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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보정치의 얼굴 뒤, 숨겨진 이름들: 진보 3당 디자이너 인터뷰 (2부)

by Domoleft 2025. 8. 12.

[인터뷰] 진보정치의 얼굴 뒤, 숨겨진 이름들: 진보 3당 디자이너 인터뷰 (2부)

각 진보정당의 디자이너들이 바라보는 '진보정치', '디자인' 그리고 '진보정치의 디자인'이란 어떤 것일까? <도모>가 만난 진보 3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디자이너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 그 2부를 게재한다.


※ 본 기사는 1부에서 이어집니다

윤석열 퇴진운동 당시 광화문 진보 3당 농성장에 걸린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의 깃발. 출처: 노동과세계


- 본격적으로 디자인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디자인을 하시면서 각 정당마다의 고유한 느낌이나 아이덴티티가 있을 텐데요. 작업하실 때 주로 어떤 걸 제일 신경써서 작업하는지, 어떤 아이덴티티를 특히 살리려고 노력하는지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루(노동당): 사실 저는 처음 선전홍보국장으로 채용됐을 때 전임자도 없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야 되는(웃음) 상황에서 두 가지 정도를 중점에 두고 선전물을 작업했던 것 같아요. 일단 첫 번째는 기본값을 하자. 어떤 조직이든지 특히 기본값은 해 줘야 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다른 것들을 아무리 잘 해도 여기서 구멍이 나면 제대로 안 돌아가는 듯이 보이는 부분들이 있고, 홍보가 대표적으로 그런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원내정당들처럼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일상적인 활동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죠.

 

그 연장선상에서, 사실 저는 홍보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내용이 있고 활동이 있다면 그걸 밖으로 내보내는 작업이 홍보인 거지, 내용 없이 그림만 예쁘게 만들어서 내보낼 거라면 굳이 정당이나 운동단위에서 디자인을 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그래서 '작업하는 사람이 자기가 만드는 게 뭔지를 이해하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주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제 메인 의제는 성소수자 쪽이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서 기후가 됐든 노동이 됐든 다양한 의제에 대한 홍보물들을 내보낼 때도, 물론 기본적으로는 문안을 받아서 만드는 것이지만 '그냥 만들라니까 만든다'를 넘어서 이 홍보물의 내용에 대해 선전담당자를 포함해서 당 전반적인 이해가 있고 그 일환으로 이 홍보물이 나왔다. 이런 느낌을 주기 위해서 특히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R(녹색당): 저 같은 경우에는, 보통 '의외성'이 있는 게 가장 매력적이라고 하잖아요. 예를 들면 녹색당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여전히 '환경 정당',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이런 것들 많이들 떠올리고(웃음) 실제로 저희 당원들 중에서는 그런 걸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런데 물론 (환경 정당이라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저희 스스로 긍정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시에 의식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하는 것도 있거든요. 특히 "환경 이야기하는 정당인데 진보정치, 소수자 정치 이런 이야기를 왜 해야 되냐" 이런 생각들이 당 안에도 밖에도 있을 수 있는데, 그걸 타파하고자 나름대로 노력을 해 온 것 같아요.

 

디자인적으로는 특히 '뭘 해도 힙하게 하자'라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대안 정당, 진보정당이라면) 사람들이 '다르다' '재미있다'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예를 들면 선거를 할 때도 후보자 토론회를 나가거나 하면 그 클립을 따서 쇼츠나 릴스처럼 숏폼(short-form) 형식의 영상들을 만들곤 하잖아요. 그럴 때 배경음악을 다 펑키한 음악으로 깐다거나, 앰비언트 같은 전자음악을 깔기도 하고. 비슷하게 웹포스터나 성명 이미지를 만들 때도 그런 식으로 아이덴티티를 잡아 나가는 것 같아요.

녹색당이 발행했던 논평 웹카드들. 출처: 녹색당

 

김지현(정의당): 사실은 저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진보정당이라고 하면 조금 더 재치있고 젊은 느낌, '힙'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각자의 디자인 스타일이 있고 제 전임자 분들의 노고도 있었겠지만 정의당이 그 부분에서는 조금 약하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7기 정의당(2022.10~2024.05: 편집자 주)의 홍보물을 참 좋아하는데요. 진보정당이 보여줄 수 있는 발랄한 무드가 가장 잘 나왔던 때 같습니다. 다만 그때는 여러 명이 작업을 했고, 당의 상황도 어느 정도 홍보역량에 투자가 가능했다고 하면 원외정당이 되고 난 8기 때는 그런 부분이 사라졌잖아요. 그래서 내가 7기 때 모습까지는 못 따라가더라도 최소한 '노티 안 나는'(웃음) 깔끔한 홍보물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사실 정의당도 여러 국면들을 거쳐 오면서 분위기가 많이 무거워졌잖아요. 그러다 보니 나가는 글이나 홍보물에 괜히 장난기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전체적으로 딱딱한 느낌이 없잖아 있어서 이런 짐들을 조금 내려놔 보자, 화려한 정도는 아니지만 정돈되고 (긍정적으로) 가벼운 인상을 줘 보자는 생각을 했고 실천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물론 마음대로 잘 안 될 때가 훨씬 많았지만, 그래도 그 부분에서 절반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않았나 싶습니다. SNS 같은 경우에도 플랫폼별 특징을 많이 활용해 보려고 노력했고요.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진보 3당이 공조하게 되고 나서 영향을 받은 것도 많다 보니 (진보정치의 젊은 감각을) 정의당에 맞게 자연스럽게 녹여 보자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정의당의 논평 웹카드 및 포스터들. 출처: 정의당

 

- 조금은 부담스러운 질문일 수도 있지만, 각 정당의 디자이너로서 그래도 '내가 이것만은 제일 낫다' 하는 부분을 하나씩 뽑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건 순서를 옮겨서 김지현 동지부터 이야기해 볼게요.

 

김지현(정의당): 저는 어디 가서 조금 자조적으로 '내가 걸어다니는 1인 디자인 회사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건 세 명 다 똑같은 입장이라서 대단한 장점은 못 되지만(웃음) 그래도 혼자치고는 발행량이 많다는 것? 홍보인력이 한 명임에도 최대한 과거 시절의 발행량을 흉내는 내 봤다 정도의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것저것 일이 많이 떨어졌을 때 그래도 필요한 속도에 맞춰서 소화하지 않았나. 진보정당이 하고 싶은 것들이나 해야 하는 일들이 굉장히 많고 그만큼 홍보물도 많이 나와야 하는데, 그 속도에 맞춰서 어떻게든 소화해 내는 부분은 저의 강점이다,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R(녹색당): (사전질문을 받고) 고민을 진짜 많이 했는데요, '남들이 안 해 본 것들을 많이 했다'는 게 저의 자부심인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다양한 시도들을 많이 해 봤던 것 같아요. 원외 진보정당은 워낙 언론보도가 잘 안 되니까, 녹색당 피켓을 만들 때 구호보다 당명을 더 크게 넣는 시도를 해 보기도 했어요. 디자인적으로도 뭔가 뻔한 디자인을 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최소한 정당 홍보물에서는 처음 보는 것들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그리고 사실 제가 들어와서 처음 홍보팀장이 되자마자 제일 공을 많이 들였던 건 논평에 함께 나오는 웹카드였어요. 지금도 저를 아는 사람들이 제 작업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들이기도 하고, 제 자부심이기도 하거든요. 계엄 이후로는 많이 공을 못 들이고 있는데(웃음)

 

사실 예전 녹색당 초창기에는 논평 카드가 있었는데 한참 동안 사라졌었거든요. 그걸 다시 부활시키고 싶었던 이유라고 한다면, 저희는 원외정당이다 보니까 국회 소통관을 못 쓰잖아요. 원래 브리핑이라 함은 기자들이 있는 곳에서 쭉 읽으면 보도가 되고 하는데 저희는 그런 매개체가 전혀 없다 보니까, 저희 논평은 실질적으로는 언론공보 역할보다도 읽어 주시는 분들(사회운동, 진보정치진영 내부자들: 편집자 주)에게 입장을 전달하는 역할로 훨씬 많이 기능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브리핑이 조금이라도 더 언론에서 주목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에서 논평 카드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던 것 같아요.

녹색당의 시청역 역주행 사고 1주기 논평 웹카드 / '차별금지법이 민생이다' 논평 웹카드

 

그렇게 안 해 봤던 걸 계속하다 보니니까 다른 진보정당들이나 단체들이 '오 이런 느낌으로도 할 수 있네' 하고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었어서, 그게 또 저한테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여러 단체들에서 녹색당 디자인을 잘 보고 있다고 말해 주는 경우가 꽤 있었거든요. 사실 '운동적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이 상업적인 디자인과는 그 궤가 많이 다르고 레퍼런스도 잘 없잖아요. 물론 디자인 액티비즘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건 상업적 디자인에 종사하는 디자이너들이 주로 하는 활동들이고 진보정치나 사회운동의 디자인과는 또 다른데, 그런 상황에서 일종의 레퍼런스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제 자부심이었습니다.

 

사루(노동당): 흔히 '열정페이'라는 얘기가 있잖아요. 제가 여기 계신 세 분의 페이를 다 아는데 제 페이가 제일 낮거든요. (편집장: 이 얘기 넣어도 되나요?) 이거 정말 편집하지 말고 꼭 넣어 주세요(웃음). 그런 면에서 열정만은 제가 확실하게 1등이 아닐까. 반쯤은 농담이지만, 좀 더 진지한 버전으로 답변드리자면 저는 배우는 게 빠른 것 같기는 해요. 다른 분들하고 다른 점이 저는 사실 디자인 툴을 대학 들어와서 처음 만져 봤거든요. 그리고 제가 처음 채용될 때 당대표와 했던 약속 중에 하나가 '나는 영상을 못하니까 영상은 다른 사람 알아봐라' 였는데 결국 영상도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 그래서 이것저것 배우면서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해보려고 하고 있는 중이고요.

 

사실 0에서 1을 만드는 능력이나 객관적으로 질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건 저보다 다른 분들이 더 잘 하신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가 지금까지 홍보 관련해서 해 왔던 것들은 마이너스를 0으로 만드는 그런 일들이다 보니까. 예를 들어 노동당 SNS로 발행되고 있는 활동보고 내지 브리핑도, 특히 정의당에 비하면 여전히 발행 수가 많이 적기는 하지만 사실 제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 자체가 없었거든요. 그냥 정례적으로 나가는 홍보물이 아무것도 없었고, 논평을 낼 때 나가는 논평 카드도 원래는 시뻘건 배경에 하얀 글씨만 집어넣고 내보내고 했는데 작년쯤부터는 최대한 디자인을 해서 내보내려 하고 있거든요.

2025년 6월 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의 스톤월 항쟁 기념 논평 웹카드. 출처: 노동당

 

사실 제 경우에는 논평 카드나 활동 브리핑을 내보내면서 당 외부보다는 내부를 더 겨냥했던 것 같아요. 노동당이 지금의 당명을 사용한 지 10년이 됐고 진보신당 시절부터 하면 좀 더 오래됐는데 여러 부침이 많았잖아요. 당이 침체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에 당원 동지들도 자신감이 떨어지고 체념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아니다. 우리도 하면 할 수 있다. 지금 어쨌든 다시 추스르고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들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던 거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외부로도 보여지면서 그래도 예전보다 잘 돌아가는구나 하는 인상을 주는 데 나름대로 기여한 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디자이너로서 마이너스를 제로로 돌려놓는 부분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아요.

 

 

- 그렇다면 지금까지 당에서 만들었던 본인의 작업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걸 하나씩만 꼽아 주실 수 있을까요?

 

사루(노동당): 다시 저부터 할까요? 당에서 했던 작업물 중에서는 작년 서울퀴어문화축제 참여 공지로 나갔었던 웹포스터가 기억에 남습니다. "노동당 당원 동지들, 퀴퍼로 모여 주세요" 하는 공지용 입장인데 무지개도 안 넣었고, 팔레스타인 연대집회에도 함께 결합하는 일정이었는데 팔레스타인 국기도 안 들어갔거든요. 그냥 흰 배경에다가 손에 핑크색 페인트를 발라놓은 사진이 들어가 있는 웹자보였는데, 그걸 보고 "징그럽다"는 반응을 주신 동지들이 좀 많았어요.

 

근데 사실 저는 그 반응을 의도하고 만든 디자인이었거든요. 모종의 불쾌함을 수반한 강렬함을 통해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이나 학살에 대한 정동을,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만든 디자인이었는데, 물론 웹자보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 서울 퀴퍼에 노동당 당원 동지들이 꽤 많이 오셨어요. 그 때는 심지어 성소수자위원회가 당의 정식 위원회도 아니었거든요. 거의 저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퀴퍼에 당원들이 많이 모이고 팔레스타인 집회도 다 같이 간 게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씀해 주신 동지들이 많아서, 그런 면에서도 그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2024년 6월 노동당의 서울퀴어문화축제 참여 웹자보. 출처: 노동당


R(녹색당):
예전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당으로 공문이 한 번 온 적이 있었어요. 진보 3당이 다 같이 수령했던 공문이었는데, "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라는 팔레스타인 연대 구호를 넣은 현수막을 진보 3당이 함께 게시했었는데 이 현수막에 들어간 구호가 '이스라엘에 대한 혐오표현'이라면서 게시 중단을 요구하는 공문이었죠.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그 때 저희 당에서 '학살부터 중단하라'는 내용으로 논평이 나갔고 제가 그 논평에 첨부될 논평 카드를 기획하고 준비했던 게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2023년 11월 녹색당의 '학살부터 중단하라' 논평 웹카드 / 해당 논평을 다룬 인도네시아 매체. 출처: 녹색당 / Hidayatullah.com

 

글로벌 그린스(Global Greens, 세계 녹색당들의 연대 조직: 편집자 주) 총회 포스터나, 계엄 당시 '비상계엄 해제하라' 피켓을 뽑아서 국회로 가던 순간들까지 여러 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 규탄 논평에는 제 분노가 가감없이 담겼던 것 같아요. 물론 저희 현수막보다도 팔레스타인 민중의 현실이 제일 중요하지만,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범죄 국가가 한국 진보정당들의 정치활동에 뻔뻔하게 제약을 걸고자 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컸던 거죠. 그 때 마침 당사에 계신 분이 양복을 입고 계시길래 공문을 인쇄해서 반을 찢고 들어 달라고 해서 사진을 찍고 웹카드를 만들었는데,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그걸 공유하면서 분노에 공감해 주신 분들이 많았거든요. 트위터에서도 리트윗이나 캡쳐로 올려 주신 분들이 많았고요. 정당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대의하는 것인데, 집단학살에 대한 수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나의 작업물이 대의했다는 그 경험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2023년 세계녹색당총회(글로벌 그린스) 포스터. 출처: 녹색당

 

김지현(정의당): 두 분이 너무 큰 의미가 있는 것들을 말씀해 주셔서 갑자기 제가 조금 작아지는 느낌인데(웃음)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제가 홍보당직을 맡기로 결정이 되고 사무실 출근 전 일주일 동안 몇 가지 일을 맡은 게 있었어요. 그때 정의당 몰락의 이유를 조명한 SBS의 기획이 있었는데, 아마 유튜브에는 '0석 정의당, 우리는 이래서 망했다'로 올라와 있죠. 그런데 제가 처음 일을 받았을 때는 제목이 그게 아니었어요. 그 당시 당에서 맡은 사실상 첫 업무로서 그 방송을 홍보하는 웹포스터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정작 방송에서는 제목도 바뀌고 내용도 정의당에 대해 다소 부정적으로 조명이 된 거예요. 그 영상이 지금도 유튜브에 검색하면 정의당 관련 영상 중 가장 상위에 뜨는 영상이기도 하고, 그 이후에 '0석 정의당'이라는 조롱을 무수하게 만들어냈던 영상이거든요.

그 당시에 개인적으로 충격을 크게 받았어요. 물론 당연히 디자인 업무를 하다 보면 초안이랑 다르게 내용이 변경되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지만, 처음에 생각했던 방향과 아예 반대 방향으로 나온 결과물을 홍보한 사람이 되어 버린 거잖아요. 사람들한테, 우리 당원들한테 '우리 당 욕하는 영상을 봐 주세요'라고 홍보한 꼴이 된 거예요. 심지어 당에서의 첫 업무였는데. 그래서 그 당시에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당원들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른다는) 부채의식이랄까, 원외 진보정당의 슬픔이랄까요?

두 번째로는 역시 이번 선거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도전한 공보물, 벽보가 전국적으로 후보와 당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건 굉장히 큰 경험이었어요. 특히 선거 홍보물에 대해서는 다양한 매체에서 여러 가지 분석이 많이 나오잖아요. '각 당의 포스터 비교해 봤습니다' 이런 내용의 기사들도 나왔었고, 평가를 해 준 현업 디자이너 분들도 있었고, 그런 게 전부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모든 세밀한 디테일을 다 기획하고 의도해서 만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디테일을 남들이 분석하고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려 주는 건 디자이너로서 경험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업이나 브랜드의 홍보에 대해서도 물론 평가가 나오지만 일반적인 기업의 홍보물을 두고 수많은 매체가 평가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선거 포스터는 다른 무엇보다도 더 세간의 집중과 이목을 끄는 홍보물이고, 그런 기획을 제가 온전히 맡아서 할 수 있었다는 건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정말 큰 경험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제21대 대선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의 포스터와 현수막. 출처: 정의당 / 노컷뉴스

 

- 이 질문도 역시 좀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보정당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나요? 하나씩만 꼽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루(노동당): 항상 오늘, 바로 지금이요. (일동 웃음)

 

R(녹색당): 저는 특히 신체적으로는 계엄 이후 열린 광장에서 피켓을 뽑고 나눠 주는 일들이 정말 힘들었던 거 같아요. 12월 3일 당시에도 마침 당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는데 계엄이 터지고 바로 피켓을 뽑아서 국회로 갔습니다. 그 때를 시작으로 해서 4개월 내내 급하게 어디든 가야 할 때가 많았으니까 그때마다 피켓을 만들어 가야 되는데, 체력적으로 진짜 힘들 때가 많았어요. 남태령 때 트위터에서도 녹색당의 '차 빼라' 피켓이 사진으로 돌고 했었는데, 그것만 해도 당직자가 먼저 도착해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제가 새벽 2시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남태령에 도착해서 함께 지키면서 사진도 찍고 했거든요. 그러다가 이제 깃발이 필요하겠다. 정당의 깃발이 그래도 있는 게 사람들한테 힘이 될 것 같아서, 새벽 6시에 당사에 가서 깃발을 가지고 다시 남태령으로 복귀한 거죠.

 

그렇게 갔다가 피켓을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다시 당사로 돌아갔어요. 그 당시에 준비되어 있던 피켓이 진보당 피켓뿐이라서 모두가 진보당 피켓을 들고 있었거든요. 좀 다양한 피켓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저희 당원들이 들 피켓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급하게 다시 당사로 와서 '차 빼라'를 비롯한 녹색당 피켓 100장 정도를 급하게 인쇄해서 다시 남태령으로 가서 배포했던 그런 기억들이 많이 납니다. 한강진 투쟁 때도 마찬가지로 저희 대표님이 3박 4일을 다 계셨거든요. 그럼 당직자도 있어야 되는데, 눈이 계속 오니까 피켓이 다 젖고 그걸 다 새로 뽑아서 다시 만들고. 아무튼 계엄 시국 내내 그때그때 중요한 것들을 피켓으로 만들어서 급하게 제작하고, 뽑고, 나눠 주고 하는 것들이 체력적으로는 진짜 힘들었던 것 같아요.

녹색당 피켓을 든 채 계엄 당일 군용차를 막아서고, 남태령에서 발언하는 이상현 녹색당 대표. 출처: 녹색당

 

김지현(정의당): 사실은 이게 꼭 '진보정당의 디자이너로서' 힘든 게 맞나 하는 생각이 좀 들긴 하는데, 각자 색채가 다른 분들과 일을 하는 게 조금은 어려웠던 것 같아요. 디자인이라는 영역이 좀 특이해요. 분명 전문적인 영역이지만 사람마다 각자의 '미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예쁘다고 판단하는 것들이 각자 다 다른 거죠. 중앙에서 홍보물을 만들어서 제공하는 저도 제 미감이 있을 텐데, 홍보물을 실제 사용하시는 분들과 제 미감이 다른 경우가 있는 거예요. 특히 저는 중앙당직자로서 시기별로, 사안별로 빨리빨리 결과물을 제공해야 되는 임무가 있기 때문에 이게 충돌하기 시작하면 심적 부담이 커졌던 것 같습니다. 빨리 제공하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에 퀄리티를 좀 포기해야 되는 때도 있고, 또 어떤 순간에는 내가 밀고 나가고 싶은 이미지가 있을 텐데 이게 몇몇 분들의 의견과 부딪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거죠.

물론 이건 누가 옳다 그르다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특정한 사안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갈등의 형태로 드러나는 거라서, 왜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지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걸 좀 강조하면 이 사안을 드러내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왜 중앙에서는 저렇게 했지?' 하는 의문을 당연히 누군가는 가질 수가 있잖아요. 다만 그런 것들을 조율해내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던 거죠. 저한테도 디자인적, 운동적인 방향성이 있는 것이고 특히 당이 나아갔으면 하는 어떤 공통의 이미지가 있는데 모든 분들에게 각자 지역에서든 부문에서든 활동해 왔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이견을 조율해내는 것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든 부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집회에서 사진을 촬영 중인 김지현 전 정의당 홍보차장

 

사루(노동당): 전 디자인 담당자로서 제일 힘들었을 때는 지난 총선 때였던 것 같아요. 물론 선거는 다 힘들지만, 제가 원래 상근을 하던 상태에서 업무 사이클이나 이런 것들을 정리하고 나서 선거에 돌입했으면 그래도 감내할 수 있을 만한 힘듦이었을 텐데 총선 시즌 한복판에 하필 일을 시작했거든요. 제 입사일이 2월 중순이었는데, 당시 투표일이 4월 10일이었거든요. 비례대표 후보를 낼지 여부에서부터 시작해서 슬로건을 정하고, 그때그때 디자인은 나와야 되니까 거의 매일 야근을 했었죠. 물론 야근을 하는 것 자체는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웃음) 지금은 어쨌든 밤에 저녁 먹고 와서 이 일을 해야지 하고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있잖아요. 그 때는 밤까지 앉아 있는데 일은 미친 듯이 몰려오고, 뭘 해야 될지를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그 전에도 지역당부에서 상근자로 일하기는 했지만, 시도당이 돌아가는 것과 중앙당이 돌아가는 건 다를 수밖에 없고 일상 업무와 선거 업무도 완전히 다르잖아요. 거기다가 이전에 중앙에서 홍보담당자로 선거를 치러 본 분이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조언을 줄 사람도 아무도 없는 거예요. 모든 걸 거의 두드려맞아 가면서 배워야 되는 그런 상황이었어서, 일이 많은 것도 많은 건데 '내가 왜 하필 이런 때 입사해서' 싶기도 하면서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물론 그 때는 몰랐죠. 사실 언제 입사를 했어도 정당이라는 게 항상 무슨 일이 생기는 조직이기 때문에(웃음) 어쨌든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하필 선거 때여서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 혹시나 진보정당이나 노동조합, 혹은 사회운동단체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어하는 분이 계시다면 현업 실무자의 입장에서 조언을 한 마디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지 마세요' 뺴고요(웃음).

 

김지현(정의당): 이건 저부터 할까요? 어쨌든 진보정당이나 사회운동단체가 일반 에이전시(외부에서 디자인을 위탁받아 전문으로 디자인을 하는 업체: 편집자 주)나 인하우스(회사 내부 디자인팀: 편집자 주)하고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잖아요. 정당이라는 건 굉장히 특수한 공간이고.. 그래서 사실 물론 그런 생각만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단순히 디자이너로서 이 공간에서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는 조금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도 한 명의 책임 있는 활동가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정당이나 사회운동단체에서 근무하는 것은 굉장히 많은 고민들을 수반하는 자리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먼저 좀 하고 싶어요.

 

다만 이게 무슨 협박이나 굉장히 무서운 곳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웃음) 오히려 '나도 활동가다'라는 생각을 가지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공간이라는 의미이기도 해요. 굳이 종류를 따지자면 정당은 인하우스에 가까운 건데, 보통의 인하우스 디자인 회사를 가게 되면 정말 똑같은 작업물을 찍어내야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스타일이나 포맷이 굉장히 고정적이고 변동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디자이너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나 틈새가 별로 없어요. 보통 디자이너들이 첫 직장으로 에이전시를 많이 추천하는 것도 그것 때문인데, 정당은 인하우스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에이전시 같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거죠. 그래서 만약 내가 어떤 목적이 있고 기획의지가 있다고 한다면 그걸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정당이나 사회운동단체이기도 하거든요.

인하우스 디자이너와 에이전시 디자이너. 출처: ㅍㅍㅅㅅ

 

(진보정당은) 사람들이 홍보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홍보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감각은 조금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홍보담당자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 꽤 많아요. 그래서 달리 말하면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되거든요. 여러 수정이나 타협이 물론 있겠지만 적어도 첫 기획의 방향성은 내가 잡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면에서 '네 꿈을 펼쳐라'가 가능한 공간이기도 하거든요(웃음). 그래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면 자신의 활동에 있어서도, 실력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나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자신의 방향이나 색채가 확고한 사람이라면 일해 볼 만한 직장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활동가로 생각하라'는 것은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아무튼 본래 진보정치나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으신 분 중에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으신 분이 계신다면 그런 마음가짐으로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R(녹색당): 맞아요. 인하우스와 에이전시로 이렇게 딱딱 나눌 수 없는 환경인 것 같기는 해요. 에이전시에서도 사실 저만큼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웃음). 특히 클라이언트(의뢰인: 편집자 주)의 힘이 진짜 센 경우에는 더 그렇고요. 그런 면에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곳이기는 한데, 동시에 '기획'을 잃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사실 홍보팀장이나 선전팀장이라는 자리가 원래대로라면 기획이 주 업무여야 하잖아요. 팀장은 홍보전략에 대한 고민과 기획을 하고, 팀원들이 사진촬영도 하고 영상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사실 정당이든 사회운동단체든 1인 홍보담당자로 굴러가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 그럴수록 툴러(tooler, 기획자가 아닌 실무자로서 디자인 툴만을 다루는 디자이너: 편집자 주)의 역할밖에 못 하게 되기 너무 쉬워요.

녹색당 공동대표 선거 토론회를 중계 중인 녹색당 홍보팀장 R

 

뭔가 기획을 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쏟아지는 웹자보를 만들어야 되고 논평 카드를 만들어야 되고, 기자회견이나 토론회가 있으면 또 밖에 나가서 촬영해야 되고 영상이 들어오면 영상편집도 하고 피켓도 만들어야 하잖아요. 사실 그것만 해도 하루가 다 가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쉽지만 그럼에도 머릿속에 자신의 어떤 기획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홍보라고 하면 디자인을 직접 하는 게 다가 아니잖아요. 일종의 미디어 믹스 같은 것도 신경을 써야 될 것이고, 예산 문제나 여러 매체들 중에 취사선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큰 줄기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총체적 기획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일을 하시게 된다면 본인의 위치를 툴러 혹은 실무자에만 두지 않으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루(노동당): 결국 얘기가 다 비슷하게 가는 것 같긴 한데, 조금 더 나아가 보자면 스스로를 '디자이너'로만 정체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은 홍보나 디자인 같은 활동들로만 내 활동을 국한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이건 물론 각자 활동의 궤적에서 영향을 받고 할 수도 있겠는데, 저는 사실 선전활동가 내지 디자이너의 정체성보다는 그냥 정당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긴 하거든요. 물론 이게 직업이고, 홍보나 디자인이 주 업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른 활동을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또 여기 사무실에만 갇혀 있다 보면 사실 오히려 내가 홍보해야 되는 내용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봐요. 디자이너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어쨌든 내가 우리 단체나 당의 활동에 대해서 활동가로서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이해를 만들어 가고 그 속에서 디자인을 하는 것과, 그냥 디자인만 하는 건 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그  작업물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진정성이랄지 이런 부분에 있어서 티가 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판에서 일하실 분들이라면 내 활동을 디자인이나 홍보에만 국한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자인을 주 업무로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진보정당운동을, 혹은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권영국 후보 유세장에 노동당 조끼를 입고 함께한 사루 노동당 선전홍보국장

 

김지현(정의당): 다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들인 것 같아요. 예컨대 내가 그 사업을 이해하면 할수록 할 수 있는 표현들도 많아진단 말이에요. 그 맥락 속에서 내 나름의 어떤 방향이 생기는 거고. 그런데 남들이 짜 주고 기획해 주는 걸 단순히 예쁘게 포장해서 내보낸다 정도로만 생각을 해 버리면 사실 자신의 생각을 안 만들게 되고, 그럴수록 습관이 디자인이 되기 때문에 습관으로 점철된 결과물이 나온단 말이에요. 그러면 사실 홍보라는 본래의 목적에서도 벗어나게 되는 거라서. 활동가로서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건 결국 내가 홍보하고 싶은 어떤 운동이나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을 가지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R(녹색당): 저는 사루님 말에 사실 조금은 반대하는데요, 활동가 정체성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고요. 그런데 사실 많은 일반 인하우스 디자이너 분들이 안에서 일 없을 때는 다 같이 포장도 하고 짐도 나르고 진짜 육체노동 같은 일도 하고 하잖아요. 본래 자기 일이 아닌 걸 하고 집 와서 사수 욕하고 하는데(웃음) 우리가 지금 계속 디자인 디자인 하지만, 결국 디자인이 뭐냐고 했을 때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죠. 그랬을 때 오히려 우리의 활동에 대해 더 이해하려 하면서 효과적으로 선전하는 것이야말로 디자이너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예를 들어서 이런 거죠.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알아야 하는데 몰라요. 이 사안에 대해서 사람들이 우리가 의도하는 어떤 이미지를 가져야 하는데 그 이미지가 없어요. 그러면 이 이미지 한 장으로 내가 어떤 대책을, 대안을 내놓을 것인가 하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 활동가 이렇게 칼로 무 베듯이 나뉘기보다는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진 활동가들이 늘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정말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도모>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세 디자이너의 대표 작업물들

 

김지현(정의당):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빨리 끝내고 나가야 되니까요(웃음). 사실 여러분이 주변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 다 디자인이잖아요. '실생활에 밀착해 있다'는 문장으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공기와 같이 함께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 디자인이기 때문에, 사실 그것의 중요함이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땀방울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요. 상상하기도 쉽지 않고요. 하지만 상상하기 쉽지 않다고 해서 부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어떤 포스터나 현수막을 보거나 할 때 이 뒤의 어떤 노동들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번씩만 해 주신다면 사실 디자인을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만큼 또 감사한 일이 없거든요. 그런 생각을 한번쯤 더 해 주신다면 좋겠고, 주변에 혹시 디자인을 하는 동료들이 있다면 그들의 노고를 기억해 주시면 참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R(녹색당): 저는 다른 것보다도 진보정당에 많이 입당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치라고 하는 것인데, 물론 투표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가능하다면 그 후보를 함께 만드는 것은 더 좋잖아요. 그 모든 정치의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은 결국 당원이 되고 당권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지금 당장 권력이 있는 정당에 들어가서 당권을 갖고 정치참여를 하는 것 역시 물론 유효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현실 때문에 자신의 신념을 꺾는 게 아니라 여전히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내자고 말하는 진보정당들의 당권을 더 많은 분들이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약간 다른 얘기지만 마지막으로는 크몽(프리랜서 디자이너 및 전문직 인력이 소비자에게 직접 견적서를 보내고 일을 구하는 플랫폼: 편집자 주)를 철폐해야 합니다(웃음). 견적 한 번에 몇천 원인 이 디자이너를 착취하는 크몽을 철폐해야 합니다. 바꿔내야 합니다. 플랫폼 이름이 들어가도 되는 건가요? (편집장: 뭐.. 상관없지 않을까요..) 숨고도 철폐해야 돼. 디자이너들에 대한 착취를 심화하는 플랫폼 디자인을 제대로 규제해야 됩니다. 무늬만 프리랜서고 실제로는 디자이너들의 플랫폼 노동자화를 만들어내는 게 이 숨고와 크몽인데 수수료가 너무 비싸요. 디자이너로서 정말 이런 거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루(노동당): 대책이 필요합니다. 바로 투쟁(웃음). 그러니까 사실 결론은 똑같은데요, 진보정당에 많이 입당해 주셨으면 좋겠고 후원도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 진보정당들이 취약한 현실이 제일 빠르게 반영되는 부분도 홍보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컨대 트위터를 보면 "여기 극우정당 현수막이 많은데 진보정당 현수막도 좀 걸어주시면 안 돼요?" 이런 글들이 거의 맨날맨날 올라오거든요. 그런데 현수막을 못 걸어요.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하니까. 그리고 각 진보정당들이 갖고 있는 특색 있는 정책이나 좋은 내용들이 정말 많은데 여력의 부족으로 이것들이 충분히 외화되지 못하는 상황들이 반복되고, 그런 모습을 보고 진보진영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께서도 실망하시는 악순환이 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최근 몇 년간 진보정당 홍보의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정당의 입장에서 유권자 내지 시민들에게 "우리가 어려우니까 우리 사정을 좀 봐 주세요" 하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죠.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보여지고 있는 것 이상의 포텐셜을 분명히 잠재하고 있는 정당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금전적인 부분이든 인력이든 그런 자원들이 들어왔을 때 가장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부분 중 하나가 또 홍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기반들을 여러분들이 같이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 꼭 진보정당의 어려운 사정을 봐 달라는 얘기만이 아니라,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좀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 그 방법은 진보정당을 후원하고 더 나아가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어 주시는 일이거든요. 더 많은 분들께서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 오늘 진보정당 디자이너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