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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 일반

'나중에'와 '다 했죠?'가 낳은 '인류 지속가능론': 김민석 총리 후보자의 차별금지법 망언에 부쳐

by Domoleft 2025. 6. 25.

[정치] '나중에'와 '다 했죠?'가 낳은 '인류 지속가능론': 김민석 총리 후보자의 차별금지법 망언에 부쳐

이재명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자인 김민석 의원이 "동성애를 모든 인간이 택했을 때 인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과거 혐오발언으로 도마에 올랐다. '지속 불가능한 이들'의 자리는 결국 새로운 정부에도 없는가? 21대 국회 차별금지법 대표발의자 장혜영 의원실에서 일했던 장태린 민주노동당 전국위원의 김민석 후보자 비판을 게재한다.


2020년 여름, 나와 차별금지법

21대 국회 개원 후 진행된 정의당(현 민주노동당)의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 출처: 민중의소리

 

2020년, 당시 원내 3당이던 정의당(현 민주노동당)은 21대 국회 5대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선정했다. 21대 국회 개원 후 한 달만인 2020년 6월 29일, 대표발의자 장혜영 의원을 비롯한 10명 의원의 동의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 2013년 이후 7년만의 재발의였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정부안으로 제안된 것을 시작으로, 2025년 현재까지 차별금지법안은 의원입법 10차례, 정부입법 1차례 등 국회에 총 11번 제안됐다. 그러나 임기 만료 폐기와 발의 의원들의 자진 철회가 반복되며 상임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단 한 번도 넘지 못했다.

 

2020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 당시 나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의 보좌진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캠페인의 여정에 함께했다. 언론 인터뷰, 토론회, 기자회견 등 다양한 기획으로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애썼다. 동시에 끊임없는 민원전화와 쏟아지는 팩스, 메일, 우편물, 댓글들과 함께였던 그 해 여름은 내게 유독 뜨거웠던 계절로 기억된다. 당론으로 결정된 사항이었기에 개원 전부터 차별금지법 발의 작업을 시작했었고, 제정 실패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보좌진들 모두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 세력의 의견 개진은 생각보다 더 조직적이고, 강했다.

 

"차별금지법으로 동성애 조장하고, 그걸 시작으로 기계성애, 소아성애, 수간까지 합법화하려는 것 아니에요? 애들 키우는 부모로서 절대 용납 못 합니다.", "동성애를 죄라고 말조차 못 하게 막는 법이라니,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 아닙니까? 이게 자유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법이라고 생각해요?", "아가씨, 동성애 하면 지옥불에 떨어져.", "동성애가 그렇게 좋으면 너희 엄마랑도 성관계하냐?", "여장남자가 여자 목욕탕, 여자 화장실에 들어와도 처벌할 수 없게 만드는 법이라면서요? 같은 여성으로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국민들 입막음해서 좌파 독재 하려는 법인 걸 모르는 줄 아세요?"

21대 국회 당시 장혜영 의원실에 난입한 보수단체를 다룬 JTBC 뉴스. 출처: JTBC

 

원색적인 혐오부터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짜뉴스, 음모론,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나라 걱정, 욕설과 반말, 성희롱까지. '반대 의견 전달'이라는 고상한 이름 아래 일방적으로 전해지는 혐오 발언들을 견디기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의 역사를 더 이상 '실패의 역사'로 남겨둘 수는 없었다. 그 벽을 넘는 것이 정치, 그리고 진보정치가 해야 할 마땅한 역할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 양당의 의도적인 회피로 무장한 그 벽은 너무나 공고했다. 2024년 5월 29일, 21대 국회의 임기가 끝나며 차별금지법은 또 다시 임기 만료 폐기됐다.


'빛의 혁명'과 '광장 정신', 그곳에 차별금지법의 자리는 없었다

그렇게 22대 국회에서 진보정치가 사라진 지 불과 반 년만에, 다시 정치의 공간이 열리는 듯했다. 지난 12월 3일 이후 초유의 대통령 내란 사태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온 몸으로 차별금지와 평등의 중요성을 외쳤다. 정치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응원봉을 들고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광장 정신'을 상찬했다. 이번이야말로 차별금지법 제정의 적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자 반차별과 평등이라는 키워드는 사라졌다. 21대 대선에 나선 후보들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건 것은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가 유일했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5월 18일 열린 제21대 대선 1차 TV토론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견해를 묻는 권영국 후보의 질문에 "방향은 맞다고 보지만, 복잡한 현안이 얽혀 있어 이걸로 새롭게 논쟁, 갈등이 심화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렵다"며 답변을 회피했다.[각주:1] 한편 극우 개신교와 영합한 주류 보수정당의 음모론적 반대는 더욱 원색적이 되어 갔다. 김문수 전 국민의힘 후보는 대선 후보 방송 연설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조두순이 초등학교 수위를 한다고 해도 막으면 차별이 될 수 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에 특혜를 준다면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역차별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며 혐오 선동에 앞장섰다.

제21대 대선 TV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차별금지법 관련 질의를 던지는 권영국 후보. 출처: YTN

 

보수 양당뿐 아니라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도 정치의 역할을 회피해 온 것은 마찬가지다. 김재연 전 진보당 대선 예비후보는 "탄핵 광장은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민주주의의 광장이었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함과 동시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했다. 그러나 김재연 후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란세력 청산을 위해서는 압도적 승리가 필요하다"며 돌연 이재명 후보와의 단일화를 선언했다. 진보정당이 주장해 온 모든 의제는 정권교체라는 '대의' 아래 부차적인 문제가 됐다. 선거 기간 내내, 이재명 후보의 입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이야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차별, 혐오 없는 세상을 염원했던 시민들이 안겨준 '압도적 승리'에도 변한 것은 없었다. 지난 16일, 이재명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민석 의원이 지난 2023년 한 기독교 계열 단체 행사에 참석하여 "동성애를 모든 인간이 택했을 때 인류는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종교적 입장에서 비판을 봉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옳지 못하다"고 발언한 바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각주:2]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출사표를 무색하게 만드는 망언이었다.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출처: 연합뉴스

 

김 후보자는 지난 17일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도 "차별금지법 입법을 둘러싸고 보다 많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통령과 민주당, 저의 공통된 입장"이라 강조하며 쐐기를 박았다. "차별금지법을 절박하게 요구하는 목소리와 개인적 신념에 기초해 차별금지법을 비판할 때 자신이 처벌을 받는 것 아닌가 하는 절박한 반대 목소리도 본질적인 헌법적 목소리"라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반대 논리에 힘을 싣기도 했다. 지금까지 11차례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에는 차별 행위 자체에 대한 형사 처벌 조항이 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각주:3] 총리 후보자이자 한때 민주당의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원장이기까지 했던 김민석 후보자가 이 사실을 알았어도 문제, 몰랐어도 문제다.


김민석 후보자, 이제는 정치적 책임을 다하라

지난 6월 24일부터 이 글이 탈고되는 25일 양일간, 김민석 후보의 자격을 검증하는 국회 청문회가 마무리됐다. 야당은 수많은 공세를 제기했지만, 정작 후보의 편향된 종교관에 기반한 동성애 혐오, 차별금지법 반대 문제를 짚는 질문은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진보정당'임을 자처하는 일부 원내정당들 역시 어떤 경로로도 이러한 질의를 전달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진전에 필요한 질문 대신 정파적 다툼만이 난무했다. 심지어 유권자들을 대의해 후보자를 검증해야 할 청문회가 '신앙고백의 시간'으로 전유되기도 했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24일 청문회 현장에서 난데없이 성경을 꺼내 읽으며 "김 후보자는 신실한 기독교 믿음이 있는 분으로 알고 있다"며 "성경 말씀을 붙잡고 힘든 시간을 단단하게 잘 뚫고 오신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김민석 후보자는 이에 대해 사과하거나 종교적 중립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김민석 후보자 청문회에서 성경을 꺼내 읽는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 출처: 국회방송

 

분명히 짚어야 한다. 김민석의 '인류 지속가능론'은 한 정치인 개인의 일탈적 발언이 아니다. 문재인의 '나중에', 이재명의 '다 했죠?' 가 낳은 결과물이다. 집단적 침묵과 암묵적 동조 속, 차별은 계속해서 몸집을 불린다. 생존을 위협받고, 삶의 기반을 잃는 이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김 후보자는 "새로운 정부에 부합하는 새로운 모습의 총리가 되고자 한다"며 "사회적 대화 모델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이미 진척되어 온 사회적 대화를 이어받고 결실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중요할 것이다. 차별금지법만큼이나 긴 시간 동안 광범위한 사회적 공론화의 과정을 거친 정책이 있는가? 여전히 더 많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생각한다면,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수행했어야 할 정치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회피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총리직이 정치 인생의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력투구하겠다"는 김 후보자에게 절박한 마음으로 요구한다. 그 사회적 대화 모델을 만들어 나갈 절호의 기회가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이다. 진정으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할 의지가 있다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당당하게 공론장에 나서는 것이 정치인의 사명이다. '사회적 대화'라는 마법의 단어 뒤에 손쉽게 숨어 온 세월이 20년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공허한 말잔치는 그만두고, 이제는 정치적 책임을 다하시라.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룬 2021년 장혜영 의원실 의정보고서

 


장태린

민주노동당 전국위원. 21대 국회에서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의 공보, 정책비서로 일했다.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다. 말과 글의 힘을 믿는다.


각주

  1. 한겨레, 이재명 "차별금지법 지금은 어렵다...권영국 "영원히 못할 것" https://www.hani.co.kr/arti/politics/election/1198086.html [본문으로]
  2. 경향신문, [단독] 김민석 “모든 인간이 동성애 택하면 인류 지속 못해” 과거 차별금지법 반대 발언 https://www.khan.co.kr/article/202506160600111 [본문으로]
  3. KBS 뉴스, 차별하면 형사처벌 받나요?…‘차별금지법’ Q&A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22155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