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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 소식/성명·논평

피 묻은 택배 앞에서조차 노동자성은 여전히 없나 - 故 서광석 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며

by Domoleft 2026. 4. 22.

[전환 논평]

피 묻은 택배 앞에서조차 노동자성은 여전히 없나 - 故 서광석 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며


故 서광석 화물연대 전남지역본부 광양컨테이너지회장의 죽음으로부터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많은 언론이 서광석 지회장의 죽음을 '사고사'로 묘사하지만, 고인의 죽음은 화물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업무지시와 착취를 일삼으면서도 원청으로서의 교섭 책임을 회피하며 대체인력을 투입하여 생존권 말살을 꾀한 BGF리테일과 이에 동조하여 폭력진압을 일삼은 경찰과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명백한 타살이다. 그러나 한 노동자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조차 노동부는 여전히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며 상황의 근본적 해결을 막아서고 있다.

작년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은 지난 3월부터 그 시행에 들어갔다. 사업주의 법적 범위를 확장하여 원청의 직접교섭을 가능케 한 노란봉투법의 시행 이후 수많은 하청 및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과의 직접교섭을 쟁취해내고 있다. 그러나 화물노동자로 대표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법 바깥의 노동자로서 원청의 명백한 업무지시와 통제를 받으면서도 그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성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중 살해당한 고인의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폭력 시위', '노란봉투법 폐지'를 운운하며 상황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의 행태는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대체입법을 통해 노란봉투법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할 정부조차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여전히 마땅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부는 지난 21일 "이번 사안은 노란봉투법상 원·하청 교섭 문제를 넘어선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일견 노란봉투법에 책임을 돌리는 보수진영을 겨냥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여전히 고인이 생전 바라 왔던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을 거부한다는 입장에 다름없다.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의 노동권 지수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성의 인정과 확대는 단순히 교섭대상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곧 사회안전망에 들어설 수 있는 시민성의 확대를 의미하며 헌법에 명시된 보편적 권리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시민들에 대한 사회의 책임 확대를 뜻한다. 과거 민주노총 위원장과 진보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를 역임했던 김영훈 노동부장관이 이 의의를 모른다면 무능이요,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의 자신에 대한 부정이자 '노동존중 사회'를 약속했던 정부의 노동부 장관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한 회피일 뿐이다.

22일 BGF리테일 측은 화물연대와의 단일교섭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뒤늦게 밝혔다. 택배에 묻은 노동자의 피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나니 이제서야 닦아내겠다는 BGF리테일이, 그럼에도 서광석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결코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한편 교섭의 성사에도 불구하고 화물노동자들과 모든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마땅히 누려야만 할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한 고인이 바꿔내고자 했던 본질적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

 

정부와 노동부는 책임회피를 멈추고 즉각 화물노동자들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모든 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동자성의 확대와 사각지대 제거를 위한 대체입법을 진행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고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고 또 다른 노동자의 죽음을 막아낼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임을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다시금 떠올릴 수 있길 바라며, 화물노동자 故 서광석 동지의 명복을 빈다.

 


2026년 4월 22일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