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인 이준석은 '배나사'를 기억하는가?
이준석 후보의 성폭력 발언 파동이 연일 논란이다. 현재의 이미지와 달리 과거 취약계층 학생들에 대한 교육봉사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준석, 2025년의 '정치인 이준석'은 2010년의 '교육자 이준석'으로부터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준석과 함께 교육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배나사)'에서 활동했던 조현익의 글을 게재한다.
2025년 5월 27일 있었던 3번째 대통령 선거 후보 TV토론회. 나는 토론회를 틀어놓고 개인 작업을 하느라, 뭔가 쓸데없는 논쟁이 지나갈 것 같으면 그냥 흘려듣고 있었다. 이준석 후보가 권영국 후보(이하 존칭 생략)에게 "이재명 후보의 특이한 대화"에 대해 질문하겠다고 할 때에는 당연히 또 하나의 쓸데없는 이야기겠거니 하고 흘려듣기 시작했다. 그 뒤에 어마어마한 성폭력적 발언이 이어진 것은 그땐 몰랐다가 두세 시간 후에야 알았다.
그 발언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당혹스러움과 모욕감을 느꼈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나의 모욕감은 정치인 이준석에 대한 모욕감이 아니라 '교육자 이준석'에 대한 모욕감이었다. 그는 교육봉사단체인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이하 배나사)'의 대표교사였고(지금도 대표교사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2009년 여름학기부터 2012년 봄학기까지 9학기(2¼년, 비활동기 제외)동안 배나사에서 교사(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이 시기 이준석과 나는 활동으로 자주 마주치고 때로는 같이 일하기도 했다. 수업 때는 경험 많은 동료 교사로서, 단체 운영을 위한 업무에서는 상급자이자 협업의 동료로서. 2년여 간의 보람있는 배나사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준석 정치 활동을 볼 때마다 이런 괴로운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그가 교육봉사를 했다는 것, 그가 배나사에서 보여 줬던 행보는 지금의 정치인 이준석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배나사의 발자취: '교육봉사의 시스템화'
먼저, 배나사가 어떤 조직이길래?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이 내용은 나의 배나사 활동 시기, 약 15년 전의 경험을 기준으로 하니 지금의 운영과는 크게 다를 수 있다. 배나사는 2007년에 활동을 시작하여, 중학교 1~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수학/과학 내신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봉사단체다. 기초단위 지방자치단체를 단위로 교육장을 운영하는데, 2012년 봄학기 기준 배나사는 전국에 6개 교육장(서울 용산, 금천, 마포, 구로 / 대전 유성 / 경기 고양)을 운영했다.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다.
* 1년에 4학기(봄/여름/가을/겨울학기) 단위로 운영된다. 교사는 학기 단위로 활동하며, 학생은 중학교 1~3학년 기간동안 계속 배나사에 등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 자원봉사 교사는 대학교 재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누구나(대다수가 재학 중인 대학생이었다) 지원할 수 있다. 교사는 주 1~2회 수업에 참여하고, 교육 기획/교육장 운영 등을 위한 주 1회 회의에 참여해야 한다. 이 원칙은 대표교사인 이준석에게도 적용되었다.
* 교육 대상인 중학생은 취약계층 학생으로서 자원하거나 지자체 관내 학교의 추천을 통해 섭외했다.
* 봄/가을학기 기준 10주간 주 3회(수학 2회/과학 1회) / 1회 3시간(수업 1시간 + 문제풀이 2시간) 수업을 진행한다. 여름/겨울학기에는 5주간 주 6회 진행한다.
* 수업은 교사 12명 내외(수업 1회당 4명)와 학생 12명 내외로 구성된 학급 단위로 운영한다. 1개 교육장마다 규모에 따라 2~8개 학급을 운영한다.
이준석이 제시한 배나사의 비전은 '교육봉사의 시스템화'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에 참여하도록/교육의 수혜를 받도록 교육장 규모를 확대하고 수준 높은 교육의 질을 유지한다면, 더 큰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연구·기획해야 하고, 학생별 교육상황과 교사별 활동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단체 운영이 필요했다.
이것 역시 배나사는 자원봉사 교사들을 통해 해냈다. 마치 공립학교에서 교사들이 부서(1/2/3학년부, 교무부, 교과연구부, 학생부 등)를 나눠 업무를 보듯, 교사들은 자신의 관심과 적성에 따라 팀별 주 1회 운영회의에 참여하여 논의하고 업무를 배분했다. 이를 통해 배나사는 웬만한 공립학교 못지 않게 교육 운영의 시스템화에 성공했다. 자체 교재/문제집을 제작하고 학사일정을 짰으며, 같은 학생을 맡은 교사끼리 학생의 교육·생활상황을 공유하여 각자의 수업에 참고했다.
단체 운영에 필요한 물질적 자원 확보도 체계화했다. 지자체별 교육장의 운영 자원은 지역별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았고, 전국 단위 배나사 프로그램의 지원은 대기업의 사회공헌사업 지원을 받았다. 예를 들어 서울 용산교육장의 건물 임대와 기물·소모품 관리는 용산구청의 지원을 받았고, 용산교육장 학생들이 문제풀이 시간에 먹을 간식을 용산구 푸드뱅크를 통해 지원받으며, 전국 단위 워크샵(교사들의 교수법 워크샵, 교사·학생 합동 교류 워크샵)은 당시 배나사를 지원하던 대우증권의 사내 연수원에서 진행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배나사는 자원봉사자 및 학생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돈을 들이지 않고 시간만 들이면 충분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물론 이런 시스템화의 비전은 대표교사인 이준석이 늘 강조했던 내용이지만, 이 시스템은 그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그리고 오래 활동한 베테랑 교사들이 함께 노력하여 만든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시스템화된 관계에서 비롯된 평등한 관계
놀라운 점은, 이 '교육봉사의 시스템화' 속에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대한 시스템화도 있다는 점이다. 배나사는 여러 학생과 교사가 교육을 통해 마주하는 공간인 만큼 모든 교사가 학생에게 대하는 태도와 대응에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야 어떤 교사라도 일관된 교육을 할테니까. 그래서 학기 초 신규 교사 오리엔테이션 교육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고, 학기 중 수업시간 때에도 베테랑 선생님들이 신규 선생님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아래는 그 내용 중 일부이다.
* 학생들에게 “부모님/학부모/가족”이라는 표현 대신 “집/보호자”라는 표현을 써주세요. (ex. “보호자 설명회가 있으니 집에 가정통신문을 전달해라”)
- 배나사 학생들 중에는 한부모 가정, 아동양육시설 등에서 지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부모님/학부모/가족”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고, 모든 학생들을 포괄할 수 있는 표현으로 “집/보호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학생들이 좋은 휴대전화나 운동화를 쓰더라도 이상하게 여기지 마세요.
- ‘이 학생은 경제적 사정이 나쁘지 않은가?’ 이렇게 질문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래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따돌림받지 않기 위해 휴대전화와 운동화 만큼은 보호자들이 특별히 챙겨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취약계층 청소년은 통신비 및 단말기에 대한 국가 지원을 통해 적은 부담으로 휴대전화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 교사 사이의 위계를 드러내는 말을 쓰지 말고 서로 “선생님” 호칭으로 부르세요.
- 예를 들어 학생들 앞에서 교사간 나이 차이, 교육장 바깥에서의 관계(ex. 같은 학교의 선후배 사이)를 드러내면 학생들도 그 위계를 알아채고 교사들를 차등적으로 대합니다.
* 학생의 욕설이나 위협 등 윤리적인 잘못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단호히 대처하세요.
- 적절한 제지가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학생이 다른 사람(특히 자기가 ‘만만하게 여기는’ 교사나 학생)에게 잘못된 행동을 계속 할 수 있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나도 저래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단호하게 혼내거나 부드럽게 만류하는 등 교사 각자의 방식에 따라 대처해주세요.
이 내용은 그저 2010년대 초반 배나사라는 교육 현장에서 사용했던 매뉴얼일 뿐이다. 이준석을 비롯한 여러 베테랑 선생님들이 각자의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을 대할 때 필요한 대응과 태도을 대화로 공유했던 것이 구전으로 전해졌던 것이다. 이 매뉴얼은 이준석 혼자 만든 것도 아니고, 선생님들이 어떤 대단한 정치적·윤리적 신념을 가지고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내용을 2025년 지금 정치인 이준석이 보이는 행동과 비교하면 굉장한 위화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2010년대 초반은 인간관계나 조직 공동체 운영에서의 인권, 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보다 한참 부족했던 시대다. 그런 시기에도 이준석을 비롯해서 배나사 선생님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과 (교육장 안) 다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고민했다.
이준석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는 욕을 쓰거나 다른 선생님들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학생들에게 매우 엄했다. 불러 세워서 엄하게 야단치기도 했고, 욕을 안 한 척 회피하는 학생들에게는 (마치 10대 남학생들끼리 서로를 놀리듯) 그 뻔뻔함을 놀리고 다른 교사·학생 사이에 망신을 줘서 다스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준석은 학생들에게 유쾌하지만 한번 걸리면 정말 무서운 선생님으로 통하곤 했다.
'교육자 이준석'의 시스템에는 포함되고, '정치인 이준석'의 시스템에는 배제된 사람들
2010년의 배나사 교사 이준석이 2025년 이준석의 대선후보 3차 TV 토론회를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교육자로서 학생을 상대하듯 했다면, 아마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서바이벌 예능에서 보여 준 모습처럼 짖궂은 말투로 "저 인간 제정신이냐ㅋㅋㅋ"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퍼뜨려서 망신살 뻗치게 하거나. 아니면 "이 나쁜 놈아, 너가 그런 말을 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충격 받고 쓰러진 줄 아냐?"면서 강하게 질타했을 것이다. 2024년 12월 4일 국회의사당 정문을 막은 경찰에게 강하게 한 소리 했던 그 정도의 발성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지도록.
교육자 이준석의 흔적을 보면, 그가 타인에 대한 존중, 인권의 감각이 전혀 없는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감각은 배나사의 모든 속성을 시스템화하는 과정에서 세워진 것이므로 이준석 본인의 본성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2025년의 한국 정치에 '위선이라도 괜찮으니 선을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 정치에는 2025년의 정치인 이준석이 아닌, 2010년대의 교육자 이준석 같은 인물이 차라리 지도자로 더 적합하다 할 것이다.
이준석과 동료 교사들이 마련한 배나사의 시스템화된 교육봉사 체계. 이것은 분명 어마어마한 사회적 기여를 남겼다. 내가 처음 교사가 되었던 2009년 여름의 배나사는 2개 교육장(서울 용산 / 대전 유성)에서 학생 60여 명, 교사 50여 명의 규모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2012년 봄에 이르러서는 6개 교육장에서 학생과 교사를 합쳐 500여 명에 이를 큰 규모로 성장했다. 이 시기는 이명박 행정부 중후반기로, 중고등학교 공교육의 서열화가 진행되고 학교 교육현장에서 방치되는 학생이 많아진다는 우려가 조금씩 나오던 시기다. 이런 시기에 더 많은 중학생들에게 '내가 학교에서, 교육에서 방치되지 않고 있다'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양적인 성장이 전부는 아니었다. 배나사에서 교육받았던 중학생이 대학생이 되어 교사로 참여하는 이른바 '선순환'의 사례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자원봉사자 교사 중에서도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직업적 진로를 (공교육/사교육) 교사, 사회복지사, 소아과 의사 등으로 정한 사례도 많았다. 배나사의 활동이 학생과 교사에게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아, 각자의 삶에 영향을 발휘한 것이다. 그 시절을 같이 활동한 사람들(교사와 학생)은 지금도 '배눴사(배움을 나눴던 사람들)'라는 이름으로 매년 명절마다 연락을 돌려서, 수십 명씩 모여서 친척들처럼 담소를 나누곤 한다. (아, 물론 이준석에게는 연락하지 않는다)
나는 배나사에서의 좋은 경험을 기억하는 유권자로서 이준석에게 물어보고 싶다. '교육자 이준석'은 배나사의 모든 구성원을 시스템화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포괄하는 평등한 관계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 이준석'은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포괄하는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가?
3차 TV토론회에서의 성폭력성 발언 같은 것을 교육자 이준석이 배나사 안에서 할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교육자 이준석은 그의 눈 앞에 있는 (특히 여성인)교사와 학생들이 이 발언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할지, 이것을 충분히 생각했을 사람이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정치인 이준석에게 그런 생각 따위는 없었나 보다. TV 토론회를 시청하고 선거에 참여할 이 나라의 주인(유권자) 중에는, 이준석의 성폭력성 발언을 무방비 상태로 듣고 크게 분노하거나 충격에 빠질 아동·청소년·여성들이 있다. 이준석은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이런 태도라면, 교육자 이준석과 달리 정치인 이준석은 국가 지도자가 되더라도 아동·청소년·여성을 포괄하는 대한민국을 결코 만들지 못할 것이다.
하나의 아이러니로 글을 맺고자 한다. 2010년 즈음 이준석과 함께 교육했던 자원봉사 대학생들은 이제 30대 유권자가 되었고, 2010년 즈음 배나사에서 공부했던 당시의 중학생들은 이제 20~30대 유권자가 되었다.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광장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사람들, 누구보다도 성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바로 이준석과 함께 교육하고 배나사에서 공부했던 그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준석은 이번 대선의 대통령 후보 7인 중 2030 여성과 직접 교류한 경험이 가장 많을 사람일 것이다. 그 교육자 이준석의 경험과 지혜를, 2025년의 정치인 이준석은 단 하나라도 기억하고 있을까?
조현익
‘스튜디오 하프-보틀’이라는 디자인 스튜디오 겸 독립출판사를 운영한다.
정당활동으로는 민주노동당 서울 마포구지역위원회의 운영위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정치 > 정치 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준석의, 그리고 혐오정치의 정치적 파산을 위해 (0) | 2025.05.30 |
---|---|
윤석열, 그 다음에는? (1) | 2025.04.08 |
되살아난 망령: 극우 폭력단체의 어제와 오늘 (0) | 2025.01.13 |
사라진 공론장, 그리고 '조용한 후퇴': 서울시교육감 선거 결과에 기뻐할 수 없는 이유 (0) | 2024.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