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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국민연금, '연기금 사유주의'에서 '연기금 사회주의'로

by Domoleft 2026. 9. 3.

[경제] 국민연금, '연기금 사유주의'에서 '연기금 사회주의'로

역사상 유례없는 고위험 투자를 늘리고 있는 국민연금, 얼마 전에는 이스라엘의 '전쟁국채'를 매입하여 논란까지 빚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포트폴리오와 인사가 좌우되는 '연기금 사유주의'에서 모두의 돈에 대한 공공성을 강화하는 '연기금 사회주의'로, 그 필요성을 논한다.


국민연금 '재원 부족'이라더니, 고위험 투자 대폭 확대?

다소 무례하더라도 양해를 구하고,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부양할 부모와 일하는 직장이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이 글은 곧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것. 동시에 늘 '재원 부족'과 '고갈 시점' 등으로 한국 사회 위기론의 핵심이 되는 것. 그 이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빠르게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국민연금이다. 사회구성원 모두의 노후를 위해 국가에서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흔들리고 있다. 정권의 치적을 쌓기 위해 '사유화'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5월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20.8%로, 무려 5.9%포인트나 올렸다.[각주:1] 일정한 조건을 만족할 시에는 최대 28.8%까지 국내주식을 늘릴 수 있게 됐다.[각주:2] 코스피가 오를 때는 좋았다. 국민연금 수익률도 함께 뛰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국민연금은 역대 최고 운용수익률을 기록했고, 정부와 여당은 이를 스스로의 성과로 홍보했다.[각주:3]

2026년 1월부터 7월 말까지의 코스피·코스닥 지수 추이. 출처: 뉴스1


'삼전닉스'에 매달렸던 코스피가 고꾸라지자 그 성과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코스피는 6월 말 정점을 찍은 뒤 폭락을 거듭했다. 그리고 국민연금은 몇 달 만에 평가이익 약 120조원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각주:4] 오를 때는 정권의 치적이던 것이, 떨어지자 "장기 투자자이니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구차한 해명으로 바뀌었다. 오를 때만 내 덕이고 떨어지면 원래 그런 거라는 식이다.

 

이런 고위험 베팅이 왜 문제인가? 국민연금은 애초에 초장기의 안정적 수익을 추구해야 할 공적 연기금이지, 정권의 임기 내 지수 방어를 위해 단기 변동성을 떠안는 헤지펀드가 아니다. 목표비중을 바꾸는 결정은 수백조 원 단위의 자금이 국내 주식시장에 더 깊이 묶인다는 뜻이고, 그 리스크는 고스란히 국민의 노후자금이 떠안는다. 이 위험한 베팅으로 수혜를 입는 건 치적으로 내세우려는 이재명 정권이고, 손실이 나도 책임질 사람은 없다. 이재명 본인의 정치적 성과를 위해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도박판을 벌이면서, 잃으면 "장기 투자라 괜찮다"고 말을 바꾸는 게, 혈세와 국민의 노후를 볼모로 한 가장 노골적인 '사유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민주당의 침묵과 보수진영의 선택적 비판

'연금사회주의 반대'를 운운하며 국회 토론회를 갖는 국민의힘 의원들. 출처: 뉴스1

 

이재명 정부의 치적 쌓기를 목적 삼아 계속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사유화'에 집권여당 민주당이 침묵하는 것은 별로 이상하지 않다. 늘 그러하듯 이 문제에 있어서도 '이재명 정권 타도'를 위해 가장 시끄럽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보수진영이다. 극우 언론 뉴데일리는 기사를 통해 "외환당국이 원달러 환율 방어에 국민연금을 동원하려 하고 증시 불쏘시개나 환율 소방수 역할까지 요구한다"고 비판했다.[각주:5] 타 언론 역시 사설에서 "국민연금의 정치적 운용이 폭탄을 키웠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쌈짓돈처럼 여기는 구태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각주:6]

 

그러나 이런 분노가 향하는 방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마치 정부의 국민연금 개입 자체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상대 정파의 국민연금 개입'에만 한정하여 비판한다. 즉 증시 부양이나 환율 방어처럼 이재명 정권의 치적에 복무하는 개입에는 온갖 딱지를 붙이며 비판하면서도, 보수정권의 재벌 승계 등 부당한 국민연금 개입은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의 국민연금 개입에는 흔히 '연기금 사회주의'라는 낙인이 찍히곤 한다. 이 용어는 다름아닌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지금으로부터 반 세기 전 처음 사용한 용어였다. 흥미로운 점은 피터 드러커가 최초 이 용어를 가치중립적 용례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피터 드러커는 노동계급의 연기금이 미국 대기업 주식의 상당 부분을 간접적으로 소유하게 된 현상을 주목했고, 이에 '연기금 사회주의'란 용어를 고안했을 뿐이다. 드러커는 당초 비판도, 경고도 아닌 흥미로운 시장 현상에 대한 관찰의 결과로 이 단어를 창조해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

 

이 말을 한국에서 낙인으로 애용하며 단어의 본질을 왜곡한 주체는 노무현 정권 당시의 보수 야당이었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활성화를 놓고 여야가 대치하던 당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의 최측근이었던 유승민은 '연기금 사회주의'라는 단어로 정부와 여당을 공격했다. 유구한 색깔론을 절묘하게 배합한 이 표현은 박근혜마저 기억하고 애용할 정도의 파괴력을 자랑했다. 즉 이 용어는 시작부터 정부의 연기금 개입을 그저 '빨갱이' 프레임으로 옭아매기 위한 정치적 무기였다. 보수진영이 정말 두려워하는 건 개입 자체가 아니다. 단지 그 개입을 상대 정파가 한다는 사실일 뿐이다.


박근혜에서 윤석열까지, '연기금 사유주의'의 역사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한다"는 보수진영의 흔한 레토릭과는 달리, 보수정권 집권 당시에도 정권이 국민연금에 개입하는 '연기금 사유주의'는 실재했다. 즉, 이재명 정권과 보수정권 사이에는 국민연금의 사유화라는 측면에 있어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을 의결해 양사 합병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담당자에게 직접 지시했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만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건을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라"고 윗선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며 입막음까지 당부한 것으로 훗날 드러났다.[각주:7]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으로 3,000여억 원의 평가손실을 입은 국민연금. 출처: JTBC '썰전'

 

당시 정권의 개입 속에 국민연금은 시장과 자문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병에 찬성했고[각주:8], 결국 수천억 원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하겠지만 이는 어떤 면에서도 국민연금이 '사회주의적'으로 쓰여서 생긴 손실이라 볼 수 없다. 되려 위정자를 위해 국민연금이 '사유화'되어 생긴 손실이다. 이 손실에 대해서 박근혜 정권도, 박근혜 정권의 탄핵 이후 들어선 어떤 정권도 책임지지 않았다.

 

윤석열 정권에서도 양상은 똑같았다. 국민연금이 엄연히 민간 기업인 KT와 포스코에 '코드 인사' 꽂기를 위해 개입한 것이다. 2022년 12월 KT 이사회가 특정 후보를 차기 대표이사로 결정하려 하자, 국민연금은 이례적으로 인사권에 제동을 걸었다.[각주:9] 2025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당시 대통령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느냐"고 캐물으며 “윤석열의 하수인이 되어 KT에 압박을 가한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국민연금 측은 "소유분산기업의 대표자 선정인 만큼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국민연금의 개입 결과 KT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포스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국민연금의 반대 속에 특정 후보군이 차기 회장에서 탈락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민영 기업 경영권에 국민연금 이사장이 구두 개입한 것은 선진국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평했다.[각주:10] KT나 포스코가 국가기간산업을 영위하니 개입해도 된다는 말을, 설마 자유시장경제를 주창하는 사람이 뱉진 않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윤석열 정권 하 국민연금의 반대로 회장직에서 낙마한 이석채 KT 전 회장 / 최정우 포스코 전 회장

 

이들 개개인 역시 기업인으로서, 자본가로서 수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에 가깝다. 이들이 잘려나간 과정은 심지어 그 시스템조차도 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으로 돌아감을 입증한다. 박근혜의 국민연금은 특정 재벌을 위해 움직였다. 윤석열의 국민연금은 코드 인사를 꽂기 위해서 움직였다. 위정자의 뜻이 국민연금의 의결권으로 둔갑하는 경로 자체는 이재명과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진짜 문제가 되는 '연기금 사유주의'다. 자신들이 배출한 정권의 국민연금 개입마저 공격할 수 없으니, '연기금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오용해 가며 이재명 정권의 사유주의를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세금으로 사들인 전쟁국채, 세금으로 만들어낸 기후악당

사유화와 사회화를 가르는 기준이 뭘까? 결과의 좋고 나쁨이 아니다. 증시가 오르면 사회화고 내리면 사유화라는 것은 역시 선택적 잣대에 다름없다. 기준은 우선 절차에 있다. 그 개입이 민주성과 대표성을 거쳤는지, 독립성이 보장된 기구의 결정인지 등이다. 반대로 정권의 정치 일정에 따라 절차적 정당성 없이 이뤄지는 개입이라면, 그 결과가 우연히 좋았다 해도 사유화다. 박근혜의 삼성 개입과 이재명의 치적쌓기 개입을 같은 선상에 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과가 아니라, 둘 다 위정자 한 명만을 위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절차를 지켰다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다.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는, 그저 관행과 벤치마크를 따르는 것 역시 또 다른 '선택'이다. 민주국가에서 국민들의 소득을 기반으로 투자하는 국민연금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은 인권과 기후정의 등 사회보편적 가치이다. 이런 마지노선마저 '위탁운용사의 재량'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한다면, 그건 절차적으로 흠결이 없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무책임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연금은 정말 '사회적으로’ 움직여야 할 곳에서는 과하게 소극적이다. 일례로 참여연대 등은 2026년 8월, 국민연금이 이스라엘의 '전쟁 국채' 수백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규탄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서 전쟁범죄를 벌이던 중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 특별 국채를 발행했는데, 국민연금이 이것을 사들인 것이다.[각주:11] 국민연금 측은 '위탁운용사가 기존 벤치마크를 따른 결과이며, 개별 투자를 강제할 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코스피 부양 개입이나 KT·포스코 인사 개입에는 그토록 신속하고 노골적으로 움직이던 국민연금이, 국제사법재판소(ICJ)마저도 전쟁범죄라고 판단한 이스라엘의 대량학살 앞에서는 손을 놓은 것이다.

좌측부터: 8월 31일 국민연금 본사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 국민연금 투자 중단 촉구 기자회견 / '기후 없는 스튜어드십'을 지적하는 기후솔루션의 레포트.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 기후솔루션

 

기후솔루션 보고서 역시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활동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특히 기후위험 대응은 미비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각주:12] 국민연금은 국내외 주식에서 사실상 100% 책임투자를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ESG 평가를 '참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기업의 저탄소 전환을 이끄는 적극적인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은 2024년보다 오히려 감소해 퇴행하고 있다.[각주:13] 정권 치적이나 재벌 승계처럼 깨끗하지 않은 목적에는 이토록 쉽게 동원되면서, 인권이나 기후, 노동,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진짜 공적인 목적 앞에서는 한없이 소극적이다. 이 비대칭이야말로 진짜 문제다. 지금 필요한 건 국민연금의 '탈사유화'다.


구조와 제도를 바꿔야 한다

먼저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법률상 최고의결기구지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겸임한다(보건복지부 장관은 당연히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민연금 규모는 1천 조로 불어났는데도, 그 의사결정 구조는 타성에 젖어 예전 그대로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혁 방안' 토론회에서는 제도 운영과 기금 운용 기능의 분리,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 강화, 가입자 대표성 현실화, 상설 전문 의사결정체계 구축, 수탁자책임 체계 정비라는 5대 과제가 제시됐다.[각주:14]

6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혁 방안 토론회'. 출처: 뉴시스

 

한발 더 나아가 기금운용위원회 내 정부 측 위원 비중을 축소하고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까지 가입자 대표성을 확대하며, 정치권력과 행정부, 자본으로부터 모두 자유로운 독립성을 갖추기 위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수준의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 역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각주:15]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정할 때 청와대나 여당이 매 회의마다 전화를 걸어 결정을 좌우한다면 그 자체로 스캔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국민연금마냥 빈번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금통위 위원 임기가 법으로 보장되고, 정권이 바뀐다고 위원이 전반적으로 물갈이되지 않으며, 결정 근거를 의사록으로 공개해 사후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지배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위원장부터 보건복지부 장관이 겸임하고(보건복지부 장관은 당연히 대통령이 임명한다), 정권이 바뀌면 실무진 인선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국민연금에 필요한 건 금통위의 임기 보장, 압력으로부터의 차단, 사후 책임 추적 가능성을, 즉 '깨끗한 지배구조'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다음은 '사회화의 제도화'다. 국민연금이 정치의 도구가 아니라 진짜 사회적으로 제대로 서려면, 그 원칙에 '이빨'이 있어야 한다. 2016년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2026년 올해 전면 개정되어 적용 자산을 상장주식에서 채권, 인프라, 부동산, 비상장주식, 해외자산까지 넓히고, 수탁자 책임(국민의 돈을 굴리는 기관이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에 둘 의무)의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강제성 없는 자율 지침이다. 이행보고서를 충실히 작성하는 기관의 비율은 낮고, 원칙에 서명만 하고 관여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무관심이 수년간 굳어졌다.[각주:16]

 

연기금 운용의 첨단을 달리는 영국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최근 세 차례나 손봤고, 일본도 2025년 관련 개정을 마쳤다. 영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등을 관장하는 재무보고위원회는 1991년 설립 이후 서명 기관을 매년 같은 기준으로 심사해, 기준에 미달하면 대형 글로벌 투자자라도 예외 없이 탈락시켜 왔다. 핵심은 감독 주체가 인사 교체나 정치 일정과 무관하게 일관된 기준으로 장기간 감독을 지속할 수 있는가다. 영국이나 일본이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연금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각주:17] 지금의 자율 지침을 구속력 있는 제도로 못박아야 한다. 정치 개입으로 인한 사유화는 차단하고, 가입자와 사회적 이익은 최우선에 두며 사회화하는 것이다.

좌측부터: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 / 한국과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 비교. 출처: 국민연금 / 비즈워치

 

앞서 말한 영국의 재무보고위원회 심사 기준은 정권이나 담당자가 바뀌어도 그대로 유지된다. 재무보고위원회는 서명 기관의 이행보고서를 매년 엄격히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며, 기준 미달 기관은 명단에서 실제로 탈락시킨다. 반면 한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서명과 이행보고서 제출만으로 요건이 충족되고, 내용이 부실해도 불이익이 없다. 아무리 코드를 잘 개정해도 지켜야 할 강제력이 없다면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이다. 국민연금의 사회적 책임에도 이러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문제는 사유주의야, 바보야!

글의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부모나 직장이 있느냐고 물었던 건, 결국 이 문제가 당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였다. 국민연금은 필자의 부친처럼 정년을 앞둔 이들의 현재이고, 필자처럼 매달 월급에서 소액을 쌓아가는 이들의 미래다. 그런데 이 돈은 늘 연기금 사유주의라는 진짜 문제에 잠식당해 왔다. 이재명 정부는 유례없는 고위험 투자로 시장의 변동에 국민의 오늘과 내일을 그대로 내맡기고 있다. 우파 언론은 정권을 내어줄 때마다 연기금 사회주의를 외쳤지만, 정작 자신들이 집권할 때는 가장 저질의 방식으로 사유화에 몰두해 왔다. 진짜 논쟁거리는 한 번도 '개입하느냐' 자체가 아니었다.

 

'사유화(privatization)'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늘 '사회화(socialization)'고, 사회화를 주장하는 것이 곧 사회주의다. 무제한적 사유화를 추동하며 사회화를 색깔론으로 둔갑시켜 온 한국 사회에 이제는 연금 사유화의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연기금 사회주의'를 되찾을 때다. '되찾는다'는 것은 드러커의 관찰을 그대로 반복하자는 뜻이 아니다. 드러커는 노동계급의 돈이 대기업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 그 주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이라면 마땅히 책임이 따른다. 소유의 사실에서 책임의 요구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이 단어에 담아야 할 내용이다.

 

기후위기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노동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가입자를 위한 진짜 사회적 투자가 사회주의라면, 오히려 우리는 이런 사회주의가 보다 간절하게 필요하다. 당신은 노후를 준비할 필요성이 있는가. 있다면 이 글은 우리의 이야기다. 국민연금이 굴리는 수천 조를 정권의 입맛에 아부하는 손버릇에 맡겨둘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책임을 못박아 민주주의의 질서 아래에서 가입자들에게 돌려 줄 것인가? 빌 클린턴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문제는 사유주의야, 바보야!"고,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선택의 권한이 있다.

국민연금공단 본사. 출처: 연합뉴스

 


김봉독

공인회계사, 세무사. 현재 모 회계법인의 세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도모》에 어려운 경제 이슈를 풀어쓰는 글을 기고한다. 조세정의와 진보적 경제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세무사지만 여전히 세법은 어렵다.


각주

  1.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국민연금, 올해 국내주식 목표비중 14.9%→20.8%로 상향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65365 [본문으로]
  2. 조선비즈, 국민연금, 국내주식 비중 최대 25.8% + α https://v.daum.net/v/20260528180955546 [본문으로]
  3. 한국경제, 국민연금 수익률 역대 최고…상반기 韓주식으로 107% 벌어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2800551 [본문으로]
  4. 머니투데이, 7월 코스피 20% 급락에도 연기금 1조 순매수…국민연금, 평가익 120조 증발 https://www.mt.co.kr/stock/2026/08/03/2026080311181646960 [본문으로]
  5. 뉴데일리, 연금사회주의도 모자라 환율 씨받이 된 국민연금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11/25/2025112500380.html [본문으로]
  6. 디지털타임스, 국민연금 주식 매물 60조… ‘정치적 운용’이 폭탄 키웠다 https://www.dt.co.kr/article/12069605  [본문으로]
  7. 허프포스트, 박근혜가 국민연금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지시했다 https://www.huffingtonpost.kr/article/44141 [본문으로]
  8. 국민연금 손실 및 책임자 사면 후폭풍 https://marketin.edaily.co.kr/News/Read?newsId=03765446642270928 [본문으로]
  9. ZDNet, 국민연금, KT 인사 개입 의혹...김태현 이사장 “문제제기했을 뿐” https://zdnet.co.kr/view/?no=20251024115247 [본문으로]
  10. 한국일보, 국민연금이 반대하자 포스코 현 회장은 CEO 심사서 탈락...주가는 3.18% 떨어졌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4010316200003138  [본문으로]
  11. 참여연대, [성명] 국민연금을 반인륜적·반인권적 전쟁범죄 지원에 쓰지 말라 https://peoplepower21.org/welfare/2027630 [본문으로]
  12. 뉴스펭귄, 국민연금 ESG 투자…기후 대응 실효성 도마 https://v.daum.net/v/20260706181338079 [본문으로]
  13. 기후에너지경제, “무늬만 중점관리? 기후위험 관리 수준 오히려 역행”…국민연금, ‘기후 스튜어드십’ 실효성 도마에 https://www.ef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96 [본문으로]
  14. 시장경제, 국민연금 ‘3차 지배구조 개혁’ 시동... “1610조, 1998년 체계로 운용” https://www.meconom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2017 [본문으로]
  15. 국민연금 1600조 시대…”30년 묵은 지배구조 손 봐야” https://www.m-economynews.com/news/article.html?no=67970 [본문으로]
  16. 헤럴드경제, 스튜어드십코드 개정, 관건은 ‘감독의 연속성’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841487  [본문으로]
  17. 한국일보, 스튜어드십 코드 10년 만에 개정…현장에선 실효성 논란, 왜?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0714480003116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