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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진보정치

왜 권영국인가? - ① 장애당사자 대학생이 권영국을 지지하는 이유

by Domoleft 2025. 5. 21.

[정치] 왜 권영국인가? - ① 장애당사자 대학생이 권영국을 지지하는 이유

<도모>는 제21대 대선 선거운동 기간 동안 연속기고 <왜 권영국인가?>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권영국을, 진보정치를 지지하는지 각자의 언어로 풀어낸 글들을 모아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글로 장애인 당사자 대학생 최정운 님의 이야기를 게재합니다. (편집부)


나는 2004년 태어나자마자 뇌병변장애를 진단받은 장애인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특수학급보다는 일반 학급에서 자라 왔고 운이 좋게도 다정하고 편견 없는 친구들만 만나온 터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성인이 된 이후,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남들과는 '다르고' 누군가에겐 '거슬리게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 절반, 안전한 공간을 찾고 싶다는 마음 절반을 갖고 2023년 정의당에 입당하였으며 지금까지 당원으로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라는 믿기 어려운 뉴스를 듣고 여의도에 갔던 모든 사람들은 '혹시 오늘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품었을 것이다. 같은 날 여의도로 향했던 나는 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지 않았을 하나의 두려움을 더 겪어야 했다. 혹시나 장애가 있어 넘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이후 함께했던 광장에는 당연히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었지만, 이 두려움은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4월 4일 윤석열의 탄핵이 가결되고 나서는 모든 게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후련한 마음이었다. 더는 매일 밤 불안에 떨며 잠에 들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12월 3일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여의도로 향했던 나와 동지들의 마음이 모여 이 결과를 만들어 냈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끼며 그 날 밤은 편하게 잠을 청했다.

JTBC 뉴스룸과 광장에서 인터뷰한 글쓴이('최정훈'은 오타다). 출처: JTBC

 

그러나 삶은 영화가 아니었고 나는 탄핵 이후에도 이 길고 지난한 삶을 살아내야 했다. 고속터미널역 3호선에서 7호선으로 환승하는 길엔 여전히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일부 몰지각한 어른들은 여전히 노약자석에 앉은 내게 "왜 젊은 청년이 여기에 앉냐"며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냈으며, 학교 앞 식당에 있는 높은 계단도 바뀌지 않았다. 가끔 친구에게 외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할 때가 있다. 외계인도, 나도, 이 세계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다. 계엄을 막아냈고 내란 수괴를 탄핵했음에도 나의 삶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나는 윤석열 탄핵으로 시작된 21대 대선에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뻔뻔하게 극우의 길을 걸었으며,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같은 내란세력 청산을 위해 조금 더 기다리고 양보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가진 게 없어서 더 양보할 게 없었다. 개혁신당은 TV에 나와 전장연, 페미니즘을 언급하며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말하는 건 그들이지만, 그 말을 담아두고 감당해야 하는 건 듣는 사람의 몫이라 사실 시사 방송이나 뉴스도 잘 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인스타에 올린 민주노동당(당시에는 정의당) 권영국 후보의 정책토론회 마무리 발언을 담은 쇼츠를 보게 되었다. "개혁신당은 장애인 차별과 맞서지 않고 왜 장애인들하고 맞서려고 하느냐." 그의 질문에, 나는 내가 꿈꾸었던 정치의 모습을 다시 깨달았다. '당선되기 위한 정치'가 아닌, ‘세상을 바꾸기 위한 정치’ 말이다. 누군가는 그 말이 줄 사회의 파장이 무서워서, 누군가는 장애인이 줄 수 있는 표가 비장애인이 줄 수 있는 표보다 적어서 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권영국은 주저하지 않고 개혁신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정치는 '사회적 약자의 요구'를 불편해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주면 성인이 되지만, 이들이 왜 가난한지를 물으면 공산주의자가 된다.'라는 돔 카마라 대주교의 말처럼, 우리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역경을 극복한 위인'이 되지만 우리가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고 말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된다. 권영국은 이런 세상을 향해 정말로 이기적인 사람이 누구인지 물을 수 있는 사람이다. 혹자는 이런 언행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이 의미하는 건, 사실 누군가의 불편이 드러나지 않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윤석열 탄핵 정국을 이끌었던 광장은 여러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불편을 밝히는 자리였다. 그 광장이 만든 21대 대선이야말로 이 불편이 수면 위로 드러나야만 하는 자리이다.

5월 2일 정책토론회에 참여해 장애인 차별에 단호하게 맞서는 권영국 후보. 출처: 민주노동당(당시 정의당)

 

이번 대선의 유력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은 '무엇보다 대한민국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먹고사니즘'을 말한다. 윤석열이 빼앗아 갔던 빵을 우리에게 다시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빵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장미 또한 원한다. 장애인 인권이라는 장미를, 성소수자 인권이라는 장미를, 페미니즘이라는 장미를.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 가져 본 적 없는 장미를.

 

12살에 처음으로 뜀박질이란 걸 해 봤다. 걷지 못하는 내가 경험했던 세상과 걸을 수 있는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은 너무도 달랐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수많은 장애인이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제거당한 채로 살아간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장애인들이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 살길 바라고, 종용한다. 정치는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삶을 바꿔줄 거의 유일한 수단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정치가 소수자들의 삶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선거 때마다 기존 정당은 장애인을 위한 공약을 남발하지만 정작 실현되는 경우도, 그 공약에 우리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경우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문재인은 이동권과 관련된 전장연의 투쟁에 무시로 일관하였으며 윤석열은 중증 장애인 일자리 예산을 삭감시켰다. 양당의 정치는 갈등이 예상되는 개혁보단 불편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권영국은 다르다 믿는다. 그는 본인이 가진 삶의 모든 여력을 사회운동에 쏟아부은 활동가이다. 다수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말을, 그리고 해야만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다. 나는 용산참사 피해자들을 변호했던 권영국을 알고 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에서 노동자들과 연대했던 권영국을 알고 있다. 세월호의 비극 앞에 진상을 규명하고자 노력했던 권영국을 알고 있다. 권영국은 정치인보다 활동가의 정체성이 훨씬 더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사람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에서 나오는 분노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절실함을 나는 믿는다. 그의 말의 힘은 다름이 아니라 그가 여태껏 살아왔던 삶의 궤적에서 나온다. 그는 진심으로 화낼 줄 아는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이 끝내 말하지 못하고 삼켜야 했던 말을 대신 말해주는 사람이다. 나는 그와 함께 다시 한번 뜀박질을 하고 싶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다이인(Die-in) 시위에 함께하는 권영국 후보. 출처: 민주노동당


나는 장애인으로서 한평생 동안 '배려'라는 말에 갇혀 살아왔다. 타인의 도움에 기대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더는 배려라는 말로 나의 권리를 감추고 싶지 않다. 이동권은 시혜가 아니라 최소한의 권리이며 탈시설은 선택의 권리라고 외치고 싶다. 나는 누군가의 측은지심 없이도 이 땅에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개인이고 싶다.

 

사람들은 종종 정치에 환멸을 느끼곤 한다. 나 또한 정치가 나의 삶을 바꿔 주지 못할 것이라며 냉소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치는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이며, 나와 함께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외치는 수많은 동지가 있음을 진보정치를 접하며 깨달았다.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존엄과 모두를 위한 사회를 위한 진보정치를 외치는 후보는 권영국뿐이다. 나는 그를 통해 처음으로 나와 같은 사람이 주체가 되는 정치를 상상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상징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나의 존재가 의미가 되는 정치 말이다. 그래서 권영국의 존재는 단지 한 사람의 출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정치에 투표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권영국의 뒤에는 노동자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무언가가 바뀌길 바라는 수많은 시민이 서 있다.

 

이 글을 쓰며, 과거 20대 대선에서 이재명이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를 떠올렸다. '나를 위해, 이재명' - 그와는 다르게, 나는 이번 대선에서 나만을 위해 권영국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산재의 위협에 놓인 노동자, 성차별 없는 사회를 꿈꾸는 여성, 사랑이 당연한 사회를 외치는 성소수자를 기억하며 권영국을 지지한다. 나를 위한 권영국이 아니다. 타인을 위한 권영국도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권영국이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퇴진하라' 손피켓을 들고 시위 중인 글쓴이.


최정운

전환 회원. 숭실대와 고양시를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세상과 세상 사이의 시차에 21년째 적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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