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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임토작공(任土作貢)의 나라 - AI 데이터센터와 21세기 공납

by Domoleft 2026. 8. 3.

[경제] 임토작공(任土作貢)의 나라 - AI 데이터센터와 21세기 공납

'3대 메가프로젝트'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명목으로 지역으로부터 AI 데이터센터의 부지와 이를 지탱할 물, 전기를 징발하고 있다. 중앙과 자본에 지역의 것들을 앞장서 갖다바치는 현대판 공납의 폐단을 해결할 '21세기 대동법'의 필요성을 함께 살펴본다.


공납과 방납, 대동법

요즘 '대동법' 생각을 자주 한다. 한국사를 배운 사람들이면 공납(貢納)이나 방납(防納)의 폐단, 광해군이 시작한 세법 등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기억날 것이다. 대동법은 기존에 지역별로 나누어 특산물을 바치던 공납을 대신하여 토지의 면적을 기준으로 쌀을 납부하게 한 세법이다. 광해군 원년인 1608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어 숙종 때인 1708년 황해도까지 닿는 데 꼬박 백 년이 걸렸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상한 일이다. 지역별로 특산물을 박박 긁어모아 바치는 방식보다 누가 봐도 훨씬 합리적인, 토지를 기반 삼아 거기에서 생산되는 쌀로 세금을 낸다는 이 명료한 제도가 전국에 퍼지는 데 왜 백 년씩이나 걸렸을까. 오랜만에 생각난 공납과 대동법의 궤적을 다시 떠올리다 보니, 매스컴을 뒤덮는 2026년의 '메가프로젝트'와 데이터센터 이슈가 조금은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좌측부터: 대동법의 지역별 시행 연도 / 대동세의 징수와 운송 경로

 

먼저 대동법 이전의 세상, 그러니까 '공납'이 어떤 제도였는지부터 살펴보자. 조선의 백성은 세금을 세 갈래로 냈다. 토지에 매기는 전세, 몸으로 때우는 역, 그리고 고을의 특산물을 현물로 바치는 공납. 이 중 백성들을 가장 괴롭힌 것이 공납이었다. 공납은 중국 경전 『상서』 우공 편의 "우임금이 9주에 토산에 맞게 공을 정했다[任土作貢]" 에서 처음 확인된다. 임토작공(任土作貢)은 즉 "그 땅에서 나는 것을 임금께 바친다"는 뜻이다. 강원 고을은 잣과 꿀을, 남해 고을은 전복과 미역을 올리는 식이다.

 

각 지방의 산물이 왕에게 모이는 공납은 국가의 제사나 손님 접대에도 사용되며 고대부터 조세·재정 정책의 큰 축을 차지했다. 또한 중세로 넘어가며 강화되는 왕권에 맞춰 단순한 세금을 넘어 각 지방과 중앙의 관계를 확인하는, 즉 나라의 질서를 확인하는 의례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문제는 공납이라는 이름 하에 벌어진 폐단들이 너무나 심했다는 것이다.

 

첫째, 공납은 호(戶), 그러니까 가구 단위로 부과됐다. 땅이 아니라 집에 매기니 땅 한 뼘 없는 소작농과 천 석 지주가 비슷한 짐을 졌다. 귤을 과도하게 수탈하던 공납 때문에 귤나무를 뽑던 제주도 농민들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둘째, 배정된 품목이 현실과 따로 놀았다. 공안(貢案)이라는 장부에 고을별 진상 품목이 적혀 있었는데, 한번 적히면 좀처럼 고쳐지지 않아서 그 고을에서 나지도 않는 물건을 바치라는 일이 흔했다. 예컨대 담비 가죽을 바치던 함경도 지역은 지속적인 개간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담비 가죽을 구하기 어렵자, 북방 여진족 등과 교역을 통해 울며 겨자먹기로 담비 가죽을 구해 와야만 했다.

 

기후변화나 주거민들의 변화로 인해 기존의 공납 품목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여기서 방납(防納)이 등장한다. 중간상인이 "제가 대신 구해다 바치겠습니다" 하고는, 농민에게 시가의 몇 배를 청구하는 것이다. 관아의 아전들은 농민이 직접 마련해 온 진상품에는 트집을 잡아 퇴짜를 놓고, 방납업자의 물건만 받아 줬다. 짜고 치는 판이었다. 제도의 비효율이 누군가에게는 훌륭한 수익 모델이었던 셈이다.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대동법시행기념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대동법은 두 가지 원리로 이러한 폐단을 해결했다. 하나, 과세 기준을 호에서 토지로 옮긴다. '땅 1결당 쌀 12두'라는 기준은 한국사 시험을 준비했던 사람이라면 달달 외우게 되는 수치다. 땅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는 땅이 많으면 많이 내고, 없으면 안 낸다. 현대로 따지면 과도하게 부과되는 주민세를 대체해 부동산 보유세를 도입한 것이다. 둘, 현물 대신 쌀로 통일해서 세금을 걷고, 나라가 필요한 물건은 선혜청이 공인(貢人)이라는 조달상인을 통해 시장에서 사다 쓴다. 농민과 방납업자 사이의 먹이사슬을 끊고 그 자리에 투명한 거래를 놓은 것이다.

 

그러니 누가 이 법을 가장 반대했겠는가. 땅 많은 양반 지주들, 그리고 방납으로 먹고살던 지방의 업자들이었다. 효종 시기 영의정을 지낸 김육은 자신의 한평생을 이 싸움에 걸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효종에게 대동법의 호남 시행을 간청하는 상소를 올렸고, 대동법은 그가 죽고도 반백 년이 더 지나서야 전국에 닿았다. 대동법이 좋은 제도라서 이긴 것이 아니라, 결국 그것을 밀어붙일 수 있는 정치적 힘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이긴 것이다.


현대판 공납, 3대 메가프로젝트

지난 6월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라는 긴 이름의 행사가 열렸다. 여기서 지목된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다. 대통령은 직할 담당관을 두어 이를 직접 챙기겠다 공언했고, 이재용과 최태원이 대통령의 양옆에서 나란히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숫자는 그간 뉴스를 뒤덮었던 코스피 수치보다도 더 아득했다. 서남권에 800조 원짜리 반도체 팹 4기를 짓고, SK·GS·네이버는 550조 원을 들여 1단계 8.4기가와트, 2035년까지 18.4기가와트로 AI 데이터센터 용량을 늘린다고 한다.[각주:1]

6월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 출처: 뉴스1

 

여기에는 지역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광주·전남은 제2반도체 클러스터, 강원·충청은 AI 데이터센터, 영남은 피지컬 AI 벨트. 각 지방에 역할이 하나씩 배정된 것이다. 이 지도를 보며 떠오른 것은 고을마다의 진상 품목이 적혀 있던 공납 시기의 장부, 즉 '공안'이다. 다만 품목만 현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각 지방이 중앙에 바쳐야 하는 '그 땅의 산물'은 잣도 전복도 아니다. 햇빛과 바람, 댐의 냉수, 발전소의 잉여 전력, 넓고 싼 땅, 그리고 송전망의 여유 용량이다.

 

호남부터 살펴보자. 삼성은 호남에 총 425조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광주에 400조 원을 들여 팹 2기를 짓고, 전남 해남 솔라시도에는 17조 원짜리 210메가와트급 국가 AI 데이터센터를 세운다. 올해 하반기 착공, 2028년 가동이 목표다.[각주:2] SK도 470조 원 규모의 투자를 내놨다.[각주:3] 전남도 부지사는 팹 1기당 부지 20만 평, 전력 1기가와트, 용수 하루 20만 톤이라는 "가공할 인프라"를 감당할 곳은 해남뿐이라고 자랑했는데[각주:4], 이 문장은 사업의 본질을 가장 정직하게 요약하고 있다. 지역이 내놓는 것은 땅과 전기와 물이다. 임토작공의 목록이 갱신됐을 뿐이다.

 

강원은 어떤가. GS그룹은 동해 북평산단에 아시아 최대라는 2.4기가와트짜리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했다. 건설비 30조, GPU 장비까지 치면 120조 원 규모다. 내년 말 우선 준공한다는 100메가와트만 해도 춘천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의 2.5배다.[각주:5] GS가 강원을 고른 이유도 명료하다. 강원의 전력 자립도는 156퍼센트로 만드는 전기가 쓰는 전기보다 한참 많다.[각주:6] 도지사는 추진단 첫 회의에서 기업의 요구에 맞춰 인허가를 최대한 서두르라고 지시했고, 동해시도 전담 TF를 꾸렸다.

 

3대 메가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강원도에 AI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하자 강원 내에서도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AI 데이터센터가 무엇인진 몰라도 초대형 투자를 받아냈다는 고양감에 언론들과 정치권은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소~중규모의 발전 시설과 데이터센터로의 가속화도 진행되는 모양새다. 소양강댐은 수열에너지 클러스터라는 이름으로 초거대 데이터센터를 모시기 위한 준비를 재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다.[각주:7] 여기에 더해 소양강댐 상부에는 태양광 패널을 2천억원 규모의 태양광 패널을 띄어 추가 발전을 준비하겠다고 한다.[각주:8] 이미 춘천 내부에는 소규모 데이터센터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삼성 등이 AI 데이터센터를 당장 8월부터 착공하여 증설하겠다며 나서고 있다.[각주:9]

3대 메가프로젝트의 주요 내용. 출처: 연합뉴스


임토작공의 나라가 된 2026년 대한민국

메가프로젝트와 데이터센터 유치를 비판한다면 항상 "투자 유치인데 뭐가 문제냐"는 반문이 돌아온다. 맞는 말이다. 수백조 원이 지역에 온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나. 그런데 공납도 겉으로는 그러했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부담과 편익이 나뉘는 방식이다. 하나씩 대조해 보자.

 

첫째, 공납이 호 단위 과세였다면 메가프로젝트는 지역 단위의 현물 상납이다. 지역이 내놓는 것은 전부 현물이다. 토지, 전력, 용수, 경관, 그리고 송전탑과 변전소를 견뎌야 하는 주민의 일상이다. 반면 데이터센터가 만들어내는 것, 그러니까 연산과 그 위에서 돌아가는 서비스의 부가가치는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는 다른 곳의 경제활동을 떠받치는 후방 인프라이기에 부지와 전력을 댄 지역에는 정작 남는 게 별로 없다. 보통의 데이터센터 한 곳이 상시 고용하는 인원은 스무 명에서 쉰 명 남짓이고, 국내 대형 시설로 꼽히는 강원의 데이터센터조차 상주 인력은 200여 명 선이다. 고양시의회 조사에서는 데이터센터 세 곳의 연간 세수 기여가 8억 원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각주:10] 반면 데이터센터가 지어진 지역은 전력과 용수의 상시적인 불안·부족에 더해 엄청난 열섬 효과와 가스 터빈, 디젤 발전기 소음으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공납의 역을 지다 못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조선시대 지역민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둘째, '산골에 전복을 내'라던 불합리는 비용의 전가로 되살아난다. 데이터센터가 한꺼번에 끌어 쓰는 전력은 송전망에 부담을 얹는데, 그 보강 비용은 데이터센터의 운영주체가 아니라 전기요금을 내는 모든 사람에게 나뉘어 전가된다. 냉각수도 만만치 않다. 투자 계획이 발표된 상위 열 개 데이터센터의 하루 용수 사용량 전망치는 12만 톤, 무려 64만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라는 분석이 있다.[각주:11] 자기 고을에서 나지도 않는 진상품을 마련하느라 빚을 지던 농민처럼, 지역은 자기가 쓰지도 않을 연산을 위해 물과 전기와 계통의 안정을 내놓는다.

AI 데이터센터의 전기·물 사용량 추정치. 출처: 아시아투데이

 

셋째, 방납의 자리도 비어 있지 않다. 공납의 비효율에 기생한 것이 방납업자와 아전이었다면, 지금은 부지 브로커와 특수목적법인과 인허가 컨설팅이 그 자리에 있다. 실제로 해남에서는 'AI 슈퍼클러스터'를 내세운 민간 사업의 주관사 대표가 파산을 신청하면서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각주:12] AI 데이터센터에 환호하는 자본과 정치권을 보고 주민들은 그저 믿음만으로 선전 문구를 믿는다. 아니, 사실은 이거라도 아니면 방법이 없다라는 지방소멸의 이데올로기로 주민들을 협박하고, 주민들은 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수 없게만든 것 뿐이다. 유치라는 이름 아래 정확한 이익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주민들은 알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씁쓸한 대목은 '진상 경쟁'이다. 조선의 수령들은 승진을 위해 공안에 없는 별공까지 얹어 바쳤다. 오늘의 단체장들은 유치 실적을 치적 삼아 인허가를 앞다퉈 서두른다. 중앙의 폭주를 견제해야 할 지역 정치가 오히려 지역의 산물들을 경쟁적으로 중앙에 바치는 것이다. 제도는 이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은 인허가 원스톱에 타임아웃제까지 도입하고 비수도권 데이터센터의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면제하고 있데, 이 과정에서 주민 의견수렴은 임의규정으로 남겼다.[각주:13] 짓기는 쉬워졌고, 그 땅의 진짜 주인들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어졌다.

 

강원도 사람들에게 이 구조는 낯설지 않다. 소양강댐이 그랬기 때문이다. 수만 명의 삶터를 가라앉혀 만든 전기와 물은 수도권의 성장을 떠받쳤고, 지역에 남은 것은 사시사철 끼는 안개와 규제·희생의 서사뿐이었다. 그 뒤로도 강원은 수도권에 석탄을, 시멘트를, 전기를, 물을, 경관을 내놓는 자원의 땅이 되었다. 전력 자립도 156%라는 숫자는 강원도민들에게 있어 자부심의 지표가 아니라, 이 땅이 얼마나 오래 남을 위한 발전기를 돌려왔는지의 기록일 따름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소양강댐의 냉수로 서버를 식히겠다고 한다. 수몰의 부산물이 반세기를 돌아 '입지 경쟁력'으로 다시 호출되는 것이다. 산물의 품목이 곡식에서 전자로 바뀌었을 뿐, 그 땅의 산물을 바치라는 '임토작공'의 방향은 그대로다. 우상호 도지사는 얼마 전 도민 타운홀 미팅에서 2030~4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해야 하는 동해안 화력발전소들을 목재(바이오매스) 발전소로 전환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각주:14] 전기가 넘쳐난다는 자부심으로 기꺼이 AI 데이터센터라는 공납을 바치겠다고 강원도 관찰사가 나서며, 시대에 맞지도 않는 목재 발전소로의 전환을 꺼내든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 따위는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는다. 지방이 바치고, 중앙이, 이제는 자본이 거두어가는 시대가 왔다.

춘천 소양강댐에 건설 예정인 '수열에너지 클러스터'. 출처: 연합뉴스


현대판 대동법이 필요하다

이 현대판 방납의 문제를 해결할 '데이터센터의 대동법'은 무엇인가. 앞서 살펴봤듯이 대동법의 원리는 두 가지였다. 부담 능력이 있는 쪽에 과세하는 것, 그리고 현물 상납을 투명한 거래로 바꿔 중간의 먹이사슬을 끊는 것. 이것을 오늘날의 언어로 번역한다면 무엇이 될까.

 

우선 '토지 1결당 쌀 12두'라는 관점에서, 수혜자 부담을 이야기해야 한다. 부담은 토지와 전력과 물을 내주는 지역이 지는데 세금은 본사 소재지가 걷는 지금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맹아는 이미 존재한다. 전남 해남군은 데이터센터가 만드는 부를 지역으로 되돌리는 '데이터세' 도입을 공언했다.[각주:15] 미국의 버니 샌더스는 이보다 더 과감하게 AI 기업의 지분 절반을 공공이 소유하고 이익을 전 국민 배당으로 나누자 주장한다.[각주:16] 광해군의 경기 선혜법이 그러했듯이, 한 곳의 실험이 전국의 제도가 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개별 지자체의 협상력에 맡겨질 수 없다. 조직화된 운동과 이에 이어지는 입법으로, 더 나아가 강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한편 '선혜청과 공인'의 자리에는 투명한 계약이 온다. 송전망 보강 비용을 전 국민의 요금에 녹이는 대신 대형 수요자에게 물리는 것, 특별법이 임의규정으로 버린 주민 동의를 의무로 되돌리는 것, 전력과 용수 사용량을 공개하고 지역 환원 협정을 인허가의 전제로 삼는 것이다. 짜고 치는 판을 걷어내고 값을 제대로 매기자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곧 대동법의 정신이다. 대동법이 시행되는 데에는 백 년이 걸렸다. 그 백 년 동안 방납의 빚에 무너진 농민이 얼마였을지 생각하면, '좋은 제도는 언젠가 이긴다'는 낙관은 한가한 소리다. 좋은 제도는 그것을 관철할 세력이 만들어졌을 때만 이긴다. 김육이라는 한 정치인의 신념이 아니라, 그 신념을 받아 안은 정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AI 주권 국부펀드'를 주장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출처: X 버니 샌더스 @SenSanders

 

지금 데이터센터 담론장에는 두 목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리고 있다. '국가 경쟁력을 위한 속도전'이라는 중앙의 목소리와, '우리 지역에 달라'는 지방의 목소리. 둘은 다투는 것 같지만 실은 같은 논리 위에서 움직인다. 빠진 것은 세 번째 목소리다. 바치는 조건을 묻는 목소리, 조공의 문법을 거부하고 계약의 문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 목소리를 조직하는 것이 바로 지역 진보정치의 일이다. 데이터센터를 막자는 게 아니다. AI의 몸이 어딘가에는 놓여야 한다면, 그 땅의 사람들이 구경꾼도 진상꾼도 아닌 계약 당사자가 되게 하자는 것이다.

 

18.4기가와트의 청사진이 완성된다는 2035년, 우리는 어떤 장부를 들고 있을까. 그 답은 인허가 도장이 찍히기 전에, 협정문의 문장이 확정되기 전에 정해진다. 조선의 농민에게 대동법이 가닿기까지는 백 년이 걸렸지만, 우리에게는 그만한 시간이 없다. 다행히 그들에게 없던 무기가 우리에게는 있다. 투표권과 조직, 그리고 기록. 이 임토작공의 나라에 대동법을 세워낼 수 있는지는, 우리가 이 무기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달렸다.

 


최상희

현 정의당 강원도당 사무처장,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

강원도 춘천에서 지역운동, 지역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


각주

  1. 산업통상부 보도자료,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 개최 https://www.motir.go.kr/kor/article/ATCL3f49a5a8c/171974/view [본문으로]
  2. 파이낸셜뉴스, 삼성, 호남 425조 투자로 반도체·AI데이터센터·에너지 육성(종합) https://www.fnnews.com/news/202606301701358707 [본문으로]
  3. 디지털데일리, "용인 다음은 호남"… 정부·삼성·SK, 서남권에 '896조' 반도체 메가 영토 연다 https://www.ddaily.co.kr/page/view/2026063016351435949 [본문으로]
  4. 뉴스1,  이재용·최태원, 호남 반도체 투자계획 직접 발표 유력…후보지 3곳은? https://www.news1.kr/amp/local/gwangju-jeonnam/6206625 [본문으로]
  5. 강원일보, [단독] '메가프로젝트 GS AI데이터센터' 내년 말 100MW부터 준공 https://kwnews.co.kr/article/20260702501057  [본문으로]
  6. 녹색경제신문, GS, 동해 2.4GW AI데이터센터 낙점…"메가프로젝트 1호 완공" 노린다 https://greened.kr/news/articleView.html?idxno=344212 [본문으로]
  7. 강원일보, 강원 수열에너지 클러스터 '초거대 데이터센터' 모셔라…유치 전략 수정 https://v.daum.net/v/20251201000318176 [본문으로]
  8. 한국경제, 춘천 소양강댐 호수에 초대형 태양광 띄운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70834121 [본문으로]
  9. 디일렉(THE ELEC), 삼성SDS-삼성물산, 춘천에 신규 AIDC 건립 추진 https://www.thelec.kr/news/articleView.html?idxno=59103 [본문으로]
  10. 경기일보, "세수 고작 8억인데 10곳"… 고양시의회, 데이터센터 타당성 맹공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1110580323  [본문으로]
  11. 경남도민일보, 말만 앞선 'AI 데이터센터 유치'…전력·용수 대책 제시해야 [6.3 쟁점 분석] https://v.daum.net/v/20260527161502161 [본문으로]
  12. AI타임스, 'AI 슈퍼클러스터' 앞날은?…사업 주관사 대표 '파산신청' 도민 우려 커져 https://www.a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0197 [본문으로]
  13. 비즈한국,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국회 통과…'규제 없는 진흥' 괜찮을까 https://www.bizhankook.com/bk/article/32198 [본문으로]
  14. 우상호 "AI데이터센터 속도가 경쟁력", 강원도민일보, https://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2059841 [본문으로]
  15. 시사포커스, 해남군, '데이터세 도입' 정책 포럼 6월 개최…지역 상생 모델 모색 https://www.sisa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8118 [본문으로]
  16. "AI 기업 절반의 수익은 국민 것"…샌더스, 7조달러 국부펀드 추진, 아주경제, https://www.ajunews.com/view/20260618165312356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