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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진보정치

진보정치의 대선후보, 어떻게 팔레스타인과 연대할 것인가?

by Domoleft 2025. 5. 5.

[정치] 진보정치의 대선후보, 어떻게 팔레스타인과 연대할 것인가?

국제정세에 대한 쟁점이 실종된 대선 와중에도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의 학살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스라엘 먼저"와 양비론으로 일관하는 거대 양당에 맞서, 진보정치의 대선후보는 어떻게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대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달아오른 대선판, 실종된 국제 이슈

 

지난 4월 4일 윤석열 파면을 신호탄으로 하여 시작된 조기대선, 즉 제21대 대통령 선거 판은 각 당의 주요 대권주자가 결정되며 어느덧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후보 중심 혹은 진영 중심으로 흘러갈 것이 예상되는 선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후보와 정당이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급박한 국내정치 이슈에 묻혀 크게 조명되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두하는 전쟁위기의 시대 속 국제관과 국제정책의 중요성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진 후 지난 1년 반 동안 대부분의 서구권 국가에서 가장 첨예했던 국제 이슈는 2023년 10월 이후 다시금 촉발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문제였다. 구 제국주의의 가해자이자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원적 책임자로서 유럽과 미국 정치권에서 팔레스타인 문제가 주요 이슈인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의 원인 제공과 직접적 관계가 없음을 감안하더라도 가자지구에서만 이미 5만 명 이상이 사망한 학살극에 대해 한국 정치권이 보이는 무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일각에서는 전쟁과 학살이 장기화되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진 탓이라고도 하지만, 전쟁 발발 직후 의례적으로 내었던 "하마스 규탄" 입장과 원론적 평화 언급을 제외하면 주류 양당은 애초에 단 한 번도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표한 적이 없다.

 

진보정당들을 포함한 사회운동진영은 2023년 10월 이후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을 구성하여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알리는 연대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주류 정치권의 주목은 여전히 요원하다. 특히 작년 4월 총선 이후 팔레스타인에 연대해 온 진보정당들(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이 진보당을 제외하고 모두 원외로 이탈한 상황 속, 정치권에서는 피상적으로나마 팔레스타인을 언급하는 목소리 자체가 거의 사라진 상태다.

2024년 3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양경규 당시 녹색정의당 국회의원. 출처: 한겨레

 

현 정치권의 국제 문제에 대한 인식 부재는 비단 팔레스타인 이슈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란 국면이 장기화되며 대선 대응이 전반적으로 늦어져 다양한 의제들에 대해 검토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각 당 대권주자들이 국제문제에 대해 보여준 관심은 놀랄 만큼 빈약하다. 윤석열 정부 출범부터 내란 국면까지 '친중 사대외교'니 '친미친일 굴욕외교'니 하며 늘상 험한 말이 오갔던 게 무색하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국제관은 '굳건한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하되 중국과의 관계 역시 너무 등한시하지 않고 통상문제에 방점을 두는 식의, 즉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전통적인 외교노선이던 '안미경중'을 그대로 복붙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부상, 여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까지 이어지며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있음을 감안하면 양당 대권주자들의 이러한 국제정세 인식은 우물 안 개구리마냥 안일해 보인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중·일·러 '주요 4강' 바깥 국가들과의 관계맺음에 대한 고민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 정도가 '중립외교 선언'을 통해 "아세안(ASEAN), 인도, 브릭스(BRICS), 글로벌 사우스와 경제협력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을 뿐이다.[각주:1] 이는 '신냉전'부터 '다극화'까지 다양한 국제 담론들이 이어지며 탈냉전 시대 30여 년간 이어져 온 국제질서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양당 모두 여전히 과거의 '한반도 중심주의'식 국제관에 갇혀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 먼저, 팔레스타인은 "나중에"

2월 13일 라파엘 하르페즈 주한이스라엘대사를 접견하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출처: KBS

 

이러한 상황 속, 주요 열강도 아니고 일견 우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도 않아 보이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유력 대권주자들이 관심을 보일 리 없다. 학살을 막고 평화를 세우기 위한 전향적인 입장과 실천적인 노력까지는 기대하기도 어렵지만, 그럼에도 과거 이들과 이들이 속한 정치세력이 해당 문제에 대해 어떠한 언행을 보여 왔는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민주당과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한국 주류 정치세력은 그동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 왔을까?

 

우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지난 2월 13일 라파엘 하르페즈 주한이스라엘 대사와 접견하며 "양국간 기술 및 경제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이 외에도 그는 해당 접견에서 "최근 이스라엘 전쟁이 휴전에 이르러서 평화 체제로 다시 복귀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일반적인 집단학살을 '전쟁'으로 설명하는 이스라엘 측의 입장을 옹호하고 "한국과 이스라엘의 우호 관계는 굉장히 오래됐고 (양국 간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말하며 양국 간의 오랜 관계를 과시했다. 위와 같은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긴급행동 등 국내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으로부터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각주:2] 이외에도 이재명은 3월 20일 자유주의적 시오니스트 관점을 유지하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은폐한다고 비판받는 이스라엘 지식인 유발 하라리와 면담을 가지는 등[각주:3] 팔레스타인 연대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 왔다.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공통점을 역설하며 이재명과 주한이스라엘대사의 만남을 홍보하는 더불어민주당. 출처: 더불어민주당 공식 유튜브 '델리민주'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이재명의 친이스라엘 행보가 그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닌, 민주당의 오래된 외교노선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이스라엘 FTA는 2019년 문재인 정부 때 체결되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FTA 협상 타결을 위해 방한한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본가치를 공유하며 1962년 수교 이래 반세기 넘게 우호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며 한국과 이스라엘의 유착 관계를 옹호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아래 2021년 양국 교역 규모는 전년 대비 37%나 성장했으며[각주:4], 특히 무기수출의 경우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며 파죽지세로 성장했다.[각주:5] 이는 민주당이 이스라엘의 대(對)팔레스타인 강제점령과 집단학살에 대한 한국의 공모에 있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음을 확실히 보여 준다.

 

물론 국민의힘 역시 다를 리 없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이 시작된 이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의 한-영 정상회담 공동합의문에서 80여 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와 학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하마스가 자행한 끔찍한 테러공격을 강력히 규탄하며, 동 공격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로 하마스 측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돌린 바 있다.[각주:6] 집권여당이었던 국민의힘 역시 박정하 수석대변인 명의로 "하마스의 잔혹한 기습 공격으로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 살상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하마스의 명백한 범죄 행위를 규탄하며, 더 이상의 사태 악화와 확전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며 이스라엘 측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하마스가 기습 작전을 감행할 당시 전동 패러글라이더로 허를 찌른 것처럼 북한 역시 남침에서 비슷한 전술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반북 정서와 연결지은 건 덤이다.[각주:7]

2023년 9월 UN 총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악수하는 윤석열. 출처: 연합뉴스

 

위와 같은 사실들은 한국과 이스라엘 간의 유착관계가 국내 정치권에서 진영을 넘어선 지지를 받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이나 서안지구 정착촌 건설 등에 드물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에도 '점령'이나 '학살'과 같은 표현 대신 '사태'나 '분쟁'과 같은 모호한 표현을 쓰고, "교전과 무력 충돌을 중단", "대화를 통한 평화협상 촉구", "어떠한 형태의 폭력도 강력히 반대"하는 식의 양비론적 태도를 유지하며 이스라엘의 책임을 가려 왔다.[각주:8]

 

지난 2024년 11월 28일 국회에서는 가자지구 집단학살과 관련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오랜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제점령을 사상 처음으로 인정하는 「가자지구에서의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휴전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각주:9], 이 역시도 이스라엘에 대한 경제제제와 같이 이를 강제하는 수단을 명시하지 않아 그저 상징적인 제스처에 그친 바 있다.

 

이와 같은 거대 양당의 '이스라엘 퍼스트' 입장에 현 대선 국면에서 특별한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의원실 차원에서 참여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팔레스타인 연대 행사를 함께 주최한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과 같이[각주:10] 범(汎) 거대양당 정치인 중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려는 입장을 취한 정치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인사가 대선 국면의 국제·외교안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조차도 현재로써는 의문인 상황이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글로벌 진보정치

카말라 해리스 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와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자들. 출처: NDTV www.ndtv.com

 

팔레스타인 이슈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한국에서는 이러한 팔레스타인 관련 쟁점들이 선거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재계의 이스라엘 유착이 극심한 것은 물론 무슬림 및 아랍계 유권자의 수가 적지 않은 서구에서는 해당 문제가 선거의 승패를 가를 정도로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지난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배했던 카말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자신이 부통령으로 재임했던 바이든 행정부의 친이스라엘 스탠스 때문에 적지 않은 유권자가 투표장에 나서지 않은 건 물론, 주요 경합주에서 적지 않은 인구를 차지하는 무슬림 유권자들의 표심이 트럼프와 녹색당 후보로 쏠린 게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각주:11] 현재 진행 중인 뉴욕시장 선거의 경우에도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 소속으로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조란 맘다니 주의원이 친이스라엘 후보인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에 맞서 팔레스타인 연대를 전면에 내세우며 맹추격 중이다.[각주:12]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 14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작년 영국 총선에서도 팔레스타인은 중요한 이슈였다. 당시 노동당은 전체 650석 중 과반을 훌쩍 넘는 414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단순 득표 면에서는 오히려 2019년 총선보다 부진했는데, 여기에도 당시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노선을 취하던 키어 스타머 지도부에 대한 전통적 지지층의 실망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외에도 무슬림 인구가 많은 전통적 노동당 지역구에서 다섯 명의 친팔레스타인 성향 무소속 후보들이 노동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어 이목을 끌었는데, 이 중에는 2020년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 전력과 관련해 '반유대주의' 시비로 출당당했던 제러미 코빈 전 노동당 당수도 있었다. 이들은 현재 하원에서 '무소속 그룹'이라는 별도의 교섭단체를 결성해 팔레스타인 연대 강화를 비롯한 선명한 진보·좌파적 지향을 내세워 활동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함께하는 제레미 코빈 전 노동당 당수. 출처: CNN

 

역시 2024년 프랑스 조기총선에서 마크롱 정부의 여당인 르네상스와 극우 국민연합을 모두 제치고 원내 제1교섭단체가 된 좌파연합 신인민전선은 반대로 선명한 친팔레스타인 노선 덕에 선거에서 이득을 얻은 경우다. 이들은 팔레스타인과의 수교는 물론 네타냐후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부와 모든 공식관계를 단절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이것이 전통적인 좌파 지지층은 물론 현재 프랑스 인구의 10% 가까이를 차지하는 무슬림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는 데 주효했다는 평가다.[각주:13] 과거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무장투쟁 시기부터 PLO(팔레스타인 저항기구)와의 연대를 천명해 온 아일랜드의 신 페인 역시 아일랜드 정치권에서 팔레스타인 연대를 전면화하고 있고, 결국 지난 2024년 5월 아일랜드 정부의 팔레스타인 국가승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의 여러 진보정치세력은 팔레스타인과의 연대 강화를 통해 정치적 선명성과 지지기반 확대라는 이중의 효과를 선거에서 노리는 것은 물론 피억압 민족·민중과의 국제연대라는 진보·좌파 운동의 오래된 전통을 정치권에서 실천해 나가고 있다. 한국과 위 나라들의 사회적 맥락은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이스라엘의 주요 무기수출국 중 하나이면서 가자 학살을 방조 및 묵인하고 있는 한국에도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연대하는 진보 대선후보가 등장한다면 국제연대 담론이 실종된 정치권에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평화를 위한 실천적 성과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치의 대선후보, 어떻게 팔레스타인과 연대할 것인가?

지난 5월 1일 경선 승리 후 출마 기자회견을 갖는 권영국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대선후보. 출처: 여성신문

 

거대 보수양당이 상술한 대로 일관적인 친이스라엘 혹은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현재 21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 중 팔레스타인 연대를 전면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결국 진보정당의 후보들인 권영국 정의당-사회대전환 연대회의 후보와 김재연 진보당 후보뿐이다. 두 정당 모두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에 소속되어 있다. 특히 권영국 후보의 경우 지난 2024년 5월부터 정의당 대표직을 맡으며 2024년 6월 퀴어문화축제와 함께 열린 집회, 10월에 열린 가자 학살 1주년 집회 등 긴급행동의 팔레스타인 연대집회에도 꾸준히 참여해 온 바 있다.[각주:14]

 

아래의 내용들은 진보정당 대선후보들이 팔레스타인 국제연대의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는 주요 정책공약에 대한 제언이다. 이번 조기대선이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유효하게 작용하기 위해서는 진보정당 후보가 취할 입장의 명료성과 공약의 선명성은 물론, 거대양당을 비롯한 주류 정치세력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명확히 할 말을 할 수 있는 정치적 독립성 역시 반드시 보장되어야만 한다. 이 점에서 특히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독자적 진보정치진영의 공동 후보로 출마하며 TV 토론권을 확보하고 있는 권영국 후보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는 것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슬로베니아 국회가 팔레스타인 국가승인을 결정한 후 류블랴나의 의사당에 올라가는 팔레스타인 국기. 출처: 로이터

 

팔레스타인 국가승인 및 공식 수교

현재 한국은 1993년 오슬로 협정에 의해 세워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일한 합법적 대표기구'로서 인정하고 있으며 자치정부 청사가 위치한 서안지구 라말라에 주팔레스타인 대한민국 대표사무소를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승인과 수교 등 공식 외교절차는 밟지 않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국민들의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강제점령 정책을 사실상 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지난 UN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의 UN 정회원국 가입에 찬성표를 던진 한국 자신의 외교적 선택[각주:15]과도 모순되는 일이다.

 

냉전적 논리에 따라 미수교 상태를 유지 중이던 쿠바와도 작년을 기점으로 수교한 상황에서, 일부 우익들의 주장처럼 '팔레스타인 지도부와 북한 간의 친소관계'를 문제삼는 일 역시 더 이상 명분이 없다. 소위 '두 국가 해법'이 옳은 방향성인지에 대해서는 현재 팔레스타인 연대운동 내에서도 많은 이견이 있다. 그러나 학살 중단과 평화체제의 수립 이후 향후 팔레스타인 땅의 방향성을 민중의 자주권에 맡기더라도, 지금 팔레스타인의 주권과 평화를 존중한다는 것을 국가 차원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결국 국가승인과 수교이다. 진보정당 대선후보의 공약에 팔레스타인 국가승인과 수교가 반드시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이다.

 

이미 스페인과 아일랜드, 노르웨이, 슬로베니아가 지난 2024년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 승인하고 수교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는 등[각주:16] [각주:17] 주요국들 간의 외교무대에서도 팔레스타인 승인은 더 이상 터부시되는 주제가 아니다. 지난 2024년 총선 당시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윤기 후보는 후술할 '이스라엘 단교'까지를 포함하여 팔레스타인 국가승인을 이미 공약으로 삼은 바 있다.[각주:18] 한국 역시 하루 빨리 팔레스타인 국가승인과 수교, 상호 외교공관 설치를 통해 팔레스타인과 공식적인 외교 및 연대를 이어나갈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좌측부터: 한국-이스라엘 무기수출 추이 그래프 / 대이스라엘 무기수출 규탄 5.2 세계공동행동. 출처: 한겨레21 / 참여연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수출입 전면 중단

한국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이후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하지 않은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국가이다. 특히 2023년 이후 수출액이 큰 폭으로 늘었고, 그 중에서도 2020년까지 수출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전차류의 경우 이스라엘 가자 침공 전후로 수출이 크게 늘어 가자 학살에 직접적으로 투입되었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각주:19] 이스라엘에 판매된 무기들이 가자에서의 집단학살에 동원될 가능성이 너무나도 분명한 상황에서, 이를 중단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하는 모든 형태의 팔레스타인 '인권'과 '인도주의'에 대한 설교는 위선일 수밖에 없다.

 

무기수출뿐 아니라 한국은 이스라엘산 무기의 수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방위산업체인 IAI, 엘빗 시스템즈 등은 국내 최대의 무기박람회인 서울국제항공우주방위산업전시회(ADEX)에 매년 초청대상으로 부스를 내고 있으며, 가자 학살이 시작된 이후 2023년 10월에 개최된 ADEX에도 역시 참여한 바 있다.[각주:20] 이스라엘 방위산업체들이 가자지구를 신무기의 '테스트베드'로 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정부와 국방부는 가자지구 민중의 피값으로 만들어진 이스라엘제 무기를 구입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홍보와 판촉에 있어서도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역시 미국과 독일을 제외한 사실상의 모든 서방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대이스라엘 무기판매 및 구매를 전면 중당하는 동시에, 향후 위와 같은 사태를 방지하도록 분쟁지역에 대한 무기수출 전면 금지나 방위사업청에서 무기수출국의 전쟁범죄 및 민간인 학살 여부 감사 정례화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2024년 3월 28일 HD현대 본사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과의 거래 중단 요구 기자회견. 출처: 스튜디오알

 

팔레스타인 강제점령과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이스라엘과의 경제적, 기술적 교류 중단

국산무기 수출만 이스라엘의 강제점령과 집단학살에 공모하는 건 아니다. 이스라엘에 판매되는 현대 굴삭기는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가옥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짓는 데 사용되고 있으며[각주:21], 한국 기업이나 대학과의 협력하에 개발된 이스라엘의 드론 및 AI기술은 점령지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감시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한편 한국석유공사의 자회사인 '다나(Dana)'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해양 가스전 탐사권을 획득하여 가자지구 연안 동지중해에서 석유 및 가스시추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각주:22] 이러한 사례들은 한국이 이스라엘과의 경제적 유착을 통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공모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국-이스라엘 과학기술협약'과 한국석유공사의 가자지구 가스전 사업 중단을 진보정치가 지금 요구해야만 하는 이유다. 앞서 언급한 무기수출 가이드라인의 예시와 같이, 국제개발협력에 있어서도 인권위험 관리체계를 만들고 인권 성과 및 평가를 지속적으로 체크하는 시스템 역시 필요하다.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출처: 연합뉴스TV

 

학살 점령 중단 경고 거부 시 이스라엘 대사 추방, 단교

위 공약들을 실제로 이행하려고 할 시에는 많은 반발에 부딪힐 게 분명하다. 따라서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측이 학살과 점령 중단과 관련한 한국의 경고에 불응할 시, 이스라엘 대사 추방이나 단교와 같은 '극약처방'까지도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를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 서방 국가들 중 이 정도로 극한의 외교적 조치를 취한 국가들의 경우는 많지 않지만, 콜롬비아, 볼리비아, 칠레,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남미와 아프리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 중에서는 그 수가 적지 않다. 한국이 서방 국가들 중 최초로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국가가 되는 것 역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며, 더욱이 진보정치에 있어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단호한 연대의 표시로서 충분히 가능한 공약이라 사료된다.


국제연대의 자리가 있는 대선을 위해

5월 2일 정책토론회에 참여해 장애인 차별에 단호하게 맞서는 권영국 후보. 출처: 정의당

 

지난 5월 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개혁신당 임승수 대변인은 '전장연'을 먼저 언급했다. 전장연의 '폭력 시위'에 대해 어떤 입장이냐며 민주당 김한규 여성가족정책조정위원장을 공격한 것이다. 권영국 후보는 자신에게 들어온 질문이 아니었음에도 마지막 발언 시간을 할애하여 "개혁신당은 왜 장애인 차별이 아닌 장애인과 맞서느냐"는 뼈 있는 말을 던졌다. 비록 잠시였지만 우리 사회 속 진보정치의 존재의의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진보정치의 자리가 있는 대선'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분명히 '국제연대의 자리가 있는 대선을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국경에 국한되지 않고 억압받는 모든 소수자와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진보정치의 원칙과 지향이라는 것은 명확하며, 특히 국제·외교안보이슈 자체가 실종되어 버린 지금의 대선판에서 국제연대와 인권외교의 가치를 다시금 명확히 드러내는 것은 단순한 정책공약의 제기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양당과 차별화된 분명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보정치가 당연하게 전장연에 연대하고 당연하게 성소수자에게 연대하듯,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과 함께하는 진보정치의 대선후보가 오늘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전 회장, 전환 국제연대팀장.

동국대학교와 고양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


각주

  1. 진보당, [보도자료] 김재연 대선후보, 4.27 판문점 선언 7주년 맞아 5대 평화공약 발표 https://jinboparty.com/pages/?p=286&b=b_1_111&m=read&bn=13456 [본문으로]
  2.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성명] 이재명 및 주요 지자체장의 이스라엘 대사 접견 규탄한다 https://www.instagram.com/p/DGIPnwdx6Hq/ [본문으로]
  3. 플랫폼c, 유발 하라리와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를 비판한다 https://platformc.kr/2025/04/anti-liberal-zionism/ [본문으로]
  4. 로이터, Israel-South Korea free trade deal to take effect Dec. 1 https://www.reuters.com/markets/israel-south-korea-free-trade-deal-take-effect-dec-1-2022-09-28/ [본문으로]
  5. 경향신문, [단독]한국, 2014년 가자분쟁 이후 이스라엘에 무기 더 팔았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105201617001 [본문으로]
  6. 연합뉴스, [전문] 한영 정상 다우닝가 합의 https://www.yna.co.kr/view/AKR20231123004000001 [본문으로]
  7. 중앙일보, 국민의힘 “하마스 민간인 살상 규탄…우리는 북한 대비해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0305 [본문으로]
  8.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한국과 이스라엘 관계 보고서」, p 14-15, 2012 [본문으로]
  9. 한겨레, 국회 '가자지구 영구 휴전 촉구 결의안' 가결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69808.html [본문으로]
  10. 참여연대, [오픈행사] 우리 곁의 팔레스타인인 살레와의 대화 https://www.peoplepower21.org/peace/1984021 [본문으로]
  11. 한겨레, 아랍계 미국인들의 대선 선택은? 트럼프 45 대 해리스 43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1165861.html [본문으로]
  12. 폴리티코, Israel-Hamas war on the ballot in New York City mayor’s race https://www.politico.com/news/2025/04/17/cuomo-mamdani-israel-palestine-nyc-mayors-race-00295287 [본문으로]
  13. i24 News, New Popular Front victory spells out very bad news for Israel https://www.i24news.tv/en/news/international/europe/artc-new-popular-front-victory-spells-out-very-bad-news-for-israel#google_vignette [본문으로]
  14. 오마이뉴스, 퀴어문화축제에서 휘날린 이 나라의 국기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35598 [본문으로]
  15. 연합뉴스, 안보리, 팔레스타인 유엔 정회원국 가입안 부결…美 거부권 행사 https://www.yna.co.kr/view/AKR20240419010352072 [본문으로]
  16. 한겨레, 노르웨이·아일랜드·스페인,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선언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1141684.html [본문으로]
  17. 한겨레, EU 회원국 슬로베니아도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1143557.html [본문으로]
  18. https://x.com/pps_kr/status/1761034717678469152 [본문으로]
  19. 한겨레21, [단독] 한국 2024년 이스라엘에 무기 84억원 팔았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459.html [본문으로]
  20. 오마이뉴스,  2023 서울 아덱스, 이스라엘관에 위치한 이스라엘 방산기업 엘빗시스템즈의 부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3217805 [본문으로]
  21. 국제앰네스티, 이스라엘/팔레스타인점령지역: HD현대는 자사 장비가 팔레스타인점령지역의 인권 침해에 연관되지 않도록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한다 https://amnesty.or.kr/132911/news/human-rights-news/%EC%9D%B4%EC%8A%A4%EB%9D%BC%EC%97%98-%ED%8C%94%EB%A0%88%EC%8A%A4%ED%83%80%EC%9D%B8%EC%A0%90%EB%A0%B9%EC%A7%80%EC%97%AD-hd%ED%98%84%EB%8C%80%EB%8A%94-%EC%9E%90%EC%82%AC-%EC%9E%A5%EB%B9%84%EA%B0%80/ [본문으로]
  22. 더구루, [단독] '애물에서 보물로' 석유공사 英 자회사, 이스라엘 해양 가스전 탐사권 획득 https://www.theguru.co.kr/news/article.html?no=6205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