총의 구조적 변화 자체가 조합주의 혹은 거대 정당으로의 투항을 부추기게 된 것이고, 이런 구조적 문제가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해 나갈 때도 부딪혀야 되는 가장 고민스러운 영역일 겁니다.

 

그렇기에 대중적 집단에 소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 앞으로 노동자 정치운동을 하면서 특히 고민해야 될 지점입니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문제다'가 아니라, 그 조합원들과 함께하는 각 산별이나 민주노총 중앙의 정치사업으로서의 기획 프로그램들이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더 지적되어야 할 문제인 거죠. 그런 측면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혹은 진보정당운동의 지금 최대 고민은 민주당과 명백히 다른 우리의 대중 소구력이 어디에 있을지 찾아나가는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간 보여 온 의제의 실패와 포지셔닝의 실패를 딛고, 민주당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 진보정치로서의 자기 입장들을 분명히 해 나가는 정확한 행보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악수하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출처: 연합뉴스

 

또 하나, 우리 모두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 중 하나는 한국 정치 전체의 실패입니다. 제가 볼 때 이 문제는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인데요, '내란'이라는 초유의 문제가 등장하고 한국 사회의 담론이 다시 20년, 30년 전으로 돌아가면서 정치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 '민주주의'가 되어 버렸죠. 원래 진보정치는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더 큰 실질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인데, 지금 한국 정치는 오히려 20~30년 전의 과제였던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문제로 다시 회귀하게 된 겁니다. 결국 한국 민주주의가 퇴행하면서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이 훨씬 강화되는 구조로 바뀌기 시작한 거죠. 이 구조 내에서는 우리가 불평등의 문제, 기후위기의 문제,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지적할 때마다 듣는 소리인 "지금 그게 중요하냐"라는 이야기도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더 퇴행할 겁니다. 이런 적대적 공생 관계는 민주주의를 같이 퇴행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보여지는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지금은 잠시 들어가기는 했습니다만 예를 들면 대통령에 대한 재판 중지법, 그리고 검찰의 항소 포기 등이 있는데요.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당연히 지적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다시 내란 문제와 연결해서 비판을 회피하면서 넘어간다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같이 퇴행시켜 가는 구조가 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전임자보다 조금만 나으면 훨씬 나은 정권이 되는 구조가 당연하다는 듯 돌아가게 되고, 이 문제는 앞으로 한국의 노동정치, 진보정치가 반드시 고민해야 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질서가 전면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극우정치의 부상과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것이 지금 세계의 구조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구조를 넘어서고자 하는 급진좌파 프로그램이나 세력들이 등장함에 반해 오히려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그런 세력들이 퇴행하는 구조로 가고 있는데 이 부분을 잘 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유럽의 좌파정당들은 왜 선전하고 있는가, 남미의 좌파정당들은 어떻게 집권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보고 기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전통적인 거대 정당들의 실패를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나오는 것이 필요한데 이 지점을 정확히 뚫지 못한다면 진보정치의 미래가 과연 있겠는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죠. 이런 것들이 지금 노동정치, 진보정치가 부딪히고 있는 핵심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급진좌파의 세계적 기수들. 좌측부터: 독일 좌파당 원내대표 하이디 라이히네크 / 멕시코 대통령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 국제 문제를 언급해 주셨는데, 연장선상에 있는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현재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 신냉전, 그리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이라는 파도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의 관세 압박이 각국 산업에 끼칠 우려가 거센데요. 이런 상황에서 국제연대 차원에서의 노동정치 세력화는 어떻게 가능할지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 운동의 국제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늘날의 세계는 훨씬 더 열린 세계가 되었는데, 혹자는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얘기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국면은 단순히 세계화의 후퇴와 보호주의의 확대만으로 규정할 수 있는 국면이 아닙니다. 여전히 세계화는 진행되고 있고, 다만 자본에게 일정한 이익이 되는 보호주의적 방식으로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호주의라고 해서 시장을 닫으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관세를 추가적으로 부과하고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더욱 압박하면서 '보호해 줄 테니까 세금 내라'고 하는 방식이 만연하는 것이죠. 이 구조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시장화와 상품화, 사회복지의 축소, 노동유연화 등의 가치들은 외려 끊임없이 더욱 확장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국제주의는 오히려 10년 전, 20년 전보다도 후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한때 세계사회포럼을 비롯해서 이러저러한 시도가 있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그 양상도 매우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이 고민입니다. 기후위기 문제, 팔레스타인 문제 등 일부 의제들에 있어서는 일정한 국제연대가 이뤄지고 있지만, 세계를 바꾸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운동의 국제화라고 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여전히 취약한데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민주노총도 과거 국제연대에 적잖이 노력한 바 있습니다만, 이제는 민주노총이 더욱 중심이 되어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여전히 그 부분에서 취약한 모습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최근의 경향에서도 우려스러운 지점이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국제주의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계급의 단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계급의 단결을 위해 국제적으로 무엇을 주장할 것인지가 중요한 초점이 되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운동의 국제주의가 '트럼프 반대'로 귀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틀렸다기보다는 핵심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APEC을 통해 무엇이 합의되든지 간에 그것은 결국 최종적으로 자본의 이익으로 가는 것이죠. 그런 (자본으로 집중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문제, 환경과 생태의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지적되고 나열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 운동의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관세로 갑질하는 트럼프는 나쁜 놈이다'가 데모의 가장 주요한 구호이자 테마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번 민주노총 노동자대회의 발언 및 연설들도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체로 그런 맥락과 우리 운동의 역할, 과제를 정확하게 짚기보다는 마치 트럼프라는 대상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며 '민족적 울분'을 해소하려는 듯한 내용들이 많았는데요, 그런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좀 더 명확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민주노총을 비롯한 운동진영의 반트럼프 운동이 주로 그렇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서 다소 안타까웠고, 이런 관점에서 이후에도 운동의 국제주의가 지향해야 될 가치에 대해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민주노총 노동자대회의 반트럼프 구호들. 출처: 뉴스핌

 

- 진보정치의 실패는 노동정치의 실패와 자주 동의어로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경규가 생각하는 오늘날 노동정치의 가치가 있다면, 양경규에게 노동정치란 무엇인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이 대목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보정치, 노동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정치죠. 그런데 그 세상은 자본주의입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이윤에 대항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제는 결국 노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 중심의 정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저항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정치라는 것입니다. 자본의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정치, 노동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정치라는 것은 곧 돈 중심, 이윤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운동 그 자체가 바로 노동정치이고, 기후위기, 여성과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 이 모든 것들이 자본주의 체제라는 구조가 발생시키는 모순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결국 노동정치라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노동정치라고 하면 노동자 투쟁에 자주 가는 정치, 노동 의제를 제기하는 정치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예컨대 정의당을 비판할 때 '노동은 없고 페미니즘만 한다'고 하면서 노동중심 정치를 안 한다는 비판은 온당한 비판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늘 노동중심 정치가 곧 페미니즘이고, 노동중심 정치가 곧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치이고 녹색의 정치다, 이렇게 주장하곤 합니다. 낸시 프레이저가 얘기한 것처럼 이미 우리 사회는 이 제도화된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라는 단선적 계급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분명 과거의 자본주의를 설명할 때 이는 가장 중요한 기제였지만, 이제 우리 사회는 그와 같은 자본주의적 모순들이 제도화되고 중첩되어 있는 사회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기후위기, 젠더, 인종차별과 같은 문제들을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노동정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도모>와 인터뷰하는 양경규 전 의원

 

-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으며 새로운 시대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고민하고 있을 <도모> 독자 분들을 위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노동정치·진보정치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현재의 조건만을 놓고 보면 노동정치와 진보정치를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희망을 버리라고 이야기하는 게 정답일 것입니다. 그런데 운동이라는 것이 희망이 있을 때 하고 희망이 없을 때는 안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희망은 결국 하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 보면서 시작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진보정치와 노동정치가 현재 상태에서 희망적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정신승리'이다. (웃음)

 

오히려 우리는 지금 희망이 없다는 것이 명확하지만 희망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해야 되는 거죠. 노동정치와 진보정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어차피 필요한 거라면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고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가 희망을 직접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전 회장, 전환 국제연대팀장.

동국대학교와 고양시, 대학원생노조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