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도모] <케이팝 데몬 헌터스>: 완성된 케이팝 시스템 위에 펼쳐진 굿판
케이팝(K-POP)과 무속의 현대적 결합을 다룬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몇 주째 넷플릭스 1위를 석권 중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거대한 성공을 만들어낸 케이팝의 시스템화 및 산업화, 그리고 그 이면에 가려진 착취의 구조를 함께 알아보자.
※ 본 기사에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2025년 6월 20일 넷플릭스 독점으로 공개된 이 애니메이션은 다소 유치하고 작위적인 제목과 별개로 무섭게 전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OST인 <Golden(골든)>은 7월 22일 기준 '빌보드 핫100' 차트 4위에 랭크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전설적인 OST <Let it go>가 세운 5위 기록을 넘어섰다. 공개 4일차만에 무려 41개국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달성했고, 이미 미국 아이튠즈 앨범 차트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1위를 기록했다. 이 호평은 단지 대중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로튼 토마토에서는 비평가 점수 94%, 관객 점수 90%를 받으면서 압도적인 호평을 받고 있다. 1
미국의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기본 플롯은 단순하다. 케이팝(K-POP) 걸그룹인 '헌트릭스'(루미, 미라, 조이)가 무대 위에서는 슈퍼스타로, 무대 뒤에서는 악령을 퇴치하는 비밀 전사로 활약한다는 이야기다. 케데헌의 플롯은 한국의 무속 전통에서 기본 모티브를 차용했다. 옛날부터 3인의 여성이 마을과 나라를 악령으로부터 수호하는 일종의 결계인 '혼문'을 지키기 위해 노래와 춤 같은 의례와 함께 직접 무기를 들고 악령을 퇴치하는 삶을 이어왔다는 설정이다. 무녀들로 인해 공고해진 '혼문'으로 인간의 영혼 수집이 어려워지자, 악령들의 수장인 '귀마'와 과거 궁중 악사였던 악령 '진우'는 '사자보이즈'(진우, 애비, 로맨스, 베이비, 미스터리)라는 남자 아이돌 그룹을 구성해 헌트릭스와 무대에서, 그리고 무대 뒤에서 맞서 싸운다.
글로만 읽는다면 이 무슨 어이없는 설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한국 문화와 케이팝 문화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무엇보다 케이팝의 정수를 담은 OST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에 힘입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적 흥행은 계속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공개 4주차, 5주차에도 계속해서 시청률이 올라가며 '역주행'으로 넷플릭스 1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OTT 콘텐츠는 공개 직후가 피크인데, 케데헌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이 놀라운 성공은 과연 우연일까? 미국에서 제작된 케이팝 애니메이션이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케이팝이 어떻게 하나의 완성된 '시스템'이 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2
케이팝의 성공과 문화 기술(CT, Culture Technology)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을 이해하려면, 케이팝이 어떻게 하나의 '시스템'이 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핵심에는 이수만의 문화기술(CT, Culture Technology) 이론이 있다. 문화기술은 "문화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소용되는 모든 형태의 유무형적 기술"을 의미한다. 정확하게는 1994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원광연 교수가 처음 제시한 개념이지만, 이수만이 케이팝 산업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며 전 세계적 현상으로 만든 것이다. 3
1980년대 미국 유학 시절 세계 최초의 음악전문채널인 MTV의 개국을 목격한 이수만은 전세계적으로 음악시장의 형태가 바뀌면서 음악산업이 더욱 넓어지고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단순히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가수를 발굴하고 프로듀싱"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1995년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이수만의 CT 이론은 음악 제작을 넘어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한 음악 제작과 세계화 전략'을 의미했다. 그는 2016년 'SMTOWN: New Culture Technology' 프레젠테이션에서 "단순 수출하는 1단계, 현지와 합작하는 2단계를 거쳐 현지인들에게 SM의 문화 기술을 전수하는 마지막 단계에 마침내 다다랐다"고 선언했다. 케이팝이 단순한 음악 수출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전파'라는 말이었다. 4
케이팝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30년 간의 정교한 진화가 있었다. 1세대 아이돌 시기인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H.O.T.와 S.E.S.는 단순한 인기 그룹이 아니라 하나의 실험이었다. 각 멤버에게 고유 색깔과 번호를 부여한 개인 식별 시스템은 팬들이 개별 멤버와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면서도 그룹 전체에 대한 충성도를 유지하게 만드는 정교한 심리적 메커니즘이었다. 초기의 CT에 기반한 SM의 H.O.T.가 중국 베이징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성공시키고, 보아가 한국 가수 최초로 일본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모습은 '한류'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은 케이팝 시스템의 대중적 탄생을 모두가 목격하는 첫 순간이었다. 5 6
2세대 시기인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은 이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다듬어진 시기였다. 동방신기의 일본 진출은 케이팝의 글로벌화가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되고 실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였다. SM이 에이벡스 그룹과 구축한 파트너십은 현지 음악 산업의 생태계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제휴였으며, 멤버들이 받은 집중적 일본어 교육과 현지화된 콘텐츠 제작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접근법의 완성이었다. 한편 소녀시대는 또 다른 차원의 혁신을 보여주었다. 각 멤버가 고유한 전문 분야를 개발하면서도 그룹 활동을 유지하는 멀티엔터테인먼트 체계는 아이돌 그룹에 있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 이 시기 SM, YG, JYP의 3대 대형 기획사가 각각 확립한 고유한 CT 전략은 케이팝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보장하는 경쟁적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3세대인 2010년대 중반부터 2020년대 초반에 이르러, 케이팝은 진정한 글로벌 현상이 되었다. BTS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의 결과였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팬덤 구축, 미국 주요 TV 프로그램에의 출연, 영어 가사와 한국어 가사의 절묘한 균형은 서구 시장 진출의 새로운 모델을 완성했다. 블랙핑크는 음악을 넘어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진화를 보여주었다. 개별 멤버들의 럭셔리 브랜드 앰배서더 활동은 케이팝이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전반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혁신은 데이터 중심의 콘텐츠 제작과 팬 참여 시스템의 완성이었다. 플랫폼별로 특화된 전략과 팬덤 아키텍처는 팬들을 각 그룹별 브랜드 구축의 능동적 참여자로 만들었다.
4세대인 202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에는 완전한 '산업적 복제 가능성'이 달성되었다.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시스템은 케이팝 시스템의 최종 진화형을 보여준다. 12개 서브레이블이 창작자로서의 일정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공유 인프라를 활용하는 이 모델은 사업 모델의 측면에서 위험 분산과 다양성 확보를 동시에 달성한 구조다. 한편 케이팝의 산업화는 점점 더 진척되어, 지난 2024년 뉴진스-아일릿의 유사성 논란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제는 미학적 접근법조차 재현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다양한 논란이 수반되지만, 이는 케이팝이 개별 아티스트의 창의성에 의존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산업적 측면에서 재생산 가능한 문화적 공학으로 변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7
30년 간의 진화 결과, 케이팝은 진정한 의미의 자본주의화를 완성했다. 수출 모델에서 시작해 협업 모델을 거쳐 합작투자 모델에 이른 이 진화는 슈퍼팬 수익화, IP 기반 수익 모델, 글로벌 공급망, 위험 완화, 기술 활용 규모 경제, 문화 차익거래, 의사사회적 관계의 상품화를 모두 구현하여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종합 엔터테인먼트 생산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완성된 CT 시스템과 통합된 의식(ritual)로서의 케이팝
이러한 케이팝 시스템화의 핵심은 다른 산업들과 하나씩 손을 잡으면서 완성된 문화기술 시스템을 구축한 데 있다. 이런 융합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수만의 CT 이론에서 예견된 접근법의 결과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바로 이 시스템화된 융합 능력이 얼마나 완성도 높은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케이팝과 적극적으로 융합하는 산업의 대표적 예시로는 게임 산업이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라이엇 게임즈의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가상 걸그룹 K/DA다. 당시 신인 아이돌이었던 여자(아이들)의 전소연과 미연이 참여하고, 전형적인 케이팝의 문법을 따른 <POP/STARS>가 YouTube에서 5억 8천만 뷰, Spotify에서 3억 3천만 스트리밍을 기록한 것은 케이팝의 핵심 요소들이 완전히 모듈화되어 게임이라는 장르와 융합해도 이질감 없이 작동함을 입증했다.
케이팝과 첨단 기술의 융합은 미래 엔터테인먼트의 청사진을 그려내고 있다. 2024년 SXSW에서 하이브가 공개한 AR/XR 기술을 활용한 BTS 콘서트 영상과 AI 더빙 기술은 언어 장벽을 뛰어넘는 글로벌 팬 경험의 혁신을 보여주었다. 에스파의 가상 아바타 시스템은 현실과 가상 세계를 오가며 활동하는 새로운 아이돌 개념을 제시했다. 메타버스 시장이 2027년 3조 4,092억 9천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8 케이팝은 여전히 미답의 영역인 메타버스를 채워 나갈 핵심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9
한편 케이팝은 단순히 산업 간 융합뿐만 아니라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각 시장별로 현지화를 해내고 있다. 2021년 UMG 산하 게펜 레코드와 하이브의 합작 레이블 HXG를 통해 선발된 캣츠아이(KATSEYE)가 2024년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것은 케이팝 시스템이 현지 음악 산업과 완전히 융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케이팝의 제작 시스템과 미국 음악 산업의 인프라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협업 모델이다. JYP가 2024년 라틴 아메리카 시장 진출을 위해 UMG 산하 유니버설 뮤직 라티노와 파트너십을 추진하고, 오디션 프로그램 '라틴 아메리카 투 코리아(L2K)'를 제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0 케이팝 시스템은 이제 지역별로 맞춤화되면서도 핵심 DNA는 유지하는 고도화된 글로벌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11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전 세계적 성공은 이 모든 융합이 얼마나 완성도 높은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미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한국의 무속과 케이팝 문화를 결합한 스토리로 전 세계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케이팝이 정교한 시스템적 완성도를 갖춰 하나의 보편적 문화 언어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케이팝 시스템은 이제 연간 124억 달러 규모의 수출 산업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산업들의 혁신 동력이 되고 있다. 게임, 패션, 뷰티, 기술, 애니메이션 등 각 분야에서는 케이팝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창작 방식이 탄생하고 있다. 이는 이수만이 30년 전 구상했던 '문화기술'의 궁극적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 케이팝은 더 이상 한국의 음악이 아니라 전 세계가 공유하는 문화적 프레임워크가 되었으며, 이 프레임워크는 어떤 산업과 결합하더라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완성된 시스템으로 기능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김경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의식(儀式)이 된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평한 것에서는 재밌는 상상을 이어나갈 수 있다. 그는 "고대로부터 전해진 무당들이 가무백희로 결계를 만들어 세상을 지키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이 작품에서 발견했다. "케이팝의 퍼포먼스 자체가 의식(ritual) 또는 주술적 행위처럼 기능하게 된다"는 김경의 분석에서 케이팝이 음악 장르를 넘어선 총체적 문화 시스템이 되었음을 읽어낼 수 있다. 12김경의 해석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샤먼 즉 무당인 데몬 헌터로서의 캐릭터성은 뷰티, 패션과 자연스럽게 결합하며, 군무와 포메이션 역시 퇴마의 의식이나 진법처럼 작동한다"는 관찰이다. 케이팝이 이제 개별적인 예술 형식들의 기계적 결합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의식 체계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씨네21의 김경수는 "물과 기름처럼 보이는 K팝과 무속이라는 두 소재를 조화롭게 혼합한 이야기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가 있다"며 "무속인과 아이돌을 연결하는 상상력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다가온다"고 평가했다. 13 해외 비평도 이런 완성도를 인정한다. 버라이어티는 이 작품이 "케이팝 현상만큼이나 중독적"이라며 "웹툰과 만화에서 영감을 받은 역동적인 실루엣을 강조하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훨씬 더 장난스러운 접근법"을 시도했다고 분석했다. 14이런 평가들이 중요한 이유는, 케이팝 시스템이 이제 문화적 맥락과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이해되고 수용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공고한 착취 시스템 속, '변혁의 굿판'은 가능한가?
하지만 이 완성된 시스템의 이면에는 명백한 착취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이 글에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케이팝이 글로벌 문화 현상으로 성장할수록, 그 성공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져 왔다. 케이팝 아이돌들의 불공정 계약 문제는 오래된 고질병이다. 동방신기의 13년 노예계약 소송(2009)부터 EXO 멤버들의 탈퇴 분쟁(2014-2015) 15, 최근 오메가엑스의 극심한 학대 고발 16, VCHA의 24시간 감시와 특정 스태프로부터의 학대, 부당한 대우 등에 대한 폭로 17까지. 문제는 이런 착취가 개선되기보다는 더욱 정교해지고 글로벌화되었다는 점이다. 18
케이팝 산업 착취 구조의 핵심은 연습생 시스템이다. 아이돌 가수의 꿈을 안고 연습생으로 들어온 8~11세의 청소년들은 무급으로 최대 10년간 훈련받으며 막대한 부채를 떠안는다. 데뷔 확률 0.1%, 게다가 데뷔 후 성공할 확률은 더 셀 수도 없이 낮음에도 실패한 99.9%는 청춘을 바친 대가로 빚만을 남긴다. 이수만의 '라이크기획' 같은 자회사를 통한 수익 빼돌리기 19, 13년 장기계약, 연애·발언 통제 등은 모두 "꿈을 이루어 주는"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왔다. 20
최근 있었던 뉴진스 사태는 케이팝 시스템이 산업적으로 구축되며 착취의 체계가 얼마나 공고해졌는지를 복합적으로 보여 준다. 2024년 4월 하이브와 자회사 어도어(뉴진스 소속사) 간의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뉴진스 멤버들은 자신들을 프로듀싱한 민희진 대표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표명했다. 하지만 이 사태는 단순한 기업-아티스트 갈등을 넘어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CT 시스템 위에 공고화된 기업 구조와 개별 디렉터의 창작적 기여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법리적 계약구조 아래에서 아티스트의 자율성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할 것인지 등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쟁점들이 부상했다. 결국 아티스트와 시스템이 불가분하게 결합된 현 구조에서 뉴진스는 법리적 소송에서 계속 밀리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스타조차 시스템의 논리 앞에서는 취약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평론가 김경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한 판의 치유를 위한 굿"이라고 표현한 것은 단순히 무속의 훌륭한 컨텐츠화에 대한 상찬, 그 이상의 함의를 가지고 있다. 굿은 개인의 치유를 넘어 공동체의 정화와 재생을 위한 의식이다. 케이팝 시스템은 이제 글로벌 차원의 집단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고 수많은 팬들에게 '치유'를 제공하고 있다. 케이팝은 동남아시아에서 권위주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저항의 상징이고,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의 광장에서도 <다시 만난 세계>는 그 어떤 민중가요보다 폭발적인 환호를 받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를 '치유'하는 케이팝이 정작 그 산업 종사자들에게는 더 정교한 착취의 포장으로만 기능하며 새로운 병리적 현상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21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헌트릭스가 노래와 춤으로 악령을 물리치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전 세계 팬들이 케이팝을 통해 위안을 얻고 새로운 꿈을 꾸며, 억압과 차별, 권위주의에 맞서 서로 연대하는 모습은 분명 긍정적인 문화적 힘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치유'가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연막 역할을 할 위험도 있다. 진짜 변혁이 일어나려면 케이팝 시스템의 긍정적 힘은 보존하면서도 그 착취적 구조는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연습생 시스템의 전면적 개편, 아티스트의 권리 보장, 수익 분배 구조의 공정성 확보, 그리고 팬들과 아티스트 간의 건강한 관계 정립 등은 실천적이고 정책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2가 제작된다면, 헌트릭스가 맞서야 할 진짜 악마는 어쩌면 개별 데몬들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꿈을 착취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적 기계, 인간의 창조성과 감정까지 상품으로 바꿔버리는 메커니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꿈의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 말이다. 그 때가 되면 과연 누가 이길까? 30년간 공고해진 착취의 시스템인가, 아니면 새롭게 깨어나는 아티스트와 팬들의 연대인가? 그 답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이 '굿판'에서 어떤 역할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관객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변화의 주체가 될 것인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
매기 강,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
아덴 조, 안효섭, 이병헌 / 99분 / 2025
'씨네도모'는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등의 다양한 영상매체를 진보·좌파적 시각에서 비평하고 문화적 상상력을 함께 나누는 웹진 <도모>의 영화 리뷰 코너입니다.
'씨네도모'에 글을 기고하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이도영 편집장(ldy0510@naver.com)에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최상희
현 정의당 강원도당 사무처장,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
최근까지 전환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강원도 춘천에서 지역운동, 지역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
각주
- 연합뉴스, '케데헌' OST '골든', 빌보드 싱글 4위…블랙핑크 '뛰어' 28위 https://www.yna.co.kr/view/AKR20250722038700005 [본문으로]
- 조선일보, '케데헌', 역사 새로 썼다..넷플릭스 최초 5주차 시청률 1위 [Oh!쎈 이슈] https://www.chosun.com/entertainments/movie/2025/07/23/Y2WLAJS3ZPFLOX3DQMUGO7E42E/ [본문으로]
- 안신현, 2005, 문화기술의 학문 분야로서 문화원형기술의 패러다임 분석 [석사학위논문, 한국과학기술원] https://library.kaist.ac.kr/search/detail/CAT000000123456 [본문으로]
- 뉴스핌, SM 이수만 프로듀서, 2016 SM의 새 전략 'NCT' 발표…상상하던 모든 것 이루어진다 https://www.newspim.com/news/view/20160127000394 [본문으로]
- 전자신문, 이수만 SM 총괄, "CT, 탈경계 융합비전…미래 향한 亞 협력발전 기원" https://www.etnews.com/20220720000157 [본문으로]
- 머니S, H.O.T에서 에스파까지… SM 30년, K팝의 과거·현재·그리고 미래 https://www.moneys.co.kr/article/2025011008551480743 [본문으로]
- 한겨레, [단독] 뉴진스-아일릿 표절 공방…3년 차이로 기획안이 ‘닮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66846.html [본문으로]
- 이데일리, 콘진원, 美 'SXSW 2024'서 219억원 상담액 기록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525206638823648&mediaCodeNo=257&OutLnkChk=Y [본문으로]
- Fortune Business Insights, Metaverse 시장 규모, 공유 및 산업 분석, 구성 요소,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2025-2032 https://www.fortunebusinessinsights.com/ko/metaverse-market-106574 [본문으로]
- 경향신문, 하이브 미국 걸그룹 캣츠아이, 오늘 첫 싱글 '데뷔'로 출사표 https://www.yna.co.kr/view/AKR20240628106900005 [본문으로]
- 한국경제, JYP, 라틴 아메리카 법인 설립…A2K 이어 L2K 선보인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7182054H [본문으로]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2025)> : 의식(儀式)이 된 애니메이션 영화, 재미와 의미를 거머쥔 케이팝 샤먼들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91 [본문으로]
- 씨네21, [OTT리뷰] <케이팝 데몬 헌터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07842 [본문으로]
- Variety, ‘K-Pop Demon Hunters’ Review: High-Concept Toon Is as Catchy as the Korean Music Phenom That Inspired It https://variety.com/2025/film/reviews/kpop-demon-hunters-review-1236437235/ [본문으로]
- PD저널, 동방신기 13년 계약, 무엇이 문제인가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3452 [본문으로]
- 조선비즈, ‘데뷔 11주년’ 엑소, 파란만장 ‘전속계약’ 분쟁 수난기 https://biz.chosun.com/entertainment/enter_general/2023/06/22/U4225WN2RXBSOEBMYXMEFZPJKQ/ [본문으로]
- 스포츠경향, 오메가엑스 전 소속사 강제추행·폭행 인정, 전속계약 해지 확정 https://sports.khan.co.kr/article/202404011111003 [본문으로]
- 조선일보, VCHA KG "스태프 학대로 멤버 극단적 선택 시도, JYP 전속계약 해지" https://www.chosun.com/entertainments/enter_general/2024/12/08/YVWS24WDNNO4MVM7G462RRC5XU/ [본문으로]
- 서울En, 데뷔 확률 0.1%, 그들이 아이돌에 도전하는 이유 https://en.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310500023 [본문으로]
- 뉴스핌, [기자수첩] SM 사태, 중심엔 이수만과 라이크기획 있다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30220000842 [본문으로]
- YTN, 태국 반정부 시위에 등장하며 진보 상징된 '케이팝' https://www.ytn.co.kr/_ln/0104_20201122041634043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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