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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진보정치

진보정치의 조기대선,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by Domoleft 2025. 4. 12.

[정치] 진보정치의 조기대선,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코 앞으로 다가온 조기대선, 진보 3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과 사회운동·노동운동 세력은 진보정치 사상 최초의 대선 공동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극우화와 민주당의 우경화 속, 독자적 진보정치 세력의 조기대선이 어떻게 준비되고 있고 그 과정에 어떤 쟁점이 있는지 함께 톺아보자.


* 본 글에서 의미하는 '진보정치' 또는 '진보정당'은 지난 제22대 총선에서 친자본 정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은 '독자적 진보정치' 세력으로 한정함을 밝힌다.

 

장장 123일간 계속된 내란 사태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인용으로 일단락된 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차기 대통령 선거가 오는 6월 3일 실시됨을 공식화했다. 코 앞으로 다가온 조기대선의 시계는 벌써부터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 비상계엄 이후 내홍에 빠진 국민의힘에서는 오세훈, 홍준표, 한동훈 등의 기존 주요 대권주자들에 더해 극우 세력을 등에 업은 김문수를 비롯, 4월 11일 현재까지 총 10명의 후보가 경선 참여 의사를 밝혔다.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 역시 4월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작년 총선 위성정당 참여 이후 민주당과 연합전선을 구축 중인 진보당 역시 김재연, 강성희 두 명의 후보가 참여하는 경선을 치른다.

 

각 세력들의 경선 시작으로 점차 본격화되어 가는 조기대선 국면 속, 진보 3당(노동당·녹색당·정의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치 세력의 대선 대응에도 사회운동진영과 시민사회의 관심이 점차 모이고 있다. 이에 호응하듯 주요 진보정당들과 사회운동·노동운동 단위들은 현재 조기대선 공동대응 논의를 진행 중에 있다. 이들은 오는 4월 16일 서울 중구 거통고지회 고공농성장 앞에서 진보진영의 공식적 조기대선 대응 연대체인 '가자 평등으로! 사회대전환 대선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 출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진보정치 역사상 최초의 대선 공동대응 및 공동 경선이 첫 발을 뗀 것이다.

 

'중도보수'를 공개 선언한 더불어민주당과 그에 포섭된 일부 '진보' 세력들, 그리고 극우화되어 가는 국민의힘을 위시한 한국 사회 전반의 우경화라는 정세 속에서 독자적 진보정치 세력의 대선 대응은 어떻게 준비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진보정당 및 사회운동세력의 조기대선 대응 상황과 주요 논의 및 쟁점을 <도모>가 취재했다.


진보 3당과 사회운동의 연합전선, 선거연대로 진화하다

좌측부터: 2023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당시 진보정당 후보 단일화 제안 간담회 / 녹색정의당 출범대회. 출처: 녹색당 / 한겨레

 

최근 '진보 3당'으로 묶이곤 하는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의 연대가 본격화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민주노동당 이래 반복적 분당과 탈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정치의 역사적 분화 속에서, 각 진보정당들은 광장과 투쟁 현장에서 함께하면서도 서로에 대해 그리 곱지만은 못한 시선을 보내 왔다. 상황이 바뀐 것은 2024년 치러진 제22대 총선 전후였다. 비록 소기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총선 전 치러진 강서구청장 선거에서는 정의당·진보당·녹색당 후보 간의 단일화 논의가 공식적으로 진행된 바 있다. 이는 기존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원활하지 못했던 진보정당 간 선거연대가 공식적으로 논의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후 정의당과 녹색당은 선거연합정당 녹색정의당을 꾸려 22대 총선에 공동으로 임했으나 원외정당으로 전락했고, 반면 민주노총과 사회운동 내 논란을 빚으며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한 진보당은 민주당으로부터 비례 2석과 지역구 단일화 1석을 얻어내며 원내입성에 성공했다. 정의당 탈당파인 사회민주당, 구 사회당 계열이 창당한 기본소득당 역시 동일한 방법으로 원내에 입성했다. 선거 이후 독자적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모든 정당이 원외로 전락한 상황 속, 위성정당을 통한 민주당의 진보정치 종속화에 문제의식을 가진 진보 3당의 공동행동은 자연스럽게 점차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촉매제의 역할을 한 것은 '체제전환' 혹은 '사회대전환'을 공통의 슬로건으로 내걸기 시작한 노동계 그룹들 및 사회운동세력이었다. 2024년 3월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를 개최한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는 동년 3월 14일 민주당 위성정당 지지 비판 토론회를 열며 진보정치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파괴하는 민주당 위성정당 비판을 전면화한 바 있다. 한편 동일한 시기 노동계에서는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화섬식품노조 등의 주요 산별 단위들과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주도하는 '새로운 노동자정치운동 추진모임(새노추; 현 노정추)', '좌파활동가 전국결집(전국결집)', '노동자가 여는 평등의길(평등의길)' 등의 의견그룹들이 '체제전환 연석회의(준)'을 발족하여 노동 중심의 진보정치 재편과 체제전환 슬로건의 전면화에 나섰다.

좌측부터: 2024년 3월 개최된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의 위성정당 비판 토론회 / 2024년 10월 개최된 체제전환 연석회의의 민주노총 30주년 평가 토론회. 출처: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 체제전환 연석회의

 

토론회를 비롯한 공동행동을 이어 오던 진보 3당과 사회운동, 노동운동 세력 간 연대가 급격히 확대된 계기는 12월 3일 선포된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이었다. 진보 3당은 계엄 다음날인 12월 4일 국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고발 기자회견을 공동으로 개최했고, 이후 12월 7일 여의도 집회의 사전대회를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등 계엄과 내란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공동대응을 이어갔다. 이는 곧 윤석열 퇴진 투쟁 국면 공동대응을 위한 진보·좌파 단위들의 연대체인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세바넷)'의 발족으로 이어졌다. 세바넷은 비상행동 정기 집회와 별개로 '평등으로 가는 수요일' 집회를 약 3개월 간 주최해 왔고, 기관지 <평등으로>를 제작하여 광장에 배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 왔다.

 

계엄 이후 심화된 연대는 단지 윤석열 퇴진 정국에 한정되지만은 않았다. 윤석열 파면과 조기대선이 본격적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3월 경부터, 진보 3당과 체제전환 연석회의 참여단위들은 연대회의를 발족하여 파면 이후 치러질 조기대선에 대한 진보정치·사회운동의 공동 대응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총선 이후 축소된 각 정당의 당세, 총선 이후 퇴진 투쟁을 거치며 쌓아올린 연대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민주노총 내 위성정당 문제에 대한 노동계 좌파 그룹들의 공통적 문제의식 등이 논의를 추동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공공운수노조 등 민주노총 주요·최대 산별조직의 대표자들이 이 논의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것 역시 이전과 달리 고무적인 지점이다.

 

대선 공동대응 안건은 기획단과 집행부 논의를 거쳐 각 당의 의결기구에 상정되었다. 녹색당의 경우 지난 3월 30일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조기대선연대회의 선출 후보를 녹색당의 지지 후보로 지원한다'는 안건을 통과시켰으며, 노동당 역시 4월 6일 전국위에서 '자유주의 정치세력과의 단절과 노동자·진보정당 운동의 독자성 견지'를 전제로 하여 조기대선 공동대응 참여 및 연대회의 후보 지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후술할 당명 변경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정의당의 경우 해당 내용을 포함한 안건이 4월 12~13일 전국위원회 및 당대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각 당별로 의결 진척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조기대선에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 이미 확고하게 자리잡혀 있다는 점이다.

2024년 12월 7일 여의도에서 열린 진보 3당과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의 결의대회 / 1월 22일 신촌에서 열린 평등으로 가는 수요일 집회. 출처: 녹색당


공동 경선, 의의와 쟁점

2012년 대선에서 진보신당이 무소속 김소연 후보를 지지한 사례처럼 자당 소속이 아닌 특정한 후보를 진보정당이 지지하는 일은 종종 있어 왔지만, 후보 선출 단계에서부터 제 진보정당과 사회운동단위들이 '공동 경선'을 거쳐 하나의 후보를 선출하는 일은 한국 진보정치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진보정치를 넘어서 한국 정치 전반에 있어서도 이는 흔치 않은 사례이다. 전례 없던 일인 만큼, 수많은 쟁점과 고려사항 역시 산적해 있다.

 

선거법상의 '직전 대통령선거,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시ㆍ도의원선거 또는 비례대표자치구ㆍ시ㆍ군의원선거에서 전국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에 대한 선관위 TV토론 초청 조항으로 인해, 공동 경선에 참여하는 후보는 지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비례대표 4.14%를 득표한 정의당 당적으로 출마하게 될 예정이다. 그러나 연대회의 내에서는 '정의당' 당명으로 자당 후보를 출마시키는 것에 대한 타 정당 및 단체의 이견이 드러났고, 또 한편으로는 대선 이후 진보정치 전반의 연합질서 구축 및 재편에 대한 공감대 역시 모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당이 현재 더 많은 세력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연대회의와 공동으로 당명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다.

 

지난 4월 10일 정의당이 당원 대상으로 발송한 문자에 따르면, 연대회의는 '연대와 협력이 이번 대선에 국한되지 않고 내년, 그리고 2028년까지 더욱 단단하게 이어져야 하는 데 공감대'를 모아냈고[각주:1] 정의당 역시 이에 따라 연대회의의 결속과 지속성을 위해 새로운 당명을 채택하기로 했음을 밝혔다. 다만 과거 녹색정의당의 사례처럼 선거 후 다시 정의당이라는 당명으로 회귀할 것인지, 혹은 새로운 당명으로 향후 활동을 이어나갈 것인지는 아직 미정인 상황이다. 앞서 정의당은 2016년 '민주사회당'으로의 당명 개정을 추진한 바 있으나 당시 당원총투표에서 부결되어 무산되었다.

정의당이 지난 4월 10일 당원 대상으로 발송한 문자 내용 중 당명 개정 관련 내용.

 

정의당 당명 개정의 건은 오는 12일 정의당 전국위원회와 13일 대의원대회에서의 채택을 앞두고 있고, 채택 시 당명 변경을 위한 당 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게 된다. 세바넷 및 연대회의의 핵심 슬로건이 '가자, 평등으로!'였던 만큼, 예상되는 당명으로는 '평등' 등의 키워드를 부각한 당명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의당 집행부와 주요 활동가들의 중론은 당명 개정을 통한 대선 공동대응이지만 당 내에는 당명 개정 반대 및 대선 출마 반대 의견 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국위원회와 당대회에서는 이에 대한 토론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와 동시에, 현재 연대회의에서는 경선 방식 및 각 정당 및 단체의 출마 여부를 조율 중인 상황이다. 주요 후보군으로는 권영국 정의당 대표, 한상균 노동자계급정당건설추진준비위원회(노정추) 상임대표 등이 거론된다. '거리의 변호사'로 알려진 권영국 대표는 민주노총 법률원장 및 민변 노동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작년 5월부터 정의당 대표를 맡고 있다. 한편 민주노총 첫 직선제 위원장을 역임한 한상균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민주노총과 당시 진보당을 포함한 진보 4당이 함께하는 '민중경선'을 제안한 바 있으며, 대선 이후로는 현재 노정추로 이름을 변경한 새로운 노동자정치운동 추진모임(새노추)의 상임대표를 맡아 오고 있다.

 

공동 경선은 각 단위에서 파견된 인원들이 함께 구성하는 경선관리위원회를 통해 진행되며, 각 당의 당원들을 비롯해 노동자·시민 대상 선거인단 모집을 통한 열린 경선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도모의 취재에 따르면 연대회의 측은 본선을 1달 앞둔 오는 5월 초순까지 경선 마무리 및 최종 후보 확정을 일정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에 앞서 4월 중~하순 사이 경선후보 확정 및 경선 일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점쳐진다.


조기대선,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계기로

작년 12월 7일, 여의도 국회 앞 집회에 함께한 진보 3당 당원들 및 체제전환운동 참여 단위 소속 활동가들. 출처: 녹색당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퇴진광장의 요구에 '사회대개혁'이 반드시 들어가 왔던 것에서 볼 수 있듯 불평등 해소를 비롯한 사회대개혁은 이미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 그리고 그 지지층은 "내란세력 청산 이후에 논의할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발본적 사회대개혁 요구를 대통령 교체의 하위 항목으로 소급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내란세력의 청산은 윤석열에서 이재명으로 대통령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로 표상되는 불평등과 차별의 시대를 종식하는 것에서부터 비로소 가능해진다. 차별금지법과 불평등 문제에 '적폐청산'이 먼저라며 "나중에"로 응대하던 문재인 정부가 정작 적폐청산에도, 사회대개혁에도 실패했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

 

작년의 제22대 총선에서는 독자적 진보정당이 모두 원외로 이탈하고 민주당과 종속적 관계를 맺은 진보정당만이 원내에 들어갔지만, 이들은 민주당의 자장(磁場)에 붙잡혀 현재도 진보정당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보당은 차별금지법 발의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작년 원내입성 이후 지속적으로 발의를 미뤄 왔고, 진보당과 사회민주당은 최근 우원식 의장의 개헌 제의에 환영의 의사를 밝혔다가 민주당 지지층의 비토에 직면하자 입장을 철회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중도보수'를 표방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우경화 시도 이후 한국 정치의 '왼쪽 방'은 비어 있는 공간이 되었다. 독자적 진보정치 진영의 대선 대응과 재조직화가 더욱 중요해진 정세가 찾아온 것이다.

 

한국 사회 향후 5년의 방향성을 규정하는 조기대선은 모든 정치세력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이벤트이지만, 진보정치에 있어 이번 조기대선 공동대응이 단순히 선거 국면에서만 이어지는 일시적 연대로 끝나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지속적인 민주당 종속성의 심화가 현재 진보정치의 무력화를 불러왔음을 상기한다면 '내란세력 청산'을 명목으로 한 민주대연합 노선의 부활 역시 경계해야만 할 것이다.

 

연대회의 참여 단위들은 대선 이후로도 2026년 지방선거, 2028년 총선까지를 함께 바라보며 진보정치의 재편과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함께 모색하고 있다. 대선의 결과와 향후의 전개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진보정치가 이전에 가 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걷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향후 진보 3당을 비롯한 독자적 진보정치 진영의 대선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