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왜 권영국인가? - ② 결혼을 준비하는 성소수자 여성이 권영국을 지지하는 이유
<도모>는 제21대 대선 선거운동 기간 동안 연속기고 <왜 권영국인가?>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권영국을, 진보정치를 지지하는지 각자의 언어로 풀어낸 글들을 모아 보고자 합니다. 두 번째 글로 여자친구와 동거하며 결혼을 준비 중인 성소수자 여성 김나율 님의 이야기를 게재합니다. (편집부)
"너무 걱정되고 떨린다."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내려 엘리베이터에 오른 순간, 여자친구가 말했다. 나 또한 여자친구와 같은 떨림을 느꼈으나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결혼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희망과 긴장이 함께 뒤섞인 떨림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침묵 속에서 엘리베이터는 계속 올라갔다.
지난 2월, 내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시간을 내어 여자친구와 결혼반지를 사러 갔다. 어느 브랜드는 아침부터 대기표를 뽑아야 한다거나, 백화점에서는 디자인만 보고 종로나 청담으로 넘어가서 반지를 구매하는 것이 좋다거나 하는 주변 기혼자들의 조언을 들은 후였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통장의 준비까지 마친 일요일 아침, 우리는 매장 앞에서 두려워 떨었다. 결혼반지를 보러 왔다고 말하는 게 겁나서. 판매원이 친절한 미소로 여성 두 분께는 결혼반지 말고 다른 반지를 권한다고 말할까 봐서.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판매원의 얼굴에 비웃음이나 의아한 표정이 비칠까 봐서. 행복해야 할 날이 엉망진창인 날로 기억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오픈 퀴어로 살면서 수도 없이 부딪혀 온 일이지만,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단위가 되기로 결심하고 난 뒤 마주할 혐오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이제 더 이상 나 혼자 혐오자들과 싸우고, 마음을 추스르고, '저 사람도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삶의 범위가 좁은 사람일 뿐이야.' 생각하며 넘어가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이다. '우리'가 마주할 일이 되어 버린 거대한 벽에 숨이 턱 막혔다. 앞으로 웨딩플래너와 계약하고 식장도 예약하고 드레스 두 벌을 골라야 하는데.
그 모든 과정에서 나와 내 여자친구는 비슷한 떨림을 느낄 것이다. 혼인 신고서 작성은 투쟁의 현장이 될 것이고 우리의 결혼식은 우리만의 이벤트가 아니게 될 것이다. 서로를 상속자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혼인 신고서가 아니라 유언장을 써야 할 것이며 그러는 동안 죽음을 떠올리고 가까운 미래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그 모든 일들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큰 마찰이 없기를 바라며 살겠지. 나를 바꾸지 않고도 평등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저 운이 좋기만을 바라야 할 것이다.
광장에서 들었던 "윤석열은 감옥으로 우리는 일상으로"라는 구호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렇다. 지난 123일 간, 우리는 너무나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간이 깔개를 두고 앉는 것이 아니라 여자친구와 고양이들이 기다리는 집 침대 위에 눕고 싶었다. 거리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김밥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따뜻한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싶었다. 눈비 내리는 한남동 관저 앞이 아니라 버스 정류장에서, 퇴근길에 들른 과일가게에서, 동네 카페에서 광장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4월 4일, 비상계엄으로부터 무려 123일만에 결국 윤석열은 파면되었고 우리는 원래의 일상을 일부나마 되찾았다. 그러나 힘겹게 되찾은 일상에도 여전히 나의 자리는 없었다. 여전히 나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나의 성적 지향을 이유로 나를 멀리하지 않기를 운에 맡길 뿐이고, 여전히 결혼을 위해 돈을 쓰면서도 운이 좋아서 차별받지 않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여태껏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나와 내 여자친구의, 내 친구들의 삶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이제 광장이 닫힌 자리에는 아침저녁으로 선거 유세차가 지나다닌다. 그걸 보고 있으면 마치 광장은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집단적 기억 상실에 시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많은 수의 사람들이 여성과 소수자를 의도적으로 지우는 정당에, 사회적 약자를 외면해온 정당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압도적 승리'를 외치며 진보의 공간을 지우는 일에 두 팔 걷고 나선다. 그렇게 해서 승리하게 된다면, 과연 그 승리는 누구를 위한 승리인지 묻고 싶다. 선심 쓰듯 하나둘씩 던져주는 수준 미달의 정책에 만족하며 살 생각인가? 대한민국을 지켜낸 시민들에게 자존심은 없는 것인가? 심지어 유력 대선 후보들은 그마저도 하지 않고 있는데.
거대 양당의 어떤 트럭에도 무지개 깃발이 없고, 어떤 피켓에도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면 그렇게 얻어낸 승리는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응원봉을 상찬하고 농민들에게서 무지개떡을 나눠 받은 정치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위대한 민주시민'이 대한민국을 구했다고 하는데, 선거에 임하는 거대 양당의 후보들은 각자의 이유로 민주시민들의 목소리를 지워내고 있다. 어떤 목소리는 더 중요한 것이 되고 어떤 목소리는 지워내도 괜찮은 목소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몇몇 시민들은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승리에는 우리들의 자리가 없는데도.
'그 사람들 다 모아도 몇 표나 되겠냐'거나, '그 사람들 편들면 다수가 싫어한다'고 말해도 모든 시민들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 모두가 평등하지 않다면 그것은 아무도 평등하지 않은 사회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정치.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눈앞의 사람을 위해 마음을 내어주는 정치.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보정치의 마지막 품위이다. 그리고 그 품위는 한 달 간의 짧은 선거기간 동안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에 방문하는지 따위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가 삶을 통해 지켜낸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그랬기 때문에 지금 그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로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품위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지워진 이들과 광장을 함께 지켜낸 대통령이 필요하고, 정치가 자신의 이익 앞에서 소수 집단을 지우려 들 때 마지막까지 소수를 대변할 대통령이 필요하다. 권력이 약자를 짓누를 때 침묵하지 않고 권력을 막아설 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진보정치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 아니 차마 버리지 못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두 번째 광장이 닫혀 가는 지금, 이번 대선 후보들 중 광장의 '우리'였던 후보는 단 한 사람 권영국뿐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변호사로 살아온 이가 이제는 일하는 사람들의, 우리 사회의 더 아픈 사람들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일하다 죽는 사람이 없는 것이 당연해야 하고, 가난해서 내일 아침 눈 뜨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 없어야 한다. 페미니스트라 외치는 것에 검열이 없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을 나중으로 미루는 일에 이골이 난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노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도 이동하는 시대로 가겠다는 당연한 외침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얼마 전 170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극우 유튜버들에게 호통을 치는 권영국 대표의 영상을 보았다. "감히 전쟁 범죄 피해자를 모욕하느냐"며, "너희들이 인간이냐"고 꾸짖고 있었다. 이 영상은 '권영국 갈' 영상으로 sns를 통해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 영상을 보고 속 시원해하는 사람들 반, "네 이놈, 감히"로 시작하는 분노 섞인 사극 투의 발언에 웃음을 꾹 참는 사람들 반이었는데 나는 왜인지 그 영상을 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 화가 나서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비통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대선후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 마음에 큰 안도감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 꾸짖음은 그냥 꾸짖음이 아니었다. 광장에서 시민들과 눈비를 함께 맞은 대선후보가, 고공에 올라 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후보가, 우리와 닮은 얼굴을 한 대선후보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내지른 꾸짖음이었다. 그래서 남들은 다 멋지고 웃기다며 깔깔 웃는 그 영상을 보고 집안에 우환 있는 사람처럼 속절없이 울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지겹도록 들여다보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약자에게 일상의 자리를 내어주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승리한다는 것은, '압도적 승리'라는 말은 그런 대통령이 당선될 때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광장을 통해 열린 조기대선이다. 우리는 단지 윤석열 탄핵을 이루어내기 위해, 우리 사회를 현상유지시키기 위해 광장에 섰던 것이 아니다. 더 평등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한 발이라도 더 내딛기 위해 광장에 섰다. 그 시간들을 후회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는 진보 대통령이 필요하다. 나는 노동자들을 위해 물구나무를 서 온 1인시위자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두려움 없이, 떨림 없이, 웃으며 혼인 신고서를 작성하고 싶다.
김나율
민주노동당(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운영위원. 여자친구와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산다.
세상을 바꿀 정치와 예술, 우정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
우리를 지키는 진보대통령, 권영국을 후원해 주세요!
갈아엎자! 불평등 세상, 권영국의 손을 잡아주세요
권영국 후보 후원계좌: 국민 231401-04-366303 대통령후보자권영국후원회
※ 후원금 영수증 신청 안내
- QR코드 또는 https://linktr.ee/250603kyg 링크에 접속해서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후원은 개인 명의로만 가능합니다(개인 당 최대 1천만원)
- 현행 정당법 상 외국인, 교사, 공무원 등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없는 분들은 후원하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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