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조기대선을 바라보는 시선들, 그리고 진보정치의 역할
탄핵 선고가 임박하고 인용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탄핵 이후 조기대선에 대해 시민사회와 제 정치세력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예고된 '중도보수'와 '극우'의 대결 가운데,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은 조기대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목표할 것인가?
작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100일 가까이 진행되어 온 내란정국이 곧 새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을 지난 2월 25일로 종결하며, 탄핵 절차는 헌법재판소의 최종 선고만을 남겨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의 절차적 흠결부터 윤석열의 국회의원 체포 지시 확인 등 윤석열에게 불리한 증언들이 쌓여가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은 사실상 기정사실이 되어 가는 분위기다. 3월 중순 탄핵이 인용되고 5월 중순에 다시 한 번 '장미대선'이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많은 시민들과 모든 정치세력이 벌써부터 탄핵 이후 실시될 조기대선에 대해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우측 깜빡이 키고 우회전'
현재 조기대선을 앞두고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단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는 주요 대권주자 중 유일하게 3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며 2위인 김문수 현 고용노동부 장관을 세 배 가까운 차이로 가볍게 능가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은 이재명의 대권 가도를 위해 전국청년위원회와 대학생위원회 같은 당내 공식 조직들은 물론, 원외 친명 인사들의 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와 이재명 본인의 '실용주의' 정책 노선을 뒷받침하기 위한 원외 싱크탱크인 '먹사니즘 전국 네트워크' 등 비공식 조직들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조직망을 정비하고 있다. 1 여기에 지역별로 필요한 공약들을 추합해 보고할 것을 시도당에 공식적으로 지시하는 등 2, 출마선언만 하지 않았지 이미 사실상의 대선 모드로 돌입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3
주목할 만한 것은 과거 민주당 대선후보들과 비교해 봐도 두드러지는 이재명의 우경화 행보이다. 후보와 당의 지지율이 모두 고착화되던 지난 1월 말, 이재명 지도부는 분배보다 성장이 중요하다는 논리 하에 '실용주의' '흑묘백묘론'과 같은 모호한 구호들을 앞세우며 지난 대선 당시 핵심 공약이었던 기본사회 구상의 폐기를 선언했다. 이후에도 상속세 및 소득세 완화, 이후 양대노총의 격렬한 반대 때문에 철회했으나 주 52시간 예외 허용을 통한 사실상의 노동시간 증가 등 각종 우클릭 행보를 가속화하더니, 급기야 "민주당은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 정당"이기에 "우클릭을 한 바가 없다" 4며 보수 정치세력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양심고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5
물론 민주당은 '실용주의' '현실주의' 등의 구호를 모토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하며 한국 사회의 불평등 강화에 기여해 온 바 있다. 1997년 IMF 위기 이후 펼쳐진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이 이끈 국민의 정부는 자본시장 개방, 노동시장 유연화, 기업 구조조정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대폭 수용했다. 이러한 경향성은 이후 집권한 노무현의 참여정부에서도 크게 달 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과의 FTA 체결에 매진했던 참여정부에게 '좌측 깜빡이 키고 우회전'이라는 평가를 내렸던 이유이다. 박근혜 탄핵을 이끈 2016년의 촛불 항쟁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반(反)신자유주의를 노선으로 내세웠던 첫 번째 정부였지만, 약속과는 다르게 노동정책 등에서 이전 정권과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노동계와 시민사회진영에 큰 실망을 안겼다. 6 7
그러나 이들과 이재명의 우경화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과거 민주당 정치세력의 '보수 선언'은 자신들이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사용된 일종의 정치적 방어 기제에 가까웠다. 예컨대 김대중의 경우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당은 시작 때부터 중도우파를 표방했다"고 말하고 대선 토론에서도 "우리 당은 중도우파 정당이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여기에는 보수 세력의 색깔론에 대한 방어적 성격에 더해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연합과의 연정이라는 맥락이 존재했다. 참여정부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한나라당 국회의원과의 질의 과정에서 "참여정부는 기본적으로 중도우파 정부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한 것, 문재인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시절 자당에 대해 "사회민주주의 근처도 못가는 보수정당"이라고 평한 것 역시 모두 같은 맥락에서 평가될 수 있다. 8 9
하지만 1997년 김대중-2002년 노무현-2017년 문재인과 달리, 2025년의 이재명은 최근 극우 세력이 부상했다지만 여전히 압도적 표차로 대선 선두주자 자리를 유지하고 있고, 자당이 국회 과반이 넘는 압도적인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제적 우경화를 주도하고 있다. 과거 민주당의 행보에 비해 지금 이재명의 행보가 어딘가 이질적인 이유이다. 이러한 이재명의 '급발진 우경화' '선빵 우경화'에는 어떠한 배경이 있을까? 혹자는 이러한 전략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오른쪽으로 지지기반을 확장하기 위한 대선 전략의 일부라고 말한다. 계엄 이후 국민의힘의 가파른 극우화로 갈 곳 잃은 중도층·중도보수층의 표심을 공략해 대선 승리에 다가가겠다는 것이다. 10
물론 전략적·정무적 판단 역시 작지 않은 비중이 있겠으나, 우리는 여기에 더해 지난 세월 민주당의 새로운 지지기반이 된 '수도권 상위 증산층 세력의 이해관계 수호'라는 또 다른 면모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수구보수 세력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며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은 가져가고자 하면서도,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과감한 부의 재분배 정책은 원치 않는 지지층의 입맛을 달래 주기 위한 대전략의 일부라는 것이다. 한때 진보정당운동에 몸담았다가 이후 민주당 계열 내 우파 진영의 대표 지식인이 된 최병천이 이재명의 이러한 우경화 전략에 대해 "수도권 중산층을 포괄하면서도, '국힘 법안'과 차별화된다는 점에서 더욱 탁월한 접근"이라 극찬한 것은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11
이를 종합하자면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친내란 수구 세력에 맞서 '안정적인 관리자'로서 본인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주요 지지기반인 수도권 상위 중산층의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급진적인 흐름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다가오는 조기대선에서 이재명과 민주당이 취할 선거전략임을 짐작할 수 있다. 광장의 주역인 2030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호명하면서도 그들이 공감하는 페미니즘 의제에 대한 언급은 삼가는 점, 광장 세력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전 인권위원장이 직접 등판해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추진한 적이 없고 추진하고 있지도 않다" 12고 단언하는 것 역시 모두 같은 맥락인 것이다. 13
광장 극우에 포획당한 주류 보수정치
민주당과 이재명이 집권 전부터 선제적 우경화를 시도하며 '중원 확장'을 고민하는 사이, 국민의힘을 비롯한 주류 보수세력의 대선 셈법은 보다 복잡해졌다. 계엄 이후 본인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영합해 왔던 극우 정치세력과의 관계 때문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원외 광장 극우세력과 단순히 연대하는 것을 넘어 담론과 조직 모두에 있어서 이들에게 끌려다니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과의 연합은 탄핵 국면에서 '보수결집'을 유도하고 콘크리트 지지층을 지키며 세를 과시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대선이 본격화되면 국민의힘의 입장에서 여러모로 골치 아픈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14
당장 탄핵이 인용될 경우 이를 수용할 것인지부터가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수용한다 밝히면 탄핵 자체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극우 표를 잃을 수 있고, 반대로 수용하지 않겠다 밝히면 헌정 질서 자체의 부정으로 여겨져 중도층의 표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한쪽에서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헌재 판결을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다른 쪽에서는 소속 국회의원이 집회 연단에 올라가 헌재를 "쳐부숴야 한다"고 말하는 등 15 입장정리가 전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6
여기에 한동안 잠잠해 왔던 '명태균 게이트' 역시도 새로운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명태균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관련 수사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주류 보수' 계열의 주요 대권주자인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 모두 명태균과의 유착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당내 경선에서도 핵심 네거티브로 작용할 수 있는 건 물론, 본선에서도 민주당 및 기타 후보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극우 표심을 앞세워 범보수 지지율 1위를 유지 중인 김문수의 대권 행보 본격화, 탄핵 이후 한동안 정계에서 물러나 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당대표의 등판까지 이어지며 보수 세력 내 조기대선 구도는 예측하기 힘든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변수들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조기대선에서 보수 진영 내 정세를 결정짓는 데에는 결국 '광장 극우' 세력의 역할이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도모>의 지난 호 기획기사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현재 이들은 박근혜 탄핵 정국 때부터 차근차근 쌓아 온 조직력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현 정세에서 그 어떤 정치인보다도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결국 국민의힘 대선주자가 누가 되거나 혹은 국민의힘이 아닌 다른 정당 소속이나 무소속 후보로 누가 출마하는가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광장 극우'에게 읍소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탄핵에 찬성하며 이들과 거리를 두어 온 한동훈마저 복귀 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저와 생각이나 방향은 다를지라도 귀한 시간을 내 애국하는 마음으로 거리에 나온 것"이라며 이들을 치켜세웠다는 것은, 'Stop The Steal'에 점령당한 한국 보수정당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17
진보정당의 조기대선, 무엇이 되어야 하나?
그렇다면 현재 광장에서 그 누구보다 앞장서 싸우고 있는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의 조기대선 전략은 어떠할까? 냉정한 평가는 이들이 내세워야 할 조기대선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여전히 보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그 내용적 평가와는 별개로 이미 대선을 의식해 지지층에게 소구하는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보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오랫동안 한국 정치에서의 제3세력을 자임해 왔던 진보정당의 조기대선 대응 방침은 여전히 모호하다. 이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노동당 이백윤, 진보당 김재연(기호 순)의 3명이나 되는 진보정당 후보가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한국 사회 제1의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도 여전히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이 그 방향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2024년 22대 총선의 결과로 인해 현재 민주당으로부터의 독자성을 유지하며 정세를 주도할 정치적 주체가 원내외 모두에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해 원내에 입성한 진보당의 경우 10만 명에 달하는 당원을 보유한 탄탄한 조직력과 민주노총, 전농 등과의 굳건한 관계를 바탕으로 현존 진보정당 중 가장 큰 체급을 보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언론 인터뷰에서 이재명의 '보수 선언'에 대해 "극우 본색을 드러낸 국민의힘을 몰아내고 중도보수 자리를 민주당이 차지하겠다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며 "내란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이 힘을 모아야 하고 전선을 더 크고 튼튼하게 형성해야 한다"고 밝힌 김재연 상임대표의 말에서 보듯, 이들은 여전히 민주당 주도의 정치질서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18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반 년이 넘었음에도 '민주당이 반대하는' 차별금지법을 여전히 발의하지 않은 것이나,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모두 찬성하는' 출입국 개정안이 분명히 반난민·반인권 소지를 담고 있음에도 찬성에 표결했다가 뒤늦게 사과한 진보당 의원단의 모습을 본다면 이들이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며 밝힌 대로 '민주당과 연대하나 독립적인 진보정당'을 정말 지향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실제 조기대선 공동대응까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야5당 원탁회의'에 진보당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19, 이들이 다가오는 조기대선에 있어서도 불출마 또는 (높은 확률로 이재명으로 결정될) 야5당 단일후보 지지를 선언할 가능성 역시 높게 점쳐지고 있다. 원내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 지선, 총선 중 득표율 3%를 돌파한 선거가 없어 토론회 초청 대상이 아니라는 점 역시 진보당의 대선 대응에 있어서는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20
반면 정의당의 경우 지난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의원 비례대표 투표에서 3% 이상을 득표하여 대선 TV 토론에 자당 후보를 내보낼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정의당은 최근 노동당·녹색당과의 연대를 강화하며 독자적 진보정치 세력을 재편하기 위한 노력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언론에도 알려진 부채 문제가 여전히 정의당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2024년 총선에서 원외정당으로 밀려나며 당의 조직력이 크게 쇠한 것 역시 정의당의 고민을 깊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과 선거연합을 시도했으나 원내진입에 실패한 녹색당, 울산 동구 이장우 후보의 득표와 비례대표 득표에서 모두 선전에 실패한 노동당 역시 독자적 대선 후보를 출마시키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21
여기에 기성 진보정당들의 정치 일반에 대한 사회운동 내의 불신 역시 중요하게 작용한다. 진보정당운동 내 오래된 분열과 반목, 변절과 타협의 역사에 대한 사회운동 내의 실망과 냉소는 특정 정당 출신 후보를 중심으로 대선 전략을 짜는 일을 매우 어렵게 한다. 이처럼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주요 주체들은 대선 정국을 앞두고 다양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지만, 조기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에 있어서도 여전히 진보 세력의 대선 대응 방침이 가시화되었다고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탄핵이 인용되고 본격적으로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면 진보정당과 사회운동 세력의 고민 역시 확장되겠지만, 주요 정당들의 대선 전략이 확정되고 '중도보수' 이재명의 민주당과 '극우 아바타' 국민의힘 후보 간의 양강 구도로 정세가 빨려들어간다면 냉정한 정치의 문법 속 여전히 고민만을 지속하는 진보정치의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로 진보·좌파 진영이 독자적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된다면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만이 참여하는 TV 토론에서는 누가 더 부자들의 세금을 많이 감면하는지, 누가 더 페미니즘을 잘 조롱하는지, 누가 더 많은 군비 확장을 약속하는지를 두고 경쟁하는 참담한 광경이 펼쳐지게 될지도 모른다. 계엄 이후 광장에서 '사회대개혁'을 외치며 진보적 사회운동에 기대를 걸었던 적지 않은 시민들에게 이는 실망을 넘어 하나의 커다란 냉소로 다가오게 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독자적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세력의 정치적 움직임이 더디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바깥에서 독립적인 위치를 유지하며 광장에서 표출된 대안적 목소리를 보다 선명히 반영하기 위한 정치적 움직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올해로 출범 한 돌을 맞은 '체제전환운동'이 대표적이다. 자본과 권력으로의 포섭을 넘어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대안적인 정치질서를 열어가려는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는 지난 2월 개최한 '2025 체제전환운동포럼'의 '2025년 정세전망: 평등을 조직하는 광장의 과제' 세션을 통해 내란 종식과 조기대선 국면을 포함한 향후 정세에 대해 폭넓은 토론을 진행했다. 22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도 '사회운동의 정치화'라는 구호가 여전히 모호하고 현실 정치와 맞닿지 못한다는 비판이 가해지기도 한다. 이는 앞서 제시한 '기성 진보정치에 대한 사회운동의 불신'과도 일정하게 그 맥을 같이한다. 다행스럽게도 조기대선이라는 이벤트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맞서고자 하는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12월 3일 이후 내란 국면에서 연대를 강화해 온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의 진보 3당은 이미 후보 출마에 대한 검토를 포함해 공통의 대선 전략을 세우기 위한 내부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상술한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를 포함해 민주당에 비판적인 사회운동단위들, 현 민주노총 지도부의 경향성에 반대하는 노동계 주요 단위들과도 함께 대선 대응 방침을 의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3
다만 이러한 공동대응으로 촉발된 제 진보세력 간의 연대가 장기적인 힘을 얻기 위해서는, 이들의 논의가 단순히 특수한 정세에 입각한 '후보 전술'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대선 공동대응에서 얻은 공통의 경험을 장기적 정치전망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임은 물론이다. 이들의 노력이 탄핵 인용 이후의 정세에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중도보수와 안티페미니즘, 극우 부정선거론의 대결이 펼쳐지는 2025년의 시대 속 광장에서의 해방적 경험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 경험을 이어나갈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것이 진보를 자임하는 정치세력이라면 포기할 수 없는 사명임은 명확하다.
최근 독일 총선에서 보여진 좌파당의 화려한 부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극우의 도래와 그를 핑계로 한 기성정치의 우경화 모두에 맞서는 대안적 정치는 선명하고도 급진적인 노선과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조직활동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만 가능하다. 조기대선에 함께 대응하는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도전이, 더 이상 '공중전'만, 혹은 '지상전'만이 있는 단편적 전술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세력화와 독자적 지지층의 재발굴이라는 대전략에 입각해 행해져야 하는 이유이다. 24
내란과 조기대선 모두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새로운 한국사회의 문을 열어젖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주당의 우경화와 국민의힘의 극우화에 동시에 맞서기 위해서는, 사회대전환의 논리에 기반한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새로운 정치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전 회장, 전환 경기 회원.
동국대학교와 고양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
각주
- 한국갤럽 데일리오피니언 제613호 https://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1543 [본문으로]
- 민주, '조기대선 모드' 전환 준비…물밑에선 이재명 재판 '촉각' https://www.yna.co.kr/view/AKR20250226069600001 [본문으로]
- 민주당 “시·도당, 3월7일까지 지역 공약 보고하라” 대선 모드 돌입 https://www.khan.co.kr/article/202502231429001 [본문으로]
- 지지율 위기 이재명, ‘기본사회’ 공약 재검토… “민생회복 길은 성장”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50123/130917777/2 [본문으로]
- 이재명 "민주당은 원래 진보 아냐...성장 중시하는 중도보수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183157.html [본문으로]
- 文대통령 "경제 어려움은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3/2018072302065.html [본문으로]
- [문재인 정부 4년 노동정책 어땠나] "거대 여당 비정규직 관련 입법 노력 없었다"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616 [본문으로]
- 신자유주의 혁명가 김대중의 성공 그리고 한계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27 [본문으로]
- '민주당, 중도보수' 말했던 김대중·문재인,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OhmyFact/at_pg.aspx?CNTN_CD=A0003105132 [본문으로]
- 국힘을 '극우'에 가두다···이재명 '중도보수론'은 대선 전략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5917 [본문으로]
- 최병천 페이스북 < 민주당 '정책 공학'의 진일보 – '유권자 타겟팅'으로 정책을 설계하다>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pfbid037PQy1PKxcLFDLVVddeCecedNTbVHvimKJvfsg8tBVW2BvxEMe8792fC9W5WhZzRFl&id=100000525857011 [본문으로]
- 요즘 여성·소수자 안띄우는 민주…'2030 공략' 우클릭 작전 https://www.news1.kr/politics/assembly/5706066 [본문으로]
- 주철현 "차별금지법 전혀 고려 안해…내가 이재명 정확히 알아"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5022517581319954 [본문으로]
- 전광훈 막아놓은 '뚜껑' 따버린 국힘...육사 출신도 음모론 기획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83759.html [본문으로]
- "헌재 결정, 수용할 수밖에" 달라진 권성동, 그 뒤엔 중도 표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6190 [본문으로]
- "헌재 쳐부수자"는 국힘 의원...브레이크 없는 '극우화 폭주'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84985.html [본문으로]
- 한동훈, "차기 대통령, 개헌하고 3년 뒤에 물러나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7235 [본문으로]
- [인터뷰] 김재연 “민주헌정세력 연대해야...진보당 목소리도 선명하게 낼 것” https://www.vop.co.kr/A00001667933.html [본문으로]
- 윤종오 의원 페이스북 게시물 https://www.facebook.com/share/p/15hKRiZU58/ [본문으로]
- ‘야 5당 원탁회의’ 출범…“내란 종식·헌정 수호·불평등 해소”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183187.html [본문으로]
- 또 이재명 발목?…0석 정의당, 대선 TV토론 나올 자격 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7582 [본문으로]
- 2025 체제전환운동포럼 : 승리하는 광장을 향해 - 2025년 정세전망 : 평등을 조직하는 광장의 과제 https://www.youtube.com/watch?v=DXP2x6nvFJI&list=PLdowqEYyuVZObFdFdjduYxWM0u3HV5G8-&index=2 [본문으로]
- 권영국 "정의당이 보수·진보 재편 위해 마이크 잡겠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183360.html [본문으로]
- 2025년 독일 총선: AfD의 동독 지배와 좌파당의 부활 https://www.domoleft.net/entry/2025-%EB%8F%85%EC%9D%BC-%EC%B4%9D%EC%84%A0-%EB%B6%84%EC%84%9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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