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한국 사회운동의 이해와 대응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과 미국의 동참으로 인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휴전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중동 전역에 드리운 전쟁위기는 여전하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대(對)이란 정책이 갖는 뿌리 깊은 모순과 위선을 바라보며, 한국의 진보적 정치·사회운동은 이란의 전쟁위기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025년 6월 13일, 이스라엘은 이란 전역을 기습적으로 공습했다. 이후 보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세계는 두려움에 떨며 중동 전황을 지켜보아야 했다. 이스라엘과 이란 양국 간에는 미사일과 군사 드론이 오고 가며 수백 명의 사망자와 수천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22일 미국이 이란을 직접 폭격하자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이후 이스라엘과 이란이 휴전에 합의하며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휴전협정 이후 이스라엘이 '이란이 먼저 휴전협정을 위반했다' 주장하며 전쟁준비를 재개하는 등, 언제 다시 충돌이 재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1
중동과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현 전쟁위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올바른 입장을 가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방 언론 받아쓰기 중심으로 구성되는 한국 언론의 국제보도 특성상,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기사가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심지어 이번 전쟁위기가 'K-방산'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지 계산기를 두드리는 한심한 기사도 나오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 속, 한국의 진보좌파 정치·사회운동은 이번 전쟁위기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2
'신정국가 이란' 이라는 프레임만으로 볼 수 없는 것들
이번 전쟁위기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주 무대인 이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이란은 신정 독재국가'라는 프레임을 넘어서 이란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해를 막기 위해 첨언하자면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의 지배세력이 이슬람을 구실로 자국 내 시민들의 인권을 탄압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란의 정치와 사회 체제 속에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이슬람 독재' 식의 상투적인 이미지를 넘어서는 요소들이 여럿 존재하며, 이를 올바로 이해해야만 서구 주류 시각을 넘어 있는 그대로 이란 사회를 조망할 수 있다. 그래야만 현 국면에서 이란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정세를 받아들이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란의 정치체제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잘 알려져 있듯, 이란의 정치 시스템은 최고지도자와 헌법수호위원회가 이슬람 가치 수호를 명목으로 입법, 행정, 사법 전 분야에 걸쳐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동시에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원까지 모두 국민의 직접투표로 선출한다는 점에서는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그것과 유사하다. 어차피 그래 봤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최고지도자와 헌법수호위원회가 한 마디 하면 끝인데 무슨 의미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그리 단순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제한적이게나마 이란 시민사회의 요구가 공적인 절차를 거쳐 정부의 의사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제도적 조건이 마련되어 있다는 뜻으로, 제 아무리 최고지도자나 헌법위원회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러한 면모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같은 걸프 이슬람 절대왕국들이나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와 같은 세속 권위주의 정권 등 중동 주변국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실제로 이란 시민사회는 이러한 체제 내 제도적 장치들을 동원해 주류 정치인들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저항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유지해 왔다. 현재 이란에는 공식 및 비공식 단체를 모두 포함해 8천 개가 넘는 NGO와 사회운동 조직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여성 인권 입법 캠페인 전개, 보수파 정치인 대상 낙선운동 주도, 민영화 반대 및 노동권 보장을 골자로 한 파업 조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적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2022년 히잡 착용을 거부했다가 종교경찰에게 살해당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인해 촉발된 대규모 시위를 기억하는가? 시위 2년 후인 2024년, 시위대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이란 시민사회의 정치적 참여와 견제가 여전히 어느 정도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3 4
이와 같은 이란 시민사회의 생동력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는 이슬람 혁명 이전부터 축적되어 온 조직화와 정치적 투쟁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50년대 모하메드 모사데크 정권 당시 이란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석유 국유화를 위시한 정부의 개혁조치들을 적극 지지하며 이 과정에서의 조직활동을 바탕으로 이란 시민사회의 맹아(萌芽)를 형성했다. 이후 모사데크를 쿠데타로 몰아낸 팔라비 왕가의 전제왕정 치하에서도 이들은 학생운동, 여성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저항했다. 1979년 혁명 이후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감소했지만 이슬람 공화국 체제 역시 이들 시민사회 세력을 완전히 뿌리뽑지는 못했는데, 이는 이들이 혁명 과정은 물론 이란 사회의 기반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했음을 정권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기초한 보수적 정치체제와 아래로부터의 활발한 참여가 보장되는 시민사회가 병존하는 이란 체제의 독창적인 면모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에서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를 모두 경험한 드문 사례라는 역사적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에도 일정 부분 유지되고 있는 이 국가 정체성은, 서구 정부와 언론에 의해 재생산되곤 하는 '무도한 이슬람 신정체제와 이에 신음하는 무고한 시민들' 류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2022년 시위를 주도했던 '여성, 삶, 자유' 운동의 참가자들을 포함해, 현 이란 정권에 비판적인 이란인들마저 미국과 이스라엘 주도의 이란에 대한 '레짐 체인지'에 강하게 반대한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 준다. 5
미국과 이스라엘, 중동의 '이란 담당 일진'
이처럼 이란인들은 미국이 자국 내 정치적 현실을 제국주의적 외교정책을 위한 구실로 삼는 것을 결코 반기지 않는다. 2019년 퓨 리서치 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이란인의 86%가 미국에 호의적이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이나 미국 사회나 문화에 대한 호감 여부와는 별개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대한 비판적 정서가 이란 사회 내에 널리 공유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이란 현대사 속 미국과의 관계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6
이란과 미국의 악연은 1953년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이란 정부가 영국-이란 석유회사(Anglo-Iranian Oil Company)를 국유화하자, 자국 이익에 위협을 느낀 영국 정부는 모사데크가 친소련 노선을 걷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미국을 설득했다. 이에 미국 CIA는 영국 정보기관과 함께 모사데크를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를 조직했고 그 결과 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가 주도하는 절대왕정이 복고되게 된다. 이 사건은 모사데크의 개혁 노선을 지지했던 이란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겨 주었고, 이후 샤가 주도한 권위주의적 근대화 정책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켜 1979년 이슬람 혁명의 도화선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슬람 혁명 이후에도 미국은 이란에 대해 제국주의적 공세를 계속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무려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이란에 맞서 싸운다는 이유만으로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에 대규모 군사지원을 했는데, 이 중에는 독가스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도 있었다. 이 외에도 미국은 이란에 대한 각종 경제제제를 유지하며 이슬람 공화국 정권을 전복하고자 했는데, 이는 지배층의 권력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외려 교육과 의료, 농업 등 평범한 이란인들의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부문에 악영향을 끼치며 이란의 민생을 악화시켰다. 이러한 상황 속 평범한 이란인들 사이에서 반미감정이 커지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역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만약 이스라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을 발명했어야 했을 것이다"라던 상원의원 시절 조 바이든의 말처럼,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중동에서 줄곧 미국의 지정학적 이익을 수호하는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큰 적이 된 이란에 맞서기 위해 이스라엘이 동원된 것은 역시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이란의 주요 인사들을 암살하고 이란의 군사시설을 폭격하는 등 미국이 직접 참여하기 힘든 여러 '더러운 전쟁', 즉 대(對)이란 공작들을 담당해 왔다. 7
이스라엘 정계에서 대(對) 이란 강경책을 가장 오랫동안 주장해 온 것은 바로 현 이스라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이다. 그는 1990년대부터 이란의 핵개발 의혹을 제시했으며 이를 막기 위해 이란에 대한 '예방전쟁'조차 불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그는 외적으로는 이란의 열약한 인권상황을 강조해 미국과 서방의 지지를 얻고, 국내적으로는 구약성서에 기반해 요르단-시리아-레바논-이라크를 아우르는 '대(大)이스라엘'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온주의 극우파들과 동맹을 맺어 이란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을 이어 오고 있다. 네타냐후의 대 이란 압박 사례 중에는 이번 선제공격과 같이 국제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들 역시 수두룩하다. 8
이란 핵개발을 둘러싼 미국과 이스라엘의 갑질과 이중성
여기까지 상황을 파악했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래, 이란이 생각만큼 단순한 나라가 아니고, 미국하고 이스라엘이 옛날에 이란에 나쁜 짓을 많이 한 건 알겠어. 그래도 핵개발은 너무하지 않아? 그럼 미국이나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여기에 맞서 방어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지 않아?' 얼핏 보면 이 논리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논리는 모든 책임을 이란에만 전가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응은 어디까지나 '사후적'이고 '방어적'이었다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깔고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핵개발 문제부터 살펴보자. 물론 수백만 명을 한 번에 대량학살할 수 있는 핵무기는 그 존재만으로 평화에 반하는 것이며, 핵확산 역시 그 주체가 어느 국가인지와 상관없이 지양되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미국이 이란의 안보를 수차례 반복적으로 위협해 왔고 심지어는 이란이 수차례 핵협상에 응할 의사를 보였을 때도 이를 무산시켰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그 책임을 과연 이란에게만 미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큰 의문이 생긴다.
이 중 2015년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과 독일, 유럽연합의 중재 하에 체결된 핵협정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의 경우 2017년 1기 트럼프 정권 때 미국의 탈퇴로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이후 올해 2기 행정부 들어 새로이 협상을 진행하다가 국제원자력기구(이하 IAEA)와 트럼프 본인이 임명한 국가정보부장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핵개발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며 강짜를 부리고, 끝내 관련 시설에 선제 핵폭격을 감행한 것이 바로 이번 전쟁위기의 본질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이란에게만 핵합의 위반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부조리한 일일 것이다.
한편 핵확산방지조약(이하 NPT)에 가입하지도 않은 이스라엘의 몽니는 더욱 황당하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넘어 중동 전체를 비핵지대로 선포하는 '중동 비핵지대(Middle East Zone Free of Nuclear Weapons)' 설립 유엔총회 결의안에 대해 거듭하여 반대해 온 바 있다. 해당 결의안은 모든 중동 국가의 핵무기 개발, 제조, 실험, 반입, 배치 금지는 물론 IAEA 안전조치 준수와 NPT 가입을 명시하고 있는데, 정작 이란은 여기에 찬성표를 던졌다. 불법적 핵개발을 통해 1960년대 후반부터 이미 핵무기를 보유해 온 것으로 여겨지는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핵보유는 부정하면서 NPT 가입은 거부하는 이중적인 노선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이는 이란 핵개발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대가 정말로 핵 비확산과 평화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지정학적 패권을 위해서인 것인지 그 진정성을 의심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9
한국 시민사회, 이란 전쟁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란 시민사회는 권위주의적 성격이 명확한 정치체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란 사회의 공적 의사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이란에 대한 일방적인 악마화를 주도하며 이를 구실로 이란에 대한 압박과 공세를 이어 왔다.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이란 사람들의 반발은 이러한 모순과 위선에 더해 과거 미국이 가했던 제국주의적 가해에 기반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란 전쟁위기를 이해하려는 한국의 진보적 정치·사회운동은 이를 반드시 주지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는 데에 필요한 우리의 원칙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선 평화주의 원칙에 입각한 일관된 반전반제 노선을 유지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 살펴보았듯 이란을 대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태도는 전형적인 신(新)제국주의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란과 팔레스타인 등에 대해 국제법과 같은 보편적인 원칙이 아니라 주권침해와 내정간섭, 이중잣대로 일관하고 있으며, 평범한 이란인들의 일상과 생존권을 위협하며 정권에 비판적인 이란 내 사회운동 세력으로부터도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이란의 국내외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일관되게 이란에 대한 미국과 서방, 이스라엘의 군사공세에 반대하며 평화주의적 입장을 유지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반전주의 노선이 현 이란 정권에 대한 일방적 지지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2020년 미국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암살하여 전쟁위기를 촉발했을 때, 한국진보연대를 포함한 일부 자주파(NL) 성향 한국 사회운동단체들이 솔레이마니를 '순교자'로 칭하며 주한이란대사관에 마련된 빈소에 조문하여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해당 암살이 국제법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중동 전쟁위기를 부추긴 무도한 공격이었던 것과는 별개로, 솔레이마니가 이끄는 혁명수비대가 반정부시위대 탄압과 이라크와 시리아에서의 민간인 학살에 책임이 있는 억압적인 단체라는 것을 외면한 부적절한 처사였다. 앞서 살펴보았듯 이란 사회가 권위적인 정치체제와 활달한 시민사회가 공존하는 사회라면, 진보적 사회운동의 연대 대상이 후자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비판과 비민주적 압제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함께해야만 한다. 10
이와 함께 한국 시민사회는 단순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 이란정책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한국 정부가 이에 동조하는 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비판할 필요성이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대 이란 군사공세에 대해 '비판할 이유가 없다'고 밝힌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미국의 공습이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서방 주요국 다수는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제국주의적 공세를 묵인하거나 정당화하고 있다. 이들 역시 현재 이란을 둘러싼 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의 경우 타 서방 국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중시하는 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2020년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로 촉발된 전쟁위기 당시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찬성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을 위시한 서방정부의 압력에 따라 언제든지 그 입장이 변할 수 있는 것이 증명되어 왔다. 외교적 상황의 변동에도 명확한 원칙을 견지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지속적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한국 시민사회가 가자지구 학살 국면에서도 꾸준히 요구해 왔듯이, 이란 공격에 사용될 수 있는 대 이스라엘 무기 판매 금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전략이다. 11
저 멀리 이란의 전쟁위기가 한반도의 우리에게 단순히 남의 일이 아닌 이유는, 미국의 패권적 세계정책에 맞서는 수단으로 핵개발을 추진하는 폐쇄적 이웃이 바로 우리의 곁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을 세계가 용인하는 것은 결국 북한 정권에도 '우리 역시 언제나 폭격과 침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필연적으로 한반도 전쟁위기의 심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중동 전쟁위기를 불러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해 평화를 말하는 한국의 진보적 정치·사회운동이 더욱 명확히 반대하고 강하게 맞서야만 하는 결정적 이유다.
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전 회장, 전환 국제연대팀장.
동국대학교와 고양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
각주
- 한겨레, 이스라엘 “이란, 미사일 쏴 휴전 위반…반격할 것”…이란은 부인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1204512.html [본문으로]
- 중앙일보, 이스라엘-이란 중동 '화약고'에...K방산 기회 커질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4114 [본문으로]
-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Iranian Civil Society and The Role of U.S. Foreign Policy https://www.cfr.org/backgrounder/iranian-civil-society-and-role-us-foreign-policy [본문으로]
- Chatham House, Iran under Masoud Pezeshkian: Aiming for change without rocking the boat https://www.chathamhouse.org/2024/07/iran-under-masoud-pezeshkian-aiming-change-without-rocking-boat?utm_source=chatgpt.com [본문으로]
- 워싱턴포스트, I hate Khamenei’s regime. But I love Iran even more.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25/06/19/iran-israel-regime-change/?utm_source=chatgpt.com [본문으로]
- IranPoll, Iranian Public Opinion Under “Maximum Pressure” https://www.iranpoll.com/publications/maximum-pressure [본문으로]
- C-SPAN, User Clip: Joe Biden- USA would have to invent an Israel https://www.c-span.org/clip/senate-highlight/user-clip-joe-biden-usa-would-have-to-invent-an-israel/4964168 [본문으로]
- 로이터, Israeli strikes on Iran may have violated international law, UN mission says https://www.reuters.com/world/middle-east/israeli-strikes-iran-may-have-violated-international-law-un-mission-says-2025-06-23/ [본문으로]
- 참세상, 또다시 중동 비핵화 위협하는 이스라엘 https://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460&page=1&s_mode=all&s_arg=%EC%A4%91%EB%8F%99%20%EB%B9%84%ED%95%B5%ED%99%94 [본문으로]
- 연합뉴스, 한국진보연대, 솔레이마니 이란 사령관 빈소 조문 https://www.yna.co.kr/view/PYH20200110085600013 [본문으로]
- 매일노동뉴스, 문재인 정부 호르무즈 파병 결정에 "위험한 행동" 비판 이어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263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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