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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2025년 독일 총선: AfD의 동독 지배와 좌파당의 부활

by Domoleft 2025. 3. 2.

[국제] 2025년 독일 총선: AfD의 동독 지배와 좌파당의 부활

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2025년 독일 총선이 극우 AfD의 약진과 좌파당의 부활, BSW의 원외 이탈로 막을 내렸다. '블루칼라의 정당'으로 자리잡아 가는 극우정당과 새로운 지지층을 발굴한 좌파정당은 한국 정치에 무엇을 시사하는가?


단 1달만에 뒤집힌 선거결과

지난 2월 23일 치러진 독일 총선은 보수 야당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CDU/CSU, 이하 기민/기사련)의 불완전한 승리와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 이하 대안당)의 약진, 좌파당(Die Linke)의 부활, 그리고 현 연립정부인 신호등 연정 3당(사회민주당(SPD), 녹색당(GRÜNE), 자유민주당(FDP))의 완패로 마무리되었다. 신호등 연정을 탈퇴하고 조기총선을 촉발한 자민당은 5%의 봉쇄조항에 미달하여 원외정당으로 전락했고, 마찬가지로 경제적 좌파 + 문화적 보수라는 다소 이질적인 성향을 내세워 작년 동독 지역의 주의회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좌파당 탈당파 출신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BSW) 역시 4.97%의 득표로 원내 입성이 좌절되었다.

지역구별 선거 결과 및 정당 득표율. 구 동독 지역이 모두 대안당으로 물들었다. 출처 : https://x.com/electionsstats/status/1893928253582115231

 

 

시간을 되돌려 지난 1월 초로 돌아갔을 때, 좌파당이 8.8%를 득표하고 BSW가 원외로 이탈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단 1달이 만들어낸 정치적 이변은 모두의 예측을 초월했다. 선거의 분기점은 지난 1월 말 있었던 이른바 '방화벽 붕괴 사태'였다. 독일 현지 시각으로 1월 29일 기민/기사련이 발의한 국경통제결의안이 대안당의 암묵적 지지 속에 통과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독일의 모든 정당은 극우정당인 대안당과의 협력을 거부하는 '극우 방화벽'을 지켜 왔는데, 이것이 연방의회에서 처음으로 깨진 것이다. 이 사태는 하필이면 1) 홀로코스트 추모일(1월 27일)로부터 3일 뒤에 벌어졌고, 2) 연방의회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면서 총선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1월 29일 이전까지 신호등 연정 3당에 대한 '정권심판론'에 선거 구도의 중심 축이 있었다면, 이 사태를 기점으로 이민을 제한할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극우 정당을 견제할 것인지 아닌지가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전부터 이민제한에 대한 쟁점이 주요 화두 중 하나였지만 기민련에 의해 '방화벽'이 뚫리면서 이 쟁점이 더 강하게 부각되었고, 대안당 지지층이 결집함과 함께 그 반대급부로 독일 사회 전반에 걸쳐 극우정당의 '정상화'를 막아내야 한다는 위기감이 대폭 상승하게 된 것이다.

 

이틀 후인 1월 31일 있었던 이민제한법 표결 때는 극우와 연합한 기민련에 대한 비판이 타 정당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서는 좌파당 공동대표인 하이디 라이히네크의 연설이 대미를 장식하며 불타오르던 선거의 반극우 전선에 기름을 부었다. 이른바 '방화벽 연설(Firewall Speech)'로 불린 라이히네크의 연설은 기민련의 총리 후보인 프리드리히 메르츠를 히틀러의 집권을 용인했던 프란츠 폰 파펜에 비유하며 "파시즘의 부활을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당신(기민/기사련)들은 자신을 공범으로 만들었고, 오늘 이 나라를 더 나쁜 방향으로 바꿨다"는 발언과 "파시즘에 저항하라. 바리케이드로!"라는 구호는 틱톡과 유튜브, 인스타그램 릴스를 통해 퍼져 청년층을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각주:1]

연방의회에서 CDU/CSU와 AfD를 비판하고 있는 하이디 라이히네크. 출처: ARD

 

전날의 결의안 통과와 달리 기민/기사련 내부의 반란표로 인해 이민제한법은 부결되었지만, 대중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표결 이후 베를린(16만 명)[각주:2], 뮌헨(20만 명)[각주:3] 등 주요 대도시에서는 반파시즘 시위가 대규모로 일어났다. BSW와 좌파당의 지지율이 본격적으로 역전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한때 모든 의석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좌파당의 지지율은 최대 9%까지 상승했으며 반대로 8~10%의 안정적 지지율을 구가하던 BSW의 지지율은 봉쇄조항 5% 선으로 하락했다. 또한 최대 야당 기민/기사련의 지지율 상승은 주춤해졌고, 이 흐름은 조기총선 결과까지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

 

2월 23일 개표 결과 좌파당은 64석을 차지해 지난 선거에서 얻은 39석 대비 2배 가까운 의석을 확보했고, 특히 세대별로는 만 18세~24세에서 약 25%를 득표하여 1위를 차지했다. 한편 네오나치로 의심받는 극우정당 대안당 역시 지난 총선의 83석에서 152석으로 대폭 의석을 불리는 데 성공했다. 독일 의회정치의 양 끝에 위치한 극우와 급진좌파 - 대안당과 좌파당, 이들이 얻은 성과를 중심으로 이번 독일 총선의 의의와 시사점을 돌아보자.


구 동독을 지배한 대안당, 서독을 넘보다

2025년 독일 총선 동독 지역의 주요 정당 득표율. 출처: 위키피디아

 

형식적으로 이번 총선의 승자로 보이는 것은 4년 만에 제1당으로 복귀한 기민련일 것이다. 그러나 과반에 한참 미달한 의석으로 어쩔 수 없이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구성하게 된 기민련을 이 선거의 진정한 승자로 평가하는 언론은 없다시피하다. 이번 선거의 진짜 주인공으로 꼽히는 대안당과 좌파당의 승리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본래 좌파 정당의 지지율이 높은 베를린 지역을 제외한 구 동독 지역은 기민련과 사민당, 좌파당이 경쟁하는 지역이었다.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을 그리워하는 동독 노동계급의 지지가 그 후신인 좌파당으로 이어졌고, 특히 튀링겐 주 같은 경우 좌파당이 최초로 주총리(보도 라멜로프Bodo Ramelow 내각, 2014~2024)를 배출할 정도로 강한 지지세를 보여 왔다, 그러나 2017년 총선 때부터 작센 주를 중심으로 대안당의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하였고, 이번 총선에서 대안당은 베를린을 제외한 구 동독 지역의 모든 지역구에서 승리를 거두어 42석의 지역구 의원을 당선시켰다. 비례대표로는 동독 전체에서 34.5%를 득표하여 1당을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구 동독이 대안당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려면, 동독이 처한 조건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일 이후 구 동독 지역의 일반적 정서는 '서독에 비해 차별받는다'는 정서이다. 수많은 통계는 이 정서가 단순한 피해의식이 아님을 입증한다. 젊은 인구의 다수는 서독 지역과 베를린으로 빠져나가고, 1인당 소득 수준은 서독 지역의 75% 수준이며, 높은 실업률과 함께 산업 발전은 정체되어 버린 것이 통일 이후 30년을 넘어선 구 동독 지역의 현 상황이다.

1991년과 2018년 동독과 서독의 1인당 GDP 차이를 보여 주는 그래프. 출처: CNN

 

동독 주민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은 것은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이민자 문제였다. 이민자 문제가 독일 사회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동독 지역의 노동계급은 좌파당, 사민당, 기민련을 중심으로 투표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문제는 기성 정치권이 낙후된 경제 상황을 전혀 해결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여기에 2015년부터 이민자와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투표 경향은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신호등 연정이 추진한 녹색전환 정책에 의한 산업 쇠퇴, 2022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인플레이션에 의한 경제적 피해를 가장 크게 체감한 지역 역시 동독 지역이었다.

 

동독 주민들은 단순히 이민자와 경쟁해야 한다는 공포를 넘어서서 동 기간 3가지의 위기를 복합적으로 겪게 되었다. 1)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차단으로 에너지 위기에 처하면서 에너지 비용에 대한 큰 타격을 마주했으며, 2) 대다수 주민이 저소득층인 상태에서 진행된 녹색 전환 프로그램에 대한 산업적 타격을 받았고, 3) 경제적인 목적으로 서독 지역으로 이주하더라도 이주민/난민과 임금 경쟁이 되지 않으면서 일자리 확보에 대한 공포가 더욱 확산되었다.

 

대안당은 바로 이 지점을 제대로 파고 들어갔다. 신자유주의적이고 재정보수주의적인 대안당의 경제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이민 제한 및 반대를 외치는 것을 넘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 정당, 블루칼라 노동자의 소득을 생각하는 정당으로 자신들을 둔갑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대안당이 동독 블루칼라 노동계급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는 구 동독 지역 작센 주 츠비카우에 있는 폭스바겐 전기자동차 공장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일 최초로 전기자동차 전용 공장으로 변모한 작센 주 츠비카우의 폭스바겐 공장. 출처: 폭스바겐

 

“보흐만은 폭스바겐 노동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더 넓게는 자동차 부문과 독일 상업계에서 커져가는 불만을 포착하기 위한 AfD의 공동 노력의 선봉에 서 있다. 이를 위한 당의 수단은 젠트룸(Zentrum) 또는 센터(Center)라고 불리는 극우 조직인데, 이 조직은 스스로를 "대안적 노동운동"이라고 묘사한다. 젠트룸의 목표는 오랫동안 독일 노동자들의 정당이었던 중도좌파 사회민주당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IG Metall과 Ver.di와 같은 저명한 노동조합에서 노동자들의 충성심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AfD가 전통적인 좌파 노조 유권자들 사이로 진출한다면 정치적 권력이 뒤따를 것이고, 보흐만은 "우리는 지역 정치에서 싸우고 있지만, 동시에 직장에서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츠비카우(Zwickau)에 위치한 공장은 폭스바겐 최초로 전기차만 생산하는 공장으로 변모했으며, 이는 내연기관에서 벗어나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위해 미국 및 중국 브랜드와 경쟁하려는 제조업체의 노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보흐만과 그의 젠트룸 동료들은 전기자동차에 집중하고 전기차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부의 움직임이 회사의 쇠퇴를 불러온 원인이라고 비난한다.

 

AfD가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2월 23일 총선을 앞두고, 보흐만의 반(反)녹색, 친 내연기관 메시지는 당의 선거 선언문에서 직접 언급되었다. 이는 또한 많은 공장 노동자들, 특히 AfD의 본거지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중략) 지난 1월 폭스바겐 츠비카우 공장에서 실시된 노동자평의회 선거에서 보흐만이 이끄는 '대안 명단'은 노동자평의회 위원 수를 2명에서 4명으로 두 배로 늘렸는데, 이는 IG 메탈의 지배력을 깎아내리기 위한 캠페인의 작은 승리였다.”[각주:4]

'CDU의 전기차 강요는 비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작센 주 AfD의 홍보 이미지. 출처: AfD 작센 주당

 

이들은 독일의 전기차 전환 정책과 탄소중립 목표가 고용 불안을 초래한다 주장하고, 이민자 유입이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주장하며 기존 노조의 지지 기반인 사민당(SPD)과 녹색당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중심지 등을 주요 전장으로 삼아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 위기'와 '기후 정책의 비현실성'을 지속적으로 부각하면서 자신들만이 노동자 계급을 대변할 수 있다 강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동독 노동계급에게 강한 소구력을 얻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지지가 동독 지역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서독 지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독 지역에서도 점차 동독과 비슷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산업으로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해 오랫동안 사민당의 텃밭이었던 뒤스부르크의 사례는 간담을 서늘케 한다. 2000년대 이후 독일 철강산업이 쇠퇴하고 일자리가 줄어들며 뒤스부르크의 인구는 50만에서 40만으로 줄어들었고, 이러한 경제적 불안과 불만은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과 이민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급기야 이번 총선의 뒤스부르크 지역구에서는 대안당 후보의 득표율이 10%나 상승해 사민당 후보가 근소한 격차로 간신히 승리하기도 했다. 뒤스부르크의 AfD 후보자들은 도널드 트럼프의 'MAGA'에서 영향을 받은 슬로건인 'Make Duisburg Great Again(뒤스부르크를 다시 위대하게)'이 수놓여 있는 모자를 쓰고 선거유세를 진행했다.[각주:5]

AfD의 총리 후보 알리체 바이델의 포스터 앞에 놓여 있는 '뒤스부르크를 다시 위대하게' 모자. 출처: AFP

 

특히 동독 지역에 비해 이민자 인구 비율이 매우 높은 서독 지역[각주:6]은 이민자나 난민에 의한 범죄 소식이 동독에 비해 자주 들려오다 보니, 서독의 부유한 도시에서도 안전 문제 때문에 대안당을 지지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독일 전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바이에른 주(19%)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20%)에서 대안당 지지율이 급격히 올라간 사실이 그를 증명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함부르크 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독 지역에서 대안당의 득표율이 최소 15%를 넘겼으며, 함부르크 주 다음으로 진보적인 주로 평가받는 브레멘 자유주에서도 대안당의 지지율이 15%를 돌파했다. 대안당이 주류 정당으로 발돋움했다는 세간의 평가는 더 이상 과장이 아니게 된 것이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대안당이 단순히 이민 문제, 에너지 비용만을 선전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산업 위기로 인한 구조조정을 이야기하면서 노동계급을 조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기존 사민당이 노동계급을 위한 산업 정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던 점을 앞장서 비판한다. 특히 사민당의 핵심 지지기반 중 하나인 독일 금속노조(IG 메탈)가 폭스바겐과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장 폐쇄를 막는 대신 단계적 인력 감축에 타협한 것[각주:7] 등으로 인해 사민당과 그와 관련된 조직들에 대한 노동계급의 배신감과 불신감이 올라간 상황에서, 이들의 블루칼라 타겟팅 전략은 점점 실존적 성과로 드러나고 있다.

사진 좌: 2021년 대비 AfD의 직업별 지지율 변화. 블루칼라에서의 상승세가 눈에 띈다. 출처: Infratest Dimap / 사진 우: 사민당의 주요 텃밭이었던 라인란트-팔트 주의 총선 결과. AfD는 사민당을 넘어 20%의 득표를 올렸다. 출처: 트위터 @Wahlen_DE


좌파당, 동독 노동계급의 정당에서 서독 대도시 청년층의 정당으로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면, 이번 선거의 또 다른 승자로 꼽히는 좌파당이 있다. 좌파당은 2021년 총선에서 4.9%를 얻어 봉쇄조항 5%를 넘지 못했으나 지역구 3석을 얻을 경우 의석을 배분한다는 조항 덕분에 극적으로 원내진입에 성공할 정도로 정당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거기에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시작 당시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면서 국내외 좌파 성향 단체 및 시민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런 좌파당의 내홍은 2023년 말 자라 바겐크네히트를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의 탈당으로 정점을 찍었고,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2.7%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BSW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매우 우세했다. 이러한 추세는 올해 1월 초까지 유지되었으나, 앞서 언급한 1월 말의 '방화벽 붕괴' 사건 이후 좌파당은 2013년 총선 이후의 최대 득표율인 8.8%를 달성하며 부활에 성공하였다.

 

좌파당의 부활에 결정적 역할을 한 요소들은 크게 1) 젊은 리더십과 전략·전술의 교체, 2) '방화벽 연설'을 통한 반파시즘 여론 결집의 성공, 3) 당 지역기반 재조직화의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1번과 2번이 공중전에서 성과를 보인 사례라면, 3번은 지상전·진지전에서의 성과로 평할 수 있다.

연방의회 선거 결과에 환호하는 하이디 라이히네크(사진 가운데)와 좌파당 지도부. 출처: ZDF

 

정치학도 출신이자 사회복지사로 활동했던 1988년생, 36세의 젊은 정치인 하이디 라이히네크(Heidi Reichinnek)는 2024년 2월 좌파당의 새로운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젊고 새로운 리더십이 처음부터 큰 신뢰 또는 기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상술했듯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의 2.7%라는 성적표로 시작한 라이히네크의 리더십은 당이 직면한 최악의 위기 속에 곧 원외정당이 될 좌파당의 '패전처리 투수' 정도로 남는 듯 했다.

 

그러나 자라 바겐크네히트 세력이 탈당한 이후 당을 재정비하면서 좌파당은 다시금 핵심 의제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좌파당 지도부는 신호등 연정이 해결하지 못하는 높은 임대료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략했고, 노동권 문제를 전면화하며 노동계급 재조직화를 시도했으며, 가자 전쟁에 있어 이스라엘과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규탄을 강화하는 등 진보적 유권자층을 공략하기 위한 지상전을 꾸준히 진행했다. 2024년 10월의 당대회에서는 공동대표단의 교체와 함께 공식적으로 당의 새로운 방향성을 명확히 했고, 이를 통해 반등의 기회를 만들 기반을 다시 닦을 수 있었다. 특히 노동계급과의 재연결을 위해서는 최근 선전하고 있는 벨기에 노동당(PTB)의 사례를 참고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전략의 성과로 올해 1월에만 약 11,000명의 새로운 당원이 좌파당에 가입했다.[각주:8] '방화벽 연설' 이전에도 지상전의 성과로 4년 내내 3~4%대에 머물던 좌파당의 지지율은 다시 봉쇄조항 위로 올라오고 있는 추세에 있었다.

 

이런 상황 속 1월 29일의 국경통제결의안 통과와 31일의 이민제한법 표결은 당의 생존을 넘어 부활을 견인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사민당, 녹색당의 연설보다 훨씬 강렬했던 하이디 라이히네크의 '방화벽 연설'은 특히 젊은 유권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냈다. 라이히네크의 연설은 서구권 청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틱톡에서 약 3천만 회 이상 조회되었다.[각주:9] 이 덕분에 좌파당은 독일의 주요 정당 중 틱톡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당이 되었다. 좌파당 공식 계정의 틱톡 팔로워 수는 3월 2일 기준 40만 6천 명이며, 모든 좌파당 유관 계정의 좋아요 수를 합하면 1,290만 개에 달한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문신을 왼팔에 새긴 하이디 라이히네크는 아예 '틱톡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사진 좌: 독일 주요 정당들의 틱톡 좋아요 수. 출처: 레딧 r/PolitikBRD / 사진 우: 민주사회당-좌파당의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연령대별 투표자 비율. 2025년 총선에서 18-24세 투표자의 급상승이 눈에 띈다. 출처: 트위터 @almodozo

 

이 결과로 좌파당은 청년층, 특히 사민당과 녹색당에 실망한 진보·좌파 성향 청년층을 끌어오는 데 성공하였고, 만 18세~만 24세 청년 유권자층에서는 25% 득표하여 이 세대의 1위 정당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베를린에서 제1당이 되었다는 점과 동독 지역보다 서독 지역에서의 득표 상승률이 더 높다는 점, 청년층 내부에서는 남성보다 여성들의 지지율이 높다는 점, 그리고 이민자가 많은 지역에서 득표율이 높았다는 사실이다.

 

베를린은 전통적으로 좌파 정당들의 득표율이 높았지만, 구 동베를린, 서베를린 지역을 합쳐 좌파당이 베를린에서 제1당이 된 것은 통일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청년층 인구가 많기도 하지만 구 동독 지역 중 동베를린이 그나마 극우 세가 약했고, 좌파당이 동베를린 지역의 지역구를 성공적으로 관리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좌파당은 본래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구 서베를린 지역에서도 노이쾰른 지역구에서 최초로 지역구 당선인을 배출하기도 했다.

 

사진 좌: 2025년 총선에서 18~24세 유권자 그룹 내 남성 및 여성 그룹의 투표 정당 비교. 출처: WDR / 사진 우: 베를린에서 정당 득표 1위를 차지한 좌파당. 출처: 트위터 @Wahlen_DE

 

좌파당이 높은 득표를 올린 만 18세~24세에서도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좌파당을 훨씬 많이 지지한 것으로 나타난다. 동세대 남성들의 최다 투표 정당은 25%가 투표한 대안당이었다. 또한 좌파당을 지지하는 청년층 중에서는 본인이 이민자이거나, 부모가 이민자인 사람들의 비율이 타 정당에 비해 높다. 대표적인 예시로 좌파당이 함부르크 주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빌헬름스부르크(Wilhelmsburg) 지역은 이민 배경이 있는 인구가 50%가 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를 종합한다면 좌파당은 이번 총선을 거치며 청년-여성-이민자로 이어지는 독자적 지지자 연합을 형성했다 분석할 수 있다.

 

좌파당을 주로 지지하는 청년-여성-이민자들의 공통점은 주로 대도시 및 그 근교에 거주하는 비율이 여타 계층에 비해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이를 반증하는 것은 주요 대도시들이 밀집되어 있는 서독에서의 좌파당 득표율이 동독에서의 득표율보다 훨씬 많이 상승했다는 점이다. 이번 총선에서 서독 지역에서의 좌파당 득표율은 7.9%이며 동독 지역에서의 득표율은 12.8%이다. 중요한 것은 21년 총선 대비 득표율 증가치이다. 2021년 총선에서 3.7%였던 서독 지역에서 4.2%가 상승한 반면, 동독에서는 겨우 2.5% 상승에 그쳤다. 이는 좌파당이 동독 출신 중년 노동자들의 정당에서 서독 지역 대도시 청년 및 이주민들의 정당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대도시 생활자들에게 가장 와닿는 정책은 임대료 문제와 안정적인 일자리 문제이며, 청년과 여성, 이주민들은 타 계급계층보다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소수자 차별에 훨씬 민감하다. 이런 조건들이 맞물리면서 좌파당의 주요 정책과 새로운 지지층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고, 막판 역전에 성공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좌파당의 지역별 득표율. 왼쪽은 2021년, 오른쪽은 2025년. 동독에서의 지지율 하락과 서독 북서부 지역에서의 지지율 상승이 눈에 띈다. 출처: Infratest Dimap
좌파당이 함부르크에서 가장 높은 득표를 받은 빌헬름스부르크 지역은 이민 배경을 가진 인구가 50%를 넘는 지역이다. 출처: 트위터 https://x.com/Nassreddin2002

 

물론 현재 좌파당의 상황을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위기를 넘기고 새로운 독자적 지지층을 발굴하는 데 일차적으로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좌파 언론 <자코뱅>지가 기사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좌파당 내 노동조합 출신 당원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Die Linke의 회원과 유권자 중 노동조합원의 수도 거의 지속적으로 감소했습니다. 이는 지도자의 노동 전략 부족과 Die Linke가 의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함에 따라 노동조합에 대한 Die Linke의 관련성이 약화되었음을 반영합니다. 대신, 그들의 자리를 새로운 회원과 정규직 간부들이 차지하는데, 대부분은 전문직 중산층, 즉 Braband가 "사회문화 전문가"라고 부르는 계층에서 나옵니다."[각주:10]

 

결국 좌파당이 현재의 단기적 성공을 넘어 장기적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지의 가능성은 전통적 노동계급을 얼마나 다시 재포섭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산업 구조는 변화하고 있고 신산업으로의 전환기가 다가오지만, 노동계급은 특히 독일과 같은 제조업 중심 사회에서 여전히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들의 분노를 좌파들이 정치적 동력으로 삼지 못한다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파시즘의 도래에 한 발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대안당이 경제적 우파 성향이 명확함에도 동독 지역의 빈곤층과 노동자들에게 큰 지지를 얻은 것도, 비록 용두사미에 가까운 결말을 맞았지만 한때나마 BSW가 좌파당을 대체하기 직전까지 간 것도 결국 동독의 전통적 노동계급이 원하는 산업정책을 제시했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BSW, 대안당과의 경쟁에서 완패하다

고개를 떨구는 자라 바겐크네히트. 출처: Euractiv

 

이번 선거의 최대 패자는 당연히 원외로 이탈한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BSW)이다.[각주:11] 함께 원외로 이탈한 자민당이 최근 봉쇄조항을 돌파하는 여론조사가 거의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1월까지만 해도 안정적으로 8~10%대의 지지율을 보이던 BSW의 패배는 더욱 충격적이다. 2024년 1월 정식으로 창당한 BSW는 창당 직전의 지지율이 14%에 달할 정도로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 당은 좌파당이 잃어버린 구 동독 노동계급의 지지를 대안당으로부터 다시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을 받았다. 실제 2024년 9월 동독 3개 주(작센, 튀링겐, 브란덴부르크)에서 진행된 주의회 선거에서 BSW는 11~16%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어 한 자릿수 득표로 쪼그라든 좌파당의 지위를 대체하는 듯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4.97%로 연방의회 입성에 실패한데다 믿었던 동독 지역에서조차 9.9%를 득표해 12.9%를 얻은 좌파당에게 밀리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BSW는 1월 말의 국경통제결의안과 이민제한법 사태로부터 큰 타격을 받았다고 현지 평론가들은 분석한다. 정치구도와 전선이 신호등 연정에 대한 심판론에서 '파시즘이냐 아니냐'로 이동하면서 '경제는 좌파, 문화는 우파'라는 전략적 모호성은 역으로 BSW의 약점으로 바뀌게 된다. 구도가 바뀐 상황에서 양 진영에 대한 어설픈 양비론은 당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고, 적지 않은 지지층이 대안당과 좌파당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특히 1월 29일과 31일 사이 BSW가 이민 관련 법안들에 대해 표명한 입장은 이러한 비호감에 기름을 부었는데, 1월 29일에 제출된 국경통제결의안에는 기권을, 이민정책결의안에는 반대를, 이민제한법에는 찬성을 던지면서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하였다.[각주:12] 물론 이뿐 아니라 TV토론 초청 기준에 미달하여 참여하지 못한 점, 서독 지역으로의 확장을 완전히 포기하면서 동독에 갇혀 버린 점, 자라 바겐크네히트라는 스타 정치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선거전략 등 BSW의 실패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지목된다.

 

탈산업화로 피해를 보는 동독의 노동계급을 포섭하고자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차용한 '경제적 좌파, 문화적 우파' 전략이 실패했음은 BSW의 득표 중 대안당에서 온 표보다 사민당과 무당층에서 가져온 표가 몇 배 많은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당초 기대했던 대안당 지지층의 이탈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BSW가 실패했다고 해서 이들이 독일 사회에 던진 화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안당이 계속해서 산업 구조조정의 희생자가 된 전통적 블루칼라 노동계급을 공략하고 있는 점, 좌파 정당들이 노동계급을 재조직화하는 데 있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BSW의 실험은 옳고 그름을 떠나 세계 좌파들에게 여전히 전략적 고민들을 던진다.

BSW가 어떤 당으로부터 유권자를 끌어들였는지 분석한 그래프. 출처: Infratest Dimap


유일한 선택지, 대연정의 변수들

연방의회에서 대화하는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좌측),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련 대표. 출처: Nachrichtenagentur dts/imago

 

흑녹 연정(기민련-녹색당)도, R2G 연정(사민당-녹색당-좌파당)도 의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안당의 내각 참여를 배제한다면 유일한 경우의 수는 기민련과 사민당의 대연정밖에 남지 않았다. 선거 직후인 지난 2월 24일부터 이미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련 대표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현 국방장관 간 대연정 협상이 시작된 상황이다. 앞서 올라프 숄츠 현 총리는 총선 패배 이후 차기 정부구성에 참여하지 않고 은퇴할 것임을 선언한 바 있다. 주된 협상 의제는 다음과 같다.

 

1) 이민 정책: 메르츠는 이민 제한과 국경 통제 강화, 난민 가족 동반 금지, 시민권 취득 조건 강화 등을 제안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각주:13] 사회민주당은 이보다는 약한 수준의 이민 제한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민자 통합과 인도적 접근의 유지를 원하고 있다.

 

2) 경제 정책: 독일 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투자와 재정 정책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두 정당 간 큰 차이가 없는 지점이다.

 

3) 부채 브레이크 개혁: '부채 브레이크'는 정부의 재정 지출을 제한하는 법으로, 이를 위해서는 개헌이 필수적이므로 의회 2/3이상의 절대다수가 필요하다. 현재 기민련은 과거의 현상 유지 입장에서 벗어나 국방 및 인프라 투자 지출을 위해 부채 브레이크 개혁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며[각주:14], 사회민주당 역시 사회복지 및 녹색 투자를 위해 부채 브레이크 개혁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라 어느 정책에 있어서의 브레이크 해제를 어느 한도까지 허용할 것인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민당은 사회복지 강화를 우선시하며, 부채 브레이크 개혁을 통해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려는 입장이고 기민련은 사회복지 지출을 통제하며 성장 정책에 집중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현재 재정보수주의를 내세우는 자민당, 대안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부채 브레이크 개혁을 원하고 있지만 그 방향은 천차만별이다.

2월 1일 연방의회에 출석한 올라프 숄츠 총리. 출처: 게티이미지

 

결국 예산 편성에 있어 핵심적인 부채 브레이크 개혁 문제와 그와 연동되어 있는 사회복지 및 노동정책, 이민정책의 향방이 대연정 협상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며, 메르츠의 호언장담처럼 부활절(4월 20일) 이전에 연정 협상이 끝날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한편 사민당은 독일 제국 시대 이래 가장 저조한 결과를 얻었고, 당의 기반이 매우 크게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함부르크, 브레멘을 사수하고 니더작센 주, 노스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등 핵심 지역에서 선방했다는 게 위안거리이지만, 텃밭이었던 라인란트-팔트 주에서 대안당에게 밀리는 등 서독 지역에서도 지지율이 침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은퇴를 선언한 올라프 숄츠 총리를 대체할 유력한 당권 주자는 현재 연정 협상을 위임받은 국방장관 출신 보리스 피스토리우스이다. 피스토리우스는 사민당 내 우파로, 차기 총리로 유력한 기민련의 메르츠 대표보다 개인 지지율이 높을 정도로 인기 있는 정치인이다. 당내 좌파들의 대안적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 속 향후 사민당은 피스토리우스 중심의 당으로 재편될 것이 예상되고 있다.


독일 총선이 시사하는 것들

독일 총선에서 한국의 좌파들은 어떤 교훈과 시사점을 얻어야 하는가? 좌파당과 BSW의 엇갈린 운명 속에서, 블루칼라의 정당이 되어가는 대안당의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복합적이다. BSW의 몸부림이 기존 지지층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면, 좌파당의 몸부림은 새로운 지지층을 형성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선거 결과로만 본다면, 극우의 담론을 일부 차용하여 기존 지지층을 지키고자 했던 BSW의 전략은 실패했고 새로운 지지층을 발굴한 좌파당은 성공했다.


이는 한국 진보정당들이 직면한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진보정당의 지지층을 독일과 같이 '지지층 연합'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면, 수도권 중산층 내 급진파와 부울경 노동 벨트의 조직노동자들의 연합이 진보정당의 10% 내외 득표율을 견인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초기 13%의 지지율을 이끌어낸 이러한 연합은 2020년 정의당이 얻은 9.7%의 득표 이후 4년 동안 빠르게 해체되었다. 양당 구도의 심화 속 민주당과의 확고한 차별성을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수도권 중산층 내 급진파가 먼저 떨어져 나갔으며, 이후 직면한 산업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진보정당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부울경 벨트의 조직노동자들이 떨어져 나갔다.

2024년 총선 이후 녹색정의당 선대위 해단식에서 머리를 숙이는 당직자들. 출처: 오마이뉴스

 

2004년 이래 '진보정당 지지층'으로 불려 왔던 한국의 유권자 그룹은 2024년 총선을 통해 완전히 와해되었다. 노동당과 녹색정의당의 득표율은 합산 3%를 넘지 못해 독자적 진보정당은 모두 원외로 이탈했으며, 기존 진보정당에 투표해 오던 수도권 중산층 내 급진파는 조국혁신당으로 흡수되었고, 부울경의 조직노동자들은 민주당으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이는 기존 지지층이 형해화되며 위기에 직면했던 2024년까지의 좌파당과 비슷하며, 정의당을 포함한 한국의 진보정당들이 독일과 달리 새로운 지지층 발굴에도, 기존 지지층의 재포섭에도 실패했다는 이야기로 종합된다.


중요한 것은 이 다음이다. 진보정당의 새로운 지지층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 윤석열 퇴진 광장을 주도하는 대도시 2030 세대 여성들이 극우에 가장 단호히 맞서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 사회와 우리 사회는 유사하다. 좌파당은 이들을 포섭하여 독자적 지지층으로 재조직화하는 것에 성공했고, 한국의 진보정당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보정당의 기존 지지층은 어떻게 재포섭할 것인가? '중도보수'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중도우파 정당으로 당을 완전히 개편하고자 한다. 한국 정치의 '왼쪽 방'이 비어 버린 상황에서, 산업전환기에 민주당이 포섭하지 않을 조직노동자들의 분노를 정치적 동력으로 재조직화하는 것은 역시 매우 중요하다.

'중도보수 정당'을 선언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출처: KBS 뉴스


더불어 독일 총선은 '지상전과 공중전의 균형'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진다. BSW가 '동독 텃밭'이라는 지상전만을 노리다가 공중전에서 당의 체급을 키우는 데 실패한 사례라면, 한국의 진보정당은 중앙정치 위주의 공중전에 몰두하다 지상전에서 패배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지기반이 약한 군소정당에게 있어 선거는 지상전과 공중전의 균형이 중요하며, 반파시즘 투쟁과 SNS 전략이라는 공중전과 지지층의 발굴 및 재조직화라는 지상전을 모두 수행해낸 좌파당의 사례는 참조할 만한 전략전술이다.

 

특히 공중전에서의 승리란 단순히 급진적인 구호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당의 의지를 어떤 퍼포먼스로 보여주면서 대중의 머리 속에 각인시킬 것인가를 의미한다. 하이디 라이히네크의 '방화벽 연설'과 좌파당의 SNS 활용, 반대편 극우의 사례이지만 아르헨티나 밀레이의 '전기톱 퍼포먼스'가 SNS 바이럴을 통해 승리를 이끌어낸 사례[각주:15]는 디지털 시대에 여론에 대한 민감도와 뉴미디어의 활용이 선거의 성패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당의 의지를 대중에게 각인될 수 있는 퍼포먼스로 보여 주는 것과 지역에서 독자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은 결국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극우 대중운동의 도래를 마주하고 있는 한국의 진보좌파에게, 독일 총선은 많은 고민거리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주류 정치권에 안착하려 하는 극우 세력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맞서면서 좌파의 지지층을 재조직해낼 것인가? 이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것이 더 이상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과제임은 명확하다.


동백림

혁명과 개량 사이에서 고민하는 국제정세 오타쿠.

현재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도모의 국제면에 정기적으로 글을 연재하는 중이다.


각주

 

  1. Who is Heidi Reichinnek, the hard-left ‘Queen of TikTok’ shaking up German politics before election? https://www.firstpost.com/explainers/heidi-reichinnek-the-hard-left-queen-of-tiktok-german-politics-13864797.html [본문으로]
  2. "극우정당 손잡은 기민당 규탄"…獨 연일 시위 수십만 운집 https://www.news1.kr/world/europe/5677180 [본문으로]
  3. At least 200,000 protesters rally in Munich against far-right AfD ahead of German election https://apnews.com/article/germany-munich-election-afd-protests-29cdd1441e670a9f13394d2a44f035a5 [본문으로]
  4.  Germany’s far right woos the workers in election battle https://www.politico.eu/article/germany-far-right-new-target-union-voters-volkswagen-cars-automobile/  [본문으로]
  5. 獨극우 돌풍 일으킨 러스트벨트…"다시 위대하게" 트럼프 구호 https://www.yna.co.kr/view/AKR20250224072300009?fbclid=IwY2xjawIrpRxleHRuA2FlbQIxMQABHWrgAJUOCkcpN4PYuU2FDWDUSg6tIrdIh4akf864LDvAGfPHZQB7QcFdfg_aem_RYczCOgil1Yt26uqGFE-Jg  [본문으로]
  6. Foreign population by Land https://www.destatis.de/EN/Themes/Society-Environment/Population/Migration-Integration/Tables/foreign-population-laender.html [본문으로]
  7. 위기의 폭스바겐…공장폐쇄 대신 30% 감원 극적합의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122226641 [본문으로]
  8. The Improbable Resurgence of Die Linke https://jacobin.com/2025/02/die-linke-germany-renewal-strategy [본문으로]
  9. Who is Heidi Reichinnek, the hard-left ‘Queen of TikTok’ shaking up German politics before election? https://www.firstpost.com/explainers/heidi-reichinnek-the-hard-left-queen-of-tiktok-german-politics-13864797.html [본문으로]
  10. The Improbable Resurgence of Die Linke https://jacobin.com/2025/02/die-linke-germany-renewal-strategy [본문으로]
  11. 참조: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BSW), 어떤 정당인가?>, 도모 2025년 1월호 [본문으로]
  12.  https://www.tagesschau.de/inland/innenpolitik/migration-antrag-union-100.html  [본문으로]
  13. Taboo break over far right set to complicate German coalition talks after election https://www.reuters.com/world/europe/german-conservatives-vote-with-far-right-set-complicate-coalition-building-2025-01-31/ [본문으로]
  14. Germany’s ‘Grand Coalition’ takes shape: What it means for the economy https://www.euronews.com/business/2025/02/24/germanys-grand-coalition-takes-shape-what-it-means-for-the-economy [본문으로]
  15. 아르헨티나의 '체인소맨' 꿈꾸는 하비에르 밀레이 https://www.kita.net/board/totalTradeNews/totalTradeNewsDetail.do?no=%207904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