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에이즈, '미국의 침략'? - <한겨레>를 통해 돌아본 1980년대 한국의 에이즈 인식
에이즈(AIDS) 감염인들의 인권은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핵심적 의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러했을까? 1980년대 <한겨레>의 에이즈 관련 보도를 살펴보며 과거 사회운동의 과오를 되짚고, 지금 우리의 길을 함께 고민해 보자.
'진보정치'는 무엇일까. 진보(進步)라는 말을 그대로 옮기면 '걸음을 나아간다'는 의미이고, 그렇다면 이는 결국 '현재 상태를 지양하고, 끊임없이 나아감을 추구하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보정치의 계보는 이어지더라도 그 내용과 방향성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고, 그 결과 과거에 했던 이야기들이 현재에 와서는 상당히 민망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 <한겨레>의 에이즈 보도
몇 년 전, 필자는 논문공모전에 제출할 논문을 쓰며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뒤적거리다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1980년대 후반, <한겨레>의 에이즈(AIDS) 1관련 보도 논조가 다른 신문들과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당시 한겨레의 에이즈 관련 보도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에이즈 전파에 있어서 주한미군의 책임을 특히나 강조하며, 주한미군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가 강하다는 점이다. 1988년 10월 5일 <동아일보>와 한겨레에서 주한미군 중 AIDS 환자와 HIV 감염자 수에 대한 보도가 이루어졌다. 이때 동아일보는 주한미군이 한국의 보건사회부에 전달한 수치인 27명을 표제로 삼으며('AIDS 감염자 주한미군에 27명') 실제 감염자가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는 단서는 달면서도 그대로 보도한 반면, 같은 날 한겨레는 '주한미군 AIDS 감염자 50명'이라는 표제로 기사를 보도하여 2, '주한미군에 정통한 내부 관계자'라는 출처로 주한미군의 발표를 부정하며 주한미군이 정확한 실태를 감추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3
이에 더해 한겨레는 한국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여성 12명 중 10명이 주한미군을 상대하는 성매매 여성이라는 점을 들어 주한미군이 에이즈 확산의 원인임을 강조하며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겨레는 다음 날 비슷한 논조로 한 번 더 보도를 하며 표제를 'AIDS 국내확산 주한미군 큰몫'으로 잡아 주한미군이 AIDS 방역에 있어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4
그리고 한겨레는 1988년 5월 18일 '외국인 상대 여성이 제일 많아'라는 표제의 보도나, 1988년 6월 5일 'AIDS 항체양성자 또 발생. 외국인 상대 접대 여성'이라는 표제의 보도와 같이 외국인을 상대하는 성노동자들의 감염이 많다는 사실을 표제에서부터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예 1988년 8월 9일에는 'AIDS를 자주적으로 막자. 미군 검역ㆍ한미행협 개정으로 대처해야'라는 사설을 4면에 실으며 에이즈가 제3세계의 "풋풋한 건강성"을 위협하고 있으며, 미국의 현역 장병 중 에이즈 감염자가 많은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우리 곁에 살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위협임을 강조하고 있다. 5
한겨레의 에이즈 보도가 가지는 두 번째 특징은 바로 필리핀의 에이즈 경험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 역시 미군 기지가 위치한 나라로서, 에이즈가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전파되고 있었으며, 이를 주요 논거 중 하나로 한 미군 철수 운동이 발생하고 있던 나라였다. 상술한 동아일보나 <경향신문>, <매일경제>에서는 관련된 보도를 찾아볼 수 없지만, 유독 한겨레만은 이러한 사실을 1988년 한 해 동안 직간접적으로 5회나 언급하고 있다. 한겨레는 당해 내내 이러한 보도들을 통해 주한미군이 AIDS 전파의 원인이며 위험요소라는 점을 강조하고, 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논조를 설파했다. 6
에이즈, 미국의 침략?
이는 1980년대 한국의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였을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1960~70년대 내내 한국은 북한과의 대치와 군부독재의 강화라는 조건 하에서 68혁명 이후 사회운동의 확산이라는 전세계적 흐름에서 비껴나 있었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 운동이나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80년대를 맞게 된다. 따라서 "1980년대 동성애와 관련된 기사들의 상당 부분은 해외토픽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7, "이 때문에 한국사회의 대중적 관념 속에서 동성애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발견되는 '신기한 일'로서 존재" 8하게 된다. 즉 동성애자는 에이즈가 한국에 들어오던 1980년대 중반 당시 한국에서 가시화된 존재도 아니었으며, 당연히 한국의 기존 사회를 위협할 만한 세력으로 인지되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에이즈를 성적 문란과 동성애라는 타락의 결과로 보는 시각은 이미 '수입'되어 있었지만, 그 타락은 '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에이즈가 한국에서 전파되던 양상은 이를 더 강화시켰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에이즈 환자가 검진된 것은 1985년 6월 28일인데, 해당 환자는 한국에 장기 체류 중이던 미국인 교수였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는 주한미군 중 에이즈 환자가 발생되어 미국으로 송환되었다는 사실이 3주 뒤에야 알려져 보도되었으며, 한국에서 감염된 첫 HIV 바이러스 양성판정자는 다음 해인 1986월 11월 진단을 받은 동성애자 남성 2명이었다. 9 이어 한국인 간 HIV 감염은 1987년 9월에야 등장하였는데, 이태원에서 이른바 '접대부', 즉 성노동자와 성관계를 한 20대 남성이었다. 10
이전까지는 주로 외국인과 성관계를 한 사람, 특히 성노동자에게서 양성반응이 나왔지만, 이 시기가 되면 처음으로 한국인 간 감염 사례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조차도 심지어 외국인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발생하였다. 즉, 한국의 에이즈 전파는 "외항선원이나 윤락여성을 통해 외국에서 유입되는 양상을 보이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남성동성애자에서의 토착화가 이루어졌"다. 11 이는 주변부 국가의 일반적인 에이즈 전파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12
결국 HIV 바이러스 전파 초기였던 1980년대 한국에서는 HIV 바이러스 전파의 원흉을 지적함에 있어서 성소수자보다 성매매나 외국인이 지목받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는 미군 부대가 존재하는 지역인 이태원, 동두천, 의정부 등의 성매매, 즉 '기지촌 양공주'로 표상되는 미군 대상 성매매와 HIV 바이러스의 연관성이 부각된다.
또한 '동성애자' 역시 당시로서는 미국과 별개의 이미지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앞서 본 것과 같이 동성애는 '외국의 신기한 일'과 같은 논조로 소개되는 일이 많았고, 이러한 기사에서 "동성애는 새롭고 이상하고, 우리의 문화와는 거리감이 있는 것으로서 다루어졌다. 경악하는 독자의 위치는 자연스럽게 그 반대에 놓이게 되었으며, 이렇게 동성애를 '새롭게' 재발견하며 놀라워 할 때마다, 그 반대편에서 우리의 전통 또한 동시에 이성애 규범적인 것으로 '새롭게' 재발견되어 왔다." 그 결과 한국 사회 내부의 동성애는 마치 화물선에 붙어 온 해충처럼 외국에서 들어온 '징그러운 것'으로 취급되었고, '외국의 문화에 의해 한국의 사회문화가 오염되고 있다는 증거'로서 다루어졌다. 13
즉 1980년대 당시 에이즈는 동성애나 문란한 성생활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되면서도 동시에 '외세의 것'이라는 인식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주한미군은 외국의 문란한 성문화를 들여오는 주체로 인식되고, 곧 에이즈에 대한 문제인식은 에이즈 감염 파악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주한미군의 권력에 대한 문제인식으로 쉽게 연결되었다. 그리고 이는 SOFA(주둔군 지위에 대한 한미행정협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주요한 논거로 사용되었다. 이는 비단 한겨레뿐만 아니라 당시 시민사회가 어느정도 공유하고 있었던 인식이었다. 1988년 결성된 'AIDS 추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범시민 대책토론회를 개최하여 한국의 에이즈 전파가 서구와 같이 동성애자나 마약중독자 중심이 아니라 주한미군과 외항선원, 그리고 성매매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파되고 있다고 언급하며, 주한미군을 '에이즈의 탄약고'로 묘사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났던 사례는 바로 1988년 10월 12일, 여성단체들과 공대위 중심으로 열린 '미국 도색매춘문화 및 에이즈추방 결의대회'였다. 이 대회는 한국에 도색문화, 매춘문화를 퍼트리는 원인을 주한미군과 미국 영화로 규정하였으며, 미국의 타락한 문화를 통한 제국주의적 침략으로부터 한국의 민족자주성을 지켜야 에이즈도 방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이를 위해서 대회의 주최자들은 주한미군의 에이즈 검사 의무화와 에이즈 검사 양성 판정 외국인의 즉시 본국 송환을 주장했고, 미국 영화를 미국 영화사들이 직접 배급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미국 영화 안 보기 운동'을 호소했다. 14
참고로 동아일보의 이 공대위 활동에 대한 보도는 1988년 한 해 동안 3~4회에 그친 반면, 한겨레는 관련 내용을 1988년 한 해 동안 무려 약 12차례나 보도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표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당시에도 한겨레는 진보적인 언론을 표방하며 시민사회와 큰 접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당시 한겨레는 에이즈에 대한 시민사회 일각의 이러한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하였고 또한 재생산하는 역할을 했다.
그저 민망해하고 끝낼 수는 없다
이러한 보도와 논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주한미군에 대한 한겨레의 비판은 현재도 일정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동아시아 역내 평화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특권적 지위를 한국인에게 체감시키고, 한 지역의 권력구조를 왜곡함으로써 방역이나 치안 유지 같은 행정작용을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해외 주둔 미군은 방역에 관해 비협조적이고, 현지인들의 안전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 왔다.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고, 그에 맞선 투쟁의 필요성 또한 분명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한겨레의 이러한 보도들이나 당시 한국 시민사회의 이러한 태도를 옹호할 수는 없다. 이 당시 '진보언론' 한겨레는 질병과 감염인의 인권에 대한 고민 없이 질병에 대한 공포를 발산하는 것을 통해 에이즈라는 질병을 '외부의 적'과 나란히 위치시킴으로서 손쉽게 운동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충분한 고민 없이 관습에 얽매여 손쉬운 태도를 취한 결과 감염인에게 찍힐 낙인이나 소수자 인권에 대한 고민과 조심성은 찾아볼 수 없었고, '동성애'를 외세에서 들어온 '도색문화'로 바라보는 시각을 숨기지 않으며 이를 '정화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에 동참했다.
결과적으로 1980년대의 한겨레는 '우리는 불의와 부정에 대한 비판자로서 봉사하며 정치권력 등에 의한 인권침해를 파헤친다.'는 자사의 윤리강령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한겨레나 시민사회의 에이즈와 성소수자에 대한 태도는 199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야, 진보적인 시각으로 성소수자를 바라본 해외의 저술들이 소개되고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나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 등의 활동으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가시화되는 과정을 통해 성소수자 운동이 시민사회 내에 서서히 편입되며 점진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 당시 한겨레는 진보언론으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겨질 분명한 우를 범했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이 사례를 마주하는 방식이 단순히 과거의 활동가들이나 민족주의자들을 뒷담화하는 정도의 방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존의 보수적인 관념을 비판적으로 고민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각에 의존하여 '먹힐 만한 주장'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우를 되풀이할 가능성은 우리에게도 항상 존재한다.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작년과 재작년, 진보당과 건설노조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의 현수막을 게시했다가 사과했던 것을 떠올려 보자. 건설현장에 이주노동자가, 특히 노동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증가하며 노동 조건이 동반하락하고 윤석열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늘리면서 건설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노골적인 태도를 보여왔음을 고려하였을 때, 진보당과 건설노조의 문제의식은 유효하며 해당 현수막의 내용이 현장의 일반적인 여론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직면한 현장의 배타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운동이 눈을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해당 현수막이 잘못된 곳을 공격하고 있고, 극우의 전략에 놀아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특히 광장의 열기가 뜨거울수록, 기존의 보수적인 관념에 기반한 '급진적으로 보수적인' 요구들 또한 함께 분출하게 된다. 이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광장이 공유하고 있는 속성이고, 지금 열린 퇴진광장 역시 다르지 않다. 비상행동 집회의 광장에서 발언한 일본 시민에 대해 다음 카페 '여성시대'가 자신들이 보낸 푸드트럭 앞에 '외국인에게는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플래카드를 세워 둔 것이 대표적이다. 사회진보를 이야기하는 우리가 취해야 할 적절한 입장과 배제하고 날을 세울 입장을 선별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며, 그 열기에 참여하면서도 더 나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15
그렇기에, 과거 운동의 잘못들을 보며 지금의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그 어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손쉬운 길을 경계하고, 자신의 발언과 주장이 기반하고 있는 곳을 지속적으로 의심하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고, 끊임없이 나아감을 추구하는' 진보정치를 만들어 나가는 활동가로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 이 글의 일부 내용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기반 역사논문공모전’에 제출되었던 필자의 논문, 「1980년대 한국의 민족주의적 에이즈 인식과 그 표출로서 ‘한겨레’의 에이즈 보도 분석」의 내용을 재편집한 것임.
김현근 (목성돼지)
전환 회원, 도모 기관지편집위원회 편집위원.
어쩌면? 전 청소년활동가이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급진적 정치를 고민하는 말 많은 성소수자입니다.
사회주의를 목적하고, 귀여움을 희망함.
각주
- 에이즈(AIDS)는 HIV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질병의 이름이다. 에이즈(AIDS)와 HIV 바이러스를 혼용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에이즈는 HIV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되는 질병이고, HIV는 바이러스 라는 점.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하여 모두 에이즈가 발병하는 것은 아니며 에이즈로 발전하지 않더라도 전파가 가능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였을 때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당시에는 이런 세밀한 구분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문으로]
- 「AIDS 감염자 주한미군에 27명」, 『동아일보』, 1988.10.5. 13면. [본문으로]
- 「주한미군 AIDS 감염자 50명」, 『한겨레』, 1988.10.5., 11면. [본문으로]
- 「AIDS 국내확산 주한미군 큰몫」, 『한겨레』, 1988.10.6., 11면. [본문으로]
- 「AIDS를 자주적으로 막자. 미군검역ㆍ한미행협 개정으로 대처해야」, 『한겨레』, 1988.8.9., 4면. [본문으로]
- 「“AIDS 퍼트린다” 미군기지 철수 요구」, 『한겨레』, 1988.6.28., 3면. [본문으로]
- 1980년대 『선데이서울』에 나타난 동성애 담론과 남성 동성애자들의 경험, 전원근, 149쪽 [본문으로]
- 같은 논문, 전원근, 149쪽 [본문으로]
- 「AIDS 감염 주한미군 송환」, 『동아일보』, 1985.10.7., 11면. [본문으로]
- 「AIDS 병원체 내국인서 첫 검출」, 『경향신문』, 1986.11.1., 11면. [본문으로]
- 「AIDS 비상 내국인끼리 접촉 첫 감염」, 『동아일보』, 1987.9.1., 11면. [본문으로]
- 신소연ㆍ최준용ㆍ김영근ㆍ박윤선ㆍ김연아ㆍ김명수ㆍ송영구ㆍShuzo MatsushitaㆍTaisheng LiㆍHsi-Hsun LinㆍPatrick Liㆍ김준명, 「동아시아에서의 HIV/AIDS 역학」, 『Infection and Chemotherapy』 49-1, 27쪽., 27쪽. [본문으로]
- 전원근, 앞의 논문, 149쪽 [본문으로]
- 「타락한 문화침략 규탄 미국 도색문화ㆍAIDS 추방대회」, 『한겨레』, 1988.10.14., 9면. [본문으로]
- https://www.facebook.com/share/p/1FHZebWELZ/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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