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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음악

마왕을 떠나보내는 불성실한 팬의 작별인사 - 래퍼 제리케이를 추모하며

by Domoleft 2026. 5. 2.

[음악] 마왕을 떠나보내는 불성실한 팬의 작별인사 - 래퍼 제리케이를 추모하며

지난 4월 27일 세상을 떠난 래퍼 제리케이(Jerry.K)는 끊임없이 혐오에 저항하며 소수자의 편에서 사회비판적 목소리를 내어 온 한국 힙합 씬의 흔치 않은 뮤지션이다. 통렬한 가사로 한국 사회와 힙합 씬에 경종을 울렸던 '마왕' 제리케이를 추모하는 팬의 기고를 싣는다.


4월 27일 세상을 떠난 래퍼 제리케이. 출처: 포크라노스 poclanos.com

 

2026년 4월 27일, 래퍼 제리케이(Jerry.K)가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2년 넘게 투병해 온 뇌종양이었다. 힙합 음악을 오랫동안 사랑해 온 리스너로서 무엇이라도 말을 얹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그에 대한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으니 좀처럼 문장이 이어지지 않았다. 글을 완성하기에 앞서 내용을 몇 번이고 엎었다. 그의 죽음 앞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족적을 하나하나 훑으며, 어떤 음악들로 세상을 바라봤고 또 위로해 왔는지를 설파해야 할까. 아니면 페미니즘과 소수자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던 모습을 중점에 두고 그의 삶을 기록해야 할까.

 

하지만 그 무엇에도 그리 강하게 이끌리지는 않았다. 음악적 성과를 짚는 일이라면 전문 매거진이나 조예 깊은 이들이 나보다 더 잘 해낼 것이고, 후자라면 2011년 소울컴퍼니 해체 이후 '데이즈 얼라이브'를 설립하며 활동했던 그의 행보를 꾸준히 팔로우하지 못한 내가 자신 있게 꺼낼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은 무엇이 되었든 '솔직함'이 가장 옳은 방향이라는 것이었다. 대단한 칭송도, 세밀한 분석도 아니지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로 그를 되돌아보고 기억하는 일이다. 어디에서도 정리된 기록으로 남긴 적 없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풀어나가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그를 보내고자 한다.


나와 힙합, 그리고 제리케이

좌측부터: 키네틱 플로우의 〈몽환의 숲〉 앨범아트 / 한국 힙합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로고. 출처: 벅스뮤직 / TVING

 

나는 2006년, 수많은 이들의 싸이월드와 블로그 배경음악을 차지했던 키네틱 플로우의 〈몽환의 숲〉을 기점으로 힙합을 듣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성공 이후 이제 한국 대중에게 있어 힙합은 익숙한 장르가 되었지만, 20년 전만 하더라도 소위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듣는다는 건 "그뭔씹('그게 뭔데 씹덕아'라는 말의 줄임말)" 소리를 듣기 딱 좋은 일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드렁큰 타이거, 다이나믹 듀오, 에픽하이 등이 음원 차트에서 호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보편적인 인기를 누리던 시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 시절 '비주류'였던 힙합에 매료되었을까. 돌이켜보면 당시 나에게는 힙합이 천편일률적인 사랑 노래 이외의 수많은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래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직접 써서 노래한다는 사실이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음악을 향한 열정은 있는데 돈이 없어 고민이라거나, 힘든 시기겠지만 끝내 이겨내자고 외치거나, 내가 이 씬에서 최고라고 선언하는 모습들. 굳이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내 삶의 어떤 지점과도 연결할 수 있는 주제가 많았다. 그것은 분명 '나'의 이야기였다.

 

힙합의 태동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안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또한 당시 한국에서 힙합은 진보적인 메시지를 담지하는 일정한 상징이기도 했다. 나 역시 사회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힙합이었다. 입문 초창기 즐겨 들었던 MC 스나이퍼는 여러 사회상을 음악에 담아내곤 했다. 안치환의 곡을 리메이크하여 전태일로 대표되는 공장 노동자의 삶을 말했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나 복지 사각지대의 소외를 노래한 〈고려장〉 같은 곡들이 그랬다.

힙합 레이블 소울컴퍼니(2002~2011)의 단체사진

 

힙합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한 지 1~2년이 지나 나의 관심은 어느덧 '스나이퍼 사운드'에서 '소울컴퍼니'로 옮겨갔다. 레이블 특유의 밝은 사운드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당시 내 눈길을 끈 것은 '컨셔스 랩(Conscious Rap, 사회에 대한 주제를 전면으로 다루는 힙합의 하위 장르. 힙합의 태동기부터 존재해 왔다)'의 대가라 불리던 제리케이의 음악이었다. 거친 표현으로 한국 사회의 폐부를 찌르던 그의 모습은 어린 내게 큰 충격이었다.

 

특히 그의 정규 1집 《마왕》[각주:1]은 한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총체였다. 한국 정치의 병폐를 갈아 넣은 〈베짱이〉, 과도한 교육열에 고통받는 아이들을 그린 〈아이들이 미쳐가〉, 불안한 사회 속 개인의 실존을 담은 〈불안해〉, 자본주의를 대놓고 비판한 〈손가락질〉, 기후위기가 지금과 같이 이슈화되기 전부터 환경 파괴를 경고한 타이틀곡 〈마왕〉에 이르기까지. 당시 그 앨범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사회의 이면을 내게 가르쳐 준 교과서였다.

제리케이 1집 《마왕》의 앨범아트. 출처: 벅스뮤직

 

 

자연의 원칙을 다스리는

자본의 법칙을 따라가는 자멸의 몸짓

우주 시대를 여는 장면에 겹칠

곧 지구에게 써야만 할 작별의 편지

산성화되는 비와 사라져가는 빙하

또 셀 수 없는 과학자가 전하는 비관론

그 복수 앞에 작아져가는 인간

오! 지배의 논리 그 착각이 낳은 시간표

 

- 〈마왕〉, Jerry.K 中

 

당시 나는 그와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 사회의 여러 모습을 음악으로 기록하고, 함께 기억하고 행동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랩을 들으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웠다. 직접 가사를 썼고, 노래를 불렀고, 형들과 용돈을 모아 홍대의 작은 라이브 클럽 무대에도 섰다. 내 작업물로 직접 디지털 싱글을 발매해 보기도 했다. 그 때의 나는 진심이었고 열정적이었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소심했던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기지 못한 채 취업을 준비하는 평범한 길로 고개를 돌렸다. 재수를 통해 어렵사리 시작한 대학 생활은 힙합보다 즐거운 것들로 채워졌고, 그렇게 나의 첫 꿈은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소울컴퍼니는 2011년 해체했고 제리케이 역시 새로운 레이블 '데이즈 얼라이브'를 설립했다. 그렇게 소울컴퍼니 원년멤버였던 제리케이의 강렬한 음악도, 힙합에 대한 나의 열정도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히는 듯했다.


차별과 혐오에 맞선 제리케이

그렇게 살아가던 내가 다시 제리케이의 이름을 마주한 것은 2018년, 래퍼 산이(San E)의 〈페미니스트〉에 맞대응해 발표한 디스곡 〈NO YOU ARE NOT〉[각주:2]을 통해서였다. 2015~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이 한창 격동하던 시기, 힙합 씬의 주류가 '페미니스트'를 희화화하고 조소하며 혐오를 재생산하는 산이의 입장에 동조할 때 제리케이는 그와 정반대편에 서서 목소리를 냈다. 단순히 당시 떠올랐던 이슈에 대한 동조 정도로 치부하기엔, 그간 그가 계속 만들어 왔던 약자의 편에 서는 음악들은 단지 산이 개인뿐 아니라 힙합 씬의 혐오문화를 통렬히 비판하는 그의 목소리에 진정성을 더했다.

 

당시 제리케이의 행보가 더욱 유의미했던 이유는 그가 과거 자신의 가사에 담겨 있던 여성혐오적 내용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고,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여성에게 더 많은 발언권이 주어져야 한다"며 자신의 레이블 데이즈 얼라이브에 소속된 여성 래퍼 슬릭과 함께 경향신문 인터뷰에 임했기 때문이다.[각주:3] '스웩'이라는 명목으로 용인되어 온 한국 힙합 씬 내 뿌리 깊은 혐오문화의 영향력에서 자기 자신조차 자유롭지 않다는 그의 말은 음악과 행동을 통한 실천과 위화감 없이 겹쳐졌다.

2018년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는 제리케이(사진 우측)와 슬릭. 출처: 경향신문

 

한편 산이와의 디스전 이전에도, 이후로도 그는 모든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입장을 자신의 음악 속에 꾸준히 녹여냈다. 과거 1집 시절보다 훨씬 더 우리 곁의 현실을 생생히 담아낸 〈콜센터〉나, 퀴어로서의 당당함을 응원하는 〈Parade〉같은 곡들이 그 증거다. 이보다 한참 이전이지만,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2014년 곡 〈뛰어 넘든지 기어봐〉는 거대자본 삼성을 대놓고 비판하는 가사로 인해 당시 MBC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불성실한 팬의 고백

앞서 이야기했듯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데이즈 얼라이브' 설립 이후 그의 음악을 잘 알지 못한다. 내 취향과 조금 멀어지기도 했고, 힙합에 대한 나의 관심 자체가 희미해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그가 보여 준 행보가 '서울대 출신 래퍼'라는 타이틀에서 나오는 시혜성과 오만함이 아니라 사회에서 가려진 이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진실함이었다는 점이다. 한국 힙합을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소수자와의 연대를 꺼리며 때로는 그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힙합 씬의 분위기는 무척 속상한 일이었기에 그 속에서 멈추지 않았던 제리케이의 걸음은 더욱 귀했다.

 

그가 떠난 후 뒤늦게야 그의 작업물들을 훑어보았다. 2020년 마지막 정규 앨범 《Home》을 발매할 무렵 그에게도 여러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앨범의 수록곡들을 들으며 과거 곡들에 담겼던 거대 담론보다는 이제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조용히 노래하고 싶어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쩌면 그간의 수많은 부딪침에 지쳤던 것은 아닐까. 고인의 생각을 함부로 추측할 수는 없지만, 참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시 나를 본다. 그처럼 사회에 분노하며 무엇이라도 해 보고 싶어 정당 활동을 시작했지만, 나 역시 문득문득 외로워지곤 한다. 아무리 변화를 위해 몸부림쳐도 세상은 요지부동이거나 오히려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상황을 숱하게 마주하기 때문이다. 승리보다는 패배에 익숙해지고,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며 다시 다짐한다. 주변의 평가가 어떠했든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던 한 사람을 기억하자고. 그처럼 음악을 하고 싶었던 내가 한 번 놓아 버렸던 그 다짐을 이제는 쉽게 포기하지 말자고 말이다. 불성실한 팔로워였던 내가 이제라도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그 '태도'를 이어가는 것뿐임을 깨달으며 제리케이를 떠나보내고자 한다.

제리케이의 생전 모습

 

날이 더해갈수록 맘이 변해가는 걸,

느끼고 있다면 기억해

삶이 너의 가는 길을 비추고 있다는 걸,

힘들어도 피나는 열정 위에서

진정한 당신은 꽃 핀다는 걸

 

- 〈숨은 보석〉, Jerry.K 中


김지현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부위원장. 한때 예체능을 꿈꿨지만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합니다.


각주

  1. [Full Album] Jerry.K - 마왕 https://www.youtube.com/watch?v=ZP9B_mTzLo8 [본문으로]
  2. Jerry.K - NO YOU ARE NOT https://www.youtube.com/watch?v=H6EhdVJFluQ [본문으로]
  3. 경향신문, '여혐 논란' 래퍼 산이 신곡에 반박곡 낸 제리케이와 슬릭 "산이의 해명…1mm는 나아간 것" https://www.khan.co.kr/article/20181120205800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