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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제1세계 좌파의 쇠퇴, 제3세계 좌파의 전진

by Domoleft 2025. 2. 9.

[국제] 제1세계 좌파의 쇠퇴, 제3세계 좌파의 전진

<동백림의 세계를 보는 왼쪽 눈>

극우의 득세와 불평등의 심화로 시작된 2025년. 쇠퇴를 거듭하는 제1세계 좌파 진영과, 불평등을 정치적 동력으로 전환하여 도약하고 있는 제3세계 좌파 진영의 현황을 톺아보고 우리의 전망을 고민한다.


2015-2025, 쇠퇴하는 제1세계의 롤모델들

극우 정권의 범세계적 도래와 민주주의의 쇠퇴라는 위기의 신호 속, 암울한 전망과 함께 21세기의 첫 사반세기가 지나가고 있다. 국제정치·경제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1세계가 극우화되어 가는 이유로는 흔히 경제적 불평등의 증가가 첫 손가락에 꼽히곤 한다. 하지만 불평등과 극우 모두에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야 할 제1세계 좌파의 대다수는 극우와 네오 파시즘의 부상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한때 뜨거웠던 새로운 좌파 정치운동의 열기가 무색하게도,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제1세계 좌파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5년, 소련 붕괴와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우경화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좌파 정치운동의 흐름이 유럽을 강타했다. 변혁적 흐름은 남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스에서는 긴축 반대와 유럽연합(EU) 탈퇴를 내건 시리자(SYRIZA)가 집권하고 스페인에서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지지기반을 확대한 포데모스(Podemos)가 발흥했으며 포르투갈에도 좌파 연립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이에 영향을 받은 기성 좌파정당들도 재(再)좌경화를 시도하는 등, 당시 난민 사태로 성장하던 극우 세력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좌파의 새로운 흐름이 세계적 물살을 타는 듯 보였다.

그리스 시리자의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좌), 스페인 포데모스의 당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우). 출처: 로이터

 

비슷한 시기인 2016년, 좌파 정치세력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미국에서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가 대선전하고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이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등 과거 미국 사회당 이후 최초로 '사회주의'를 전면화한 정치세력이 대대적으로 약진한 바 있다. 동 시기 영국 노동당의 당권을 장악했던 급진좌파 제레미 코빈, 브렉시트 이후 성장한 아일랜드의 좌파 민족주의 정당 신 페인(Sinn Fein), 핀란드 산나 마린과 뉴질랜드 재신다 아던의 돌풍 등은 한동안 우경화되었던 유럽 기성 좌파들에게도 영향을 주며 2021년 독일과 노르웨이 총선에서 좌파 진영의 승리를 통해 유럽 좌파들의 단기적 재상승기를 불러오기도 했다. 한편 약진하던 극우 정당들의 상승세도 2019~2021년 사이 하락세로 전환되며 파시즘의 도래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제1세계 좌파들의 장밋빛 전망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급진좌파 재부흥의 신호탄이었던 시리자의 몰락이 그 전조를 알렸다. 우익 정당인 그리스 독립당과 연정을 맺을 때부터 흔들렸던 시리자 정부의 개혁 시도는 결국 2015년 EU의 구제금융과 긴축재정을 수용한 치프라스 총리의 항복 선언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전까지 급진좌파가 주도해 온 반유럽연합 혹은 EU 개혁 운동의 흐름도 시리자의 몰락과 함께 완전히 파산했다. 이후 EU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난민 문제에 초점을 맞춘 극우 세력에게로 그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다.

악수하는 치프라스와 EU 집행위원장 장클로드 융커. 출처: 로이터

 

약간의 전진과 약간의 후퇴를 반복해 오던 유럽 좌파 진영의 본격적 몰락이 시작된 것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였다. 유럽 좌파 진영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입장차 속에 분열되기 시작했고, 그 세력이 일정하게 억제되어 오던 극우정당들은 전쟁을 계기로 빠르게 다시 세력 확장을 시작했다. 이와 맞물려 좌파정당들의 세력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왔다. 2022년 스웨덴 총선에서는 범좌파 진영이 2석 차이로 패배하였고, 다음 덴마크 조기총선에서는 범좌파 진영이 아슬아슬하게 과반을 유지하였으나 제1당인 사민당은 중도우파와의 대연정을 선택했다.

 

이후 핀란드 총선에서도 좌파 진영이 패배하였고, 핀란드 좌파 신드롬의 상징이었던 산나 마린 또한 사민당 자체 의석 수는 증가했음에도 당 대표직과 총리직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2020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정권 재창출과 단독과반이란 정치적 업적을 달성한 제신다 아던 또한 결국 2023년 총선 직전 지지율 하락의 책임으로 사퇴 및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며, 뉴질랜드 노동당은 2023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정권을 넘겨주었다. 한편 동 시기 스페인 총선에서는 유럽 좌파운동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포데모스가 정치적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스페인 공산당이 이끄는 수마르(Sumar)의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작년이었던 2024년은 좌파들에게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진영 전체에 있어 비극적인 시간이었다. 6월에 있던 유럽의회(EP) 선거에서 극우 진영이 약진하였고,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총선에서는 네오나치 정당인 자유당(두 나라 모두 이름이 자유당이다)이 제1당이 되었다. 독일의 작센, 튀링겐, 브란덴부르크 주의회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한(AfD, 속칭 대안당)이 본래 좌파당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동독 지역을 장악해 튀링겐 주의회의 제1당이 되었고, 작센 주에서는 1석 차이로 제2당이 되었다. AfD는 브란덴부르크 주의회에서도 2석 차이로 제2당에 등극했다.

작센 주의회 선거에서 승리를 선언하는 AfD 지도부. 출처: 게티이미지

 

물론 몰락의 와중 위안거리도 있었다. 2023년 10월 폴란드에서는 극우정당 법과 정의당(PiS)이 총선에서 패배하여 리버럴-좌파 연립정권이 세워졌고, 2023년 7월 스페인 조기총선에서는 범좌파 세력과 지역정당들이 우파의 과반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연합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도박수로 건 조기총선에서는 기존 예상을 깨고 좌파연합 신인민전선(NFP)이 제1당이 되었으며, 아이슬란드에서도 2024년 11월 총선으로 사민당 주도의 진보적인 정부가 들어섰다. 올해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북유럽의 핀란드와 덴마크에서는 야당인 좌파정당들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중도우파와 함께 정부를 구성한 극우정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들이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10년의 시간 동안 한국의 많은 좌파들이 롤모델로 삼아 왔던 유럽의 주요 좌파정당, 인물들은 흥망성쇠를 거쳐 대부분 정치적 몰락을 맞이했다.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한국에서도 2024년 총선에서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은 진보정당들은 모두 민심의 외면 속에 몰락했다. 정의당의 약진과 비슷한 시기 '해바라기 운동' 등으로 지지율을 높였던 대만의 진보정당 시대역량 또한 최근 총선에서 원외로 이탈했다. 유럽과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이 다르므로 등치는 불가능하지만, 2016년 총선에서 정의당과 현 진보당 성향 무소속 당선자들을 포함해 8석의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배출되었고 2020년 총선에서 정의당과 당시 민중당이 합산 약 10%의 비례 득표를 얻은 것을 떠올린다면 이 역시도 폭넓은 의미에서 '제1세계 좌파의 몰락'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진하는 제3세계 좌익 세력들

제1세계 좌파 정치의 쇠퇴 국면 속에 제3세계, 특히 세계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 2024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와 세네갈에서는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2024년 11월 치러진 보츠와나 총선에서는 여당인 보츠와나 민주당이 4석을 획득하며 참패했고, 좌파연합인 민주적 변화를 위한 우산(UDC, 이하 우산당)이 36석을 얻어 전체 61석 중 단독과반으로 집권에 성공하여 인권변호사 출신인 두마 보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우산당은 기독교 좌파·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보츠와나 국민전선, 사회자유주의 성향 진보동맹, 민주사회주의·범아프리카주의 성향인 보츠와나 인민당과 일부 진보적 무소속 정치인들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정당연합이다.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채굴로 유명한 국가다. 보츠와나의 경제는 다이아몬드 수출이 총 수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다이아몬드 수요 감소로 경제성장률이 1%까지 떨어지고, 실업률이 27%까지 늘어난데다 모퀘에치 마시시 전 대통령이 친인척에게 일감을 몰아준 부정부패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정권심판론이 강하게 작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산당과 두마 보코 신임 대통령은 다이아몬드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개혁하여 채굴경제에서 독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산당은 약용 및 산업용 대마초 재배 확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비롯한 신산업의 다각화와 그를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을 표방하고 있다.[각주:1] 또한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 축소와 사법부 독립 추진을 공약했으며, 최빈곤층 지원 확대와 교육·보건 분야 투자를 통해 소득 격차 완화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승리에 환호하는 보츠와나 UDC의 지지자들. 출처: BBC

 

또 다른 곳은 세네갈이다. 보츠와나가 아프리카 내 안정적인 민주주의의 흔치 않은 모범이라면, 세네갈은 역동적인 아프리카 민중 투쟁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12년 압둘라예 와데 전 대통령의 3선 독재 시도를 막아낸 세네갈 민중은 2024년 급진좌파인 파스테프(PASTEF; 세네갈의 노동, 윤리 및 형제애를 위한 아프리카 애국자당)를 선택함으로서 변혁적 에너지를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파스테프의 약진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파스테프의 지도자인 우스만 송코(Ousmane Sonko) 대표가 정권에 의한 조작으로 의심되는 성폭력 혐의로 체포되면서 지지층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출마가 불가능해진 송코를 대신하여 세무조사관 출신인 디오마예 파예(Diomaye Faye)가 당의 지도자로 나섰다. 파예 또한 23년 4월에 구속되었다가 대선 열흘 전 석방되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3월 24일 치러진 대선에서 과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파스테프는 정부의 부패와 경제정책 실패로 분노한 민중을 조직하여 반정부 시위를 이끌며 젊은 유권자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주요 공약으로는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 있는 CFA 프랑을 버리고 독자적 화폐로 변경하는 통화 개혁, 에너지 부문 개편, 사회 불평등 해소, 고용 촉진, 부통령직 신설 등을 내세웠으며, 외국 기업과 체결한 광산·가스·석유 계약에 대한 재협상에 나서 자원경제의 주권을 확실히 할 것임을 밝혔다.[각주:2] 파예와 파스테프는 취임 이후 의회를 해산하여 11월 조기총선을 개최, 개헌선을 돌파하는 130석의 대승을 거둔다.

 

남아시아의 스리랑카 역시 작년 정치적 격변을 맞이했다. 스리랑카는  지난 2022년 국가부도 사태와 대통령궁을 점령하는 대규모 시위를 겪은 후 정치·경제적 혼란이 계속되어 왔다. 2024년 9월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인민해방전선(JVP)이 이끄는 정당연합 민족민중권력(JJB) 소속으로 출마한 아누라 디사나야케(Anura Dissanayake)가 대선에서 승리하였다. 디사나야케는 빈곤층 복지, 부정부패 척결, IMF와 재협상, 긴축 반대를 내걸고 집권하자마자 의회를 해산했다. 스리랑카 헌법에는 의회 임기의 절반이 지나면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조기총선은 JJB가 225석 중 159석으로 개헌선을 돌파하는 대승을 거두면서 마무리되었다.

선거유세 중인 세네갈 파스테프의 디오마예 파예. 출처: AFP Photo

 

마지막으로 핑크 타이드(Pink Tide)로 유명한 남미의 우루과이에서도 좌파 연합 광역전선(FA)이 5년 만에 다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우루과이의 광역전선은 이미 주류 정치세력의 위치를 점했고, 남미의 핑크 타이드 또한 오래된 맥락이 있기 때문에 앞선 세네갈, 보츠와나, 스리랑카의 사례와 등치하기는 어렵다. 다만 야만두 오르시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된 캐롤리나 코세(Carolina Cosse)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있다. 코세는 광역전선 내 주류파인 대중참여운동(MPP) 소속이지만 동시에 공산당, 사회당, 혁명적 노동자당 등 급진파 세력과 교류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집권 이후 산업에너지부 장관을 맡아 재생에너지로의 급진적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급진화된 제3세계의 좌익 세력은 코로나-19 이후 대두된 경제적 불평등을 집중적으로 타격하고 오래된 식민주의의 온전한 종식을 외치며 정권을 창출하고 있다. 물론 이들을 이상화할 수는 없고, 이들에게 존재하는 한계 역시 집권 이후 분명히 보여지고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경우가 많은 제3세계의 맥락 속에서 이들은 대중성을 위해 사회문화적 보수성과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 예시로 세네갈의 파스테프는 성소수자와 LGBT 운동을 '서구 제국주의의 도덕적 침략'으로 규정하는 등 소수자 인권 문제에서 매우 보수·반동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각주:3] '반동성애법' 등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어 온 스리랑카의 경우에도, 반동성애법 철폐가 현 좌파 정권 집권 후 후순위 공약으로 밀려난 상황이다.[각주:4]

 

경제 이슈에서도 이들 앞에 산적한 문제는 많다. 현재 스리랑카의 권력을 잡은 JJB와 디사나야케 대통령은 IMF와의 재협상을 당장은 요구하지 않겠다며 경제 부흥과 내치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긴축 반대와 유럽연합의 남유럽에 대한 착취 반대를 외치며 집권했으나 결국 EU의 구제금융 앞에 굴복한 그리스 시리자 정부의 선례를 상기시킨다. 2024년을 강타한 제3세계 좌파의 약진은 불평등 이슈에 대한 범국민적 분노가 좌파의 동력으로 전환된 사례이지만, 이 동력이 얼마만큼의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만 할 것이다.

세네갈에서 열리고 있는 반동성애 시위. 출처: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VOA)


선망과 대상화의 한계를 넘어서자

한국의 좌파 진영과 사회운동 세력이 지리멸렬한 현재의 상황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필자는 제1세계에 대한 과도한 이론·실천적 선망과 이른바 '선진국'인 서구권의 좌파에 대한 이상화를 지속해온 것이 이 문제의 한 축에 잠재되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나 서구 좌파들이 2차대전 이후 제시해 온 복지국가, 특히 '북유럽 모델'에 대한 선망은 이제 상시적 위기가 된 경제위기와 코로나-19 사태 이후 범세계적으로 더 이상 유효한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난민 문제와 에너지 대란으로 증가한 불평등을 틈타 득세하는 극우의 힘을 억제하기에 더 이상 서구식 복지국가 담론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서구 좌파들의 이론과 실천은 당연히 서구가 가지고 있는 경제력, 정치구조, 의식과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노동조합 조직이 부재하고, 제1세계 서구 사회보다 문화적으로 훨씬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는 더욱이 제1세계 좌파들이 구축한 사회모델이 그대로 이식될 수 없다. 이는 물론 제3세계와 한국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국 진보적 사회운동의 한 축은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사례를 비롯한 남미에 대한, 혹은 '다극화 추동'이라는 명목 하에 중국·러시아 등에 대한 대상화를, 다른 축은 북유럽 복지국가에 대한 대상화를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참고와 영감이 아닌 선망과 대상화 속에서, 한국 사회에 정말 들어맞는 운동적 전망과 대안적 사회모델을 찾기 위한 노력은 쉽게 실종되곤 한다.

2022년 7월 '시장자본주의의 철폐 불가능'과 '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 모델 분석'을 천명한 이은주 당시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글.

 

결국 이는 사대주의적 경향성으로 귀결된다. 서구의 이론은 과연 완벽한가? 서구의 실천적 경험과 그 결과는 정말 언제나 긍정적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좌파 진영 내에서 나와야만 한다. 제3세계 급진좌파들의 성장이 한국의 사회운동에 주는 교훈은 '우리도 이렇게 해야만 한다'가 아니다. 굳이 서구적 토대와 정치전략을 모방하지 않더라도 그 사회의 고유성에 기반한 운동적 전망을 수립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그것이 정치적 성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IMF 이후 민주노동당이 약진하여 제3세력으로 도약했듯이, 스리랑카와 세네갈도 경제위기와 불평등을 동력으로 전환하여 집권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지금 출발점으로 돌아온 우리의 의식구조 역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위 '자주국방 연설'에서 "심리적 의존 관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노무현은 '좌파'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이 말은 좌파의 전망 건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순히 제1세계(혹은 다른 어딘가의) 좌파들의 경험과 이론을 무작정 한국에 적용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새로운 정치적 주체와 세력권을 형성하여 대안적 모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제1세계 좌파의 쇠퇴와 제3세계 좌파의 약진이라는 2025년의 세계는 그 과정에서 일정한 참조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백림

혁명과 개량 사이에서 고민하는 국제정세 오타쿠.

현재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도모에 <동백림의 세계를 보는 왼쪽 눈>을 정기연재 중이다.


각주

  1. 두마 보코 아프리카 보츠와나 신임 대통령 "대마초 키워 경제 살리겠다"…다이아몬드의 나라 무슨 일? https://www.shilbo.kr/news/articleView.html?idxno=240026 [본문으로]
  2. 세네갈 대선, 44살 야권후보 승리…석방 열흘 만에 대통령실 직행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133853.html [본문으로]
  3. 세네갈 파스테프의 LGBT 이슈 입장 관련 기사 https://76crimes.com/2024/03/28/what-does-senegals-new-president-have-in-store-for-lgbtq-people/ [본문으로]
  4. 스리랑카 JJB의 LGBT 이슈 입장 관련 기사 https://76crimes.com/2024/09/26/the-stage-is-set-for-sri-lanka-to-repeal-its-anti-homosexuality-law/?fbclid=IwY2xjawIEfEpleHRuA2FlbQIxMQABHYmMICf9wfKJFOYr7z81nDjXoaqLPr0jnWkUrDZqfuaipfAVo7VuUd4l-Q_aem_Nnu3OU874B9wfpmEo9EE5g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