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투항의 정치를 넘어선다는 것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었던 배진교, 윤소하, 추혜선 전 의원이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책임 없는 투항의 정치, 진보정당운동의 역사와 함께 계속되어 온 종속의 정치를 과연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실종된 책임과 양심
2025년 1월 20일, 인천 지역 소재 언론인 K연합일보는 배진교, 추혜선, 윤소하 등 3명의 전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 예정이라는 뉴스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이틀 후인 1월 22일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공보국을 통해 "민주진보진영의 단결과 민주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입당을 선언했다. 정치적 영향력이 크지 않은 전직 군소정당 의원 3인의 당적 변경 소식이 사회적으로 그리 큰 뉴스거리가 되지는 못했지만, 소속 정당의 원외화 이후 재빠르게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꾼 이들의 '철새' 행보에 대해서는 그간 진보정당운동에 투신해 온 수많은 사람들로부터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배진교 전 의원이 속했던 정파인 '비상(구 인천연합 및 광주전남연합)' 그룹 소속으로 알려진 이혁재 전 정의당 세종시당 위원장은 개인 SNS에 게시한 글에서 이들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혁재 위원장은 "청춘을 바쳐 당에 헌신한 동지들과 몸과 마음을 내주며 당을 지탱해준 당원들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이들이 과연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을지" 지적하며, "그동안 받은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이들은 민주당에 입당할 게 아니라 현장에서, 지역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며 책임 없이 당을 이탈한 전직 의원들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혁재 전 위원장의 말처럼, 이들이 '자신들에게 의원직이라는 명예를 부여한 당원과 지지자를 무책임하게 배신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란 힘들어 보인다. 1997년 국민승리21과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래 수많은 당원과 지지자, 활동가들이 개인의 삶을 내려놓거나 과로로 쓰러지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진보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이다. 이들의 배신에 대해 진보정당운동에 헌신해 온 많은 정의당 당원들이 분노를 숨기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도모>의 확인 결과, 배진교 전 의원의 경우 정의당 의원들이 당의 방침에 따라 일괄적으로 중앙당에 납부해 온 후원금 역시 완납하지 않은 상태로 정의당에 탈당계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2024년 초 탈당한 류호정 전 의원 역시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임기의 9할 이상을 채웠음에도 당에 납부하기로 되어 있던 특당비 및 후원금을 여전히 납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당의 빚이 폭증한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보유한 패물을 팔아 당의 부채 상환에 보태고 있는 강은미 전 의원, 선거 이후 들어온 후원금의 상당수를 특별당비로 납부한 장혜영 전 의원 등과 특히 대조되는 행보이다.
투항으로 귀결되는 종속의 정치
이러한 투항은 진보정치의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윤소하 전 의원은 지난 보궐선거 당시 마찬가지로 진보정당 출신으로 곡성군수에 출마한 조국혁신당 박웅두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 함께해 정의당 내 논란을 야기했고, 추혜선 전 의원은 의원 임기가 끝난 후 재벌 대기업인 LG유플러스의 자문직인 비상근 상임위원을 맡으며 진보정당이 지향해 온 재벌개혁 및 경제적 불평등 해소라는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보를 보인 바 있다. 1
비단 국회의원 출신뿐 아니라 진보정당에서 주요 당직을 맡았던 많은 정치인들 역시 진보정당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탈당과 투항에 동참했다. 앞서 윤소하 전 의원을 선대위에 초빙했던 박웅두 전 정의당 농어민위원장이자 조국혁신당 곡성군수 후보는 2024년 1월 정의당을 탈당한 후 한국농어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다가 몇 달 지나지 않아 조국혁신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1년 사이 무려 3개의 당적을 보유했던 것이다. 이른바 '제3지대 신당론'을 주장하며 정의당을 떠났던 조성주, 배복주, 김창인 등도 도착한 목적지가 다른 곳이었을 뿐, 진보정당을 이탈한 과정과 방식은 이들과 유사했다.
물론 모든 역사에 이유가 존재하듯, 진보정당 정치인들의 이런 투항이 맥락 없이 단순히 개인의 정치적 선택만으로 이뤄져 왔다고 볼 수는 없다. 민주노동당 이래로 꾸준히 심화되어 온 진보정당 내의 민주당 종속적 경향성은 결국 투항 혹은 정치적 배반의 보편화로 귀결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번에 민주당행을 선택한 배진교 전 의원은 2018년 지방선거에 남동구청장으로 출마하면서 4년 전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의 지원유세 발언 및 사진을 인용하며 "남동구청장은 배진교뿐입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이는 당시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던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에 편승하는 전략을 차용한 것으로, 진보정당의 독립적 가치를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당내외의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편 배진교 의원은 비례대표로 당선된 후 2020년 당대표 선거 출마 당시 "민주대연합은 끝났다"며 "진보정당의 가치를 분명하게 들고 새로운 정치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만, 말과는 달리 이후로도 민주당과의 관계설정에 있어 종속적 경향을 보여 왔다. 이는 결국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의 비례위성정당 참여가 부결되자 당 지도부와 상의 없이 지역구 불출마를 결정하는 것으로 정점을 찍었다. 총선이 끝난 후 배진교 의원은 정의당에 탈당계를 제출했고 약 6개월이 더 지난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선언했다. 2
진보정당 내의 구 NL 계열('인천연합' 등) 그룹들은 대체로 이러한 민주당에의 종속을 주도하거나 방관해 왔지만, 이런 경향성이 반드시 특정 정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구 'AMC그룹' 및 '대장정' 출신의 PD 계열로 분류되는 박용진 전 의원은 2011년 진보신당 분당 당시 민주통합당에 입당했으며, 이후 강북구에서 재선 의원을 지내며 '법인세 및 소득세 감세' 등 과거 진보정당 소속이었음이 무색할 만큼의 경제적 우파 정책을 제시한 바 있다. 국민승리21에서부터 진보정당에 함께했으며 한때 진보신당 부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박용진 의원의 사례는, 이러한 민주당으로의 종속과 투항이 필연적으로 진보정치가 본래 표방하는 가치를 퇴색시키거나 우경화시키는 결과를 낳음을 입증하고 있다. 3
이런 상황에 대해, 현재까지의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 당의 지향과 내용을 중심에 놓는 정치를 해 온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이나 스타 플레이어들 개개인의 개인기에만 의존하며 방향성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결국 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행보가 투항으로 귀결되는 것을 막는 당적 방침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종속의 정치를 끊어내기 위해 향후 진보정당의 공직자들 자신은 정치인 혹은 명사임에 앞서 진보정당의 당원이고 활동가임을 더욱 명확히 해야 하며, 당 스스로도 명확한 노선과 당의 존재의의에 대한 재정립을 선행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암흑 속으로 돌진한다
일평생 진보정당운동에 노고를 바쳤으며, 대장암으로 투병 중 2012년 사망한 故 이재영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은 생전 남긴 마지막 글인 <노회찬, 주대환을 떠나보내며>에서 당시 진보신당을 떠나 통합진보당으로 향한 노회찬과 민주당으로 향한 주대환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남겼다.
"제 한 몸 살리겠다고 불량배의 사타구니 밑을 기는 것은 일시의 모면책일 뿐이다. 잔도를 불사르고 파촉(巴蜀)에 깃드는 것만이 장래의 출사를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독립적 정치세력임을 흔들림 없이 천명하고, 작은 영지(領地)나마 소중히 가꾸어 나가는 것이 현 단계 진보정당운동의 과제다. ...(중략) 다시금 20대 때와 같은 시적(詩的) 혼돈의 시대로 회귀했다. 이태리 시인 잠바티스타 마리노는 “기적이야말로 시인의 목표다”라고 갈파했다. 나는 암흑 속으로 돌진한다."
이재영은 민주당으로의 직접 투항을 선택한 주대환과 야권연대라는 이름 하에 독자적 진보정당을 떠나며 운동의 원칙과 가치를 타협의 대상으로 삼았던 당시의 노회찬을 모두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현재 국민의힘 성향으로까지 전향한 주대환과 한국 진보정당운동 역사상 최대의 실패로 귀결된 통합진보당의 사례를 되돌아본다면, 당시 이재영이 제시한 길은 험난하고 어려운 길일지언정 진보정당이 걸어갔어야만 하는 길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신노선' 또는 '새로운 선택'으로 규정지어지는 모든 정치적 선택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배신' 또는 '투항'이 될 수밖에 없다. 2012년 진보신당을 떠나 통합진보당을 창당한 진보신당 통합파들의 선택이 그러했고, 2015년 노동당을 떠나 4자통합에 합류한 진보결집+의 선택도 역시 그러했다. 그것이 결론적으로 배신과 투항이 될지, 진보정치의 혁신이 될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보수 양당으로부터의 분별정립과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전제로 시작된 것이 진보정당운동이었다면, 최소한의 독자성조차 포기하고 개인의 생존을 위해 '불량배의 사타구니 밑'을 선택한 이들이 스스로의 길에 '민주주의' '진보'라는 미사여구를 붙이는 것은 험난한 진보정당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모욕일 수밖에 없다.
많은 전직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이 여전히 정의당 내외에서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부활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은 전직 의원 3인의 출세주의적 투항과 더욱 비교된다. 강은미 전 의원과 장혜영 전 의원은 각각 광주시당 위원장과 마포구위원장을 맡아 지역에서부터 진보정당의 기반을 다시 일구고 있으며, 이은주 전 의원은 중앙당 정무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양경규 전 의원은 노동조합 교육과 팟캐스트 '붉은오늘' 등을 진행하며 평당원으로서 운동의 진흥을 위해 힘쓰고 있다.
진보정당에 남은 사람들이 책임 없는 투항을 항상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진보정당운동이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선의 명확성과 거대 양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상실한 행보의 귀결은 20년 만의 원외행이었으며, 그러한 종속의 주도자들 대부분은 진보정당과 그 당원들로부터 빌린 명예를 담보로 하여 민주당으로, 혹은 다른 어딘가로 이탈했다.
그러나 이들 개개인의 투항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포기한 진보정당운동의 본질적 물음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배진교, 윤소하, 추혜선 전 의원이 '차별과 착취로 가득한 지금의 세상이 정말 정당한가?'라는 물음을 과연 거대 양당의 내부에서도 던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박용진 등의 앞선 사례들은 그것이 그리 가능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그렇게 거대 양당 내에서 '통제된 진보'의 역할을 자임하는 사람들의 자리는 정세와 양당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이 보여 온 수많은 부족함과 실책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의 정치가, 더 나아가 체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진보정치가 계속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故 이재영 의장의 마지막 말처럼, 진보정당은 오늘도 다시 암흑 속으로 돌진한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각주
- 기업 저격하던 추혜선, LG유플러스로... 정의당 "신뢰 저버려" https://www.shina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7302 [본문으로]
- 배진교 "민주대연합은 끝났다"…박창진 "민주당 동참하는 길 만들어야" https://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500 [본문으로]
- '증세' 말고 '감세' 택한 박용진 "김대중·노무현도 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5484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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