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국민연금 개혁, 어디쯤 와 있나?
여야 합의로 18년만에 처음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 개혁안. 그러나 합의서의 잉크조차 마르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개혁안에 대한 다양한 방향에서의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의 글을 통해 이번 연금개혁안의 세부 내용과 문제점, 향후의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지난 3월 21일 국민연금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2023년 제5차 국민연금재정계산을 앞두고 시작되어 3년 가까이 진행된 이번 국민연금 개혁 관련 논의가 일단락되었다. 내란 사태의 와중에도 거대 양당의 합의로 연금개혁안이 통과된 것에 언론과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18년만의 국민연금 개혁안 국회 통과라는 의미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고, 그 와중 여야 합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전하며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무용담'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의 인터뷰 기사며, 소셜 미디어의 포스팅도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법안 통과 이후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국민연금 개혁안'으로 불리우는 이 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고는 하나 실상 반대 40인, 기권 44인이 직간접적으로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에도 여야를 막론하고 여전히 당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30대, 40대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한 목소리를 내며 이번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의견을 내놓고 있고, 국회 밖에서도 여러 방향으로의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이 글은 이번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정리하고, 그에 대한 평가와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국민연금 개혁안, 이에 대한 비판과 우려
연금제도는 사회보험제도의 일종으로, 국민들이 일정한 나이가 된 이후에도 적정한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개인이 노년에도 존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노후소득보장제도라 할 수 있다. 연금개혁은 큰 틀에서 연금제도 본연의 정책목표라 할 수 있는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보완하려는 목표,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막대한 사회적 자원이 투여되는 제도의 성격을 고려하여 제도의 재정적,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시행된다.
사회적 연대에 기반한 제도의 특성을 갖고 있는 사회보험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제도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은 사회적 연대의 조건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중에서도 세대간 연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연금제도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는 연금제도 개혁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애초에 연금제도가 자신의 정책적 목표를 온전히 수행하고 있다는 전제가 적정 수준 충족되어야 비로소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따지는 것이 의미있다는 점 또한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이해와 평가의 측면에서 강조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연금개혁 논의는 크게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으로 구분되어 논의되어 왔다. 모수개혁이란 연금제도의 특성을 결정하는 주요 지수들인 연금보험료과 연금보험금, 연금가입 연령 및 보험료지불 상한 연령, 연금 수급개시 연령 등에 대한 조정을 통해 연금제도의 기능을 수정 및 보완하는 작업이다. 반면 구조개혁은 노후소득 보장과 관련된 제반 제도들, 즉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여타의 제도적 장치들을 국민연금 제도와 함께 노후소득 보장 제도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각 제도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조정을 시도하는 등 기존 제도의 틀을 넘는 개혁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 통과된 국민연금 개혁안의 경우 연금보험료율을 기존 9%에서 13%로, 연금보험금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소득대체율을 기존 2028년까지 40%로 인하하기로 한 데에서 43%로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으로 큰 틀에서 봤을 때 모수개혁에 해당한다. 이외에도 출산 크레딧을 첫째아이에게도 12개월 적용, 군복무크레딧 또한 기존 6개월 12개월로 조정하는 크레딧 확대 방안, 더 폭넓은 가입 유인을 위해 지역가입자 가운데 보험료 지원대상을 확대하는 방안, 마지막으로 연금지급에 대한 국가의 보장의무를 법령화하는 등의 방안이 포함되었다. 정부는 이번 개혁으로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보다 높이고, 미래세대 부담을 대폭 경감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에 더해 추가적인 재정안정화 조치와 구조개혁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 연금특위를 설치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번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는 큰 틀에서 다음 세 가지 정도의 주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이번 국민연금 개혁안이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국민연금제도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고 미흡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는 평가인데, 그 중 하나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43%로 올라갔라고 하나 OECD 기준으로 산출하면 33.6%의 소득대체율로 OECD 평균치인 42.3%에 여전히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문제에 대한 보완을 위해 국회에서 운영한 공론화위원회에서 소득대체율 50%를 대안으로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와 정치권의 논의과정에서 43%로 후퇴했다는 것이다. 본 개혁안이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정책목표의 달성에도 미치지 못하고, 민주적 의사결정의 절차적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개혁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이다.
OECD 국가들 가운데 노인빈곤율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노인빈곤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노후소득보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할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로서 본 개혁안이 적절하지 않은 개혁안이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추후 논의될 연금제도 구조개혁 과정에서 다른 제도와의 통합적 접근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만 할 사안이다. 1
둘째, 앞서와 반대로 이번 국민연금 개혁안의 재정안정화 효과가 충분치 않다는 비판이다. 재정안정화 효과를 논의할 때 주로 쓰이는 지표는 연금기금 고갈 시점인데, 보건복지부는 연금개혁안 설명자료를 통해 이번 연금개혁으로 기금이 현행 2056년 대비 15년 늘어난 2071년까지 유지될 수 있을 전망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에 따라 이는 더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으나, 결국 기금이 고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2
이와 같은 비판은 특히 보험료를 가장 오래 더 내야 하는 청년 세대가 국민연금을 받을 시기에는 기금이 소진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지면서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불평등성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즉, 이번 개정안이 개혁이 아니라 기성세대의 책임을 미래세대에 전가하는 '개악'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기금고갈을 막고 세대간 불평등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로 제기되는 방안이 소위 '자동조정장치'라는 것이다. 연금액의 결정에는 전년도 물가상승률만큼 오르도록 설계되어 연금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막는 장치가 있는데, 이 물가상승 반영률을 연금 가입자 수와 기대여명 변화율을 고려하여 조정하도록 하는 것이 자동조정장치의 골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가입자 수가 줄어들고 기대여명이 증가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실질연금수령액을 감소하게 하는 자동삭감장치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개혁에서 충분치 않다고 비판받고 있는 노후소득보장 강화 기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방안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셋째, 위 둘째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국민연금 개혁안 도출과 합의를 위한 논의 과정에 청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탓에 사실상 청년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세대간 불균형이 심각한 개혁안이라는 평가다. 현재 5-60대 세대가 낮은 보험료율을 적용받은 기간이 길고 2-30대 세대나 더 어린 청소년 세대의 경우 높아진 보험료율 적용을 받는 기간이 이전 세대보다 길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번 개혁으로 인해 청년세대의 부담이 가중되는 측면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연금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더 오랜 기간 더 많이 내는 이 세대가 더 긴 시간동안 더 받게 된다는 점은 충분히 부각되지도, 설득력을 갖지도 못한다.
이와 같은 우려와 불안감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연금제도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을 기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주장이 향하고 있는 지점은 여전히 우려스럽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로 내달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연금의 축소지향 개혁이 필요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앞서 언급한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서라도 재정안정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둘은 모두 연금제도의 존재의의이자 핵심적 정책 목표인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후퇴시키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는 방안이다.
연금개혁? 노후소득 보장 개혁!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연금개혁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번 모수개혁은 우선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정책 목표도 온전히 달성하지 못하고, 지속 가능성은 여전히 불안하며, 게다가 세대간 불평등의 문제를 방기한다고 비판받는 우리 연금 제도에게는 어떤 경로와 미래가 남아 있는가?
우선 이번 연금개혁에서 미진했던 부분들에 대한 보완을 통해 정책 개선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산과 군복무에 대한 크레딧 강화는 특히 청년세대에 대한 지원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바람직한 방향의 개혁안이다. 하지만 크레딧 부여가 결국 정부 재정지원 방안의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크레딧 사유 발생 시점에 정부가 재정지원을 함으로써, 제도개혁의 재정 부담을 또다시 미래세대에 떠넘긴다는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명목소득대체율과 실질소득대체율 사이 격차의 원인 가운데 하나인 연금 가입기간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도 이와 같은 크레딧 제도는 확대되어야 하며, 저임금 노동자의 보험료 지원, 특수고용·플랫폼·원청 기업의 사용자 책임 강화 등의 조치가 현행 두루누리 제도 강화 등의 방식으로 확대·강화되어야 한다. 3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함께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60세 정년이 일반적인데,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65세로 되어 있어 사실상 5년+@의 수입 공백기('소득 크레바스')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 명예퇴직 등으로 일자리 상실이 빨라져 실질적 공백기가 더욱 길어지는 최근의 경향을 고려하면, 수입 공백기를 메우기 위한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향후 노동정책과 연계된 연금개혁 방안을 기획하여 정년 시점과 연금 수급 시점을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정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번 연금개혁은 국민연금에 대한 모수개혁 차원에서만 진행되었음을 확인한 바 있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주요 복지국가들은 대부분 다층적인 연금체계를 가지고 있다. 한국도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기여에 의해 운영되지만, 퇴직연금은 사용자의 기여에, 기초연금은 세금에 기대어 운영되고 있다. 이들 세 개의 연금은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큰 틀에서 모두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제도적 정합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다.
예를 들어 퇴직연금의 경우 전체 노동자 수 대비 30% 수준의 가입률로 매우 낮은 수준이며, 일시금 위주로 활용되고 종신연금은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향후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적 운영 등 퇴직연금의 노후보장기능을 확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고려되어야 한다. 기초연금 역시 국민연금의 보장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나, 퇴직연금에 비해 넓은 대상에게 지급하는데 반해 보장 수준이 낮아 국민연금과의 정합성이 부재한 문제가 있다. 따라서 노후소득보장제도의 중추 역할을 하는 국민연금의 소득보장 기능이 강화되는 정도에 따라 빈곤노인에 대한 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기초연금의 장기적인 개편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논의를 고려했을 때 현재의 국민연금 개혁은 한 발 더 나아가야 함이 명확하다. 국민연금제도 내부에도 여전한 개혁과제가 남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국민연금제도를 포함하는 노후소득보장 제도 전반에 걸친 제도개혁의 과제가 남아있다.
다시, 왜 연금인가?
다시, 왜 연금인가?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를 할 때 꼭 필요한 본질적 질문이다. 모든 제도개혁의 필요성은 그 제도의 존재 이유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연금제도 역시 노후소득보장이라는 정책목표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노후소득보장과 노인빈곤의 문제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도입과 실행을 국가가 포기하지 않는 한 연금제도의 정책목표를 우선 순위에 두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노인 소득보장의 문제와 노인빈곤의 문제에 제도적 개입이 사라진다면 이 문제는 결국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적 이전을 통해 해결해야만 하게 되고,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척박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후소득과 노인빈곤의 문제를 국가와 사회가 방치한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연금의 지속 가능성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 즉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걱정해야만 하게 된다. 이는 현 청년세대와 미래세대에 있어서도 결코 좋을 수 없는 방향이다. 미진한 현행 개현안을 넘어선 근본적 연금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인 이유이다.
김진석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 등의 명함을 들고 다닌다.
요즘은 기후위기 시대 복지국가 고쳐쓰기에 대해 주로 고민하고 있다.
각주
- 60살 이상 한국노인 40% '빈곤'... 또 OECD 1위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1120984.html [본문으로]
- 복지부 "국민연금 기금수익률 1%p 높아지면 2071년까지 기금 유지" https://www.p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6133 [본문으로]
- 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사업주 및 노동자들의 사회보험료 일부를 지원해 주는 제도. https://www.moel.go.kr/news/cardinfo/view.do?bbs_seq=2024050128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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