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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대학생 활동가들과의 대담: 내란 이후, 2026년의 학생운동을 말하다

by Domoleft 2026. 4. 1.

[기획기사] 대학생 활동가들과의 대담: 내란 이후, 2026년의 학생운동을 말하다

학생사회에 수많은 영향을 끼친 12.3 내란 이후 1년 반, 2026년 신학기에도 여전히 대학에는 '학생운동'의 깃발을 들고 진보적 목소리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도모》는 2026년 1학기 개강을 맞아 3월 29일 경희대, 동국대, 서강대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는 대학생 활동가들과의 대담을 가졌다. 활동가들이 바라보는 내란 이후 2026년의 학생운동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도모》와 대담을 진행 중인 학생활동가들. 좌측부터: 예원, 채원, 하연, 다은


- 먼저 도모 독자들을 위해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다은: 안녕하세요.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그리고 도시산책소모임 '산책은핑계고'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다은이라고 합니다. 25학번입니다.

 

하연: 저는 서강대학교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에서 활동하는 노하연이라고 합니다. 23학번이예요. 안녕하세요!

 

채원: 저도 함께 노고지리에서 활동하는 김채원이고요, 24학번입니다. 반갑습니다.

 

예원: 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의 5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예원입니다. 저도 24학번입니다. 반갑습니다!


- 현재 각자 소속된 단위에 대해, 해당 단위가 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포함하여 간략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다은: 제가 활동하고 있는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맑철)는 동국대학교 중앙동아리로, 이론과 실천을 병행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목요일마다 정기 세미나로 책을 읽고 토론하거나 《태일이》 같은 영화를 함께 보는 공동상영을 하고, 함께 연대하며 집회에 참석도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노동절 청년학생전야제나 노동자대회, 고공농성을 진행하셨던 세종호텔 고진수 동지와 연대하는 '호텔리어 서포터즈'에 함께 참여했고요, 학내에 있었던 노동자들의 정년연장 투쟁에 대응하여 함께 기자회견을 열거나 대자보를 쓰는 등 실천활동을 했습니다.

 

'산책은핑계고'도 비슷한 결의 활동을 하는데, 소모임이기 때문에 조금 더 자율적으로 운영하면서 동시에 외부 연대를 주 활동으로 삼고 있습니다. 올해는 화요일마다 활동을 하고 있어요. 3월에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활동을 하고 있고, 그래서 지난주에는 여성혐오에 대해 다루는 '붐따회'(웃음)라는 제목의 집담회를 가졌습니다. 돌아오는 화요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TDoV, 3월 31일. 본 인터뷰는 3월 29일 이루어졌다: 편집자 주)이기 때문에 연대의 마음으로 트랜스젠더 집담회를 준비하고 있고요.

좌측부터: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2025년 신입회원모집 포스터 / 산책은핑계고의 '일상 속 여성혐오 붐따회' 포스터. 출처: 인스타그램 맑스철학연구회 @donggukmarx / 산책은핑계고 @sampo_is_excuse

 

하연, 채원: 저희 노고지리는 이름과 같이 인권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입니다. 다양한 인권 문제나 사회 문제를 함께 공부하며 집회 참여, 대자보 쓰기와 같은 실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21년 설립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정기 활동은 학술 활동 / 문화 활동 / 노학연대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학술 활동에서는 사회문제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해결책을 고민하고, 문화 활동에서는 문화를 중심으로 주로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 문화에 내포된) 사회문제가 일상 혹은 내 앞의 친구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취지죠. 노학연대 활동은 주로 학내 시설노동자와의 연대를 중심으로 투쟁 현장에 함께하거나 스포츠인권연구소와 함께 노동자들을 위한 스포츠 프로그램인 '호호체육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사회운동의 역사, 퀴어, 페미니즘 책을 함께 읽고, 문화 활동에서는 도시개발을 주제로 쫓겨난 사람들의 시선을 다룬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도시산책 등의 활동도 논의하고 있습니다. 3월 여성의날, 5월 노동절, 퀴어퍼레이드나 노동자대회에도 함께 참여하면서 지금은 격주로 열리는 팔레스타인 연대집회에 집중하고 있고요. 더불어 저희는 '친구가 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MT 등을 통해 구성원들과 친목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좌측부터: 서강대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 2026년 신입부원모집 포스터 / 2026년 1학기 서강대 '동아리 거리제'의 노고지리 부스 홍보물. 출처: 인스타그램 노고지리 @nogojiri_seogang

 

예원: 경희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 울림은 소수자성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에 저항하며 학내 모든 구성원의 권리를 위해 행동하는 학생자치기구입니다. 저희는 특히 학생자치기구로서 학내의 제도적, 문화적 변화를 함께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고요. 젠더, 퀴어, 장애. 노동, 환경 등 다양한 의제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경희대의 민주화와 학내 공공성 실현을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 왔습니다. 학교본부 측과 면담도 하고 설문조사나 서명운동 등의 여러 방법을 통해 대학사회의 구조적 차별과 폭력에 맞서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주로 프로젝트 팀을 구성해서 팀별로 활동을 하는데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일자리, 젠더퀴어교육 필수교양 제정이나 성폭력 상담창구 개설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까 하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공동체 안에서의 돌봄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바로 어제 MT를 다녀왔고요, 지난 학기부터는 저희 내부에 공동체 문화 워크숍을 만들어서 학소위 내의 공동체 문화는 과연 안전한지 함께 점검해나가고 있습니다.

좌측부터: 경희대 학소위 울림의 2026년 1학기 스터디 보고 / 3.8 여성대회의 학소위 울림 깃발. 출처: 인스타그램 학소위 울림 @khu_haksowee


- 소개 감사드립니다. 다들 매우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신데 여러분 개인들은 언제, 어떤 계기로 학생운동 혹은 학교 내 활동에 발을 들여놓게 되셨나요?

 

다은: 저 같은 경우에는 25학번이라 입학 전 해에 비상계엄이 터졌어요. 그래서 입학 전부터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갔고, 입학하고 나서는 학교가 비상행동 집회 장소였던 안국역이랑 지하철로 네 정거장밖에 안 되어서 가깝거든요. 저는 '꿘세권'이라고 하는데(웃음) 아무튼 그런 학교에서, 심지어는 제가 1학년 1학기 때 온라인 수업이 많았어서 '주 2일제' 시간표로 학교를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공강일이 정말 많아서 그때마다 집회를 나갔죠.

 

그러면서 학교 선배들도 과 선배가 아니라 운동권 선배들을 먼저 만났어요. 22학번 선배랑 매일 집회를 나가고 뒤풀이를 하다 보니까 그 선배가 자기가 하고 있는 모임이 있는데 한번 놀러오라고 해서 가 봤던 거죠. 그래서 산책은핑계고에 처음 들어갔고, 그러다가 같이 하는 선배랑 홍보 포스터를 붙이는데 그 선배가 맑철 회장님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포섭되어(?) 들어갔고.. 1년이 지나서는 동아리 임원까지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웃음).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와 소모임 산책은핑계고의 김다은

 

하연: 저는 사실 대학에 들어왔을 때는 학생운동에 대해 관심도 없고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운동'이라고 한다면 과거 70~80년대가 떠올랐죠. 최근의 학생운동이 그 시대보다는 활발하지 않다 보니까 잘 모르는 것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2024년 여름에 노고지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것도 '학생운동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인권 관련 의제에 관심이 많고 더 알고 싶어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집회나 시위에 관심이 많아서 들어간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그러다가 2024년 기후정의행진을 노고지리에서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기후위기가 뭔가 막연하고 거대해서 해결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는데,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부터 농민들까지 여러 정체성의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의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이어서 2024년 10월쯤부터는 팔레스타인 의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본격적으로 지금과 같이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후위기, 페미사이드 같은 문제나 퀴어 이슈에 학창시절부터 관심을 가져 왔는데, 제도적인 변화는 굉장히 느리잖아요. 이런 부분에 답답함을 느껴 왔지만 당장 제도적 해결이 안 된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자리에서의 운동이 그런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는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 활동에 참여하면서 학생운동에 대해 가졌던 기존 이미지가 깨졌고,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저항이 가진 힘을 느끼고 감각하게 되면서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서강대학교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의 노하연

 

채원: 저는 입학할 때 학생운동이 있는지도 사실 몰랐는데, 저 역시도 비상계엄이 가장 큰 계기였어요. 정확히는 계엄 이후의 집회 참여 경험인데, 비상계엄 다음 날 처음 집회를 나갔는데 그때는 구호 뒤에 "투쟁"을 붙이는 것도 어색했고(웃음)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나와서 뭔가 낯선, 그런데 또 멋진 노래들을 부르는데 그 광장의 분위기가 굉장히 독특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매주 집회에 나가게 되면서 연대발언들을 듣는데, 발언 내용만큼이나 그 사람들의 태도에서 굉장히 많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연대하는 것이 이렇게 따뜻하구나라는. 내가 사회운동에 정말 관심이 없었구나 하고 반성도 했고요.

 

그러다가 노고지리 깃발을 우연히 마주쳐서 인사를 했는데, 그때 본 선배들이 너무 잘해주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조직을 하는 거였죠(웃음). 그 선배들이랑 자주 만나면서 친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2025년 3월에 노고지리에 입부했고, 활동하다 보니 재미있어서 집행부도 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저한테는 그 광장의 기억이 활동에 이어지고 있는 듯 합니다.

 

예원: 저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친구가 저를 끌고 왔는데요(웃음) 평소에도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막연하게 뭔가 운동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는데, 학생운동에 대해 아예 모르다 보니까 두려움이 컸던 거죠. 근데 대학에 입학해 보니 먼저 활동을 하던 친구가 "별 거 아니다", "내가 있으니까 같이 가자" 이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모임에 처음 갔다가 참여하게 된 거예요. 아마 그 자리가 1년간의 학소위 활동을 정리하고 정산하는 자리였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활동을 해 나가면서 제 관심 의제가 계속 확장되는 경험을 했어요. 개별적으로 보았던 문제들이 사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되고, 특히 학교를 다니면서 대학사회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차별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생겨서 그런 문제에 대응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보다 훨씬 전에, 제가 새터(새내기배움터)에 갔을 때 학소위 분이 발표를 하러 오셨는데, 그 분이 너무 멋있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쩌다 보니 이렇게 위원장까지 하게 되었네요(웃음).

경희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의 최예원


- 특히 내란 사태가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된 분들이 많으시고, 그 전부터 운동을 해 오신 분들도 그로 인해 더 많은 활동들을 하게 되신 것 같은데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을 때 각자 무얼 하고 계셨나요? 당시에는 어떤 기분이셨나요?

 

다은: 저는 그 당시에 수능을 말아먹고 수능 후 우울증에 걸린 상황이었어요. 한 2주 정도 칩거를 하면서 나는 뭘 하면서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윤석열이 말도 안 되는 정치를 하는 걸 보면서 '네 임기가 빨리 끝날지 내 n수 생활이 빨리 끝날지 두고 보자' 하면서 11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2주도 안 되어서 그가 정말 제 n수 생활보다 자신의 임기를 빨리 끝내려 할 줄은 몰랐죠(웃음). 처음에 뉴스를 보고서는 '내가 윤석열이 너무 싫어서 꿈을 꾸는 건가' 했는데 국회에서 누가 담을 넘고 한다는 걸 보고 조금 실감이 났고, 얼마 안 지나서 계엄을 해제했다는 소식이 떴죠.

 

그 다음 날에 친구랑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는데, 주위의 느낌이 뭔가 "계엄? 그게 뭐야? 그런 게 있었나?" 하는 느낌인 거예요. 그래서 친구랑 아니 우리 어제 다 죽을 뻔한 거 아니냐, 그런데 왜 이렇게 세상이 아무렇지도 않아? 하면서 화를 내다가 당시 제가 있던 대전에서 처음 집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때는 집회라는 걸 한 번도 안 가 봤으니까 주위에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면서 집회를 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하연: 저는 그 날 학교에서 에세이를 쓰다가 집에 돌아와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뉴스로 비상계엄 얘기가 나왔고,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무서움이 있었어요. 교과서에서, 책에서만 보던 얘기가 실제로 벌어진다는 게 너무 무서웠고, 저희 집은 외가가 제주인데 사실 거의 모든 집안에 한 사람 이상은 4.3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저희 집안에도 그런 기억들이 있거든요.

 

그러던 중에 교수님이 학생들한테 내일 수업에 안 와도 된다고 메일을 보내셨는데, 저희 학과 교수님들이 대부분 노동운동을 하시거나 노동학, 발전학, 젠더학 등을 전공하신 분들이고 지금도 정치적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나서는 서강대에서 노고지리 부원들이나 다른 학생들이 모여서 비상계엄 규탄 성명서를 급히 쓰고 온라인으로 돌리는 등의 활동을 그 밤중에 했어요.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회 앞의 모습. 출처: 경향신문

 

채원: 저는 사실 그때 '존재통(존재하는 것만으로 아프다는 뜻의 신조어: 편집자 주)'을 느끼고 있었거든요(웃음). 20대 초반 특유의 걱정이나 우울감 때문에 집에 그냥 있었는데 뉴스를 보시던 어머니가 다급하게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고 말씀하셔서 알게 됐고, 처음엔 당연히 충격적이었는데 그 다음으로는 좀 모욕감이 드는 거예요. 그런 폭력의 역사와 투쟁의 역사가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하는 생각.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겠다는 기분이었는데 막상 그 밤중에 국회에 나가기는 무서워서 집에 있었거든요. 근데 다음 날 생각해 보니까 그랬던 것이 부끄러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 날 열린 집회에 참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예원: 저는 그날 폰을 꺼 둔 채로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거든요. 공부가 끝나고 폰을 키니까 카톡방이 폭주하고 있는 거죠. "최예원 정신 차려, 지금 공부할 때가 아니야"(웃음) 하고. 바로 국회로 간 친구들도 많았고요. 그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인식하고 난 다음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공존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을 국가권력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거죠. 도무지 잠이 안 와서 새벽까지 국회에 나가 있는 학소위 친구들이랑 연락을 하다가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많은 학교에서 윤석열 퇴진을 위한 학생들의 움직임이 이어졌습니다. 12월 3일 이후 학교에서는 어떤 활동을 이어나가셨나요?

 

다은: 제 경우에는 입학이 25년 3월이었기 때문에 그 직후의 활동은 선배들의 이야기로만 들었습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활동가들이 계엄 이전부터 12월 4일에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하필 그 전날 계엄이 터지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비상계엄 규탄 및 윤석열 퇴진 촉구 기자회견으로 바꾸어 진행했다고 하고요. 그 이후로는 어느 학생이 저희 학교에 붙인 "윤석열을 지켜라"라는 대자보[각주:1]가 좀 유명해졌는데, 그 대자보에 반박하는 글을 부원들이 동방에 모여 열심히 써서 붙였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입학한 이후로는 4월달에 헌법재판소 심판이 장기화되면서 학교에서 8:0 파면선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4월 4일 탄핵 당일에는 공강이었던 덕에 안국역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했습니다.

내란 사태 당시 동국대학교에 붙은 '윤석열을 지켜라' 대자보. 출처: 동국대학교 에브리타임

 

하연: 저는 당시에 휴학이어서 학교 안보다는 밖에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래서 학내 활동에 사실 적극적으로 결합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노고지리 차원에서는 여러 성명서를 내고 다른 연대단체와 함께 비상행동 집회에 계속 참석했고요. 저는 그 때 제가 소속되어 있는 다른 단체로 집회에 나가기는 했지만, 광장에 나갈 때마다 노고지리 깃발이 꾸준히 올라오고 친구들을 만나서 인사할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채원: 저는 2025년 3월에 노고지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계엄 당시에는 어딘가에 소속돼서 활동했다고 보기는 좀 어려울 것 같고요. 학교에 붙은 대자보를 주의 깊게 보고, 매주 집회에 나가면서 사진들이나 느낀 점을 SNS에 올리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당시에 서강대 학생들이 모여 만든 '민주사회를 꿈꾸는 청년서강'이라는 모임에 초대되어서 활동을 하기도 했고요. 2월달에는 서강대에서 극우 세력의 기자회견이 있어서 그 대응 기자회견에 참여를 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오셔서 자기가 이 학교 교수인데 학생은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시더니 갑자기 "학생이 공부나 할 것이지 어디서 정치활동이냐" 하고 막 고함을 지르시는 거예요. 그런 신기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원: 저희는 일단 계엄 직후인 12월 6일 있었던 촛불대행진에 경희대 참가단을 조직했어요. 그 전까지는 학소위 내부 인원들만 집회에 함께 가다가 그 때를 계기로 다음에도 주요 집회나 행사에 대한 참가단 조직을 하기 시작했고요. 빠르게 윤석열 즉각 퇴진 대자보를 붙이고, 오랜만에 성사된 학생총회에서도 발언했고, 3월에는 대학생 동맹휴강에도 함께했는데 당시 교수님들 중에 응원한다는 말씀을 해 주신 분들도 계셨고요. 주체로서 학생들을 결집하는 역량이 충분하지는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경희대 학소위 울림이 조직한 촛불대행진 경희대 참가단과 그 피켓들. 출처: 인스타그램 학소위 울림 @khu_haksowee


- 다른 한편에서는 내란 사태로 학내 극우 성향 학생들의 존재가 가시화되는 등 학생사회의 부정적 신호 역시 많아졌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12.3 내란이 학생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다고 보시나요?

 

다은: 저는 극우 안에도 다양한 계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윤 어게인'을 선택하신 분들이 참 힘든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어쨌든 당시 탄핵 반대 시국선언은 극우 기독교 단체가 중심에 있었던 것 같은데, 저희 학교는 불교 학교라서 기독교 단체가 전면에 나서기 힘든지 탄핵 반대 시국선언은 없었어요.

 

어떤 방향이 있다면 그에 대한 백래시라는 것이 어디에나 있는데, 그들도 파면 이후 그들 나름의 백래시를 맞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저희 학교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꽤나 다양한 진보적 대자보들이 붙는데 보수적이라거나 극우적인 대자보는 1년에 한두 건 정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재생산을 하면서 조직을 유지하려 할 텐데, 이런 걸 보면 그들 역시 쉽지는 않은 상황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하연: 사실 저는 극우 학우들을 많이 봤다거나, 혹은 그들이 우리가 탄핵 찬성 집회로 결집하고자 노력한 것처럼 조직적이고 가시적인 활동을 한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종합적으로 내란이 학생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면, 정치 이야기가 기피되고 단순히 보수-진보 대립, 예민한 이야기 정도로 치부되는 일반적인 학교의 상황에서 정치가 일시적으로라도 수면 위로 떠올랐고 발화가 많아졌다는 것은 컸던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에서나 수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많이 오갔고요. 다만 학내에서 노고지리와 같이 본래 활동하던 집단을 제외한다면 뭔가가 엄청나게 새로 결집되었다거나 변화가 컸다는 생각은 잘 안 듭니다.

 

저 쪽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12.3 내란이라는 계기로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만큼 그들의 입장에서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겠구나 싶기는 해요. 물론 학내에서 우리 쪽만큼 조직적인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그분들에게도 극우 활동이 드러나는 게 ‘나도 같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내가 틀린 게 아니었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계기가 아니었을까요.

서강대학교의 탄핵 반대 시국선언(아래)과 이에 대한 학생들의 규탄 기자회견. 출처: 연합뉴스

 

채원: 저는 그 전에 활동 경험이 없어서 학생사회에 끼친 종합적 영향에 대해서는 사실 말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서강대에서 열린 극우 기자회견에는 사실 열 명도 안 되는 학생들이 모였고요. 다만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확실히 노고지리의 신입회원모집이 내란 이후 이전보다 늘었다고는 들었어요. 어쨌든 탈정치화된 대학에서 잠시나마 정치적 목소리들이 뚜렷해진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특히 이걸 계기로 운동에 입문하게 된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요.

 

예원: 저는 긍정적 부분과 부정적 부분이 모두 있고, 학생사회에 미친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퇴진 대자보를 붙였을 때 평소에 다른 대자보를 붙일 때는 보통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지만 그 날은 20~30명이 둘러싸고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시더라고요. 물론 응원도 있고 비난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일시적으로나마 학생사회에서 '정치'가 수면 위로 떠올랐죠. 학생총회 때도 수천 명이 모이는 경험을 했고, 이 시기를 계기로 학소위도 참여 인원이 많아지고 내부적으로 결집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극우 세력이 더 드러내 놓고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 건 사실인 것 같은데, 예를 들면 극우 학생들의 활동이 가시화되면서 매주 저희가 집회를 나갈 때마다 "정치중립 위반"이라며 학소위를 비난하는 댓글이 굉장히 많이 달렸어요, 최근 부결되었지만 저희가 지난 대선 때 정경대 학생회의 이준석 씨 초청을 규탄하는 대자보를 붙였다가 '학소위 폐지' 안건이 중앙운영위에 상정된 적이 있었는데요[각주:2], 이 때도 소위 정치적 중립성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왔고 그게 폐지 논의를 정당화하는 핵심 논거로 사용되었죠. 종합적으로는 이번 내란이 학생사회의 정치적 참여나 각성을 일정하게 촉진했지만, 그 반작용으로 극우 담론의 확산이나 자치 활동의 억압이 분명히 만들어졌고 그게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선 당시 학소위가 붙인 '이준석은 경희대의 연단에 설 자격이 있는가' 대자보를 읽고 있는 학생. 출처: 경희대학교 대학주보사


- 내란 사태로부터 1년 반이 지나 2026년 신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학기를 맞아, 지금 각 단위의 상황은 어떤가요? 내란 사태가 끼친 영향이 아직도 존재하나요?

 

다은: 저희는 사실 작년 말만 해도 모일 때마다 거의 '자조모임'을 했어요(웃음). 재생산이 어려운데 지정성별 남성 학우들은 또 군대를 가야 하고.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동아리박람회도 참여하고 또 많은 학우분들이 와 주셔서 지금은 톡방에 43명의 인원이 들어와 계신데, 그래서 지금은 다들 고무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중앙운영위 회장을 맡는 분은 다음 학기에 군대를 가셔야 하고, 주축으로 운영하는 분은 휴학 상태로 주 6일 출근에 동아리까지 하시느라 쉽지 않은 상황이예요. 앞으로 이대로 괜찮을지에 대한 걱정은 드는 것 같습니다.

 

하연: 내란 이후로 계속 (구성원들이) 관심을 갖는 의제 위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팔레스타인 의제나 학내 인권 의제에 대한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 아까 채원님 이야기처럼 신입회원이 늘기는 했죠. 다만 단체 안에서 지속적, 고정적으로 활동하는 부원의 부족이 모든 학생단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제가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들어오고 나서 유령회원이 되는 분이 생각보다 많이 계세요, 처음엔 저도 집회나 투쟁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아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내 백래시에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은데요, 지난 2025년 초 고대나 성대 등에서 인권 관련 단위들이 비민주적으로 폐지되었죠.[각주:3] 서강대에서는 원래 노고지리를 제외하면 인권 단위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었고 오히려 지금 없던 걸 다시 만드는 단계인 것 같은데, 저도 '서성이다'라는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어서 하고 있고 학내 기구로서 성소수자 협의회가 사라졌다가 작년에 부활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학교별로 조금씩은 상황이 다르겠지만 어쨌든 에브리타임 등의 커뮤니티로 유포되는 백래시는 고질적인 것 같아요. 노고지리 같은 경우에도 그런 백래시로 인해 만들어진 일종의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커뮤니티를 통해 그런 인식을 먼저 접한 학우들 사이에서 어떻게 조직을 유지하고 더 많은 사람을 끌어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듭니다.

고려대 여학생위·소수자인권위 강제 폐지 및 합병 당시 고려대에 붙은 총학 규탄 대자보. 출처: 연합뉴스 (페이스북 '정대후문')

 

채원: 말씀을 잘 해 주셔서 거의 비슷한데, 한 가지만 좀 더 이야기하자면 재생산 이슈가 확실히 대두되고 있는 것 같아요. 올해는 특히 주축을 담당하는 고학번 선배들이 한꺼번에 졸업을 해서, 집행부를 맡을 인원이 많이 부족해졌거든요. 다행히 새로운 사람들이 좀 모여서 어찌저찌 굴러가고는 있는데, 신입 모집도 어쨌든 내란 직후보다는 약간 줄어들기도 했고요.

 

예원: 저희는 내란 사태 이후 활동이 굉장히 활발해졌는데, 아직 이 흐름이 일정하게 이어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 때를 계기로 입문한 구성원들이 꾸준히 남아서 활동하고 있고, 그런 경험들이 조직 기반이 단단해지는 데 영향을 준 거죠. 저도 그 이전부터 활동을 해 오기는 했지만 당시를 계기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되면서 어쩌다 보니 위원장까지 되었는데요(웃음) 올해도 신입회원들이 많이 들어왔고요.

 

저희 입장에서는 아직은 좋은 상황이기는 한데, 다만 그 이후로 학생사회 전반의 정치적인 민감도가 높아진 건 사실입니다. 말씀드린 학소위 폐지 여론 형성이나, 최근에 여성대회를 다녀와서 게시물을 업로드했을 때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에브리타임 등에서 내란 이전보다도 훨씬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대학 인권단위 전반에 대한 백래시가 내란 이후 더 강해졌다는 것은 활동에 있어 지속적으로 고민이 되는 부분이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말이 내란 이후로 훨씬 더 강조되고 있는데, 그 단어가 운동단위의 활동을 너무 크게 제약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건강한 공론장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2026년 2월 한국외대 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 촉구 시국선언에서 한 사람이 '부정선거 검증하라' 손피켓을 들고 참여자들을 가로막고 있다. 출처: 동아일보


- 학생사회의 파편화와 탈정치화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정치, 특히 진보정치에 대해서 동료 활동가들이나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다은: 제 경우에는 동료 활동가들 중에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기는 합니다. 정치적 의사표명이기도 하겠지만 뭐라도, 할 수 있는 건 해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많이들 가입하는 것 같아요. 최소한 활동가 사이에서는 진보정치가 일종의 필수재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은 느낌? 물론 회의적인 분들도 계시고, 진보정치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다른 학우들은, 물론 제 주변에는 상대적으로 진보적 의제에 열려 있는 사람들이 많고 정치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보통의 학생들은 여전히 '탈정치'가 삶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미 취업 문제라거나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는 점에서 많은 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에, 정치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없는 일반 학생들에게는 '정치와 엮이지 않는 게 좋다'는 인식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하연: 맞아요. 학교를 일단 정치적 공간이나 심지어는 교육기관으로조차도 별로 생각하지 않고, 단지 취업에 있어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거쳐 가는 다리 정도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당장 취업을 하고 미래를 생각하기에도 급급한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저는 정치 자체가 대학 내에서 너무 좁게만 정의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치가) 우리의 삶에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랑은 관련이 없다거나 어차피 바뀔 수 없다는 인식이 많습니다.

 

정치적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로 '지금의 정치가 주식이나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처럼 나의 미래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거죠. 지금 학생운동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바꿔낼 전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희는 학교에서 취업박람회를 열었을 때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공모하는 기업들이 참여해서 보이콧 행동을 진행했거든요. 그 이후에 에브리타임에 거의 20~30개의 글이 올라온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이 내 취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여겨서 '불편해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노고지리가 서강대 취업박람회에서 진행한 집단학살 공모 기업 보이콧 행동. 출처: 인스타그램 노고지리 @nogijiri_seogang

 

진보정치에 대해서는 활동가들이나 학생들도 생각이 다양한 것 같은데,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무관심한 경향이 크죠.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지하지 않거나 당원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가치나 방향성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진보정치가 어떤 효능감을 못 준다는 비판이 큰 것 같아요. 진보정치가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더라도 진보정당이 어떤 전략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고, 진보정치가 자신을 대표한다는 믿음이 없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저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제도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는데, 그래서 그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업이 물론 어려운 작업이기는 하지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정치가 (학생사회와의) 그런 연결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또 우리는 학생으로서 어떤 고민을 할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채원: 제 주변에는 당원보다는 주로 사회운동단체 회원들이 많은데요, 동료 학생 활동가들의 진보정치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갈린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보다는 운동권인 친구와 운동권이 아닌 친구의 차이를 크게 느끼는데, 운동권이 아닌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정치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불편하죠. 보통 민주당을 찍으면 좌파라고 생각하고(웃음) 제가 하는 활동들에 대해서도 확실히 거리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노고지리의 경우에는 에브리타임에서 많이 언급되어서 인지도가 있지만 사실 너무 부정적인 것들만 있거든요. 인식도 좋지 않고, 주변 시선들이 신경 쓰여서 가치에 동의함에도 못 들어오는 분들이 계시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단위에 들어오려면 무언가 준비되어 있어야 할 것 같고, 알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진입장벽도 있는 것 같고요. 그 학생들이 어떻게 좀 더 부담 없이 그냥 올 수 있게 만들지가 요즘의 고민입니다.

2025년 6월 경상국립대에서 열린 정의당(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표 초청 강연회. 출처: 경상탑뉴스 www.topnews24.kr

 

예원: 말씀하신 파편화와 탈정치화가 진보정치에 대한 인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제 주변에서는 진보정치에 대한 적극적인 거부감보다는 무관심이나 거리감이 두드러지거든요. 정치 자체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의제의 필요성을 인식은 하는데 내 얘기라고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특히 구조적 불평등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사고방식이 기본값으로 존재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종종 위기감을 느껴요. 진보정치나, 혹은 운동적 언어들이 일부 활동가들만의 언어로 고립되어 가고 있지는 않나? 싶은 거죠.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명확한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다만 말씀드린 대로 계속 공론장을 만들어나가려고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소위 폐지 시도에서도, 학소위를 지지하는 여론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공식적 채널로 드러나지는 못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더욱 대학의 공공성이 무엇인지를 많이 발화하고, 서명운동이나 공청회 등을 통해 제도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탈정치화의 시대에도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공론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앞으로 본인의 단위에서, 그리고 학생 활동가로서 꼭 해 보고 싶은 활동이나 운동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방향성에 대한 말씀도, 특정한 의제도 좋습니다.

 

다은: 이번에 3월 여성의날을 맞아 페미니즘, 퀴어, 트랜스젠더 관련 활동을 준비하면서 느낀 건, 오히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도 자리를 못 찾는 숨은 사람들이 많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안전하게 이야기하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놀이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대학이 비록 파편화와 탈정치로 가득 찬 취업사관학교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더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에게는 어떤 열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 부응하고 싶고, 사람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저희 학과에서는 주로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이 그런 (대화의) 주제라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트랜스-퀴어 페미니즘까지도 이야기해 보고. 어쨌든 핵심은 누군가가 '고나리질'하지 않는(웃음)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좌측부터: 동국대 산책은핑계고의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집담회 웹자보 / 3.8 여성대회의 산책은핑계고 깃발. 출처: 인스타그램 산책은핑계고 @sampo_is_excuse

 

하연: 저는 좀 더 지속가능한 형태의 활동을 하는 것, 단단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목소리를 내고 실천하는 것은 밖으로 뻗어나가는 일인데, 그런 과정에서 연대만큼이나 우리 공동체 안을 날카롭게 살피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사회가 더 파편화되는 현실 속에서 무언가에 대응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끈끈히 연결되어 있다, 서로 돌보고 기댈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느낌입니다. 개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그런 대응책이 필요하고요.

 

학생운동을 안 하는 친구들은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들에 대해 보통 '착해서', 혹은 '어떤 대의를 위해서' 한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런 대의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운동이 되는 건 아니고, 그게 운동을 지속하는 유일한 이유가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운동을 하는 이유가 흐릿해지거나 좌절할 수도 있는데, 그 때 마음을 되찾을 수 있게 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운동권들이 보통 막연한 미래에서 희망을 찾는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만큼 세상과 연결되는 감각을 중요시하고 그것에서부터 동력을 얻는 사람들도 많다고 믿고 있어요.

 

채원: 저는 총장실 점거농성을 해 보고 싶어요(웃음). 뭔가 극적인 동작으로 삐라도 뿌리고, 사람을 많이 모아서 학생회 수권도 하고. 농담입니다. 사실 이번 학기 신입 모집 때는 강의실에 들어가서 아지테이션이 너무 해 보고 싶었거든요. "에브리타임 한번 타 보자" 하고 강의실을 돌았는데, 아쉽게도 에타는 못 탔고(웃음) 생각보다 효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걸 보고 오신 분이 계셔서 좋았습니다. 저는 어떤 큰 야망이 있다거나 내가 무엇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학내 운동단위가 간판을 내리지 않도록 지금 부원들이랑 더 친해지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같이 고민하고 배워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 같아요. 다만 우리가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할 때를 정확히 알아차리고, 또 그 순간에 그럴 여력이 있기를 바랄 뿐이죠.

2023년 경희대 학소위의 총장직선제 시위. 출처: VOU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방송국 유튜브 캡처

 

예원: 저는 총장직선제를 꼭 하고 싶어요. 현재 경희대의 총장 선출 구조에서 학생·직원들의 투표 반영비율은 16%밖에 되지 않고 최종 결정권은 이사회가 쥐고 있거든요. 선거 방식의 문제도 있지만 더 본질적으로 이 문제는 결국 대학이 공공의 공간이 될 것인지, 혹은 소수의 결정에 의해 운영되는 공간으로 남을 것인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쨌든 내란 이후 사회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촉발되었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있는 대학 안에서도 이 문제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수가 결정권을 독점하는 구조는 결국 내란이 드러낸 민주주의의 위기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요. 제가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학소위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결에는 실패해서 이 문제를 다시 요구사항으로 끌어올리고 싶습니다.

 

추가적으로는 다들 말씀해 주신 대로 공동체 안의 돌봄이 중요하겠죠. 사실 활동을 하면서 일이 어렵다기보다는 주로 번아웃, 지쳐서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사실 최근에 저도 많이 울고 동료들도 번갈아서 번아웃이 오고 하는 상황인데요. 이런 상황 자체를 줄일 수 있는 건강한 상호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가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집회 현장에 나부끼는 학생단위들의 깃발. 출처: 각 단위 SNS

 

-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게 될 동료 학생들이나 활동가들, 혹은 도모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다은: 저는 노동당의 당적을 가지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 당에서 청년정치학교를 했어요. 쿠팡 해고노동자이신 정성용 동지가 연사였고, 학생운동 이후의 무언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학생운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질문을 드렸어요. 재생산도 어렵고 고민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학이라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공간이니까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답변이 돌아오더라고요. 특히 "사고치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추구미'(추구하는 미(美)라는 뜻의 신조어: 편집자 주)가 전부라고 생각하거든요. 진보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의 확실한 추구미를 만들어내고, 그리고 그 추구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보는 환상을 모두에게 설득시키자, 그리고 우리는 그 같은 환상을 공유하는 동료들이니까 다들 파이팅!

 

하연: 돌아보면 저는 참 운동에 관심이 없었는데,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2018년 미투 운동이 크게 있었어요. 이 때 속상함과 분노가 뒤섞여 휘몰아치는데, 이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서 혼자 고생한 시기가 있거든요. 그런 시기를 지나고 대학에 와서 학생운동, 지역운동, 풀뿌리 운동의 힘을 알려 준 사람들과 좋은 전공 교수님, 친구들, 동료들에게 항상 감사하다고 느껴요. 1학년 때는 강의실에서 앉아서 배우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이었던 것 같은데, 그 즐거움을 확장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운동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활동을 하다 보면 종종 내가 도움이 되나? 싶은 무력감과 비관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럴 때 마음을 잘 꺼내서 살펴보고 타인을 대하려 하는 것만큼 스스로를 대하면서 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채원: 저는 선배들과 동료, 동지들에게 함께해 주고 이끌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혼자였으면 두려움이나 무력감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텐데 이들 덕분에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운동의 방향과 성과에 대해서 비관적인 시선도, 낙관적인 시선도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거시적인 안목을 제쳐 두고 학생운동을 하는 개인으로서 당장 뭐라도 하자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당면한 거대한 문제들에 대해 대학생으로서, 내 자리에서 뭐라도 안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앞으로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드립니다.

 

예원: 저는 사실 아직도 활동을 해 나가면서 아주 막막해요. 위원장이 된 지 오늘로 딱 3개월이 지났는데요, 저는 학생운동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여전히 무서워요. 학소위가 경희대 학생사회에서 꽤 유명해졌기 때문에 이제 제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나 욕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탈정치화된 학생사회 속에서 공론장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모두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우리가 해야만 하는 말이 여전히 있다고 믿어요. 그 말을 함께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나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해요. 감사합니다!

 

 

※ 대담 진행: 이도영(도모 편집장)

※ 대담 기록: 김원(도모 편집위원)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각주

  1. 경향신문, ‘광장’은 다시 열릴까…시대가 소환한 익명 대자보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070900061#ENT [본문으로]
  2. 경희대학교 대학주보사, [뉴스] 학소위-정경대 논쟁, 학소위 존폐 논의로까지 https://media.khu.ac.kr/bbs/board.php?bo_table=univJubo&wr_id=34501&c_id=34512&w=c [본문으로]
  3. 연합뉴스, [샷!] 대학에서 사라지는 목소리들 https://www.yna.co.kr/view/AKR2025050815050050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