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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2025년 칠레 대선, 공산당과 자넷 하라의 돌풍

by Domoleft 2025. 7. 9.

[국제] 2025년 칠레 대선, 공산당과 자넷 하라의 돌풍

4개월 후로 다가온 2025년 칠레 대통령 선거, 공산당의 후보로 나선 자넷 하라가 여당연합의 대선 경선에서 예상치 못한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갈 길은 여전히 멀다. 2019년 민중봉기의 성과로 집권한 중도좌파 보리치 정권의 몰락과 급진좌파 하라의 승리 이유를 살펴보며 한국 진보정치가 가야 할 길을 찾아본다.


올해 11월 16일(1차 투표)~12월 14일(결선투표)에 걸쳐 남아메리카 칠레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지난 2019년의 민중봉기 이후 2021년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쥔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 현 대통령의 임기가 올해인 2025년 끝을 맺고, 내년부터는 새로운 대통령이 칠레의 국정을 이끌어 간다.

 

그러나 전망은 별로 좋지 않다. 현재 가장 최신 조사로서 6월 25-27일간 진행된 Cadem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Partido Republicano) 소속의 극우 후보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Jose Antonio Kast)가 1위(24%), 독립민주연합(UDI, Unión Demócrata Independiente)의 전통 우파 후보 에블린 마테이(Evelyn Matthei)가 3위(10%), 여당인 광역전선(FA. Frente Amplio)이 소속되어 있는 범진보좌파 연합인 칠레를 위한 연합(Unidad por Chile)의 후보 자넷 하라(Jeannette Jara)는 2위(16%)에 그치고 있다.[각주:1]


실패한 정권, '칠레판 문재인' 가브리엘 보리치

2019년 칠레 민중봉기의 상징적 사진. 출처: el Dia www.diarioeldia.cl

 

2019년 민중봉기로 칠레 우파의 몰락과 좌파 정권의 집권이 이루어졌는데, 어째서 칠레 정치는 6년 만에 다시 우파 우위의 정치질서로 돌아간 것인가? 이는 대부분 현 대통령인 보리치 정권의 실정에 기인한다. 과거 필자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 웹진에 기고한 기사들[각주:2] [각주:3] [각주:4]에서도 강조한 바 있지만, 보리치 정권은 태생부터 모순적인 정권이었다. 2019년 봉기로부터 보리치의 당선으로 이어지는 서사는 얼핏 보면 2016-17년 박근혜 탄핵 정국 및 문재인 당선과 유사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통령 탄핵과 '국가 정상화'라는 체제 수호의 성격이 일차적으로 깔려 있었던 탄핵 정국 및 촛불과는 달리, 2019년 칠레 봉기의 경우에는 '반체제'가 시위 전체를 규정짓는 구호였다. 피노체트 독재 시기 시작되었으며 독재 종식 이후로도 의회정치가 30년 간 더 지속시켜 온 신자유주의를 끝내고 비참한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 당시 시위 참여자들의 주장이고 열망이었다.

 

그러나 보리치 정권의 당선과 신헌법 제정은 이들의 열망의 실현이라기보다는 체제에 보다 더 안착한 중산층 - 학계, 전문직, 대학생 - 의 입맛에 맞는 일종의 전향적 타협이었다. 이로 인해 2021년 대선에서 보리치는 1차 투표에서 27.9%를 얻은 카스트보다 2퍼센트 낮은 25.8%를 득표했고, 결선 투표에 가서야 극우파인 카스트에 대한 반감 및 봉기에 참여했던 좌파-중도파의 결집으로 간신히 당선될 수 있었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 국면 이후 이미 적극적인 항쟁이 사라진 시점이었지만 유권자들 사이에는 적어도 보리치가 이전 콘세르타시온(Concertación, 중도좌파 연합) 정부보다는 훨씬 적극적인 개혁 정책을 펼치리라는 기대감도 존재했다. 그러나 보리치는 그런 대중적 기대를 배신했다.

 

2019년 봉기를 통해 터져나온 주요 의제는 (신헌법 제정을 제외하면) 1) 불평등 타파 2) 의료 개혁 3) 연금 제도 쇄신 4) 교육 개혁 5) 원주민 공동체 토지 영유권 인정 및 정치 참여 6) 수자원 보호 등이었다. 보리치는 이러한 의제들에 대하여 본디 기대되던 파격적 개혁 대신에 보다 온건한 수준의 개혁안들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2022년 9월의 신헌법 초안 국민투표 통과에 '큰 개혁'을 의탁하는 방식으로 당면 과제들을 처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신헌법 초안 국민투표는 62%의 압도적 반대표로 부결되었고, 보리치 정권에게 남은 수는 여소야대의 상황 속 온건한 개혁안들을 타협해 가며 진행시키는 것밖에 없었다.

2022년 산티아고에서 열린 칠레 헌법개정안 반대 시위에서 깃발을 흔드는 시민들. 출처: 로이터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변화 없이 법안 통과를 둘러싼 지지부진한 언쟁만이 국회에서 지속되는 동안, 칠레 국내외적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경제위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촉발된 경제위기,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과 '다극화', 치안 악화 등의 중첩된 위기가 동시에 찾아왔다. 한국에서도 생활 물가가 거의 2배에 육박할 만큼 급상승했던 것처럼 칠레에서도 물가 상승과 달러 강세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보리치 행정부는 최저임금을 월 40만 페소(한화 약 60만원)에서 45만, 50만, 55만 페소(한화 약 77.5만원)으로 올리면서 임시방편을 썼지만, 이미 실질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수입이 월 최소 70만~90만 페소(한화 약 105만-135만원)인 상황에서 55만 페소로의 인상은 별다른 변화를 주지 못했다. 위기의 충격 완화에 실패한 것이다.

 

단순히 최저임금뿐 아니라 여러 쟁점과 공약 이행에 있어서도 보리치 정권의 4년은 실망스러웠다. 2019년 봉기 당시 불법적 폭력진압과 납치, 고문을 가했던 칠레 경찰에 대한 처벌 및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당시 체포된 시위자들에 대한 사면령조차도 2025년 5월 기준 여전히 하원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또한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칠레 국가-정착민-초국적 임업자본의 침탈과 폭력에 맞서 저항하고 있는 남부 아라우카니아 원주민들의 권리 증진 또한 주요 공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개도 이행하지 못하고, 초법적 예외상태에 기반한 폭력을 여전히 묵과하고 있다.

 

한편 2023~2024년에 걸쳐 칠레 중~남부에는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더해 임업회사의 마구잡이 벌목, 방화, 단일종 식수로 인한 거대한 산불이 일어나 수십만 명의 이재민과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임업 규제와 수자원 보호에 대한 사회적 요구 역시 높아졌다. 임업 회사(forestales)에 대한 규제 강화 및 초국적 자본의 데이터 센터, 어업, 플랜테이션 농업 용수 사용 규제에 대한 거대한 요구가 있었지만, 보리치 정권은 이 요구에 답하는 데 실패했다.

칠레 원주민인 마푸체(Mapuche) 족의 시위. 출처: 게티이미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던 Tren del Aragua 등의 거대 갱단이 칠레 북부와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침투하면서, 또 세계적 경제위기로 평균 소득이 감소하면서 칠레의 치안은 크게 악화되었다. 즉각적인 치안 관련 정책들 - 수사기관과 정보기관 간의 연계, 치안부 신설, 경찰 구조 탈군사화, 조직 범죄 타겟 형법 신설 - 등의 개혁은 이루어졌으나, 조직 범죄 증가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서 중장기적인 취약계층 청년 일자리 정책, 유제품 및 기본 식료품의 국영 상점을 통한 저가 공급, 주택 건설 및 등록 등의 예방적인 정책들은 거의 실행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단기적인 개혁에도 불구하고 칠레의 치안 상황은 특히 기존에 치안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노동 계급 지역 - Santiago centro, San Miguel, La Bandera, La Florida, Los Cerrillos, Huechuraba 등 - 을 중심으로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총체적으로 보았을 때, 보리치와 광역전선 정권은 결국 혁명적 열망을 억누르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으로서 박근혜 퇴진 항쟁 이후의 문재인 정권과 같은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올해 5월 25일 공개된 연구 프로젝트 'Del Dicho Al Hecho(말에서 실천까지)'[각주:5]에 따르면 보리치의 공약은 34% 정도의 이행률을 보이며, 그 중에서도 원주민 관련 공약은 0%, 뒤따라 의료, 주거, 노동 관련 공약도 극히 저조한 달성률을 보였다. 결국 이 4년 동안 삶의 질은 악화되고 미래의 전망이 와닿지 않게 되면서 정치적 무관심층의 극우화, 보수화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봉기의 도화선이 될 정도로 증오받았던 자본가 출신 피녜라 전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이었다는 소리도 간간히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이는 청년 남성 중심으로 보수화가 극심해지고 일각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여론이 나오곤 하는 한국과 유사한 상황이다.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 출처: Cadem

 

이런 상황에서 당연하게도 범좌파 진영 내에서는 보리치 대통령이 속한 여당 광역전선에 대한 심판론이 강해졌다. 광역전선 자체가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대학생 운동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청년층 중심의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던 중산층 대학생들마저도 이미 이들에게 등을 돌렸다. 2024년 5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국립 칠레대학교 본관을 점거했을 때 보리치가 보인 미적지근한 태도, 버려진 토지에 집을 짓고 사는 'pobladores(정착민, 거주민 등: 편집자 주)'에 대한 무력 진압 및 철거 등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보리치 정권과 여당의 몰락으로 인해 칠레 좌파 진영은 오랫동안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었다. 각 정당의 대선 후보 확정 이전인 2025년 4월까지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우파 후보들인 UDI의 마테이와 공화당의 카스트가 1, 2위로, 범좌파 진영은 두각을 드러내는 후보가 없이 이리저리 분산되어 있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는 이미 퇴임한 전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Michelle Bachelet)를 지지한다고 표명한 사람이 가장 많았을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칠레 공산당(PCCh)의 후보 자넷 하라였다.


'의외의 승리' 자넷 하라는 누구인가?

지난 6월 24일 치뤄진 미국 민주당의 뉴욕 시장 후보 경선에서 압승을 거둔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는 버스 무상화와 주거권 정책 등 파격적인 진보 정책, 젊은 나이에 더해 무슬림이며 사회주의자라는 특징으로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한편 이와 비슷한 시기인 6월 29일 칠레 범좌파 진영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자넷 하라 역시, 비록 맘다니처럼 아주 파격적인 인사이거나 당선 확정권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역시 '의외의 승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자넷 하라는 누구인가?

칠레 좌파 진영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자넷 하라. 출처: UPI www.upi.com

 

1974년생으로 50대에 접어든 자넷 하라는, 서울로 치면 부천 정도쯤의 위성도시로 인식되는 산티아고 수도권의 마이푸(Maipú)에서 태어나 산티아고 북부 콘찰리(Conchalí)의 엘 코르티호(El Cortijo) 지역에서 자랐다. 해당 지역은 지금까지도 노동계급이 주로 거주하는 곳으로, 대부분의 칠레 주류 정치인이 비타쿠라(Vitacura), 라스 콘데스(Las Condes), 로 바르네체아(Lo Barnechea)와 같은 특권층 거주 지역, 혹은 뉴뇨아(Ñuñoa), 프로비덴시아(Providencia), 라 레이나(La Reina)와 같은 전문직 중산층 거주 지역 출신인 것과 대비된다.

 

하라는 1988년 14세의 나이로 공산주의 청년단(Juventudes Comunistas, JJCC: 공산당 청년조직)에 가입하였으며, 1993년 칠레에서 운동적 성향이 가장 강한 대학 중 하나인 칠레 산티아고 대학(Universidad de Santiago Chile, Usach)에 입학하여 공공정책을 공부하다가 1997년 칠레 산티아고 대학 총학생회 회장, 2000년 칠레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정치 활동을 지속하였다. 이후 지방자치단체 행정직 및 국세청 세무조사관으로 일했고, 국세청에서는 6년간 노조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2010년대 중반 바첼레트 정부에서는 후생부 차관을 역임했으며 기독인본주의연구대학(Universidad Académica de Humanismo Cristiano)의 공공행정 교수, 산티아고 지방정부 시정 담당자를 거쳐 보리치 정부에서는 2022년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노동후생부 장관을 역임했다. 

 

광역전선, 사회당, 자유당, 급진당, 공산당 등의 중도~좌파 정당들을 포괄하는 칠레를 위한 연합(Unidad por Chile) 내에서 본래 유력 주자로 거론되던 이들은 보리치 정권의 부통령까지 역임한 민주주의를 위한 당(Partido por la Democracia, PPD) 소속 정치 엘리트 카롤리나 토아(Carolina Tohá)와 보리치와 같은 학생운동권 출신인 광역전선의 곤살로 윈테르(Gonzalo Winter)였다. 칠레 공산당은 지난 20년간 대선후보를 내지 않았고(2021년 대선에서는 다니엘 하두에(Daniel Jadue)가 좌파연합 내 경선에 출마했으나 보리치에게 패했다), 하라 또한 보리치 내각의 정파 안배로 임명된 장관이었기에 하라의 출마 선언은 꽤나 뜻밖이었다.

2021년 경선에서 가브리엘 보리치 현 대통령(우측)과 토론하는 다니엘 하두에 공산당 후보. 출처: La Izqierda diario www.laizquierdadiario.cl

 

이에 더해 피노체트 독재 치하에서는 한국의 군부독재 시절과 비슷하게 공산주의자에 대한 물리적·사회적 살해와 반공 프로파간다가 지속되어 왔고, 민주화 이후로도 칠레가 남미 역내에서 우루과이와 더불어 최고 선진국 자리를 차지하며 '베네수엘라 사태'와 같은 일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일종의 공산주의에 대한 방어 기제가 자리잡아 왔다. 좌파 지지층 내에서조차 '공산당 후보가 좌파를 대표한다면 우파에게 정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폭넓게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하라의 승리는 예견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칠레에서는 여당 경선(las primarias oficialistas)이 공개 투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치적 무관심이 높은 칠레에서 경선 투표에 참여하는 이들은 자신을 중도좌파 내지 좌파로 정체화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만큼 좌파 진영 내의 표심을 지켜볼 수 있는 투표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여당 경선 결과는 큰 충격이었다. 카롤리나 토아는 28.07%를, 곤살로 윈테르는 9.02%를, 자넷 하라는 60.16%를 기록하며 완벽한 압승을 거둔 것이다. 특히 하라는 광역전선의 텃밭인 중산층 뉴뇨아 구와 마이푸 구, 발파라이소(Valparaíso) 시, 비냐 델 마르(Viña del Mar) 시에서도 1등을 거두며 범좌파 진영의 표심이 사회당·광역전선으로 대표되는 중도좌파를 떠나 공산당으로 대표되는 보다 좌파적 경향으로 옮겨 왔음을 보여 주었다.

2025년 칠레를 위한 연합 대선후보 경선의 지역별 결과. 출처: 위키피디아


하라의 경선 승리 전략과 대선 전망

자넷 하라는 보리치 정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감을 정확히 짚어냈다. 노동후생부 장관으로 재임하며 주 40시간 노동을 이뤄낸 성과를 바탕으로, 하라의 공약은 보다 급진적인 정책들로 가득하다. 하라는 다음의 3가지를 공약의 기본 목적으로 제시한다 - 1) 내수로 견인하는 성장모델 - 고용 강화, 집단 교섭, 지속적 최저임금 인상, 경제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민주적 참여를 바탕으로 소득을 끌어올려 성장을 추구 2) 존중받는 동네(barrios dignos) - 모든 지역이 안전하고, 제대로 된 인프라를 갖추며, 교통, 의료, 교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 3) 완전한 시민의 권리(ciudadanía plena) - 조직, 돌봄, 정치 참여, 권리 보호를 골자로 보다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

 

한편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하라의 주요 정책은 다음과 같다.

정책 분야 주요 정책
노동권 노조 쟁의 행위의 자유, 산별 집단 교섭 보장, 하청 계약 규제, 무단 정리해고 금지
치안 경찰(carabineros)과 특수경찰(PDI, Policía de Investigaciones)에 대한 문민통제, 저발전 지역 인프라 구축, 마약 카르텔 소탕
연금 AFP(민영화된 국민연금) 종료, 국영국민연금 시행
의료 공공의료 개선, 정신건강 공공의료 증대, 지속적 공공의료 예산 확대
경제발전 산업화, 구리 리튬 에너지 등 주요 산업 내 국가 역할 확대, 정의로운 생태전환, 협동조합 및 중소기업 대출 접근성 강화
교육 공교육 활성화, 대학 접근성 강화, 학생 복지 및 정신건강 보호
노인 교통수단 및 문화, 스포츠 행사 노인 요금 창설
젠더 낙태 자유화, 성폭력 박멸 국가우선목표화, 성 다양성 권리 보장
주거권 시민참여 공간계획(ordenamiento territorial) 정책 실행, 공공공간 은행 건립, '존중받는 도시' 모델 추진, 공공서비스 강화, 합리적 가격의 공공주택 건설 및 공급, 임대료 제한, 부동산 시장 철저 세금 부과, 주택협동조합 지원
환경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석탄화력발전소 점진 폐쇄, 리튬 및 구리 국영화, 지속 가능한 광업, 수자원 가정 사용 우선, 빙하보호법 제정
청소년 아동청소년 보호 전담 부서 창설, 공공의료 소아과 진료 상한 18세로 상향, 정보기술 보편 접근 보장, 투표 연령 16세로 하향
재분배 부자증세, 감세특권 제거, 재생산 및 돌봄 노동 인정 및 보상, 인프라·교육·의료·기술 투자 증대
반부패 '회전문' 규제, 투명성 법률 강화, 내부고발자 보호, 공공 구매 체계 현대화, 시민 참여형 예산 추진
정치 폐쇄형 후보명부 도입, 탈당 시 의석 박탈, 노조 간부, 농민 및 주민 조직 간부 의회 진출 허용, 원주민 할당 의석 도입, 시민 참여(주민투표, 주민 공청회, 주민 발의 등) 추진
인프라 기본 서비스(수도, 전기, 가스, 통신)에 대한 품질 및 가격 국가 규제, 시민 참여 기업 모니터링, 국영기업 설립 추진
교통 철도 증설, 전기버스 증대, 유통망 현대화, 안전한 야간버스 도입
도농격차 해소 국가투자청 개혁-농촌 투자 확대, 지역 경제 및 청년 지원

 

하라의 주요 공약들은 지난 2021년 보리치가 제시했던 공약보다 훨씬 진일보한 급진적 공약으로, 멕시코의 AMLO-셰인바움이나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와 같은 소위 '핑크 타이드' 급진파 정권의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이는 경제위기 속 대졸자조차도 취업이 어려워진 칠레에서 절망감을 느끼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2019년 봉기의 참여자들이 요구한 6가지 주요 의제에 대해서도 어중간한 타협책이 아닌 확실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간다는 점에서, 보리치 정권에 실망했으나 여전히 정치고관여층에 해당하는 기존 좌파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한편 하라는 자신이 노동계급 출신이고 서민의 삶을 알고 있다는 점을 선거운동에서 크게 부각했다. 하라의 인스타그램[각주:6]은 집안일을 하거나 출근을 하고, 스스럼없이 지지자들과 포옹하고,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하며, 과거 노조 활동을 하며 현장에서 일했던 사진 등 일상적이고 탈권위적인 모습으로 가득하다. 직업 정치인으로서 살아온 정치 엘리트인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민중 속에서 살아왔고 민중의 삶을 아는 후보로서 '엘리트 대 일반 시민'의 구도를 부각시키는 좌파 포퓰리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라는 과거 바첼레트 정부 시절에 대통령 부비서를 한 경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중도좌파를 포섭하기 위해 바첼레트 전 대통령과의 친연성 역시 부각하고 있다. 또한 공산당이라는 이름이 주홍글씨인 칠레 정치 속에서 '강경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칠레의 차베스, 마두로'라는 이미지를 피하고자 공산당 색채를 희석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한 예로 쿠바에 대해서도 이전에는 "우리와는 다른 고유의 민주주의다"라며 쿠바 경제제재를 강력히 규탄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 들어서는 경제제재 규탄이라는 기본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쿠바의 인권침해를 일부 인정하고 있다.[각주:7]

지지자들과 함께한 자넷 하라. 출처: 자넷 하라 X(트위터)

 

따라서 하라의 승리는 Unidad por Chile 연합 내 다른 후보들의 부진, 보리치 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론, 급진적 정책과 서민적 이미지 메이킹을 통한 지지층 확보, 이상의 3가지 요소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대선 본선 투표는 11월이기에 아직 하라에게는 4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전망은 그리 긍정적인 편이라고 할 수 없다. 상기한 여론조사에서 우파 후보들의 우세와 더불어 이번 여당 경선의 총 투표수는 2021년 당내 경선보다 33만 표 적은 142만 표로 전체 유권자의 9%만이 참여했다. 이 9% 중 하라가 얻은 60%는 전체 유권자의 5.4%에 불과한 수치다.

 

더하여 지난 2021년 대선과는 달리 이번 대선은 의무투표제로 진행된다. 2022년 진보적 헌법에 찬성표를 던진 이들은 4,859,103명, 38.11%. 2021년 대선 결선 투표에서 보리치에게 표를 던졌던 4,620,890명보다 오히려 더 많은 수였다. 그러나 의무투표제 하에서 지금껏 투표를 하지 않아 온 무관심층은 진보 헌법에 7,891,415표의 반대표를 던지며 보수적 경향을 드러냈다. 이후 2023년 공화당에 의해 만들어진 극우적 헌법에 대해서는 5,470,025표의 찬성표와 6,894,287표의 반대표라는 결과가 나왔다. 즉 각각 좌파와 우파에 투표하는 이들은 각각 450만, 400만 명 정도로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의무투표로 정치 무관심층 약 440만 명이 참여하면서 결과가 달라지고 있다. 무관심층 중 160만 명은 아무런 변화도 원하지 않고, 280만 명은 우파에 투표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기에, 의무투표제로 인해 하라가 승리할 가능성은 더 낮아진 상황이다.

 

그러나 4개월의 시간은 결코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하라의 지지자들은 중산층 청년, 대학생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여기에 더해 칠레 공산당은 칠레 정당 중 유일하게 노동운동과 지역운동 등 사회운동과의 연결을 유지하고 있는 정당이다. 보리치와 중도좌파 정당들이 '중상류층 엘리트의 정체성 정치'로 규정되며 노동계급에게 외면당한 지점을 극복해내어 정치적 무관심층이 가장 많은 노동계급의 지지를 회복한다면 하라에게 승산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보리치 정권의 연금개혁과 의료개혁 실패를 딛고, 지금껏 해 왔던 것처럼 주 40시간제 쟁취 등의 성과를 기반으로 개혁 완수를 약속하며 2019년 봉기 참여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실제로 7월 8일 발표된 최신 여론조사에서는 결선투표 시 우파 후보들과의 대결에서 하라가 호각을 점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등, '돌풍'의 전조는 조금씩이나마 이미 나타나고 있다.[각주:8]

칠레 대선 결선투표 여론조사. 출처: X(트위터) Pudu Elects

 

이런 상황은 단순히 칠레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윤석열 퇴진광장이 열렸지만 '내란 종식'과 '압도적 승리'라는 구호 속 모든 표가 민주당과 이재명으로 쏠려 가고, 정당에서 사회운동으로의, 또 사회운동에서 정당으로의 연결고리가 너무도 취약해져 버린 상황에서 한국의 진보정치는 0.98%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미 대선 이후 여러 가지 평가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주장 및 의견들이 나오고 있지만, 칠레의 사례 - 보리치 정권의 실패와 하라의 경선 승리가 한국의 진보정치에 남기는 교훈은 명확하다. 선거의 결과는 결국 평소 우리의 주장과 실천, 그리고 발걸음이 합쳐져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2019년 봉기의 성과를 전유하고 학생운동 이력을 근거로 당선된 보리치 정권은 약속한 개혁과제를 성취해내지 못하고 기반을 상실한 '사상누각' 정권으로 남았다. 한편 미약하지만 묵묵히 진성당원들과 함께 좌파의 길을 걸었던 공산당과 하라는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좌파연합의 대선 후보로 우뚝 섰다. 경선 과정에서 쓴 선거 비용을 보면 이는 명확해진다. 2%를 받은 하이메 물렛이 1억 567만 페소(한화 약 1억 6천만원), 9%를 받은 곤살로 윈테르가 3억 863만 페소(한화 약 4억 6천만원), 26%를 받은 카롤리나 토아가 1억 7909만 페소(한화 약 2억 7천만원), 60%를 받은 하라가 4443만 페소(한화 약 6700만원)를 사용한 것이다.

 

최소한의 선거 비용으로 어떻게 60%에 달하는 압승이 가능했을까? 이는 노동조합원과 공산당원을 포함해 자원봉사자로 나선 지지자들이 거리에서, 동네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선거운동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수치이며, 더 나아가서 평소 하라와 공산당이 명확한 원칙과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노동운동, 사회운동, 지역운동과의 연계를 통한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나올 수 있던 결과였다. 한국 진보정치 역시 열정에 있어서만은 이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로 발 밑의 기반을 다시 다지는 데에 집중해야만 한다. 보리치 정권의 몰락과 하라의 압승은 사회운동과 지역에 기반한 튼튼한 기반이 없다면 운 좋게 일어서더라도 다시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다시금 안겨 주고 있다.


이산

사회학도. 라틴아메리카 정치 및 사회운동, 사회변혁을 주된 관심사로 삼아 교류와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칠레에서 1년간 사회학을 공부한 경험으로 칠레 사회운동에 대한 소개 및 분석을 주로 한다.


각주

  1. Cadem, Última encuesta pre primarias https://cadem.cl/estudios/ultima-encuesta-pre-primarias-jose-antonio-kast-sube-a-24-5pts-en-intencion-de-voto-espontaneo-y-jeannette-jara-a-16-3pts/ [본문으로]
  2. 마리치에우 산티아고 ① | 칠레에서 대중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https://platformc.kr/2023/03/causas-de-las-protestas-populares-en-chile/ [본문으로]
  3. 마리치에우 산티아고 ② | 산티아고에서 『파업전야』 상영회를 열다 https://platformc.kr/2023/09/holding-screening-in-santiago/ [본문으로]
  4. 마리치에우 산티아고 ③ | 민주화 35년, 칠레 민중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https://platformc.kr/2024/02/life-has-not-gotten-better/ [본문으로]
  5. Del Dicho Al Hecho https://deldichoalhecho.cl/ [본문으로]
  6. 자넷 하라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jeannettejararoman/ [본문으로]
  7. CiberCuba, Candidate for the presidency of Chile clarifies after denying that there is a dictatorship in Cuba: "It was not my intention." https://en.cibercuba.com/noticias/2025-04-19-u1-e208574-s27061-nid301288-candidata-presidencia-chile-rectifica-luego-negar [본문으로]
  8. X(트위터) Pudu Elects, Data influye segunda vuelta https://x.com/PuduElects/status/194279246417721757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