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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 편집국/편집장의 말

편집장의 말: 여름은 불평등하다

by Domoleft 2025. 8. 1.

편집장의 말 (2025년 8월호)

여름은 불평등하다


 

웹진 <도모> 2025년 8월호(제11호)를 구독자 여러분께 보내드립니다.

 

이번 도모 8월호의 특집 주제는 '여름'입니다. 여름은 즐거운 휴가의 계절이고 페스티벌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편집장의 말을 다 쓰고,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나서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로 떠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본 밴드인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ASIAN KUNG-FU GENERATION, 아지캉)이 아주 오랜만에 내한을 하기 때문입니다. <강철의 연금술사>, <블리치>를 본 제 동세대의 오타쿠들은 이 밴드를 모르지 않을 겁니다. '리라이트' '애프터 다크' 라이브를 눈 앞에서 듣는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죠.

 

락 음악,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저는 거의 매년 여름마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갑니다. (DMZ나 부산에서 열리는 락페도 가고 싶지만 거리와 금전 이슈로 매번 포기하고 있습니다) 락페는 정말 즐겁고, 제가 좋아해 마지않는 아티스트들을 눈 앞에서 본다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이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락페를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이 종종 들곤 합니다. "과연 내년에도 여기 올 수 있을까?" 물론 티켓 값은 비싸고 예매도 쉽지는 않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매해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는 이 말도 안 되는 더위 속에 내년에도 내가 이 날씨를 버티면서 이곳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저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직 여름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올해도 벌써 끔찍한 폭염이 한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최강의 더위'였던 2018년, '최장의 더위'였던 작년 2024년에 이어 올 여름은 이들을 모두 갱신하는 '최악의 더위'가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벌써부터 나옵니다. 심화되는 기후위기 속에 매년 여름은 즐거운 휴가의 계절이 아니라 모두에게 두려운 계절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모든 재난이 그러하듯이 이 더위가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저에게 이 더위는 기껏해야 반지하 자취방의 습도가 너무 높아진다는 불평이나 올해 펜타포트 락페는 또 얼마나 더울까 하는 우려 정도로 다가오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이 더위는 가장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고 삶의 위기가 됩니다. 도모 8월호의 주제를 여름 특집호로 잡은 것은 그 여름의 불평등함을 누군가는 다뤄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방학과 휴가, 페스티벌의 즐거움에 가려진 여름의 이면. 폭염에 누구보다 고통받음에도 사회가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야말로 지금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이 반드시 직시해야만 할 주제가 아닐까요.

 

이번 호 도모에는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이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불평등한 여름을 담고자 했습니다. 빈곤사회연대 이경희 활동가의 기고글 <'불평등이 재난이다' - 덮쳐오는 기후재난, 가난한 자들에게 더 가혹하다>는 최저주거기준에조차 미달하는 환경에 거주하는 쪽방촌 주민들, 그리고 폭염 속에 거리로 내몰린 홈리스들의 여름나기를 통해 공공성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얼마 전 대림동에서 혐중 반대 집회를 갖기도 했던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박동찬 소장의 <그늘 없는 나라에서 일하는 그림자들 - 폭염 속 연이은 이주노동자의 죽음에 부쳐>는 폭염 속 잇따르는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되짚으며 여름과 살인적인 폭염이 '비국민'들에게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말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곳', 그럼에도 여름에 그 어디보다도 취약한 곳으로는 교정시설(구치소, 교도소)가 있을 겁니다. 이번 특집에는 교정시설의 여름에 대해서 다룬 두 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얼마 전까지 구치소 공중보건의로 복무했던 최우식의 글 <교정시설 공중보건의의 어떤 여름날>엔 의사로서 바라본 여름철 교정시설 의료의 후기가 담겨 있습니다. 김현근 편집위원의 글 <더위는 차별적이지만 인권에는 예외가 없다 - 교정시설 에어컨 설치 논쟁에 대한 단상>은 최근 윤석열의 구치소 수감으로 인해 불거진 교정시설 에어컨 설치 문제가 결코 '논쟁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다시금 되새깁니다.

 

대학생이자 진보정당 활동가 박겸도의 생생한 쿠팡 체험기가 업로드된 날에는(7월 29일) 쿠팡 일산1캠프에서 소분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작업 중 쓰러져 앰뷸런스가 출동하는 일이 또 다시 발생했습니다. 물밀듯 몰려오는 택배 박스를 숨도 못 쉬고 처리하는 부품화된 노동에 폭염 대책 따위는 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일배송' '택배업계 1위' 쿠팡의 현실은 곧 소비자주의와 편의주의로 점철되어 그 뒤에 있는 사람은 볼 수 없게 되어 버린 우리 사회의 단상이기도 합니다. 한편 여름의 <씨네도모>는 역시 땀을 쏙 빼놓는 공포영화로 준비했습니다. 좀비영화의 모던 클래식인 <28일 후>의 23년만에 돌아온 후속작, 대니 보일 감독의 <28년 후> 리뷰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계속 언급했듯이 기후위기와 재난은 모두에게 불평등하고, 그렇기에 각자가 받아들이는 여름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이번 호 도모의 글들을 읽는다 해도 폭염 속 쪽방촌 주민들의, 이주노동자의, 혹은 교도소 수용자와 노동자의 여름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기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물론 글을 편집하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살인적인 더위에 허덕일 때 도모의 여름 특집호에서 읽은 기사들을 떠올리며 '이 더위가 존재론적 위기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어딘가에 있었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번 특집호를 발간한 의의는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 10월호로 시작된 도모가 어느덧 11번째 뉴스레터 발간을 맞았습니다. 매달 하는 고민이지만, 제12호이자 발간 1주년이 되는 다음 호에는 무엇을 써야 할지 이전보다는 조금 더 많은 고민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모를 사랑해 주시고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나눠 주시는 독자 분들이 계시기에 다음 호도 다시 열심히 준비해 보고자 합니다.

 

<도모>는 다음 호에도 양질의 기사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