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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운동

노동조합 회계공시,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을 훼손하다

by Domoleft 2025. 2. 27.

[사회] 노동조합 회계공시,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을 훼손하다

지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회계공시거부 결의 건'이 부결되면서,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환영하고 노동운동 내부에서는 논쟁이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훼손하는 노동조합 회계공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2월 11일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 민주노총 제82차 정기대의원대회. 출처: 매일노동뉴스

 

지난 2월 11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제82차 정기대의원대회(대대)가 개최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예년과 다르게, 민주노총은 이번 정기대의원대회에 상정된 모든 안건을 처리했다.

 

평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탄하게 진행되던 이날 대대의 회의장이 가장 뜨겁게 달궈졌던 때는 세 번째 안건이었던 '회계공시거부 결의 건'을 다루는 순간이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측의 의견을 받아 중집 제안으로 이번 대대에 직접 상정한 본 안건은 재적 대의원 935명 중 394명의 찬성으로 과반에 미달하여 부결되었다. 민주노총 대대에서 회계공시 거부가 부결된 것은 동일한 안건이 작년 3월에 열렸던 제80차 임시대대에서 부결된 이후 이번이 두 번째이다. 즉 민주노총에서는 올해도 정부의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에 민주노총 회계 정보를 입력하게 된 것이다(작년도 회계를 작성하게 되기 때문에 올해에는 2024년도 회계를 입력한다.).

 

흥미로운 점은, 본 안건을 상정한 현 집행부의 주요 정파인 '민주노동자전국회의(전국회의)'와 같은 정파로 분류되는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소속 대의원들이 단 1표의 이탈도 없이 본 안건에 대해 일괄적 반대표결을 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국민의힘 우재준 국회의원(대구 북구 갑)이 대대 시작 전부터 회의장 앞에서 회계공시에 동의하라는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여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등, '회계공시거부 결의 건'이 이 날 대대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을 많은 이들이 진작부터 예측한 바 있다. 민주노총 내부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데다 대구의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경기도 고양시까지 찾아와 피켓을 들 정도로 주목받은 노동조합 회계공시,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논란인가?

민주노총 대대가 열리는 킨텍스 입구에서 회계공시에 동의하라는 피켓을 들고 실랑이를 벌이는 국민의힘 우재준 의원. 출처: 매일노동뉴스


노동조합 회계공시, 무엇이 문제인가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 메인 화면. 출처: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 https://labor.moel.go.kr/

 

지난 2022년 연말부터 군불을 때기 시작해 2023년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이 처음 도입되었으니, 노동조합 회계공시가 시작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2022년 말에서 2023년 초, 정부는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이유로 조합원 1,000명 이상 단위노조에 관련법 상의 '서류 비치 및 보존 의무' 이행 안내 공문을 발송했다. 이후 정부는 관련 서류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노동조합들의 반발로 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2023년 10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에 노동조합 스스로가 회계를 공시해야만 조합원들이 지출한 조합비에 대한 세액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정부의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의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에 수입과 지출 등 회계 정보를 '자율적으로' 입력한다.

② 공시된 정보는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에서 열람할 수 있다.

③ 회계공시는 자율이지만, 이에 참여하지 않은 노동조합과 상급단체의 조합원은 조합비에 관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다.

1) A총연맹 – B연맹 – C노동조합(조합원 1,000명 이상) : A, B, C가 모두 회계를 공시하면 조합비 세액공제 가능

2) A총연맹 – B연맹 – C노동조합(조합원 1,000명 미만) : A, B가 회계를 공시하면 C가 공시하지 않더라도 조합비 세액공제 가능

 

글로만 읽어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조금 더 단순하게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즉 정부는 연말정산 때 세금 환급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조합원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노동조합이 회계공시에 참여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 동안 한국의 노동조합은 조직의 기본 중 기본인 회계조차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양대 노총 조합원만 해도 200만 명이 넘는데, 그들이 낸 조합비는 다 어디로 간 것인가?

정부의 회계공시 시스템에 올라온 민주노총의 2023년도 회계공시. 출처: https://labor.moel.go.kr/

 

물론 정부의 노동조합 회계공시가 아니더라도, 노동조합은 규약에 따라 회계를 운영하며 자체적인 회계감사를 진행한다. 애초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노동조합은 '조합비 및 기타 회계에 관한 사항'을 규약에 명시하여야 하고,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사무실에 비치하여야 한다. 그리고 매년 회계감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전체 조합원에게 공개하여야 한다.[각주:1] 이렇듯 기존 제도로도 충분히 노동조합 회계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었다. 앞서 정부가 노동조합에 회계 관련 서류를 제출할 것을 요청한 것도, 법적으로 관청이 요구할 시 노조가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하여야 한다는 법이 있기에 가능했다.

 

노동조합들은 자체적으로 조합원에게 노동조합이 조합비를 얼마 거두어 어디에 사용했는지 보고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로 운영되고, 조합원은 자신이 낸 조합비가 어떻게 쓰이는지 당연히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비단 노동조합이 아니더라도 조직과 단체의 구성원은 당연히 자신이 속한 조직과 단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아야 한다. 이는 모든 조직의 당연한 운영 원리이다. 노조 말고도 많은 조직이 구성원으로부터 돈을 거두어 조직을 운영하며, 그 과정을 구성원에게 공유한다. 그렇지만 모든 조직이 회계를 공시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정부로부터 큰 규모의 지원금을 받는 단체들도 그러한데, 상식적으로 정부 지원을 받지도 않는 노동조합들까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체 회계를 공개할 이유는 없다.

 

정부의 노림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어떤 조직이든, 이유 없이 조직의 내부 사정이 훤히 노출되는 회계 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라고 요구하면 반발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이 회계공시 제도 도입에 반발한 것 역시 당연하다. 그러나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제고를 통한 신뢰 증대'에 반발하는 노동조합이 대중에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패한 조직'으로 악마화되기란 너무나 쉬운 것이 한국 사회의 현 상황이다. 윤석열 정권은 '법치'의 이름으로 이를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얻으려 한 것이다. 일견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노동조합 회계공시가 윤석열 정부 들어 가속화된 노조 탄압의 가장 교묘한 꼼수 중 하나인 이유이다.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의 '투명성 강화'를 요구하는 윤석열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 출처: KTV

 

상술했듯 민주노총은 올해 회계공시 참여를 결정했다. 회계공시 거부 결의에 반대(회계공시 참여)하는 측은 '회계공시 거부로 인해 조합비가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면 발생할 현장의 조직적 손실'과 '이미 참여했던 노동조합 회계공시를 다시 거부하면 발생할 혼란'을 우려한다. 반대로 회계공시를 거부해야 한다는 측은 '노동조합 회계공시 참여는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상실하는 것'이기에 민주노총이 이를 거부하기로 결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민주노총 조합원으로서, 이미 결정된 사안이거니와 대의원들이 숙고와 투표를 거쳐 결정한 사안이기에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회계공시 참여 자체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소중한 월급의 일부를 떼어 노조에 납부하는 조합원들의 세액공제에 대한 요구 역시 회계공시의 정치적 문제와는 별개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다만 회계공시 거부 결의에 '조직적'으로 반대한 일부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약칭 민주노총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이다. 민주노총은 창립선언문에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전국중앙조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라며 자신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과거 군부독재 시절부터 보수우파의 필요에 발맞춰 조직된 한국노총, 정권과 자본이 주도하는 어용노조에 맞서 조합원의 뜻에 따라 스스로 운영되며, 조합원과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활동하고 투쟁하는 진짜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한 운동을 끊임없이 전개해 왔다. 민주노총은 이렇게 수십 년 간 누적된 민주노조 운동의 성과로 만들어진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들'의 '전국 단위 중앙조직'인 것이다. 그런 민주노총이 세액공제라는 행정관청의 물질적이고 제도적인 지원에 이토록 쉽게 흔들리는 모습, 그리고 민주노총의 현 집행부와 정치적 경향을 같이하는 특정 노동조합들이 집행부가 상정한 회계공시 거부 결의의 건에 조직적으로 반대했다는 사실은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2024년 3월 18일 민주노총 제80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는 회계공시거부 결의의 건 수정안. 출처: 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은 정말 길을 열고 있는가?

12.3 내란 사태 이후, 집회 현장에서 길을 내는 민주노총의 모습을 실제로 목격한 광장 대중은 민주노총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역시 이에 호응하며 '길을 여는 민주노총' 등의 표현을 적극 활용하며 광장의 맨 앞에서 투쟁하는 조직으로써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여의도에서, 한남동에서, 광화문에서 싸우는 민주노총의 곁에 서면, '수십 년간 싸워온' 조직의 저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최근 민주노총이 받는 대중적 지지의 정도는 1990년대 이후 조직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민주노총 스스로도 '노조가 세상에 뒤처졌다'는 세간의 평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광장의 지지는 쿠데타에 맞서 당당하게 길을 내는 조합원들의 모습과 수많은 상근 간부들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이후의 세상이 멀지 않은 지금, 시대에 발맞추고 다양성을 받아안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민주노총이 정말 '길을 여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도부의 정파적 입장에 따라 독자적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위반한 진보당에 대한 지지 철회 문제는 흐지부지되었다. 조합원들을 회유하는 세액공제라는 당근과 '노조 부패 척결'이라는 채찍을 병행해 사용하는 정권과 자본의 꼼수 앞에, 중집이 대대에 직접 상정한 회계공시 거부안은 너무도 쉽게 무력화되었다. 지도부와 같은 정파로 분류되는 노동조합들이 일괄적으로 중집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한 것은 회계공시 거부 및 폐기 투쟁에 대한 지도부의 의지를 퇴색시켰다. 광장에서의 길은 민주노총이 열고 있을지 몰라도, 자주·민주적 노동운동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대대 이후 2주가 지난 2월 26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회계공시 거부결의안 부결 관련 입장문을 내놓았다. 중집은 입장문을 통해 "윤석열 정권의 노조탄압수단인 회계공시 거부결의의 의미에 대해 조직적 토론과 결의를 조직하지 못했다"며, "중집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대의원, 조합원 동지들의 비판을 무겁게 받아안겠다" 밝혔다. 더불어 해당 입장문에서는 "산별과 사업장 단위에서 공시를 거부하고 투쟁을 결의한 동지들을 엄호하고 지지하며 함께 투쟁해 나가겠다"고도 밝히고 있다.

 

길을 여는 민주노총이 지금 열어갈 길은 어떤 길인가. 노동개악과 노조 탄압, 다양성과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일삼는 보수 양당과 지금의 체제가 던지는 당근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길인가, 아니면 정부와 자본의 부당한 노조 탄압에 단호히 맞서며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길인가? 회계공시 거부결의안의 부결 과정에서 보여진 민주노총 지도부의 태도는 실망스러웠지만, 입장문에서 밝힌 대로 회계공시 제도의 폐기를 위한 투쟁을, 더 나아가 민주노조 운동을 종속시키는 모든 체제적 한계에 맞서는 투쟁을 책임 있게 열어나가는 민주노총이 되기를 기대한다.

2월 26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발표한 회계공시 거부결의안 부결 관련 입장문. 출처: 민주노총


김경일

서울 동대문구 주민이자 민주노조 조합원. 책임지는 정치와 운동을 바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