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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0.98%,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by Domoleft 2025. 6. 13.

[기획기사] 0.98%,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윤석열 파면으로 촉발된 제21대 대선이 마무리되었다. 사회대전환 연대회의와 함께 선거를 완주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를 득표했다. 권영국을 뽑은 344,150명은 누구인가? 선거 결과는 무엇을 시사하며 독자적 진보정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위해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6월 3일 저녁, 제21대 대선 민주노동당 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는 권영국 후보와 선본원들. 출처: 뉴시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파면으로 인해 촉발된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지난 6월 3일 막을 내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5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자당 출신 대통령의 내란 국면에 치러진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41%를 득표하여 여전히 '보수 콘크리트'가 굳건함을 증명했다. 선거 초반 돌풍을 일으켰으나 3차 토론회에서의 여성혐오 발언 논란에 휩싸인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선거비 반액 보전이 가능한 10% 선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양당 구도 속에서도 8%를 득표하는 데 성공했다.

 

재수 - 경선을 포함하면 3수 - 끝에 대통령에 취임한 이재명과 지지층 결집에 성공한 김문수, 소위 '제3지대'의 대표주자 혹은 보수 혁신의 기수임을 자임할 수 있게 된 이준석 모두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올린 반면, 독자적 진보정치와 노동·사회운동진영이 이번 대선이 끝나고 받아든 성적표는 최소한 정량적 관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참담하다.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즉 노동당·녹색당·정의당과 주요 산별노조들, 사회운동단체들의 연합 후보였던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344,150표를 얻어 0,98%의 득표를 기록했다. 이는 제14대 대선의 백기완 후보(1.0%)부터 제20대 대선의 심상정 후보(2.37%)까지 민주화 이후 역대 대선에 출마하여 완주한 모든 '독자적 진보 후보'들을 통틀어 최저 수준의 득표율이다.

제14대 대선부터 20대 대선까지, 역대 대선에 출마하여 완주한 주요 진보정당 후보들의 선거벽보

 

선거를 치르는 정치세력의 제1목표이자 지상과제는 결국 득표의 확대를 통한 유력 정치세력으로의 도약이고, 이러한 점에서 독자적 진보정치세력이 제21대 대선에서 받아든 결과는 어떤 맥락을 감안하더라도 정량적인 실패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외라면 의외인 점은 참담한 선거결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 당원과 지지자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선이 끝나자마자 후원계좌로 13억에 육박하는 후원금이 들어온 것이 끼친 영향이 있겠지만, 단지 그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성원들은 각 지역별로 '우리 동네 권영국 지지자 모임'을 조직하고 있고, 한 민주노동당 당원은 '우리 동네 당근영국'이라는 제목으로 지역별 권영국 지지자 모임을 정리해 놓은 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각주:1] 연대회의의 주요 참여 단위들 역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벌써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시금 고민하기에 바쁘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마무리한 독자적 진보정치 앞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역대 최저의 득표율, 그럼에도 역대 최고액의 후원금과 역대 최다 단위의 선거 결합이라는 이번 선거의 데이터들은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에게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류의 자족적인 평가로 선거를 마무리하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도모>는 기획기사를 통해 제21대 대선이 진보정치에 남긴 것들을 함께 짚어 보고자 한다.


권영국에 투표한 사람들, 누구인가?

권영국 후보의 지역별 득표율 지도. 출처: X(구 트위터) @taekie

 

모든 선거결과를 평가할 때 기본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데이터이고, 결국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뽑았는가'일 수밖에 없다. 전체 득표율이 낮은 관계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지역(서울 마포구)에서도 2%대 득표 달성에 실패한 것은 뼈아프지만, 전체 선거결과를 시각화한 자료에 따르면 여전히 진보정당의 기존 지지층이 남아 있고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의 지역 활동이 꾸준했던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를 얻은 것이 눈에 띈다. 특히 역대 진보정당 의원들의 지역구였던 경남 창원시 성산구와 울산 북, 동구에서는 평균 이상의 득표를 얻었다.

 

다만 본래 진보정당의 핵심 지지기반으로 꼽혀 왔고 역대 대선에서 최소 5% 이상의 득표를 기록했던 해당 지역들에서도 2% 돌파에 실패했다는 것은 진보정치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게끔 한다. 물론 이러한 득표율 하락에는 2024년 총선의 위성정당 사태와 진보당의 이재명 지지 이후 노동벨트의 진보 유권자 표심 일부가 이재명에게 돌아선 영향이 존재하지만, 진보정당이 산업전환기에 유권자에게 와닿는 명쾌한 언어로의 산업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다 근본적 원인이 이 문제의 기저에 있을 것이다.

 

상술한 영남권 노동 벨트를 제외한다면, 마을공동체 운동이 활발한 기초자치단체들에서 평균 득표율을 상회하는 결과를 얻었다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3.9%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은 대안교육과 유기농 농업의 중심지로서 녹색당을 중심으로 한 활발한 지역운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귀농 인구가 다수 유입된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역시 이와 유사한 상황이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3%를 돌파한 마포구 성산1동 역시 성미산마을로 대표되는 마을공동체 운동이 활발한 곳이다.[각주:2] 이는 지역에서의 풀뿌리 사회운동과 그를 토대로 형성된 공동체가 여전히 진보정치의 중요한 기반이 될 수밖에 없음을 다시금 시사한다.

 

한편 연령-젠더라는 다른 축에서 권영국의 득표율은 지역별 지도보다도 훨씬 더 특기할 만한 데이터를 보여 준다. 방송3사 공동 출구조사 기준으로 20대 여성에서 전체 득표율인 0.98%를 무려 6배 가량 상회하는 5.9%의 득표를 얻은 것이다. 최초 인지도가 낮은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후보 중 유일하게 '페미니스트 후보'임을 선언하고, 비동의강간죄 등 여성운동이 주장해 온 의제들을 전면화한 것이 일정하게 주효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공중파 토론회에서 혐오발언을 전면화하고 동덕여대 학생들에 대한 비난을 일삼아 온 '혐오정치인' 이준석 후보가 동일한 20대 여성층에서 10.3%를 얻은 것 역시 뼈아프게 특기할 지점이다. 이는 이준석의 혐오적 여성관에도 불구하고 청년층에서 전반적으로 강한 양당에 대한 비토 정서가 '제3후보'로 보이는 이준석으로 일정하게 집결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와 관련하여 여성학자이자 지난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권김현영은 20대 여성이 여전히 "우리를 대변할 사람을 찾지 못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각주:3]

좌측부터: 제21대 대선의 연령-젠더별 표심 / 매 선거별 방송3사 출구조사를 종합한 20대 여성의 제20대 대선-제22대 총선-제21대 대선에서의 투표 양상. 출처: MBC 뉴스 / 정치싱크탱크 VALID

 

올해 초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원외정당으로의 전락이 예상되었던 독일 좌파당은 청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높은 득표를 얻어 기사회생에 성공한 바 있다. 이는 하이디 라이히네크(Heidi Reichneck)라는 스타성 높은 여성 정치인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동독의 향수를 좇는 지역정당에서 청년-여성-진보 유권자들의 대표정당으로 새로운 지지기반을 조직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좌파당은 20대 여성층에서 기민련, 사민당, 녹색당, AfD를 모두 제치고 최다 득표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결과는 한국에서도 큰 틀에서 이러한 접근법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 주고 있다.

 

권영국 후보가 20대 여성층에서 얻은 5.9%는 전체로 봤을 때, 특히 이준석 후보가 20대 남성층에서 얻은 37.2%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초라하지만, 그럼에도 지난 2017년 이후 유입된 청년 여성 유권자들 중 대다수가 여전히 진보정당의 지지층으로 남아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2022년 치러진 제20대 대선과 비교했을 때 20대 여성에서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은 0.1%만이 올라갔을 뿐이며, 권영국 후보의 득표율은 심상정 후보가 얻은 6.9%에서 약 0.7~1%(조사별) 가량만이 하락했다. 이는 20대 여성층에서 진보정당의 고정 지지층이 사실상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양당에 대한 대안으로서 소위 '제3지대'의 대표성을 청년층에서조차도 이준석에게 빼앗긴 것, '내란청산' 국면을 감안하더라도 차별금지와 여성 의제를 전면에 내세운 선거에서 청년 여성에서의 지지층 확장에 실패했다는 것은 향후 청년 여성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전략전술적 재검토가 필요함을 말해 준다.

 

권영국 후보는 '내란청산' 구도와 극히 약화된 진보정당의 상황이 맞물려 정량적 득표에 있어 1% 미만이라는 명백한 실패를 기록했다. 토론회에서 김문수의 내란 동조, 이준석의 혐오정치 및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대해 명확한 반대를 표명하며 후보의 이름을 알린 것은 긍정적 평을 받았지만, 민주당이 외면하는 차별금지법 등의 의제를 전면화해야 했던 제2차 사회분야 토론회에서도 이재명 후보에게 충분한 각을 세우지 못한 것에 있어서 '양당 모두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존재감 부각'은 충분치 못했다는 평가가 상존한다. 더불어 재정의 한계로 2차 공보물을 보내지 못했다거나, 주요 3후보에 비해 후보의 존재 자체가 충분히 외화되지 못한 것 역시 현재 진보정당운동이 갖는 분명한 한계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지역별, 연령-젠더별 투표 결과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에 여전히 표를 던지는 지지층이 누구인지가 명확히 보인다는 것은 중요한 성과다. 특히 여성과 소수자가 배제되고 있는 현재의 정치구도 속에서 성평등을 외치고 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진보정치뿐임을 더욱 명확히 하고, 진보정당의 풀뿌리 지지기반이 될 수 있는 지역 단위 사회운동과의 연계를 더욱 강화하며, 산업전환기에 대응하는 진보적 산업정책을 명확히 수립하여 기존 진보정치의 지지기반이던 대단위 노동벨트 유권자들에게 다시금 하나의 정치적 대안으로서 각인되는 것, 이것들이 여전히 진보정당에게 필수적으로 요해지는 과제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이다.


'정의당의 대선'이 아닌 '연대회의의 대선'이 남긴 것

좌측부터: 사회대전환 경기선대위 출정식 / 사회대전환 대구선대위 출정식. 출처: 골든타임즈 / 브레이크뉴스

 

단지 득표율로 표상되는 정량적 데이터만으로 선거를 규정할 수는 없다. 진보정치·사회운동진영의 내부로 눈을 돌려 본다면, 이번 대선이 만들어낸 성과는 명확하다. '사회대전환 대선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로 뭉친 독자적 진보정치진영이 함께 첫 번째 선거를 치러냈고, 특히 지역 단위에서도 이러한 움직임들이 가시화되어 16개 광역자치단체에서 모두 '사회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가 꾸려진 것이다. 지역별 사회대전환 선대위에는 중앙과 같이 노동당·녹색당·정의당 등 진보 3당과 사회운동단체들, 민주노총 지역본부 및 주요 산별노조들이 결합하여 함께 선거를 치렀다.

 

선거 기간에 고양·파주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모임을 주최한 김찬우 민주노동당 파주시위원장은 "정의당(민주노동당)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외롭지 않았다" 말한다. 한편 이와 마찬가지로 연대회의에 결합한 비(非)정당 사회운동진영 역시 이번 선거 과정에서 모인 연대에 고무된 모양새다.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의 임현창 활동가는 "그동안 사회운동과 진보정당들이 서로 너무 멀어지면서 사고방식은 물론 문화와 언어조차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 조건 속에서 마침내 하나의 목표를 위해 공동으로 행동하며 경험을 쌓고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소중한 기회다. 앞으로도 다가올 선거는 물론 여러 운동의 국면에서 이 흐름을 잘 살려가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 이야기한다.

 

중요한 지점은, 선거가 마무리된 이후로도 이러한 연대가 여전히 느슨하게나마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글 서두에 언급된 '우리 동네 당근영국' 등 지역별 권영국 지지자들의 모임은 선거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가 지속 가능함을 시사하는 하나의 예시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 당근영국' 페이지에는 6월 11일 현재 기준 총 10개 광역자치단체, 27개의 지역별 모임이 등록되어 있으며 지속적으로 추가되는 중이다. 이 모임들 중 적지 않은 수는 단지 정의당(민주노동당) 당원들만이 아니라, 선거 기간 함께했던 녹색당, 노동당, 각 지역의 사회운동세력이 함께 모여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연대회의에 주요 산별노조들과 민주노조운동 내 의견그룹이 함께했다는 것은 진보정당이 결코 놓을 수 없는 과제 중 하나가 '노동자 정치세력화'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하고 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와 양경수 집행부가 정치방침을 결정하지 않았음에도 주요 산별노조와 지역본부들이 연대회의에 참여하고 권영국 후보의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결합했다는 것은, 최근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부진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 논의에도 하나의 전기(轉機)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오는 2026년으로 예정된 민주노총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선거에서 현재 양경수 집행부의 친민주당 경향성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후퇴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과 독자성을 지켜내는 것 역시 진보정치와 사회운동 전반에 있어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좌측부터: '우리 동네 당근영국' 노션 페이지 / '노동자가 여는 평등의길'의 민주노총 집행부 비판 성명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비록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독자적 진보정치'를 지향하는 모든 세력들을 포괄하는 폭넓은 연대의 틀이 만들어졌지만, 선거철이 아닌 일상 시기에 지속적인 공통의 사업과 실천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연대는 결국 선거용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연대회의의 참여 단위들에게 있어 '새로운 독자적 진보정치세력의 구축'이 목표이고 '선거 공동대응'이 방법론임을 전제한다면, 지금 연대회의와 각 참여 단위들에게 부여된 최대 과제는 어떤 방식으로 일상적 연대연합을 가능케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광역단위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대전환 선대위를 기초 단위로 확대해 '각 지역별 진보정치·사회운동 협의체'로 개편하고 정당부터 노동조합까지 참여하는 모든 단위들이 지역에서부터 지속적인 논의와 사업을 이어나가는 것은 유효한 방법일 수 있다.

 

정치세력으로서 선거 대응을 상수로 가정한다면, 선거연합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의 정치관계법 역시 큰 걸림돌 중 하나다. 단일한 후보를 내는 대선에서 TV토론회 참석이 가능한 정의당을 연합정당의 틀로 하여 공동대응하는 것에는 합의가 가능했지만, 다가올 2026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2028년 제23대 총선에서 독자적 진보 세력의 공동 후보를 출마시키는 것은 또 다른 논쟁과 협의가 필요한 문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에서 다수의 후보를 출마시켜야만 하는 지선과 총선에서 각 정당과 정치세력들 간의 이해관계가 훨씬 첨예해질 수밖에 없음은 누구라도 예측 가능하다. 이러한 정치세력 간 이해충돌의 문제는 이미 녹색당과 정의당이 녹색정의당으로 함께 치른 지난 제22대 총선에서 일정하게 드러난 바 있다.

 

이해의 충돌과 제도적인 한계 등 다양한 문제들이 있고 제도적으로는 선거연대 합법화 및 위성정당방지법 추진 등이 필요하겠지만, 결국 이 모든 상황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선거 시기만의 연대연합이 아니라 제 진보정치세력 간 일상적 토론과 소통의 활성화일 수밖에 없다. 독자적 진보정치의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위해 이번 대선이 촉발한 연대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연대'의 기본은 서로 다른 단위들이 공통의 지향과 목표를 위해 손을 맞잡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대회의의 지속을 위해서는 연대회의에 참여하거나 선거운동에 함께했지만 그 자체로 독자정당이고 독자적 정치세력인 수많은 단위들에 대한 상호 존중이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섣부른 합당 논의나 타 단위에 대한 몰이해적 접근이 자제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독자적 진보정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6월 2일 저녁 보신각에서 진행된 권영국 후보의 피날레 유세에 모인 지지자와 선거운동원들. 출처: 오마이뉴스

 

최소한 한국의 진보진영에 한해서는 이제 폭넓게 쓰이게 된 '독자적 진보정치'라는 말은, 사실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적 진보정치'라는 말이 본래 동어반복이었기 때문이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첫 원내진출부터 2024년 총선 전까지 매 선거마다 모든 진보정당들은 '독자노선' 즉 민주당과의 선거연대가 아니라 독립적인 비례명부를 가지고 유권자들을 만나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2024년 제22대 총선부터였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 이후 진보정당운동의 두 축 중 하나였던 자주파(NL) 계열의 진보당이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참여를 택하며 원내입성에 성공했고, 반면 독자노선을 선택한 모든 진보정당들 - 녹색정의당, 노동당 - 은 원외정당으로 전락한 것이다(그 시작부터 위성정당이자 종속정당이었던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등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적 진보정치'라는 말은 동시에, '독자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진보정치인 정치'가 존재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이 그 무엇보다 해야만 하는 것은 '왜 우리는 독자적으로 존재해야만 하는가'를 대중들에게 역설하고 그 필요성을 각인시키는 일일 수밖에 없다. 강고한 양당 체제 속 독자성을 포기하고 의석을 포함한 약간의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 - 비록 원칙적이지 않지만 - 대중을 만나고 정치를 하기에는 훨씬 유리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그런 기울어진 조건을 뚫어내면서까지 스스로의 독자적 필요성을 입증해낸다면 그 정치세력은 훨씬 더 강하고 명료한 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당연한 듯 '독자적 진보정당'으로 묶이는 정의당(민주노동당)은 그 노선에 있어 창당 이래 수많은 부침을 겪어 왔다. 과거 정의당이 취해 온 노선 중에는 후보자 명부만 별도일 뿐이지 '독자적'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민주당 종속적인 노선도 존재했다. '문재인 정부의 왼쪽 날개'를 자임한 이정미 전 대표의 발언[각주:4]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기에 이번 대선에서 권영국과 연대회의가 얻어낸 0.98%, 344,150명의 표는 반드시 복기해야 하는 정량적 실패이지만, 동시에 진보정당 노선의 완전한 재정립이라는 의미에서 분명한 유효성을 가진다. 최소한 한국 사회 1%의 유권자들과 그보다 조금 더 많을 후원자들이 '그 모든 역사와 부침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진보정당은 독자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에 동의를 표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석준 전 정의정책연구소장은 SNS에서 "진보정당 30여 년 역사가 있었는데 다시 도돌이표라는 푸념도 있지만 이 결과야말로 역설적으로 진보정당운동이 지난 역사와 '단절'했음을 대중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중략)... 결국 30만 표를 '잔해'가 아니라 '새 출발'의 대중적 인정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갈 것이다."라 이야기한다.[각주:5]

 

그 말대로, 지금 독자적 진보정치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마주했다. 1997년 국민승리21 권영길의 1.19%가 결국 2004년 민주노동당 원내진입의 초석이 되었듯이, 2025년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의 0.98%가 역사적으로 유효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것이 - 어떤 이름과 형태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 새로운 독자적 진보정당 시대의 초석이 되어야만 한다. 그 첫 걸음은 물론 이번 선거에서 만들어낸 연대를 중심으로 한 일상적 실천과 토론의 확장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각주

  1. 우리 동네 당근영국 https://trafficlightfriends.notion.site/20dfd1f6e34f8019ad76e73197bea646 [본문으로]
  2. 뉴스타파, 이재명 후보의 114만 표는 어디서 왔을까? https://v.daum.net/v/20250605165003356 [본문으로]
  3. 권김현영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hare/p/1DC2rRHq54/  [본문으로]
  4. 매일경제, 이정미 "문재인 정부의 왼쪽 날개, 정의당" https://www.mk.co.kr/economy/view/2017/499010 [본문으로]
  5. 장석준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hare/p/18wDsHKrVQ/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