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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반도체특별법 논란, '재명식 초과근무'는 위기의 해법이 아니다

by Domoleft 2025. 2. 10.

[경제] 반도체특별법 논란, '재명식 초과근무'는 위기의 해법이 아니다

'중도 확장'과 '반도체산업 위기 해소'를 명분으로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적용 제외를 밀어붙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그러나 '재명식 초과근무'는 도대체 어떤 위기에 대한 해법일 수 있는가?


반도체특별법 국회 토론회에서 발언 중인 이재명 대표. 출처: 더불어민주당

 

지난 3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주최로 진행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제외 어떻게?> 토론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반도체산업에 주 52시간과 각종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 외의 제도를 추가로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며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에 대한 물꼬를 텄다. 토론회에 참석한 반도체 노동자들이 "이미 다양한 유연근로제가 현행법에 규정돼 있어 반도체특별법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고 반박했지만, 이재명 대표는 "재계 요구에 할 말 없더라" "필요한 사람이 있다지 않냐" "저는 그 이야기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 부당한 거냐"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고 말하며 사실상 재계의 주장에 힘을 싣는 발언을 했다.[각주:1]


당내 반발에도 '재명식 초과근무' 논의 밀어붙이는 이재명

애시당초 반도체특별법 논의에 있어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는 핵심이 아니었다. 지난해 반도체특별법을 대표발의했던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법안을 만들 때) 삼성을 포함한 업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필요한 요구를 충분히 수렴하고 반영했다"며 "그 과정에서 주 52시간 근로제가 언급된 적은 없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주 52시간 근로제는 전혀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작년 11월 11일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를 담은 반도체특별법을 발의한 이후 반도체 산업 지원 논의가 왜곡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각주:2]

 

그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 내에서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 논의를 강행했다. 이는 조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의 지지율이 답보 상태를 유지하자 우경화를 통한 '중도 외연확장 전략'을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1월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12월의 가상자산 과세 유예, 올해 1월 기본소득 정책 폐기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정치적 행보인 셈이다. 보수언론의 대명사인 조선일보조차 지난 4일 기사에서 "너무 변해서 낯선 이재명"이라는 표현으로 이재명 대표의 우경화를 당혹스럽게 평가했다.[각주:3]

김태년 의원의 반도체특별법 주52시간근로제 예외 적용에 대한 SNS 게시글. 출처: 김태년 의원 페이스북

 

이재명 대표는 2024년 11월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른바 '재명세'로 불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의 폐지를 당내외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했다. 당시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등의 다른 야당은 물론 지도부에 소속된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15명 중 6명이 금투세 시행을 주장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야가 합의한 법안이고, 기재위에서 이미 검토를 다 한 것인데 이제 와서 이를 또 연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각주:4]

 

당시 금투세 폐지는 당 지도부는 물론 소관 상임위원회 의원까지 배척하고 이재명 대표가 밀어붙인 결정이었다. 이러한 결정 형태는 이번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고 있다. 지난 3일 토론회에서 일부 의원들이 "(기존 제도인) 재량근로제를 쓰면 되지 않나"(진성준 의장) "원래 반도체특별법 논의는 화이트컬러 이그잼션(주 52시간 예외 적용)에 대한 게 아니었다"(김주영 의원)고 반발하자 이재명 대표는 말을 끊고 만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익명의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 문제는 반도체 위기의 올바른 진단도 아니고 제대로 된 해법도 아닌데, (이 대표가) 막연하게 '산업계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면서 논의가 왜곡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당 내의 강력한 반발 속에서 이재명 대표가 우경화를 위해 주 52시간 적용 예외 논의를 밀어붙이고 있는 모습이다. 일부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은 왜 이재명 대표에게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의 책임을 돌리냐고 말한다. 하지만 주 52시간제가 애초부터 반도체 특별법 논의의 핵심이 아니었고,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174석의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강력한 반대가 제기되는 상황 속에서 이재명 대표가 이 논의를 주도하고 통과시킨다면,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는 이재명 대표가 주도한 '재명식 초과근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삼성전자의 위기, 이재용과 경영진이 문제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전자 본사. 출처: SBS

 

삼성전자에 발생한 위기는 주 52시간제 때문이 아니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20년 정도 일한 한 엔지니어는 많은 사람이 주 52시간제가 문제라고 지적한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52시간제가 문제라면, 52시간을 꽉 채우고도 일을 더 하려는 사람이 90%는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일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차서 못 하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우리는 포괄임금제라 월 16시간까지는 초과근무 해도 시간외수당이 없다. 그러니까 젊은 직원은 ‘내가 왜 공짜로 일을 하지?’라며 40시간만 채우면 가버린다. 52시간제가 문제가 아니라 차라리 그 16시간에 대해 풀어주면(시간외수당을 지급하란 뜻), 10시간이라도 더 일하려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각주:5] [각주:6]

 

애시당초 삼성전자 위기론이 왜 제기되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24년 10월 삼성전자가 개발한 5세대 HBM3E 반도체 제품의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통과가 지연된 이후 AI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경쟁력 부재가 드러났고, '삼성전자 위기론이 현실화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론에 따르면 이는 삼성전자 경영진이 2019년에 HBM(고대역폭 메모리) 개발을 일시 중단한 결과다. 이로 인해 2024년 SK하이닉스가 HBM3 및 HBM3E 기술로 시장을 선점하는 결과를 낳았고, 삼성은 기술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며 위기론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와의 기술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것도 위기로 지적된다.

 

그 이유로는 '자율성과 도전정신이 사라진 비효율적 조직문화'가 원인으로 지적받는다. 위에서 인용한 삼성전자의 엔지니어는 "과거에는 개발 자율성이 보장되었지만, 최근에는 안되는 이유를 먼저 찾는 분위기로 변했다. 설계팀의 자율성이 줄어들면서, 결정이 사장 레벨까지 올라가야 실행될 수 있다. 이는 개발 속도를 늦추고, 현장 엔지니어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고 말했다. "요즘은 ‘무언가를 개발하겠다’라고 하면, 개발이 안 될 이유를 100가지도 넘게 찾아낸다. 그렇게 이유를 다 찾다 보면 개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통과가 지연되었던 삼성의 HBM3E(5세대 고대역폭메모리) RAM. 출처: 삼성전자

 

기술보다 재무 라인이 우위라는 평가도 했다. "사업지원TF. 흔히 'HH'라고 부른다. 우리가 "서초에 보고 올린다"고 얘기할 때, 그 서초는 HH이다.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부문장이 결정할 수 없는 것도 상당히 많다. 애플이 2019년 아이폰에 삼성전자 모뎀을 넣고 싶어 했다. 당시 시스템LSI 사장은 하고 싶어 했지만 서초에서 "노" 했다. 아이폰은 갤럭시의 경쟁자인데, 거기에 팔면 아이폰 경쟁력이 좋아질 거라고 본 것. 그때 공급했으면 우리가 (퀄컴을) 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삼성전자의 연봉 경쟁력 하락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요즘에는 애플 같은 미국 기업으로 제일 많이 가는 것 같다. 현대에 가신 분도 있고 스타트업 가신 분도 있고 대만 회사로 가신 분도 있다. 반도체 인력에 대해서는 대우를 잘 해주니까 이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역시 미국을 제일 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미국 기업에 가면 적어도 연봉이 2~3배는 오르니까. 성과급(PS)을 포함해도 예전처럼 압도적이지 않아, 직원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삼성전자 출신의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은 "TSMC 성공은 '고연봉 결사대'가 해낸 것"이라며 주 52시간 적용 예외로 삼성전자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다. 주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 사람들은 일하지 않을 것이다. 신입사원 지원이 줄고 능력 있는 이들은 다 나갈 것이다. 남아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번아웃이 오거나 다치거나 태업하게 될 것이다. 반도체는 R&D부터 생산까지 모두가 자기 역할을 하면서 만들어진다. 하나만 빠져도 제품이 나올 수 없다. R&D라는 한 단계가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고 말했다.[각주:7]

 

김상철 경제평론가는 "삼성의 문제는 복잡하지 않다. 결국 경영진의 책임"이라면서 "지난 10년 동안 삼성전자의 매출 증가율은 달러 기준으로 연평균 1%에 불과했다. 그 이전 15년 동안에는 연평균 17%를 넘었다.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 기업문화가 문제라면 최고경영진은 그런 기업문화를 바꾸고 의사결정 체계를 단순화하며 혁신을 주도할 수 있어야 했다. 문제의 핵심은 최고경영진의 능력이다. 등기임원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선대 회장이 쓰러진 2014년 이후 사실상의 총수 역할을 이미 해왔다. 10년이 지났고 이제 능력과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평가했다.[각주:8]

2월 5일 불법승계의혹 관련 항소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걸어나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출처: 한겨레


'재명식 초과근무'는 어떤 위기도 해결할 수 없다

국회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이재명 대표. 출처: 뉴스1

 

정리하자면, 삼성전자가 맞이한 위기는 단기적으로 경영진의 판단 실수로 인한 투자 중단, 장기적으로는 조직 문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임금 등 노동자 처우 문제도 지적된다. 오히려 52시간제 시행을 하지 않을 경우 삼성전자에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 모든 책임은 투자에 대한 판단과 조직 혁신에 있어 총체적으로 실패한 이재용과 경영진에게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오히려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 주장에 동참하는 것은 삼성 경영진들의 명백한 책임을 돌리기 위한 면책성 주장에 영합하는 것으로,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여러 업계 관계자의 비판을 다시 확인해 보더라도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는 삼성전자 위기의 본질이 아니다. 단기적 실패든, 장기적 문제든 모두 이재용을 비롯한 삼성전자 경영진의 책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재명식 초과근무'를 한다고 삼성전자의 위기가 해결되는가? 이재명 대표가 노동자를 대변하리라는 기대는 애당초부터 갖지 않았다. 다만 우경화를 할 것이라면 최소한 자본주의의 상식에라도 맞는 '제대로 된 우경화'를 하길 바란다.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의 지적까지 갈 필요도 없다. 보수적 금융권과 업계 관계자의 평가라도 반영한다면 '재명식 초과근무' 같은 발상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울러 이재명 대표에게는 대선에 대한 조급증을 버리길 조언하고 싶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동조한다고 국민이 대통령이 되도록 밀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작년 말부터 수많은 우경화를 거쳐 왔음에도 이재명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은 것으로 이미 충분히 입증되어 왔다. '재명식 초과근무'는 지지율의 위기에도, 삼성의 위기에도 전혀 유효한 해답이 아니다.


오준승

전환 서울 회원. 정의당 청년 부문에서 활동해 왔다.

진보정당운동에 필요한 정책 공부를 위해 노력 중이다.


각주

  1. 매일노동뉴스 “반도체특별법 욕 먹어도 한다” 이재명 대표 '답정너' 의지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014 [본문으로]
  2. 한겨레, '반도체 특별법'은 어쩌다 '주52시간 예외' 논의로 변질됐나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81135.html [본문으로]
  3. '52시간 예외' 설득… 너무 변해서 낯선 이재명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5/02/04/ZZG2F4D765GKXOS5P4RJLM6UAY/ [본문으로]
  4. 민주당 기재위원 15명 중 6명만 금투세 찬성…두달 전과 달랐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9224 [본문으로]
  5. 20년 반도체맨이 말하는 삼성전자 위기론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41018/130244183/1 [본문으로]
  6. HBM부터 시작된 삼성전자 위기론…돌파구 있나 https://m.yna.co.kr/view/MYH20241020000600641 [본문으로]
  7. "TSMC 성공은 '고연봉 결사대'가 해낸 것…반도체 '52시간' 풀면 인재 떠나" https://news.nate.com/view/20250209n01370 [본문으로]
  8. 삼성전자 위기론, 책임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https://www.asiae.co.kr/article/202411011621466988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