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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소극(笑劇)이 된 지방선거를 마주하며

by Domoleft 2026. 6. 2.

[기획기사] 소극(笑劇)이 된 지방선거를 마주하며

6.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사전투표율은 올라갔다는데, 선거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낮아 보이는 이상한 선거. 모두에게 쓴웃음짓게 만드는 소극(笑劇)이 되어 버린 오늘날 지방선거의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독자적 진보 후보들의 도전을 파헤친다.


높아진 투표율, 낮아진 관심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본 기사가 탈고되는 6월 2일 기준 불과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5월 28~29일 이틀간 치러진 사전투표의 투표율은 최종 23.51%. 역대 지방선거 중 최고치다. 과거와 달리 최근 한국의 선거에서는 사전투표가 투표율 자체의 증가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사전투표율의 상승은 투표 참여에 대한 사회적 열의가 일정하게 올라갔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높아진 사전투표율과 별개로 선거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는 그 어느 때보다 낮은 듯 느껴지고, 그와 비례하여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졌다는 사실 역시 곳곳에서 체감된다.

좌측부터: 6.3 지방선거의 사전투표 기표소 / 2022년 지방선거부터 현재까지 최근 선거들의 사전투표율 비교. 출처: 연합뉴스

 

서울시에 거주하는 30대 남성 직장인 A 씨는 《도모》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를 '찻잔 속의 폭풍'으로 묘사했다. "(언론 보도 등이) 지방선거 자체보다는 국회의원 보궐선거(평택 을·부산 북구 갑 등)에 훨씬 집중된 느낌이 들고, 그마저도 찻잔 속 폭풍 같다는 생각이예요. 역사적으로도 지방선거가 다른 주요 선거들보다 대중적 관심을 적게 받는 선거긴 했지만, 심지어 서울시장 선거에 대해서조차도 과거에 비해 관심도가 훨씬 낮은 것 같아요." A 씨는 주변에서 "사전투표는 해야지" 정도의 이야기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후보자나 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반응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충청북도에서 학교를 다니는 20대 여성 B 씨는 다양한 지역 출신인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출신지에 관계없이 "국힘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공통분모가 있는 것 같다 말한다. 그러나 B 씨의 친구들 중에서도 사전투표일이 언제인지, (내가 투표할 수 있는) 후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체로 내 삶과 지방선거가 크게 연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정치 이슈가 밈(meme)으로만 소비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정치인들도 그걸 의도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정책을 만들기보다는 릴스 하나 바이럴을 잘 태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기의(記意) 없는 기표(記表)의 선거

서로 다른 젠더·계층의 응답자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관측되는 응답은 '내용의 실종'이다. 비단 디테일한 실제적 정책의 유무뿐 아니라, 당선된다면 공직을 통해 무엇을 해낼 것이라는 방향성 자체가 행방불명 상태에 빠진 것이다. 사라진 내용의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우리 진영의 아이콘을 더욱 크게 내세우고 추앙하면서 상대 당파의 비합리성·비민주성만을 강조하는 종류의 정치구호들, 인스타그램과 틱톡의 조회수를 위해 정치를 희화화하며 정치혐오·소수자혐오 정서를 부추기는 각종 릴스들, 그리고 마치 '담론'의 탈을 쓰며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앞서의 정치구호와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중앙의 거대서사들이다.

 

본선거 기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의 광역·기초의원 후보들은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6.3 지방선거 내란완전청산 공동선언'을 발표하는 것으로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여전히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는 후보자들이 난무하는 국민의힘을 전 지역에서 몰아내겠다는 결의를 표명함과 별개로, 그러나 '시·군·구의회에서의 내란 청산'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는 후보자는 어느 지역의 기자회견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부패 스캔들로 몸살을 앓는 대부분의 지방의회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방의원들이 질적 차이 없이 동일한 부패를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 전 있었던 서울 강서구의회의 '강선우-김경 게이트' 사건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바 있다.[각주:1]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전촛불행동이 주최하고 민주당 후보자들이 참석한 '6.3 지방선거 후보자 내란완전청산 공동기자회견 / 얼마 전 구속된 강선우 국회의원(좌측)과 김경 전 서울시의원 / 성소수자 혐오 논란에 휩싸인 조전혁 서울교육감 후보의 현수막. 출처: 오마이뉴스 / 연합뉴스 / 오마이뉴스

 

거대서사에 기반한 정치구호의 과잉은 때로 유권자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하는 상황을 불러오기도 한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극우 성향의 조전혁 후보는 얼마 전 '퀴어 동성애 교육 추방'을 전면에 내건 선거현수막을 서울시 전역에 게첩하여 논란을 빚었다. 성소수자 당사자 및 활동가들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조전혁의 현수막에 대해 "선거 내내 이런 현수막을 봐야 하느냐"며 피로감을 내비쳤다.[각주:2]

 

역사적으로 지방선거의 최대 승부처로 꼽혀 온 서울시장 선거에서 주요 후보들이 보이는 모습은 일견 이와는 좀 다른 듯 보인다. 3선 성동구청장 출신 더불어민주당의 정원오 후보와 현직 서울시장인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모두 대표 정책으로 개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정원오 후보의 대표 슬로건은 '착착개발'로, 기존 민주당의 취약점으로 꼽혀 온 부동산 문제에 전면으로 대응하는 신규 주택공급 '속도전'을 핵심으로 한다. 역사적으로 신규 부동산 공급과 개발 공약에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 보수정당 계열 후보들이었음을 상기할 때 이는 앞서의 경향과는 반대인 '탈이념·중도적 실용주의화'의 예시로 읽히기 쉽다. 오세훈 후보 역시 자신이 '개발 원조'임을 자처하며 정원오 후보에 대한 견제에 나섰음은 물론이다.[각주:3]

 

그러나 '정치구호의 과잉'과 '탈이념적 실용주의', 서로 정반대인 듯 보이는 두 경향은 '내용의 부재'라는 지점에서 빠르게 하나로 모인다. 이에 더해 내용의 부재가 우경적 편향을 심화시키는 한국 정치의 보편적 경향성은 더 큰 문제로 작용한다. "공공성보다 공급 확대"[각주:4]라는 정원오의 '착착개발'과 "닥치고 공급"이라는 오세훈의 '신속통합기획'에서 유의미한 내용적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는 유권자들은 결국 '내란청산' 혹은 '퀴어·동성애 교육 척결' 따위의 기의(記意) 없는 기표(記表)만을 보고 내 지역의 시장, 구의원, 교육감을 뽑아야만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안티테제의 정치 속에서 어떻게 자신이 출마하는 단위에서부터 구체적으로 정치를 바꿔낼 것인지에 대한 내용적·정책적 차이는 옅어지고, 때로 사라지기도 한다.

서울시 동작구 사당1동에 오세훈 후보와 정원오 후보의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다. 출처: 연합뉴스


'내용의 정당', 진보정당의 내용적 퇴화

한편 이번 선거에서 거대서사의 범람과 내용의 실종은 비단 거대양당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여 비례대표 1석을 획득한 기본소득당은 부산광역시의회(7번)를 제외한 광역의회비례대표선거에서 기호 6번을 배정받았다. 후보를 공천한 전 지역에 발송된 기본소득당 광역의회비례대표 공보물은 '티켓'을 형상화한 공통의 템플릿을 사용하였는데, 전 지역 비례공보물의 앞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이재명과 함께, 민생개혁 쇄빙선'이라는 슬로건과 당대표 용혜인의 사진, 당명과 기호뿐이다.

 

지역별 공약은 공보물의 뒷면에 짧게 들어가 있지만, 공보물 페이지 수를 늘리기 어려워 타이틀 이미지에 많은 것을 할당할 수밖에 없는 군소정당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공약의 내용이나 후보자들의 프로필에 할당된 비중이 지선 출마자가 아닌 용혜인 대표의 얼굴보다도 훨씬 적다는 점은 '지방선거'의 의의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편 기본소득당 소속 정치인조차 아닌 이재명 대통령의 이름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는 당의 대표 슬로건 역시 유권자들을 혼동케 하는 데 더해 기본소득당이 민주당과 다른 독자적인 정당으로서 존립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온다.

 

이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본소득당이 제시하고 있는 지역별 정책공약의 내용이 민주당의 그것과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예시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후보의 핵심 공약은 광주권·동부권·서부권·중남권 등 4대 권역에 산업과 생활 기능을 배치하는 '권역별 신산업 수도' 구상[각주:5]이다. 권역별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어 AI, 재생에너지, 이차전지 등의 첨단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민주당 공약의 내용은 기본소득당의 전남광주 3대 핵심공약 중 '서부·동부·광주 권역별 AI·첨단산업 전환'과 매우 유사하다.

기본소득당의 전남광주시의원 비례대표 공보물. 출처: 기본소득당

 

그나마 기본소득당 공약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민주당과의 내용적 차이는 마치 당명이 다른 이유를 입증하고자 하는 듯 '기본소득 정책'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는 점에 있지만, 민주당 역시 농어촌기본소득 등을 이미 농정공약으로 전면에 내걸고 있다는 점[각주:6]에서 이 역시 양적인 차이가 있을지언정 질적으로 다른 공약이라 보기는 힘들다. 한편 본선거기간에 돌입하기 직전까지 각 지역의 화두로 떠올랐던 지역통합 문제에 있어서도 기본소득당의 방침은 민주당의 그것을 그대로 준용한 데 다름없었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는 편법을 동원하여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를 치르지 않고서도 두 번 연속 국회에 입성한 기본소득당이 정당 존립의 근거를 제공해 주는 '모정당' 민주당과 질적으로 다른 내용을 쉽게 제시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문제였다. 이는 2020년 최초의 비례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이 창당되던 당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고 싶다는 윤호중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의 말[각주:7]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나 중앙정치의 이슈로 결과가 결정될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 선거가 아니라 실제 체감되는 지역 이슈가 다루어져야 하는 지방선거에서조차 민주당의 정책공약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내용을 심지어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당이 제시한다면, 유권자들의 진보정치에 대한 인식은 '민주당이 우리 동네에 10만원을 준다고 할 때 20만원을 준다고 말하는 정치' 이상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 한두 석을 얻어 의회에 들어가 봤자 20만원을 실제로 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소규모 '진보정당'보다, 실제 당장 내 통장에 10만원을 꽂아 줄 수 있는 듯 보이는 민주당에 투표할 동인이 더욱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재명과 함께'를 전면에 내건 기본소득당의 정당현수막. 정책이나 내용의 구체적 방향성은 없다. 출처: 기본소득당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이 민주당과의 마찰을 빚는 사이 기본소득당이 민주당의 가장 충실한 2중대 역할을 자처한다면,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민주당에 흡수되지 않고 그 존재를 지켜내고 있는 독자적 진보정당 일각에서도 내용적 차별성보다 중앙정치의 거대서사에 매몰되는 구호가 나온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우려스럽다. 예컨대 정의당 서대문구의원 후보(서대문구의회 마선거구 남·북가좌동)로 출마한 황경산 후보의 메인 슬로건은 '내란세력 청산'이다. '색다름'을 강조하며 소수자성을 덧붙이긴 했지만, 핵심 선거구호는 결국 민주당 소속 후보들이 자신의 내용 대신 범용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내란청산'과 그리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구호와 거대서사로만 규정되는 정치가 내용의 실종을 만들고, 이런 상황이 다시 정치구호에 대한 투표를 불러오는 악순환은 심지어 지방선거에서조차 유권자 다수에게 자기 지역의 생활 의제에 대한 관심도를 떨어뜨린다. 그러나 늘 지역의 일꾼을 자임해 왔고 실제 양당과 차별화되는 방향성·정책·공약을 키포인트로 삼아 왔던 '내용의 정당' 진보정당들조차 내용이 아닌 구호의 정치라는 문법을 차용한다면 유권자가 진보정당을 선택할 이유는 더욱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내란청산'만을 목적으로 투표해야만 한다면 작고 허약한 정당이 아니라 모든 후보자들이 내란청산 이야기만을 하고 정말 무언가를 청산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거대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임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생활진보정치의 도전에 주목하자

내용의 부재와 거대 정치구호의 범람, 유권자들의 피로도 증가 속에 암담하기만 해 보이는 지방선거판에서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도전들은 존재한다. 이른바 '생활정치인'을 표방하며 지역에 밀착된 서사와 공약을 내세워 기반을 갈고닦는 독자적 진보정당의 후보자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비무장지대를 끼고 있는 북한과의 접경지역이면서 대규모 뉴타운인 운정신도시가 조성되어 있는 경기도 파주시에서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정의당 김찬우 후보(파주시의회 가선거구 운정1·4동)의 슬로건은 '빈틈없이 알찬운정'이다.

정의당 파주시의원 후보 김찬우(가선거구 운정1·4동). 출처: 김찬우 선본

 

김찬우 후보는 53만 인구가 살고 있는 파주시에서 그가 생각하는 가장 큰 '빈틈'인 '돌봄'에 집중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 그의 핵심 공약은 아동·청소년 병원비 100만원 상한제, 공공시설 화장실 생리용품 무상 비치 등이다. 올해로 만 24세인 파주 토박이 김 후보는 과거 청소년운동에서부터 시작하여 벌써 10여 년째 진보정당 활동가·정치인으로 살아오고 있으며, 고향인 파주에서의 공직선거 출마만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022년 지선 당시 그는 경기도의원 지역구 후보로 출마하여 2.59%를 얻고 낙선했다.

 

자신이 평생 살아온 지역의 빈틈을 채워내고 싶다는 그의 활동은 청소년 시절 본인과 주변 친구들이 겪었던 돌봄의 빈틈에서 출발한다. 김 후보는 정의당 파주시위원장으로서 진행한 청소년 생리용품 지원 서명운동을 통해 경기도의 지원사업에 참여를 거부하고 있던 파주시의 사업 참여를 이끌어냈고, 지난 3월부터는 청소년 병원비 상한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빈틈없이 알찬운정'이라는 그의 대표 슬로건이 단순한 수사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슬로건을 뒷받침하는 그의 실천이 이미 존재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진보정치뿐 아니라 주류 보수정당이 아닌 모든 정치세력에게 있어 험지로 받아들여지는 경상북도 안동에서 세 번째 선거에 도전하는 녹색당 허승규 후보(안동시의회 마선거구 남선면, 임하면, 강남동)의 도전은 이미 적지 않은 언론에서 주목받는 중이다. 2018년 첫 출마부터 선거비 전액보전에 성공했으며 지난 2022년에는 민주당 후보를 7% 격차로 제치고 18%의 지지를 받았지만 아쉽게 낙선한 그는 그 누구보다도 이번 선거를 진지하게 치르고 있다.

안동MBC 뉴스데스크와 인터뷰 중인 녹색당 안동시의원 후보 허승규(마선거구 남선면, 임하면, 강남동). 출처: 안동MBC

 

지난 2020년부터 2025년까지 무려 3차례의 대규모 산불을 겪어 큰 피해를 입은 안동시에서, 허 후보는 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이자 국무총리실 산하 피해지원재건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해 왔다. 지역 국민의힘 당원협의회에서 사실상 당선을 보장하는 공천 제안까지 받았던 그는 그럼에도 여전히 '산불 피해가 컸던 우리 지역을 초록으로 물들일 정당'이 바로 녹색당임을 강조하며, 자신이 해 온 녹색·진보정치가 지역의 상황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의 상을 하나하나씩 만들어 나가고 있다.

 

서울시 강서구는 독자적 진보정당의 후보자 두 명이 함께 출마한 이번 선거에서 흔치 않은 지역이다. 정의당 이상욱 후보(강서구의회 나선거구 화곡3동·발산1동), 녹색당 김유리 후보(강서구의회 라선거구 공항동, 방화1·2동)가 그 주인공이다. 전국 지방의회 중 최악의 부패를 드러냈던 강서구의회, '강선우-김경 게이트'가 널리 이슈화된 데에는 이상욱 후보의 공을 배제할 수 없다. 강서구의회 업무추진비 배임·횡령을 폭로하고 강선우 의원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각주:8]한 이상욱 후보는 '부패정치 저격수'를 메인 슬로건으로 삼아 지방의회의 끝없는 부패에 지친 유권자들에게 더 깨끗한 강서구의회가 가능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편 '생활정치'의 측면에서, 김유리 후보의 메인 슬로건인 '생활비 걱정없게'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그 어떤 후보자의 것보다도 명료하고 직설적이다. 김유리 후보는 참세상과의 인터뷰[각주:9]에서 "진보정치가 그간 말해온 윤리적이고 옳은 가치를 (중략) 시민들의 삶에 더 와닿는 구호로 만들고자 했다" 밝힌다. 지면의 한계로 모든 지역의 '생활진보정치인' 후보들을 담지는 못하지만, 서로 다른 이들의 선거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내용 없이 거대한 정치구호를 전면에 내걸고 선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간 이야기해 온 진보정당의 가치, 방향성을 출마한 지역과 단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전유할 수 있을지 누구보다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좌측부터: 강선우 의원에 대한 추가 고발장을 접수하는 이상욱 후보 / 강서구에 걸린 김유리 후보의 선거벽보. 출처: 뉴스1 / 김유리 후보 페이스북


소극(笑劇)의 쓴웃음을 웃음으로 바꿔내려면

도모와의 짧은 인터뷰 막바지, 직장인 A 씨가 남긴 말은 지방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피로도 증가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주변에서 "동네에 구의원조차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데 대체 누굴 뽑아야 하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쨌든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바라는 것은 자주 가는 길가에 막혀 있는 하수구를 얼른 뚫어 주는 종류의 것들인데, 매번 "예산 따 왔다"는 현수막은 걸리지만 실제로 우리 삶에서 무엇이 바뀌고 있는지는 별로 모르겠거든요. 특히 지방의원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전혀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요."

 

A 씨의 말처럼 이미 만연해 있는 정치적 피로감과 정치혐오를 더욱 부추기는 것은 결국 '내게 와닿지 않는 정치'의 문제일 것이다. 민주화 이후 다시 실시되기 시작한 지방선거가 벌써 10회(1991년 지방선거 포함)째에 접어들었고 기초의회 정당공천제의 실시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지방자치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는 30년 전보다도 훨씬 떨어졌다. 내용 없는 정치는 이러한 불신에 기름을 붓는다. 마치 무엇보다 중요한 담론인 양 치장되지만 실은 호명과 동원에 불과한 공갈빵 같은 정치구호들은 양당과 그 위성정당의 후보자들에게 '지역에서 무엇을 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내란청산', '국민의힘·민주당 심판', '퀴어 동성애 척결'을 가장 강하게 외치면 당선될 수 있다'는 왜곡된 기회주의적 욕망을 불어넣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소극으로."라는 말을 남겼다. 마르크스가 언급한 소극(笑劇, Farce)은 희극의 한 장르로서 중세 프랑스에서 기원한 짤막한 코미디 연극이다. 과장된 제스쳐와 현실에 대한 풍자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늘날 한국의 지방선거가 4년마다 상연되는 하나의 거대한 소극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지역에 어떤 후보가 어떤 정책공약을 들고 나왔는지는 몰라도 강원도의회 선거에 아이언맨이 출마했으며 충청남도의 누군가는 경운기를 몰고 유세에 나왔다는 것[각주:10], 포항시의원에 '윤석열'이 출마했다는 것[각주:11]은 알고 있는 유권자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부분의 독자적 진보 후보들이 포함되어 있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공운수노조 지지후보 웹포스터 / 서울시의원선거에 출마한 탈시설장애인당 조상지 후보(종로구제2선거구)의 선거벽보 / 지역정당을 금지하는 정당법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2022년 지역정당네트워크의 기자회견. 출처: 공공운수노조 / 전장연 / 지역정당네트워크

 

이 소극이 자아내는 쓴웃음을 진보정치는 어떻게 '진짜 웃음'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그 답을 지금 명쾌하게 제시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그 해답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지역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누군가는 지역에서 시민들의 연서명을 받으며 빈틈의 돌봄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산불 피해를 이겨낼 녹색정치의 필요성을, 다른 누군가는 지역의 주체로 함께 살아갈 탈시설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한다.[각주:12] 또 한편으로 누군가는 여전히 한국에서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진짜 지역정치를 일궈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역정당의 허용을 두고 헌법재판소와 다시 맞서려 묵직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각주:13]

 

희망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진보정치와 지역의 접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독자적 진보 후보들의 건투를 기원한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각주

  1. 뉴스1, '강선우 1억'으로 시작된 민주당 공천헌금…'김경 게이트' 비화 조짐 https://www.news1.kr/society/incident-accident/6052099 [본문으로]
  2. 한겨레, ‘동성애 혐오 조장’ 조전혁 현수막에 ‘무지개 끈’…시민들 직접 걸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261047.html [본문으로]
  3. KBS 뉴스, 오세훈 "정원오 '착착개발'? 10년 영업 원조 옆에서 신장개업이 원조 행세"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56058 [본문으로]
  4. MBC 뉴스, 정원오 "재개발·재건축, 지금은 공공성보단 사업성이 우선" https://imnews.imbc.com/news/2026/politics/article/6822441_36911.html [본문으로]
  5. 연합뉴스, [공약비교:전남광주] "성장 통합" vs "상생 통합" https://www.yna.co.kr/view/AKR20260522108800054  [본문으로]
  6. 농민신문, 민주당, 지방선거 농정공약 발표…“농어촌기본소득 등 국정과제 속도 높일 것” https://www.nongmin.com/article/20260519500217 [본문으로]
  7. 한겨레, 윤호중 "성소수자 등 소모적 논쟁 일으킬 당과 연합 어렵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33006.html [본문으로]
  8. 해럴드경제, CES 엄지척 김경 ‘출입증 사적 유용’ 본격 수사…경찰, 고발인 소환 조사 [세상&] https://n.news.naver.com/article/016/0002597975?sid=102 [본문으로]
  9. 민중언론 참세상, [인터뷰] “에어컨 끈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녹색당 김유리 강서구의원 후보 인터뷰 https://www.newscham.net/articles/116446 [본문으로]
  10. YTN, 아이언맨에 경운기까지..."튀어야 뽑힌다" 톡톡 유세 https://www.ytn.co.kr/_cs/_ln_0101_202605230512537126_005.html [본문으로]
  11. JTBC, 선거운동 나선 '윤석열'?…포항 시의원 동명이인 후보 등장 [소셜픽] https://news.jtbc.co.kr/article/NB12289448 [본문으로]
  12. 경향신문, “밀려나본 모든 이에게 필요한 정치”…서울시의회 출사표 낸 ‘탈시설 장애인’ 조상지 [다른 목소리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5071511001#ENT [본문으로]
  13. 더팩트, [단독] '지역정당 제한' 다시 헌재로…새 청구인 참여해 재도전 https://news.tf.co.kr/read/ptoday/2326427.htm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