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조국이 불러온 것들, 조국이 남긴 것들
부패사범 조국이 수감 8개월 만에 광복절 특사로 사면되었다. 그러나 '진보'를 자처하던 조국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위선과 모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국 사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진보는 어떤 시각으로 조국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2025년 광복절 특별사면의 대상자가 발표되기 몇 주 전부터 모든 언론의 정치면 헤드라인을 연일 장식했던 뉴스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면 여부였다. 다시 불거진 논쟁과 논란 속에서도 결국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번째 사면 대상으로 조국을 선택했고, 그는 광복절이 되자마자 지지자들의 환호성 속에 서울구치소 정문을 걸어나왔다. 조국은 수감 8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그러나 조국으로 인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수많은 모순과 내홍들로부터 우리는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조국에 대한 글을 <도모> 지면에 싣게 되기까지는 편집국 내에서도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고 필자는 본래 글을 싣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조국 사면 자체에 대한 이견이나 논쟁은 아니었다. 극성 팬덤, 즉 '조국수호대' 내지 '조국사랑단'의 정보공해로 인해 조국이라는 존재는 이미 그 자체로 사회적 낭비가 되었으며 사면에 반대하는 논지의 좋은 글 역시 이미 많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정치·사회운동을 다루는 웹진으로서 한국 사회를 또 한 번 뒤흔든 조국 사면에 대한 명료한 입장을 지면에 싣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조국 사면이 도대체 어떤 점에서 문제인지 되짚고 이를 바라보는 진보정치의 시각은 어떠해야 하는지 짧게나마 다뤄 보고자 한다.
사면권의 함정에 빠진 한국 정치와 민주당
정권이 바뀌고 나서 첫 번째 광복절 혹은 신년이 찾아올 때마다, '이번에는 누가 대통령 특별사면의 대상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모든 언론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이슈가 되어 왔다. 정치인들의 사면이 이루어질 때에는 항상 논란이 따라붙기 마련이지만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해지곤 한다. 그러나 조국의 사면과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이전과 조금은 다른 듯 하다. 지금껏 수많은 정치인 사면이 있어 왔음에도 왜 조국 사면은 유독 논란이 되어 우리를 괴롭게 할까?
조국 사면의 사회적 쟁점화 이유로는 물론 먼저 조국이라는 개인이 가진 '스타성'을 빼놓을 수 없다. 조국의 지지자들은 왜 조국만 유독 더 욕을 먹냐며 분노를 표하지만, 조국은 과거부터 '인플루언서'로서 일반적 교수들보다 훨씬 높은 인지도를 보유해 왔고 이를 이용해서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사람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아이돌의 연애에 대해 죽일 듯이 달려드는 사람들의 나라에서 웬만한 아이돌 이상의 인기를 자랑했고, 트위터에 올리는 글 하나하나가 주목받던 사람이 조국이다. 그런 SNS 스타가 부패사범이 되어 '정의', '공정'을 주장하던 본인의 트윗들과 완전히 상반된 행적을 보였고 이제는 사면까지 받는데 주목을 받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에 더해 조국의 극성 팬덤이 꾸준히 '어그로'를 끌어 오면서 조국 사면은 더욱 큰 이슈가 되어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인플루언서 조국의 스타성과 자기모순을 한 꺼풀 벗기고 기저의 제도적 모순을 직시한다면, 우리는 조국 사면이 대통령 사면권이라는 제도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드러낸 사건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애초에 사면권이라는 것은 무척 이상한 제도다. 3심에 걸쳐 범죄 혐의가 인정된 범죄자의 형벌을 대통령 마음대로 깎아 줄 수 있고, 제대로 된 제한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쓰임에 따라 법치주의의 전제 자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제도다. 실제로 정치인과 경제사범들의 사면은 매번 논란이 되어 왔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위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선되며 사면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실제로 임기 초에는 강력범죄자 및 정치·경제인 등 부패범죄자의 사면을 자제하기도 했다. 물론 그 약속은 문재인의 수많은 약속들이 그랬던 것처럼 임기 후반부에 폐기되었고, 박근혜 사면이라는 용두사미식의 결말로 끝이 났다. 1하지만 그런 논란들과 과정들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사면권에 대한 큰 개혁이 없었던 이유는, 사면권이 헌법적 권한이기에 개혁이 어렵다는 점도 있지만 어쨌든 대통령의 사면권이 형사사법절차의 미비점을 보완하며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는 수단으로서 현실적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치권은 사면권을 행사하면서도 이것이 불안정한 제도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사면권의 행사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조심성을 갖추는 태도가 일반적이었고 또 바람직한 것으로 자리잡아 왔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 이후로 그러한 조심성은 사라졌다. 모든 제도의 한계점을 최대한으로 '해킹'하여 활용하는 윤석열의 정치에서 사면권 역시 그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조국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고 강서구청장직을 상실하였던 김태우를 2개월만에 초고속으로 사면해 준 뒤 본인의 직 상실로 열린 보궐선거에 공천해 준 사건이 대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2그리고 조국의 사면은 이러한 사면권의 자의적 활용이 특정 정권만의 문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일이었다.
조국과 정경심은 표창장 위조와 주식 차명거래 등의 범죄를 저지른 전형적인 부패사범이었다. 정치적인 성격의 범죄가 아닌 개인적인 비리에 대한 사면은 일반적으로 형 집행으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이후 어느 정도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준 뒤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조국은 형기의 1/3 가량만을 겨우 넘긴 상태이며 여전히 자기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더해 조국의 팬덤은 사건에 대한 적극적인 왜곡과 사법절차에 대한 공격을 진행하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사면은 조국의 무죄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사법부에 대한 공격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것에 불과하다. 민주당 지지자 외의 사람들이 바라보기에 조국 사면은 결국 사면권이 선거에서 이긴 자가 자기 편의 죄를 없애 줄 수 있는 권한이라는 것을 폭로했을 뿐이었다.
이기면 자기 편의 죄를 마음껏 사해 줄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죄가 사해지면 안 되는 다른 편의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방법은 더욱 더 강한 형벌뿐이다. 최근 윤석열에게 사형이라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형벌을 가하자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의 사면이라는 전례처럼 윤석열 역시 사면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면권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고 오남용을 제한하는 제도적 개혁뿐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조국을 사면시켜야 했기에 이러한 주장을 하지 않았으며, 조국을 사면시켰기에 논의를 주도할 명분 역시 사라졌다. 결국 사면권에 대한 제도개혁 논의는 다시 한 번 심연으로 빨려들어갔다.
"조국은 죄가 없다"는 신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민주당 및 조국 지지자들의 주장이 해가 지날 때마다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다는 것에도 우리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조국에 대한 민주당 지지층의 주된 여론이 조국 사태 당시 "조국은 죄가 있지만 사소한 죄로 검찰개혁의 기회를 놓칠 순 없다"에서 최근 들어서는 "조국은 죄가 없다"로 변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조국의 지지자들은 조국의 잘못은 도덕적인 일부에 국한될 뿐 형사적·법적인 잘못이라 볼 수 없고, 검찰에 의해 조작된 증거로 수감된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사면은 당연히 정당화될 수 있다(물론 그 주장에 자신이 있고 증거조작의 확증이 존재한다면 사면이 아니라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에 근거란 없다. 검찰의 조작된 증거로만 기소된 것이라면, 조국의 변호사가 바보가 아닌 이상 3심에 걸쳐 유죄가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민의 표창장 위조 사건이 대표적이다. 조작된 증언으로 유죄가 인정되었다고 주장하지만, 표창장 위조에 사용된 재료들이 정경심의 컴퓨터에서 발견되고 기간과 일정이 맞지 않는 등 수많은 증거들이 존재했다. 문제는 한국 국민들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긴다는 점이다. 2023년 영국 싱크탱크인 레가툼(Legatum)의 조사 결과 한국의 사법부 신뢰도는 조사대상 167개국 중 155위를 기록했다. 정치인 신뢰도의 114위보다도 한참 낮은, 세계 최하위권의 신뢰도다. 3
결국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그리고 조국은 대중의 사법절차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것을 이용해 형사사법절차와 사법부를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고, 조국에 대한 대통령의 사면은 그 시도에 힘을 실어 준 일이다. 이미 민주당류의 세계관 안에서 만들어지고 확고히 자리잡은 '신화'가 된 조국의 피해자 서사는 대중을 이용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형사사법절차의 신뢰도를 의도적으로 더욱 훼손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양당이 지속적으로 정치적 목표를 위해 사법절차를 이용하고 결과를 자기 뜻대로 왜곡하는 일이 이어지며 사법절차에 대한 대중적 신뢰도와 수용도는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형사사법적 논리로 볼 때도 조국과 그 지지자들의 말에는 모순이 가득하지만, 한편 형사적 문제에 매몰되어 판결문 해석에 빠져 있을 수 없는 진보정치의 입장에서는 다시 한 번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조국과 그 지지자들의 가장 큰 해악은 개혁주의자들에게 제도 해킹에 대한 문제의식을 희석시키고, 대중에게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의 근거를 제공했다는 것에 있다. 유죄로 인정된 표창장 위조 등의 행위뿐 아니라 사법 절차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자녀 입시를 위한 수많은 꼼수들 역시 잘못된 행위였다. 하지만 형사재판이 문제의 핵심이 되면서, 지지자들이 조국의 행위에 대해 "누구나 하는 행위였다" "어쨌든 범죄는 아니었다"며 방어하는 사이 그 문제들은 정말 별 문제가 아닌 행위처럼 인식되고 어느 새 부끄러움을 잊은 일부 사람들로부터는 "자기 자식을 위한 일인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같은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조국 사태는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이 왜 진보로 살아야 하는가'를 무엇보다 잘 보여 준 장면이었다. 오늘날에는 쉬이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조국은 청년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였다. 당시만 해도 최신 트렌드였던 SNS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진보적 가치들을 쉽게 전달하는 모습은 청년층에게 폭넓은 호소력을 가졌다. 그러나 조국 사태라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조국의 대응을 보며, 조국의 말을 통해 진보를 지지하게 되었던 수많은 청년들이 느꼈던 것은 배신감이었다. 조국은 연일 '2030 남성이 극우화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가 저격하는 '이대남'과 '삼대남' 중 적지 않은 수는 십여 년 전 조국 자신에게 열광했던 사람들이었다. 2030세대가 정말로 '극우화'되었다면 조국 본인이 그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 중 하나임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4
조국이 진보에 남긴 것
진보를 말하는 것은 변화를 꾀하는 것으로서의 운동이고, 운동은 사람을 바라보며 조직하고, 설득하는 것이다. 운동가의 책임윤리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운동을 말하는 사람이 자기 언행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당연히 사람들은 설득되지 않는다. 즉, 스스로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자기가 말한 내용을 전부 지키며 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말한 것과 정반대로 살지는 말아야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행보는 자신뿐 아니라 운동 전체의 말의 힘을 떨어뜨린다. 운동을 자기 커리어의 도구로 이용하거나 금전적 이익을 꾀하는 행위는 대중으로 하여금 운동하는 사람들을 의심하게 만든다. 조국 사태는 바로 이 윤리들이 약해져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건이었고, 또한 그 윤리가 정면으로 파괴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도출되는지를 처절하게 보여 준 사건이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28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조국혁신당의 호남 독자후보 전술에 대해 "심상정의 길을 가지 말라"며 비판했고, 이에 조국은 "심상정의 길을 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갈 생각이 없다"는 말로 응수했다. 자신의 말과 달리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길을 걸어온 조국이지만, 최소한 이 말만은 분명한 사실이 담겨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의 진보정당은 지난 20년 간 수많은 문제와 자기모순을 대중에게 드러내며 지지를 잃어 왔지만, 최소한 '조국의 길'과 같은 완전한 위선의 길을 선택한 적은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5
진보가 되는 것은 쉽지만 진보로 사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 있다. 세상의 질서에 동의하거나 영합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는 진보주의자들 스스로가 진보적으로 살지 않는다면, 대중은 진보를 지지할 이유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의 정치행위에도 이는 똑같이 적용된다. '추해진 옛 친구'들이 지금 진보정치의 타산지석이 되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김현근 (목성돼지)
전환 회원, 도모 기관지편집위원회 편집위원.
어쩌면? 전 청소년활동가이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급진적 정치를 고민하는 말 많은 성소수자.
사회주의를 목적하고, 귀여움을 희망함.
각주
- SBS, "5대 부패 범죄에는 사면권 제한" 文 공약 어겼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581387 [본문으로]
- 한겨레, 특별사면 김태우 “정치적 판결” 대법원 판단 부정…구청장 후보 등록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107839.html [본문으로]
- 모닝경제, 한국 사법시스템 신뢰도, 전세계 167개 국가 중 155위 '심각' https://www.m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51# [본문으로]
- 연합뉴스, "2030男 극우" 조국, SNS에 '서울 잘사는 청년은 극우' 글 공유 https://www.yna.co.kr/view/AKR20250830044700001?input=1195m [본문으로]
- 매일경제, 박지원 “심상정 길 가지 말라” 조국 “그 길 가본 적도 없고 갈 일 없다”https://www.mk.co.kr/news/politics/11406753 [본문으로]
'정치 > 정치 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중에'와 '다 했죠?'가 낳은 '인류 지속가능론': 김민석 총리 후보자의 차별금지법 망언에 부쳐 (3) | 2025.06.25 |
---|---|
정치인 이준석은 '배나사'를 기억하는가? (0) | 2025.06.02 |
이준석의, 그리고 혐오정치의 정치적 파산을 위해 (0) | 2025.05.30 |
윤석열, 그 다음에는? (1) | 2025.04.08 |
되살아난 망령: 극우 폭력단체의 어제와 오늘 (0) | 2025.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