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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노벨 전쟁상'이 된 노벨평화상: 마차도와 미국 제국주의의 남미 침공

by Domoleft 2025. 10. 27.

[국제] '노벨 전쟁상'이 된 노벨평화상: 마차도와 미국 제국주의의 남미 침공

202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노벨상의 영광을 트럼프에게 돌리"며 베네수엘라 군사개입을 촉구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확대로 베네수엘라의 국부(國富)를 미국에 팔아넘길 것임을 천명하는 극우주의자다. '평화상'이 아닌 '전쟁상'이 되어 버린 노벨상의 모순은 본질을 드러낸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2025년 1월 베네수엘라 반정부 집회에서 연설 중인 마리아 마차도. 출처: 엘 파이스(로이터)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María Corina Machado)가 202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되자마자, BBC와 CNN을 비롯한 서구 주요 언론은 마차도의 말을 빠르게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BBC의 인터뷰 기사는 차베스주의 정부가 이란, 러시아, 중국, 쿠바의 마약상 및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함께 이미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상태이며, 지금 필요한 것은 "침공"이 아니라 베네수엘라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마차도의 말을 그대로 내보냈다.[각주:1] 심지어는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인권 관련 NGO들조차 마차도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베네수엘라 친민주주의 운동의 승리"라며 마차도의 입장을 그대로 재생산했다.[각주:2] 그러나 마차도는 결코 갑자기 등장한 '민주주의의 투사'가 아니다. 마차도는 차베스 시절부터 일관되게 가장 극단적인 친미 우익 노선을 걸어 왔던 미국 제국주의의 가장 충실한 대리인이다.


미국의 극우 대리인, 마차도의 역사적 궤적

마리아 마차도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마차도가 걸어온 역사적 궤적을 먼저 살펴봐야만 한다. 2012년, 당시 하원의원이던 마리아 마차도는 국회에서 연례 연설 중이던 차베스 대통령을 "도둑"이라며 큰 소리로 비난했다. 당시 대선의 연합 야당 경선에서 패배한 뒤였던 마차도의 비난에 차베스는 "경선부터 이기고 오세요"라는 말로 유머러스하게 대처했다. 이 당시부터 마차도는 미국에 "베네수엘라 정부과 군부의 고위 각료들이 마약 밀매에 가담하는 증거를 달라"고 요청하며 극단적 친미 성향을 드러냈으며, 매년 반복적으로 베네수엘라와 쿠바의 밀월 관계를 트집잡으며 "쿠바가 베네수엘라에 내정 간섭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이런 쇼에도 불구하고 마차도가 야권 내에서 주도권을 잡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렸다. 차베스 사망 이후 부통령이었던 마두로가 출마한 2013년 대선에서도 마차도는 야권 경선에서 패배하여 엔리케 카프릴레스에게 후보 자리를 내 주었다.

 

우익 극단주의자에 가까운 마차도의 부상은 베네수엘라 야권 전체가 제도권 정치를 포기하고 제국주의와의 결탁을 통해 국가를 전복시키는 노선으로 수렴해가는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2014~2016년 중국의 성장 둔화에 따른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감소는 2013년 이후 경제의 역성장을 불러왔고, 이는 같은 해 차베스의 사망과 맞물려 PSUV(베네수엘라 연합사회당) 정부에 대한 불만감 조성으로 이어졌다. 이를 놓치지 않은 야권은 2014년부터 대규모 우파 시위(guarimba)를 조직하여 폭력 시위를 위시한 반정부 운동을 전개했다. 2017년 트럼프의 등장 이후로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내외적 긴장이 급격하게 고조되자 마두로 정부는 우파 야권에 대한 제도적 탄압을 강화했고, 미국의 본격적 지원 속에 자신감을 얻은 야권은 점점 더 강경한 입장으로 수렴해 갔다.

2014년 베네수엘라 우파 진영의 반정부 시위(guarimba). 출처: 로이터

 

마차도는 2018년부터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마두로가 재선된 2018년 대선은 부정선거이며 미국이 개입하여 비민주적 마두로 정부를 끝내고 '자유 베네수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에 화답하듯 트럼프 정부는 2018년 베네수엘라 대선을 무효로 선언했고, 2019년 1월 마두로 2기 취임식에 맞춰 국회의장 후안 과이도가 스스로를 대통령으로 선언하자 이를 인정하며 본격적인 쿠데타 시도를 시작했다. 당시 마차도는 이를 적극 환영하며 "20년 동안 우리가 싸우고 준비해 왔던 유일하고 역사적인 순간을 목도하고 있다"는 과장된 언사로 쿠데타의 깃발을 흔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차도와 과이도 간에는 분열이 생겨났다. 2019년 5월 과이도를 지지하는 군부 일각의 쿠데타가 마두로 정부를 지지하는 군부 다수에 의해 저지되며 내부 동력을 통한 쿠데타의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이다. 핀치에 몰린 과이도는 7월부터 마두로 정부와 협상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고, 한편으로는 다가오는 2020년 12월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 야권 통합인 연합 협약(Pacto Unitario)을 준비했다. 그러나 한층 더 극우적인 마차도에게 협상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마차도는 BBC 등의 외신을 통해 "무력 사용의 실제적 위협과 국제적 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해외 군사개입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경제봉쇄를 일관되게 지지했다. 경제봉쇄와 국내 혼란 속에서 수백만의 베네수엘라인이 영양실조를 겪고, 이민을 떠나 타지에서 차별과 착취를 당하는 현실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 봉쇄라는 베네수엘라 최악의 시기가 끝나고 마두로 정부가 BRICS의 지원, 특히 중국에의 석유 수출로 경제 상황을 상대적으로 안정화시키자, 과이도는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마차도는 베네수엘라에 남아 '외로운 싸움'을 지속했다. 물론 이들이 제도권적 입지나 전국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반정부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USAID(미국 국제개발처)를 위시한 미국의 전폭적 자금 지원이 있었다.

2019년 함께 사진을 찍는 마차도(좌측)와 과이도. 출처: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페이스북

 

2024년 대선은 선거 이전부터 폭풍전야의 상황이었다. 과이도가 떠난 야권의 유일한 지도자 자리를 꿰찬 마차도는 쿠데타 지지로 선거 출마가 금지당한 자신을 대신한 야권 후보 에드문도 곤잘레스가 승리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 부정선거라는 말을 선거 몇 달 전부터 반복했다. 주요 외신들은 마차도의 말을 그대로 퍼나르면서 '실제로는 야권의 지지가 압도적이다'라는 인상을 세계에 심었다. 선거 당일 수도 카라카스에서는 야권 시위대와 투표자, 경찰 간의 폭력 충돌이 수없이 벌어졌다. 마차도는 개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곤잘레스의 70% 득표를 주장하고 '압도적 승리'를 선언하며 이 결과가 아니면 부정선거라는 말을 반복했다.

 

개표 도중의 정전이라는 미심쩍은 정황이 존재하지만, 개표 결과는 다시금 마두로의 당선으로 드러났다. 마차도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포문을 열었다. 2025년 상반기부터 마차도가 미국 용병과 베네수엘라 우파 민병대의 상륙작전을 비밀리에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마차도가 곧 '제2의 과이도가 될 것'이라는 기사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8월 트럼프 정부가 '로스 솔레스' 마약 카르텔과 마두로의 연관을 주장하며 카리브해에 군함을 파견하고 침공 가능성을 시사하자, 마차도는 더욱 활발하게 외신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차도는 트럼프를 칭송하면서 베네수엘라를 침공해서 자유를 되찾아 달라 읍소했고, 베네수엘라 군경 및 공무원에게는 과도기 임시정부의 수립을 대비해 조직을 유지하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에는 네타냐후에게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베네수엘라와 이스라엘이 언젠가 굉장히 가까운 국가가 될 것"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마차도가 바라는 '평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마차도가 바라는 '평화'란 무엇일까? 베네수엘라는 비민주적 독재국가이므로, 마차도가 그토록 외치는 '자유'는 어쨌든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마차도가 염원하는 '자유 베네수엘라'의 진짜 모습은 이미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옥도와 다르지 않다.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대표적이다. 페론주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정부의 경제적 실책 끝에, 2023년 스스로를 자유지상주의자로 규정하는 극우주의자 하비에르 밀레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밀레이는 임기 시작 직후부터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소위 '충격요법'을 밀어붙였다. 2024년 3월 밀레이가 국회에 제출한 옴니부스 법안(el paquete Omnibus)은 사실상 모든 공기업과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내용과 함께 경찰의 시위대에 대한 발포 권한 확대를 담고 있었고, 몇 주에 걸친 대규모 시위를 비롯한 거센 반대에도 결국 대부분 통과되고 말았다. 밀레이는 신자유주의 공식대로 의료, 교육, R&D, 교통, 에너지, 복지 등 미래에 대한 투자를 모두 삭감했고, 인플레이션의 증가세는 조금 하락했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 이상으로 빈곤의 구렁텅이에 떨어졌다.

스스로를 '체인소 맨'에 빗대며 당선된 하비에르 밀레이. 출처: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인플레이션으로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 인상폭은 훨씬 낮아졌으므로 실질 소득은 절반으로 감소했고, 절대빈곤율은 2024년 52.9%로 2004년 이래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빈민가인 비샤(villa)에서는 정부 지원을 받던 무료 급식소가 지원 중단으로 문을 닫거나 마약상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급격한 시장 개방으로 아르헨티나의 여러 제조업 중소기업들이 갑작스레 폐업하게 되면서, 일자리가 사라진 청년들은 마약 카르텔로 모여들고 있다.

 

2025년 10월에는 밀레이의 당 자유전진(La Libertad Avanza)의 대표적 정치인인 하원의원 호세 루이스 에스페르트(José Luis Espert)가 마약상과의 연계 혐의로 체포되었다. 에스페르트는 미국 마약단속국(DEA)이 마약상으로 지정한 페데리코 프레드 마차도(Federico Fred Machado)에게 20만 달러를 입금받았고, 선물받은 세스나 경비행기로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의 마약을 운송했다. 2025년 중순에는 연금 개악으로 실질 수령 연금이 대폭 감소하면서 고령의 연금 수급자들이 거리로 나왔고,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노인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이 TV로 송출되자 전국적 분노가 일어 시위대의 규모가 더욱 커졌다.

 

지난 9월 밀레이의 측근이었던 디에고 스파뉴올로(Diego Spagnuolo) 전 국가장애인청장이 밀레이의 여동생이자 대통령비서실장인 카리나 밀레이와 나눈 대화의 녹취록을 폭로하면서 전국적 분노는 더욱 달아올랐다.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의약품과 지원품을 제공하는 국가장애인청에 납품하기 위해 제약회사들은 8%의 리베이트를 제공해야 했고, 이 중 1/3 이상인 3%는 카리나 밀레이에게 직접 입금되었다. 이와 같이 국가 체계가 철저히 파괴되면서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 선거에서는 페론주의 야권 조국을 위한 단결(Unión por la Patria) 소속의 악셀 키실로프(Axel Kisilof)가 모든 예상을 뒤엎고 14% 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2025년 10월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악수하는 밀레이. 출처: 게티이미지

 

총선 패배 가능성이 커지자 밀레이는 트럼프에게 재정지원을 요청했다. 자신의 유일한 기반인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외환 보유고를 거의 소진하여 디폴트 위기에 처한 데다, 이미 이전 우파 정권의 대출로 IMF로부터의 추가 대출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통화 스와프와 함께 밀레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고, 밀레이는 트럼프가 트루스소셜에 게시한 지지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총선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얼마 전인 10월 15일, 트럼프는 백악관을 방문한 밀레이에게 "10월 26일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아르헨티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하며 동시에 FTA 체결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는 총선 패배 시 탄핵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높은 밀레이에게 직접적인 압박을 가한 것이다.

 

다시 베네수엘라로 돌아와 보자. 마차도는 지난 2024년 대선 당시 야권 경선에서 공기업 90% 이상의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밀레이와 전형적으로 유사한 극단적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마차도가 말하는 '자유'란 베네수엘라 일부 특권층과 미국, 유럽의 자본이 자유롭게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광물, 어류 자원을 약탈하고 노동을 착취할 자유다. 마차도가 말하는 '평화'란 베네수엘라에서 정부를 피해 라틴아메리카 각국으로 퍼져나간 트렌 델 아라구아(Tren del Aragua)와 같은 마약 카르텔이 베네수엘라로 돌아와 불법 광산과 코카 잎 재배지를 운영하고, 거리에서는 매일같이 총성이 울리고, 저임금 노동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노예노동을, 마약 재배를, 살인을 하도록 만드는 '평화'다.


'노벨 전쟁상'의 진짜 의미

노벨상의 다른 부문이 스웨덴의 왕립과학원이나 한림원과 같이 각 분야의 전문가 검토를 통해 수상자를 정하는 것과 다르게, 노벨평화상의 수상자는 노르웨이 의회에서 추천된 인사들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노벨위원회의 평화상 담당 위원들은 PEN international, 국경없는의사회 등 USAID 지원을 받던 NGO 출신의 의장 요르겐 와트네 프리드네스(Jørgen Watne Frydnes),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출신의 부의장 애즐 토예(Asle Toje), 중도당 관료 출신 앤 엥거(Anne Enger), 보수당 정치인이자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크리스틴 클레멧(Kristin Clemet), 노동당 외교부 장관 출신 그리 라슨(Gry Larsen)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노벨평화상은 외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1973년 베트남전, 크메르 루주, 콘도르 작전 등 수많은 쿠데타, 학살, 침공을 진두지휘한 헨리 키신저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되었고, 공동 수상자로 내정된 베트남 측의 레둑토는 이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수상을 거부했다. 1978년에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이집트의 친미 대통령 안와르 알 사다트와 극단적 시온주의 활동으로 악명 높은 이스라엘의 총리 메나헴 베긴에게, 2002년에는 광주 학살을 묵인하고 칠레,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잔혹한 독재 정부를 지원한 지미 카터에게 수여되는 등 '평화상'은 실상 평화와 가장 거리가 먼 인물들에게 수여되어 왔다. 실제 평화를 위한 활동을 통해 수상한 사람들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미국과 서방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좌우되는 상임을 부정할 수 없고, 이번 마차도의 수상자 선정을 통해 지금껏 형식적으로 지켜 온 자유주의적 포장마저도 집어던졌다. 이제는 노벨평화상이 아니라 '노벨 전쟁상'으로 불러야 할 판국이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헨리 키신저와 메나헴 베긴. 출처: 노벨위원회

 

죽음과 착취의 미래를 선전하는 자에게 수여된 노벨평화상은 무슨 의미일까? 마차도의 '극우 국제연대'가 이미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미국이 노벨평화상을 마차도에게 수여하더라도 세계적인 선전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즉 이번 노벨평화상은 일종의 선언과 같다. 미국이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바란다는 선언이고, 베네수엘라 정부에게 '미국은 전쟁을 불사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이다. 또한 밀레이, 페루 정부, 에콰도르의 노보아, 엘살바도르의 부켈레, 칠레의 카스트 등 마차도의 '평화'에 동조하는 남미의 극우주의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선언이며, 콜롬비아의 페트로, 멕시코의 셰인바움, 브라질의 룰라, 우루과이의 오르시 등 이에 반대하는 좌파들에게 날리는 경고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 이라크 침공처럼 베네수엘라 침공을 단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의 현재 국가 채무는 37조 9천억 달러에 달한다. 한화로는 5경 389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다. 이 액수는 미국 GDP의 118%에 달해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던 2003년의 59%에 비하면 훨씬 더 재정을 짓누르고 있고, 더 이상 미국이 전면적 침공과 같은 큰 부담을 질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이에 더해 베네수엘라는 국민의 대다수가 1999년 이래로 '볼리바르 혁명', 즉 차베스주의 정치를 지지해 온 나라다. 이라크 쿠르드족이 게릴라전을 수행하고, 내부적으로도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불안 요소가 있던 사담 후세인 정권과는 그 상황이 전혀 다르다. 러시아와의 군사적 협력도 심화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전면적 침공을 감행한다면 이는 미국에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보다도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은 지난 8월 18일 베네수엘라 침공을 시사하며 카리브 해에 항모전단을 파견했지만, 섣불리 베네수엘라를 침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카리브 해상에는 4,300명의 상륙 병력과 원자력 잠수함, 구축함이 대기하고 있고, 미국의 속령 푸에르토리코에는 F-35 편대와 6,000명의 추가 병력이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항모전단 파견 이후 수백만의 베네수엘라인들이 자발적으로 민병대에 입대했고, 군부 내에 균열을 내어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시나리오도 실현 가능성이 적다. 내부 협력자를 통해 쿠데타를 일으킨 뒤 수뇌부를 제거하고 군대가 발을 들이는, 미군 사상자를 최소화하는 '레짐 체인지'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카리브 해에 파견된 미국의 항모전단. 출처: 라틴아메리카 리포트 latinamericareports.com

 

주변국 중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댄 브라질과 콜롬비아도 침공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카리브해 전단 파견 직후부터 지금까지 제국주의 침공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고, 베네수엘라에서의 전쟁은 곧 콜롬비아의 전쟁이 될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제국주의와 글로벌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가자에서의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연합군을 형성하자는 제안까지 하며 미국과 트럼프에 가장 비판적인 정부로 자리매김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또한 침공에 대한 반대를 천명했으며 유엔 총회 연설에서 가자에서의 집단 학살을 규탄했다. 트럼프는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석방을 위해 브라질에 50%의 관세까지 물렸으나, 룰라 정부는 보우소나루의 쿠데타 시도에 대해 27년 9개월 형을 선고하고 주권 브라질(Brasil soberano)을 밀고 나가며 단호한 자세를 유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부와 군부, 민중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국제적 지지를 얻기 위해 지속적인 정보전과 심리전을 걸고 있다. 마차도의 노벨상 수상은 결국 이러한 정치공작과 프로파간다의 일환이다. 최근에는 마두로 정부가 미국에게 '군사적 압박을 풀어준다면 석유 전체를 내어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가짜 뉴스가 CNN, 뉴욕타임스 등을 위시하여 CiberCuba, El Colombiano, El País, El Mundo, La Tercera 등 친미 언론에 유포되었고, 지난 17일에는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해당 내용을 확언한 바 있다. 또한 트럼프는 같은 자리에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CIA 비밀 작전을 승인했고 지상 타격을 검토하고 있다며 전쟁 위협을 직접적으로 가했다. 마두로는 이에 즉각적으로 "저들은 베네수엘라 정부 내부가 분열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고 단순히 불가능한 일"이라며 반발했다.


프로파간다를 넘어선 새로운 국제주의로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시도와 그를 염원하며 민중의 삶을 약탈하고자 하는 마차도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체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금융자본과 정보기술자본으로 표상되는 미국의 패권은 스스로가 감행한 이라크 침공부터 가자 학살까지의 귀결로 찾아온 리스크를 무마하고 세계의 주인으로 계속 군림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남미의 리튬, 금, 구리를 약탈하며 자립을 시도하는 정권들을 무너뜨리고자 코카인-마약카르텔을 이용하고 있다. 이는 단지 남미만의 일이 아니라 동아시아에도 그대로 해당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안보를 빌미로 한국과 대만의 공업력을 미국으로 가져오며 경제력을 소진시키고 주변부 국가들의 노동을 직접적으로 착취하려 하고 있다. 그를 통해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미국 패권의 지배를 영구화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세계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다 쓸 때까지 기후위기가 모두를 파멸시키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 한국의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은 이런 체제에 맞서는 기획과 행동을 확대해야 한다. 한국의 시민사회운동과 진보정당들은 오는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투쟁을 기획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불평등 관세협상과 대미투자 강요 반대, 팔레스타인 종전과 학살자 처벌 요구에 더해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반대 역시 외쳐져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인도주의적 연대를 넘어 한국을 지배하는 재벌 자본과 라틴아메리카의 주권을 유린하는 제국주의 자본이 결국 같은 뿌리를 가졌음을 인식하고, 공동의 적에 맞서는 새로운 국제주의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실천이기도 하다.

 

오늘날 국제주의자들의 명백한 의무는 트럼프가 대표하는, EU가 대표하는, 마차도가 대표하는 전쟁 기획과 그 전쟁을 부르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맞서는 것이다.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 아래,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의 주권을 위한 투쟁과 한국 노동자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결국 하나의 전선에서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5 APEC 반대 국제민중행동 투쟁참가단 포스터


이산

사회학도. 라틴아메리카 정치 및 사회운동, 사회변혁을 주된 관심사로 삼아 교류와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칠레에서 1년간 사회학을 공부한 경험으로 칠레 사회운동에 대한 소개 및 분석을 주로 한다.


각주

  1. BBC, We're grateful for what Trump is doing for peace, Nobel winner tells BBC https://www.bbc.com/news/articles/c5y8y25l250o [본문으로]
  2. 국제앰네스티, Global: Nobel Peace Prize honours María Corina Machado and the pro-democracy movement in Venezuela https://www.amnesty.org/en/latest/news/2025/10/global-nobel-peace-prize-honours-maria-corina-machado-and-the-pro-democracy-movement-in-venezuela/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