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극우의 캠퍼스 공격: 대학에 다시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난 2월부터 전국 각지의 대학에서 극우 성향 학생들의 '탄핵 반대 시국선언'과 함께 극우 유튜버들의 학교 침탈이 이어지고, 그에 맞서는 맞불집회와 직접행동도 확장되고 있다. 윤석열 파면 이후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극우 대중운동의 캠퍼스 침탈에 학생사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이 글은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에서 발간하는 [평등으로] 2025. 3. 1. 발행 제10호 (toequality.net)에 실린 글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밝힙니다.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전국 주요 대학가에서는 윤석열 탄핵 반대를 내걸고 부정선거 의혹과 근거 없는 중국인 혐오를 선동하는 극우 성향 학생들의 기자회견과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 미국정치 갤러리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발한 정보공유와 참여자 조직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 30여 개 대학에서 건설 중인 '자유대학'이라는 연대체는 전광훈의 '자유마을'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지난 3월 1일 혜화역에서 '전국 대학생 연합 시국선언 대회'를 열었다. 사회운동의 언어로 말하자면 풀뿌리 조직을 형성하고 전국적인 연대체를 건설하는 중인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학내 극우의 움직임이 이번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당장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온·오프라인에서 신학기 맞이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탄핵 반대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극우 유튜버와 시위대가 캠퍼스에 난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정작 대학 안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 2월까지의 움직임은 방학 중이어서 학내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한정적이기에 관심을 모으기 힘들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과연 개강 이후에는 학내 극우 운동에 대한 반대에 학우들이 함께 나서줄 것인가? 이 지점에 있어서도, 필자 주변의 많은 학생 활동가들은 비관적인 것 같다.
학생사회는 어째서 극우의 범람에도 무관심한가. 소비자주의의 대두와 함께 학생사회가 해체되고 대학에 딱히 소속감을 느끼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그 간의 흐름 속에서, 대학이 공론장 자체로 기능하기 힘들게 되었음을 너무 많이 보아온 것이 비관론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본다. 다시 말하자면 학생회와 동아리를 통해 유지되어 왔던 학내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종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 조건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어떤 실천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극우 운동에 대항하는 학내 실천이 필요한 이유
'학생사회'라는 관념의 퇴색과 별개로, 여전히 대학은 학생들이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다. 혐오와 탈진실, 폭력의 파도가 학교 정문에서 강의실로 저항 없이 밀려온다면 곧 학내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소리 죽여 지켜보더라도 늘 그렇듯 그 풍파는 혐오로부터 취약한 이들이 가장 먼저 가장 거세게 맞게 되어 있다. 외국인 - 특히 중국인,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우선적 표적이 될 것은 자명하다. 만약 내가 속한 동아리나 단체를 넘어서 대학 캠퍼스 자체가 대안사회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에 대응하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결론은 자연스레 도출된다.
기존에는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혐오적인 도발에 대해 일부러 대응하지 않는 것도 방법 중 하나였다.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한 언행에 반응해 주는 것은 괴롭히는 자가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활동에 굳이 반응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말할 기회를 더 부여해 주는 것은 물론, 대응하는 입장에서도 아까운 시간과 역량만 소모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학내 극우 운동은 지금까지의 간헐적 혐오 선동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기존 캠퍼스 안에서 마주하던 혐오 세력은 에브리타임과 같은 익명 커뮤니티의 익명성을 빌린 사이버불링, 혹은 극우적인 개인의 혐오 발언 및 폭력 행동으로 그 규모와 영향력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 한 달 동안은 전국 20여 개 학교에서 극우 집회가 연쇄적으로 벌어지며 극우 유투버와 시위대의 교내 난입, 그와 대치하는 맞불집회의 패턴이 반복됐다. 2월 10일 연세대에서의 탄핵 반대 시국선언 기자회견이 첫 움직임이었다. 이후 2월 15일과 17일 서울대 시국선언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욕설과 폭력을 동반한 극우 시위대와 유투버들이 학생들과 함께하는 양상이 자리잡았다.
서두에서 언급한 온라인에서의 조직적 움직임은 이러한 과정에 크게 기여했다. 이들은 기획안과 타임라인 등을 공유하며 점점 체계적으로 학내에서의 극우적 행동들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고려대에서는 본래 예정되었던 탄핵 반대 시국선언이 맞불집회와의 충돌 등을 핑계로 취소되었다가, 원안 진행을 요구하는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거센 반발을 맞고 3시간 만에 다시 시국선언을 진행하는 것으로 바뀌는 해프닝도 있었다.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미 개인적 혐오의 온상을 넘어서 극우 대학생들이 서로 조직되는 공간이자 소통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별로 탄핵 반대 시국선언 자체에는 10여명 안팎의 학생들이 직접 등장해 기자회견을 진행하지만, 그 뒤에는 함께 시국선언을 준비하고 서명해 준 학생들이 존재하고 있다. 주장의 내용과 방식과는 별개로 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본인의 주장을 뉴스기사에 싣는 것에도 성공했다. 익명의 개인에서 벗어나, 이름과 얼굴을 밝히고 떳떳하게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을 외화할 수 있고 이를 집단적으로 지지해 줄 기반 역시 갖춘 조직된 세력이 이미 캠퍼스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극우 운동이 당분간 대학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존재하게 될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학생사회의 활동가들은 이를 대안적인 캠퍼스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대학생 운동에 있어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객관적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대응을 신학기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맞불집회,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현재 상황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항적 실천은 맞불집회이다. 극우 시국선언이 벌어진 많은 대학에서는 학생과 동문들을 중심으로 한 맞불집회도 함께 개최되었다. 물론 충돌 없이 마무리된 학교들도 있지만, 고려대, 한국외대, 국민대와 같이 장시간의 스피커 볼륨 경쟁이 이루어지거나 심지어 서울대, 이화여대와 같이 참여자 간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지는 상황들도 있었다. 분명 가장 많은 이목이 쏠릴 그 시간과 그 장소에서 일부 극우 학생들이 대학 구성원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음을 밝히는 행동은 의미가 있고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법과 형태, 주장의 내용에 있어서는 여러 고민과 쟁점들이 생겨난다.
가장 먼저, 이른바 '외부 세력' 프레임은 맞불집회의 구성원 범위에 대한 고민을 던져 준다. 학내 활동가들이 '외부 세력'으로부터 모종의 정치적 지시를 받아 '순수한 일반 학생'들의 입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외부 세력 프레임은 그 동안 많은 국면에서 학생 활동가들의 운신의 폭을 제약해 왔다. 이번 사안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학생과 동문만으로 대응하자니 역량과 모집 인원에 있어서 한계를 맞닥뜨리게 되고는 한다. 캠퍼스 내 극우의 공격이 학생에만 한정되는 것도 아닌데 다 같이 연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본질적인 문제의식도 역시 지나칠 수 없다. 그러나 시민사회로 연대 요청의 폭을 넓히면 점점 맞불집회 참석자 중 학생들의 비중이 줄어들어, 외부 세력 프레임 공격에 실질적 근거를 더해 줄 수 있다는 딜레마에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대학 구성원이 아닌 연대자들이 극우 세력 혹은 경찰과 충돌하는 사례들이 보도되고 나면 외부로의 연대 시도는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같은 학교에서의 실천을 기획하더라도, 학내 단위 및 개인들 간에 외부 연대 여부 혹은 맞불집회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한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다. 외부 연대의 대상으로 상정하는 단체들에 대한 입장이 다를 수도 있다. 이 경우 어느 한 쪽에서 강행하게 되면 다른 입장에 선 이들은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적극적으로 결합하자니 입장이 너무 다르고, 그렇다고 방관하자니 학내 대항세력의 표상이 오히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입장의 것으로 굳혀지는 문제가 생긴다.
많은 언론에서 대학가의 풍경을 '탄핵 찬반 충돌', '쪼개진 캠퍼스' 등 동등한 세력 간의 충돌로 프레임화하고 쟁점을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만 좁히고 있다. 충돌이 일어나면 보도의 초점은 어떤 주장이 있었는지보다는 어떤 충돌이 있었는지로 바뀐다. 또한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교정에서 벌어진 일을 학생회나 모임 등 대학사회 안의 논의 공간에서가 아니라 외부 언론의 뉴스와 맥락 설명 없이 일부만을 담은 영상을 통해 접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맞불행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의 즉각적 반응이 외부 세력 유입에 대한 반감 표출, 탄핵 이슈가 주는 피로감으로 인한 무관심, 혹은 주장의 내용보다는 방식만을 문제 삼는 양비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예상 가능한 결과에 가깝다.
이에 더해 최악의 경우, 최근 학내 집회에 사전신고제를 도입하려는 서울대 학교본부의 시도처럼 오히려 집회시위와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는 결과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극우에 대항하기 위한 맞불 행동을 기획하더라도 재학생들의 충분한 지지나 참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역풍으로 돌아와 향후 필요한 학내 실천들의 입지를 제약할 가능성이 큰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대응 사례들
무대응과 맞대응의 딜레마를 깨트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실천 형태에 갇히지 않고 절대다수의 학생들은 여전히 학내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신뢰하고 함께한다는 점,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기획이 필요하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의 상황이 참고할 만한 사례이다. 이화여대에서는 재학생들의 탄핵반대 시국선언이 2월 26일 오전으로 예고되어 있었다. 곧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개인 학생이 '이화여대 긴급행동'의 이름으로 맞불집회를 열겠다는 소식이 뒤따랐다. 결국 집회 당일 탄핵반대 시국선언이 제때 열리지 못하게 하는 것에는 성공하였으나, 뒤이어 극우 유투버들이 학내에 진입해 맞불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을 폭행하고 피켓과 현수막을 훼손하는 등의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학내 폭력 사태가 학내외 여론에 끼치는 영향은 차치하더라도, 맞불집회에 참여한 참가자들의 안전이 직접 위협받는 상황까지 발생한 것이다. 이는 유·무형의 충돌을 불사하는 맞불집회가 가지는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당일 오후에 있었던 집회이다. 맞불집회 주최자들과는 별개로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총학 주도 아래에서 단과대 학생회, 학내 활동단체, 민주동우회와 함께 '2차 파면촉구 시국선언'을 준비했다. 12월 13일 2657명이 모인 학생총회에서 결의한 내용을 총학생회 집행부가 책임지고 꾸준히 실행해 나갈 것임을 학내외에 재차 확인한 것이다. 2차 시국선언은 오전에 있었던 충돌사태와 별개로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학생회와 학내단체들의 여러 깃발이 발언자들의 뒤를 지켰다. 직접적인 충돌이나 맞대응 없이도 여전히 학생들이 연대하여 스스로 캠퍼스의 민주주의와 안전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학내외에 보여주고 학생들 상호 간의 신뢰를 재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다른 많은 대학 학생회는 아무 입장이나 대응을 내놓지 않거나, 양비론적 태도로 학생자치조직이 가져야 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심지어는 대학본부와 동조하여 학내에서의 대응 활동을 억제하기도 한다. 이는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이 또한 하나의 조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조건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서강대학교에서 있었던 맞불집회도 참고할 만 하다. 서강대학교의 경우 2월 27일에 탄핵반대 시국선언이 학내에서 예고되었다. 곧 이에 대응하는 맞불집회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공지되었다. 하지만 학내의 모든 집회를 불허한다는 학교본부의 입장에 탄핵반대 집회는 후문으로, '윤석열 탄핵! 민주주의 지키는 서강대 행동' 집회는 정문으로 장소를 변경하였다. 자연스럽게 두 집회 간 물리적 거리가 확보된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이 덕분에 충돌이나 소음 등 방해 없이 참석자와 기자들을 상대로 주장하고 싶은 바를 폭 넓고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서강대 행동의 경우 서강대 학생과 동문들의 발언은 물론,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마포녹색당 등 시민단체와 지역정당, 성균관대와 한국외대와 같이 그 다음날 각자 학교에서 맞불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도 연대해서 발언했다. 함께 발표한 시국선언문에도 세종호텔 고공농성, 이주노동자 사망사건 등 학교 밖 폭넓은 연대의 내용이 담겼다. 오히려 학생회가 아니었으므로 (그 관념 자체로 허구적인) '순수한 학생'만을 대변해야 한다는 압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을 것이다. 또한 외부연대에 있어 그 의미를 연대자 수 확보만이 아닌, 학생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다양한 주장을 듣는 것에 맞추었기에 맞불집회의 주체들이 같이 단순히 윤석열 퇴진에 대한 찬성만이 아닌 더 나아간 사회대개혁 사안들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기존 언론들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을 할 수 있었다.
모든 학생들은 아니더라도 오늘날의 내란 국면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 학교에도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으리라 생각된다. 맞불집회의 형식이 필요하고 가능한 학교에서는 맞불집회와 같은 직접행동도 충분히 효과적인 실천의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맞불집회를 통해 직접 충돌하지 않고도 더 많은 학생들의 지지에 기반함으로써 일부 극우 학생들의 시국선언을 해프닝 정도로 만들어 버리거나, 인력 동원보다는 주장 내용과 주체를 기준으로 한 외부와의 적극적 연대를 통해 학내의 잠재적 지지자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방법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 역시 이런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다.
혼자서부터 여럿이서까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자
한편 한 번의 맞불집회, 직접행동 또는 기자회견으로 캠퍼스를 지켜내기 위한 행동이 마무리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10대부터 극우 매체와 혐오문화를 접하며 학습하고 있지만, 중등교육과정에서 이를 제어하는 교육환경이 수월하게 형성되지는 못하고 있다. 많은 20대들이 처음으로 성인으로서의 사회화를 경험하는 대학교에서는 수업만이 아니라 학생회, 동아리 등 풀뿌리 단체가 민주주의의 학습 기회, 온라인이 아닌 곳에서 결속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학생자치는 대안적 사회화의 기회와 논의 공간을 제공하는 공동체의 역할을 상실한 것이 현실이다. 현재 극우들의 풀뿌리 사회운동은 내란 정세를 기회로 그 빈 공간에 파고들어 온라인에서만 가능하던 혐오와 공격적 행동을 현실에서까지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그 파급 효과가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이 어렵다는 것은 더욱 우려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극우가 풀뿌리 조직을 키우며 장기전을 모색하고 있다면, 학생 활동가들 또한 학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장기적으로 대학을 건강한 논의와 실천의 장으로 만들 수 있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결국 극우 운동은 개인이 원자화되고 소통이 끊긴 채로 타인과 함께하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을 토양 삼아 성장하기 때문이다.
모든 대학별로 사정이 다를 것이다. 이미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단체나 동아리가 있는 학교라면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함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미 그런 단체에 속해 있다면 품이 크게 들지 않는 수다모임, 영화상영회와 같은 행사를 통해 같은 고민을 가진 동료 학생들과의 접촉면을 넓혀볼 수 있다. 역량이 된다면 신학기 홍보사업과 맞물려서 오픈세미나나 집담회, 상품을 건 인스타그램 이벤트와 같은 사업을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혼자라도 괜찮다. A4용지 크기의 작은 대자보도 괜찮으니 무엇이건 써서 붙여보자. 결국 중요한 것은 대학 안에서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라도 늘리고 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관계를 형성해 가는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의 활동을 고민하는 자신 스스로도 같은 교정에 비슷한 고민을 가진 단체나 사람은 없는지 계속해서 유심히 살펴보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나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연결망을 만들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출발점이고, 그것은 대학 안과 밖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유효한 실천론이기 때문이다.
임현창
전환 서울 회원. 사회운동의 미래는 더 다양한 배경과 더 많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길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획한 책으로 ≪활동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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